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294화 (294/325)

[294]

"뻔해. 조만간 우완으로 다시 던지게 할 생각이겠지. 아마도 빠르면 내일. 아니면 이틀 뒤에 다시 등판할 거다."

감독의 말을 듣자 코치와 선수들은 순간 소름이 끼쳤다.

'아, 그렇지. 오늘은 좌완으로 던졌으니까 다음에 우완을 던지면…….'

'선발 사이클이 확 줄어들어. 그러면 5선발 체제가 아니라 6선발 체제라고 봐도 돼.'

그리고 6명의 선발투수 중 두 명이 강동팔이라는 희대의 투수진이었다. 물론 우완과 좌완의 차이가 있지만, 지금 보여준 구위만 봐도 다른 구단에서 에이스 급이었다.

강력한 원투 펀치만 갖추는 것도 어려운데, 양키즈는 여섯 선발 중 최강의 펀치를 넷 보유하게 된 샘이었다.

"어떻게 될 건지 존 지라디와 강동팔이 알겠지. 선발 우완, 선발 좌완인지. 아니면 우완만 선발이고 좌완은 불펜으로 던질 수도 있어."

"둘 다 선발인 것도 상당한 압박이지만, 뒤에 말씀하신 것도 무섭군요. 그렇지 않아도 뉴욕 양키즈는 사실상 남궁지완이라는 최강의 마무리 투수를 얻지 않았습니까?"

동점이거나 3점차 이내로 이기고 있는 세이브 상황. 그리고 승리하고 있는 중이라면 마지막 이닝에 남궁지완을 투입한다.

그러면 불상사와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거의 대부분 승리를 지키거나 승리의 발판을 이어나갈 수 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그 전에 동팔이 좌완으로 던지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뉴욕 양키즈는 상대하는 팀은 공격 기회가 사실상 7번 밖에 안 남게 된다.

특히 더 무서운 점은 따로 있었다.

"불펜이라면 분명히 지금처럼 좌타자가 연속으로 있을 때에 맞추어 등판시키는 것이 가능해. 무리하지 않고 승리를 지킨다."

"그렇다고 해서 개막전에 이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있어. 지금 양키즈가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니까 선택할 수 있는 모험이자 투자야."

"무엇입니까?"

"월드시리즈 우승."

그것은 메이저리그의 모든 구단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다.

정규시즌에서 높은 승률을 기록하여 우승하는 것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려는 것도. 그리고 포스트시즌의 토너먼트를 통과하려는 모든 목적은 단 하나.

바로 월드시리즈 우승이다.

그리고 보스턴 레드삭스도 월드시리즈를 목표로 한다. 그러니 감독이 말하는 목표는 이해가 되면서도, 동시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자 감독이 덧붙여 말했다.

"지금 뉴욕 양키즈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월드시리즈 우승에 모든 초점을 맞췄어. 우승을 위해서 개막전의 승리 정도는 포기할 수 있다는 거다."

*      *     *

이제는 마운드에서 내려와 쉬고 있는 동팔. 그의 옆에 존 지라디 감독이 와서 말했다.

"구단주에게 들었는데 정말로 그 계약을 한 거야?"

감독의 말에 동팔이 물었다.

"아, 설마 조건부 재계약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지. 그거 말고 또 뭐가 있겠어?"

뉴욕 양키즈는 강동팔이라는 희대의 보물을 오랜 시간동안 보유하고 싶다. 그가 다른 팀으로 가면 어떤 재앙이 자신들에게 오는지 잘 알고 있으니 어떻게든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에 재계약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동팔은 시한부 인생인 자신의 상황을 말할 수 없으니 어느 팀과도 계약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계약 자체를 안 했다간, 오히려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는 것도 사실. 그래서 민희가 제안한 계약은 이것이었다.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면 5년 동안 양키즈에 남아있을 겁니다. 하지만 우승하지 못하면… 은퇴할 생각입니다."

은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야구에서 은퇴하는 수준이 아니라 세상에서 은퇴해야 했다.

이유는 몰라도 일단 재계약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붙었지만, 구단은 바로 이 계약에 사인을 했다.

