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295화 (295/325)

[295]

보스턴 레드삭스는 새로 타순이 도는 리드오프와 클린업 트리오로 작년의 치욕을 설욕하려 했다.

하지만 8회초 1아웃 상태에서 올라온 지완은 능숙하고 날카로운 구위로 보스턴의 추격 의지를 단번에 끊어버렸다.

동팔의 좌완 선발 시도로 인해 조금 위험했지만 결국 승리를 챙긴 뉴욕 양키즈.

그리고 이후에 양키즈는 동팔의 좌완을 불펜에 주로 투입될 수 있다는 공식적인 발표를 했다. 그러자 언론에서는 대부분 이번 개막전에서 이런 표현을 썼다.

[첫 좌완 선발로 1승. 최초의 제 0선발?]

[메이저리그 역사상 첫 0선발이 나오다!!]

물론 0선발이라는 것은 단순한 어휘적 표현이었다.

1선발인 동팔이 우완으로 던지지 않고 좌완으로 1승을 거두었다. 좌완 투수 강동팔이 선발로 나오지 않게 되니 이번 경기가 처음이자 마지막 좌완으로 승리투수가 된 경기가 되었다.

그래서 개막전에서 승리했지만 앞으로 로테이션에서 빠지게 된 것을 두고 0선발이라고 표현했을 뿐이다.

이제 첫 승리지만 개막전이 승리인 만큼 양키즈의 팬들은 물론 선수들도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 그 여흥을 몰아 양키즈의 첫 경기를 치른 피트 카터는 선수들과 함께 즐기려 했다.

"마크. 승리 기념으로 한 잔?"

하지만 마크는 그의 제안을 거부했다.

"죄송하지만, 오늘 많이 안 움직여서 가볍게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가려고요. 죄송합니다."

"아, 그래? 하긴 오늘 외야에서 할 일은 생각보다 없었지."

여력이 있으니 훈련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발이라 제일 여력이 없을 동팔에게 다가갔다.

"동팔, 한 잔 어때?"

하지만 동팔도 마크와 같이 거절했다.

"미안하지만, 모래 선발이야. 오른팔 준비는 지금부터 해야 하거든. 미안."

그 말을 남기고 동팔도 옷을 갈아입은 다음 구장 내에 있는 헬스장으로 갔다. 그리고 다른 선수들에게 제안을 했지만, 전부 퇴짜를 맞았다. 결국 보다못한 데니 행크스가 다가가서 말했다.

"피트, 양키즈 분위기를 모르는 것 같은데, 경기에서 이기든 지든 끝나면 각자 상황에 맞춰서 훈련을 해. 양키즈가 지난 시즌 괜히 승승장구한 건 아니라고."

작년 이맘때 자신이 했던 건 이미 잊었는지 당당하게 말하는 그였다. 하지만 작년의 일을 모르는 피트 카터는 그런가 하며 넘어갔다.

"아, 그렇군요… 그럼 저도……."

이미 열심히 뛴 다른 선수도 훈련을 하는데 고작 백업 유격수인 그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데니 행크스와 같이 헬스장에 가자 자신을 제외한 모든 선수들이 이미 와서 훈련을 하고 있었다.

선발로 나서지 않은 선수들은 평상시처럼 온 힘을 다해서 근육을 다지고 있었다. 선발로 나섰더라도 마크처럼 많이 안 움직인 선수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격렬하게 움직였던 선발 라인업. 특히 선발 투수였던 동팔은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스트레칭에 무게를 두며 몸을 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피트 카터는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우와……."

여기 있는 대부분 선수들의 몸값은 자신보다 월등히 높다. 하지만 그걸 의식하지 않고 이번에 데뷔한 루키처럼 열심히 훈련에 집중하고 있었다.

데니 행크스는 멍하니 있는 피트 카터를 보며 말했다.

"다음에는 헬스복이나 운동하기 편한 복장을 따로 챙겨 와. 지금 남는 것이 이것 밖에 없으니까, 이거라도 입고."

"네, 감사합니다."

어차피 남자들밖에 없었지만, 최소한의 예절을 지키기 위해 가까운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 입었다. 그러던 중 피트 카터는 한 가지 사실을 보게 되었다.