어차피 월드시리즈 우승은 구단의 숙원 목표. 덤으로 동팔과 재계약을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결국 둘 다 얻느냐. 아니면 둘 다 잃느냐의 계약이 되었으니 구단 프런트에선 무조건 월드시리즈 우승에 모든 것을 걸기로 했다.

광고 및 중계 수수료 수입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물론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면 앞서 말한 것은 알아서 따라오기 마련이지만.

동팔의 말에 감독은 의아했다.

"꼭 그래야 하나? 아직 젊은데 은퇴라니."

"사정이 있습니다.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하면 더 이상 야구를 할 수 없게 되거든요."

동팔의 말에 감독은 설마 하며 물었다.

"그래? 그럼 설마……."

그 말을 하자 동팔은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설마 감독님도 악마와 계약하는 것에 대해 알고 계신 건가?'

하지만 이어지는 말을 듣자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혹시 동팔은 한국의 귀족 집안이었어? 야구하는 것을 천박하게 생각해 집안에서 겨우 허락받은 건데 계속할 수 있는 조건이 월드시리즈 우승?"

마치 어느 스포츠 영화나 만화에서 주인공의 라이벌 격으로 나오는 흔한 캐릭터의 설정과 같았다.

"아하하…그게 좀……."

"그랬군. 그러면 이해가 될 것 같아. 다른 선수들이랑 잘 지내는 것을 봐서 안 그럴 줄 알았는데 도련님이었구나."

한국 사람이 유럽의 귀족 가문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 수 있을까. 그걸 생각하면 감독도 자신이 한국의 명문가나 귀족에 대해 잘 모를 거라 생각하며 넘어갔다.

동팔도 오해를 막고 싶었지만, 다른 방도가 없어 그럴 수 없었다.

결국 이 오해로 인해 동팔이 귀족의 공자님이고, 결혼을 한 민희는 군공을 세운 귀족 집안의 영애라는 소문이 한동안 양키즈를 떠나지 않았다.

민희의 말도 되지 않는 설정에 군공이 들어간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특전사 중령으로 예편했다는 것을 혜진을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해든 뭐든, 동팔의 사정을 짐작한 감독에게 동팔이 말했다.

"감독님."

"응."

동팔은 무언가 말을 하기 전, 주변을 돌아보았다. 여전히 경기는 진행중이었고, 불펜 투수가 지금의 승기를 이어가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비로 나선 선수들은 어느 방향으로 공이 오더라도 받을 수 있게 준비하고 있었다. 나와 있는 선수만 언제 타석에 들어설 지 알 수 없는 대타. 그리고 이 다음에 마운드에 오를 준비를 하는 불펜이 몸을 풀고 있었다.

하나가 되어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 그리고 그 선수들을 응원하는 양키즈의 팬들을 보며 동팔이 말했다.

"전… 뉴욕 양키즈가 좋습니다."

동팔의 고백에 존 지라디 감독도 말했다.

"나도 좋다. 할 수 있다면 평생 있고 싶은 팀이야……."

그 말을 하고 감독은 동팔을 봤다. 아직 말하지 않은 또 다른 말이 있었다.

'네가 온 이후로 변하기 시작한 양키즈가…….'

따악!!

하지만 그 말은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고 있는 투수가 안타를 맞자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지금은 이미 승기를 잡은. 비록 투자하는 마음으로 경기를 치렀지만, 그래도 이미 잡은 승리를 놓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가용한 불펜은?"

"지완이 있습니다만, 지금 나오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8회초에서 아웃 카운트 하나 이상을 잡은 다음에 올려 보내야 합니다."

코치의 말에 감독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지금 보스턴 타순은 1번부터 다시 시작이야. 그리고 중반을 넘어가기 시작했으니 슬슬 대타를 쓰겠지. 그럼 지금 타순이 아무리 늦어도 8회초에 다시 올라와. 그럼 마무리는 지완으로 아껴두어야 해.'

이후 보스턴의 타순과 지금 3점 리드하고 있는 것을 떠올린 존 지라디 감독. 그는 코치에게 바로 지시를 전달했다.

"지완은 마무리 준비하라고 해. 지금은 주자가 나가 있어도 1루잖아. 범타 유도에 더 집중하고, 볼넷도 괜찮으니 과감하게 던지라고 말해."

"알겠습니다."

감독의 지시 덕분인지 6회초의 양키즈는 실점을 하지 않고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7회초. 첫 타석에 오른 5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자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더그아웃에서 지켜보던 동팔은 방금 전, 타석에 오른 타자의 표정을 떠올렸다.

'분명히 웃고 있었어. 이유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굉장히 만족한 듯한 표정…….'

그 이유의 근원이 자신이란 것을 동팔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쌓인 감각이 경고하고 있었다.

'왜인지 몰라도 지금 타석에 선 타자의 몸 상태와 감각은 뛰어나. 내 공을 친 것도 우연은 아니었어.'

5회초에 유일한 타격을 기록했다. 그것도 제대로 맞은 2루타였다. 아마 조금만 더 힘이 실렸다면 홈런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타구였다.

불길한 느낌에 동팔은 옆에 있는 코치에게 말했다.

"지금 타자는 거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느낌이 이상해요. 지금 보스턴 타선 중에 제일 컨디션이 좋은 타자일 겁니다."

동팔의 말에 코치도 동팔의 좌완을 상태로 2루타를 친 상대임을 떠올렸다.

"알았어. 그럼……."

그렇지 않아도 이번 타자를 넘기면 다음은 상대가 편한 6번 타자가 시작이다. 물론 대타 카드가 나올 수 있지만, 그때는 상황에 맞추어 대응하면 된다.

이미 가용한 대타를 예상하고, 그에 맞춘 불펜 투수가 준비되었다.

그래서 사인을 통해 전하려는 찰나, 아주 통쾌한 소리가 양키 스타디움을 울렸다.

따악!!!

타구는 쭉쭉 뻗어 나가더니 펜스를 훌쩍 넘어갔다. 마크가 전력으로 달려가 펜스에서 기다렸지만, 공은 훨씬 높이 지나갔다.

퍼버벙~!!

홈런이 터지자 전광판에서 크게 알려줌과 동시에 폭죽이 터지며 축하해 주었다. 비록 원정을 온 팀이라 할지라도 홈런 자체가 귀하니 이것은 어느 팀이라도 당연히 해주는 예의였다.

3대 0이 3대1로 바뀌자 양키즈의 더그아웃이 부산스러워졌다. 하지만 존 지라디 감독은 단 하나를 물었다.

"지금 구위는?"

"좋습니다."

"그럼 이번 홈런은 사고야. 흔들리지 않게 독려한 다음, 바꾸지 말고 계속 던지라고 해."

"알겠습니다."

한편, 홈런을 친 보스턴의 5번 타자는 자신이 홈런을 쳤어도 불펜 투수가 바뀌지 않는 것을 보았다.

'안 바꿔? 보스턴이었으면 이미 교체했을 텐데…….'

투수의 공은 좋았다. 스트라이크 존에 걸치는 절묘한 투구였다. 다만 운이 없다면 지금 자신의 상태가 이전에 없을 정도로 좋다는 것.

보스턴 레드삭스라면 투수의 상태가 어떻든 무조건 교체다. 하지만 바꾸지 않는 모습을 보니 적어도 이들의 신뢰가 얼마나 두터운지 알 수 있었다.

'홈런을 쳐도 왜 양키즈가 부러운 건지 원…….'

동료의 부러움이 섞인 축하를 받고 더그아웃에 들어왔다. 감독도 짧게 잘 했다고 축하해 주었다.

하지만 이미 그의 마음은 보스턴을 떠나 상대팀인 뉴욕 양키즈로 향하고 있었다.

'이번 시즌 끝나면 양키즈로 가자. 마침 이번에 자유계약 신분을 얻게 되니 그 점을 활용해야지.'

*     *     *

홈런으로 분위기를 반전하려는 보스턴은 투수가 흔들릴 것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마운드를 두들기려고 했다.

하지만 감독의 신뢰를 받은 투수는 그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전력으로 던졌고, 결국 지완이 마운드를 이어받을 때까지 더 이상 실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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