'화장실이 의외로 깨끗하네. 경기가 이제 막 끝났는데도…….'

야구 경기가 다른 스포츠에 비해 오랜 시간 하는 경기라 오가는 사람도 많다. 당연히 화장실을 이용하는 관중도 많으니 그만큼 더러워지기 마련. 특히 첫 경기라 어차피 다음날이 되면 또 심하게 더러워지니 지금은 대충 청소해도 모른다.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피트 카터로선 이전 팀에 있었을 때, 그것이 불만이었다. 하지만 양키 스타디움 화장실의 청결 상태를 보자 심히 만족스러웠다.

'역시 재력이 탄탄한 구단이라 청소부들도 좀 더 많으니까 가능한 거겠지.'

그 생각을 하고 헬스장에 들어온 그는 우연히 타격 코치와 만나게 되었다.

"왔구나. 하긴 마크야 동팔과 지완이랑 친하니 알아서 잘 오겠지만, 넌 어떨지 몰랐거든. 다른 애들한테 들었는데 데니가 데리고 왔다면서?"

"네. 그렇습니다."

"대충 그럴 것 같았다. 그리고 앞으로 경기 끝나면 항상 이렇게 훈련을 해. 원정을 가도 마찬가지야. 애초에 헬스장이 잘 되어 있는 호텔을 골라서 가니까 장소나 시간 탓을 하고 빠질 생각 하지 마."

"네. 저기 그런데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뭔데?"

"혹시 빠지면 벌금을 물어야 하나요?"

그의 말에 타격 코치는 피식 웃었다.

"너 저거 보면 이런 생각 안 드냐? 저 녀석들은 물론 마이너에서도 열심히 훈련에 집중하고 있어. 그런데 저 녀석들이 훈련하는 사이, 너 혼자 빠지면 어떻게 되겠어?"

"그야……."

"당연히 넌 뒤쳐지겠지. 실력이 뒤쳐지면 결국 연봉도 뒤쳐지게 되어 있어. 그러려면 안 해도 돼."

그의 말에 피트 카터는 우는 소리로 말했다.

"차라리 벌금이 낫겠습니다."

결국 피트 카터는 다른 선수들과 같이 헬스장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그리고 훈련을 하면서 그는 보았다.

"오늘 좌완으로 던졌는데 느낌이 어때?"

"나도 우완으로 도전해 볼까?"

항상 쉬지 않고 훈련하는 것은 아니라 종종 휴식하는 시간을 많이 가진다. 특히 오후 훈련과 달리 경기가 끝났으니 무리해서 할 필요가 없어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동팔의 주변에 투수를 비롯하여 다른 선수들이 다가가서 이야기를 했다. 투구 기술에 대한 것은 기본이었고, 어떻게 보면 시시콜콜한 사적인 이야기도 있었다.

물론 동팔에게만 선수들이 다가간 건 아니었다. 다만 피트 카터가 지켜본 결과 이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잘 던지더라도 동양인한테 왜 이렇게 다가가는 거야? 어차피 잘 보일 일도 없을 텐데.'

그만큼 팀의 중심이 되었다는 것이지만, 백인이 아닌 동양인이 양키즈의 중심이란 것을 쉽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 있는 선수들은 인종을 떠나서 친하게 이야기하고 있었고, 전부 밝게 웃고 있었다.

'뭐…분위기는 나쁘지 않네. 동팔에게 집중된 경향이 있는 것을 빼면.'

또 다른 건 지완과 로날드 버드가 아주 친해 보인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친한 사람이 있는 거야 이상한 건 아니라 생각하며 그냥 넘어갔다.

그런 생각을 하며 동팔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았다. 평상시 하는 훈련을 하다 다른 선수들이 하나 둘 떠나가자 적당히 분위기에 맞추어 나왔다.

"끄응… 이렇게 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피트 카터는 기지개를 펴며 몸 안의 혈액을 잠시 활성화시켰다. 그리고 자신의 케비넷이 있는 곳으로 와서 옷을 갈아입으면서 생각했다.

'뉴욕 양키즈가 괜히 강한 팀이 아니었어. 이 정도로 절제되고 자발적으로 훈련을 하는데 지역에서 우승하지 못하면 그게 이상한 일이지.'

정규 시즌은 마라톤과 같이 초장거리 경주와 같다. 시간이 긴 만큼 연패에 빠져도 연승하여 부진한 것을 매꿀 수 있다. 그리고 지금같이 꾸준히 좋은 페이스를 유지하면 그 자체만으로 우승 확률이 높아지기 마련.

이번에도 작년과 같이 지역 우승을 확신하자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피트 카터가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우연히 지나가던 청소부와 어깨가 부딪쳤다.

턱.

"아. 미안합니다."

청소부는 사과를 하고 다시 가던 길을 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제 청소를 마무리했으니 그의 작업복은 더러웠다. 깔끔한 피트 카터는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야! 청소부 주제에 어깨를 치면, 사과 한 마디로 끝이야?"

한 눈에 봐도 청소부의 나이가 자신보다 10살 이상이었다. 하지만 화가 난 피트 카터에게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아무리 벌어봤자 자신의 연봉을 벌려면 20년 이상 걸릴 청소부였다.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인간이 자신을 무시했다고 생각하니 화가 한 순간에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피트 카터의 반응에 청소부는 당황했다.

'뭐지? 뭐 잘못 먹었나? 경기도 이겼는데 왜?'

이해할 수 없는 그의 반응. 하지만 곧 그는 한 가지 사실을 알았다.

"아~ 양키즈에 처음 온 선수였구나."

"뭐?"

반성의 기미가 없이, 오히려 담담하게 말하는 청소부를 보자 절로 주먹이 쥐어졌다. 한 걸음 다가가서 위협을 가하려는 찰나. 뒤에 세 선수가 보였다.

"소리가 들려서 왔는데 왜 이래?"

"피트, 너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그들의 등장에 피크 커터가 말했다.

"저 놈이 더러운 옷으로 내 어깨를 쳤어. 그리고 사과 한 마디하고 끝이잖아. 고작 청소부 주제에 날 처음 온 신입 취급이나 하고!!"

피트는 자신의 말에 선수들이 동의하며 청소부에게 뭐라고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선수들의 반응은 달랐다.

"아~ 그랬어?"

"그럼 네가 잘못했네. 케인씨가 사과했으면 너도 사과해야지."

"케인씨가 일부러 쳤을리는 없고, 분명히 네가 갑자기 문을 여는 바람에 부딪쳤겠지. 안 그래?"

오히려 자신을 보며 사과하라고 했다. 덤으로 그들은 청소부 케인을 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케인 아저씨."

"보셨다시피 이제 와서 예절 교육이 안 되었네요."

"애가 뭘 알겠습니까. 저희가 교육시킬 테니까 먼저 들어가세요. 오늘 빨리 가 보셔야죠. 델리의 생일이라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잖습니까."

그 말을 하곤, 피트 카터의 손발을 하나씩 잡더니 그대로 들어 올렸다.

"어, 어? 잠깐, 왜 이래?"

저항을 하고 싶어도 건장한 선수들에게 잡혔으니 영문도 모르는 상태로 끌려갔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양키 스타디움은 물론 어디를 가더라도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한동안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     *     *

한편, 한동욱은 LA 다저스의 개막전을 하기 전에 동팔의 경기 결과를 봤다.

동부에서 주로 하는 동팔과 달리, 서부에서 하는 동욱은 시차로 인해 이 정도는 일상이 될 것이다.

더군다나 중부에 있었을 때보다 시차가 더 차이가 나니 확실하게 느꼈다.

동욱은 개막전이라 관중들로 꽉 찬 다저스 스타디움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타석에 들어서기 전, 배트를 가볍게 휘두르며 감각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코리아타운에서 온 한국인들이 좋아하며 멀리서도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지금 동욱은 그들의 열렬한 반응보다 동팔이 던진 좌완 투구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좌완이라… 한국에서 실제 경기에선 안 던졌었지. WBC국가대표에선 훈련할 때 던지긴 했지만… 우완만으로 충분했으니 왼쪽으로 던질 필요가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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