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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상대는 내가 던질 수 있는 구종의 파악을 마쳤어. 하지만 그것만으로 내가 밀릴 이유는 없지. 승부는 이제부터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동팔은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보스턴의 더그아웃에선 차가운 분위기가 흘러나왔다.
"끝까지 가겠다는 것은 역시 우리를 연습상대로 보고 있다는 말 아닙니까?"
"맞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지금 타선은 굳이 우완으로 던질 필요가 없다는 거겠지… 지금도 위기상황이라 보지 않는 것이고."
"방금 전의 세 이닝은 연습이었고, 이번이 본 게임으로 생각한다는 거군요. 정말 화나게 만드는군요. 이렇게까지 무시하다니……."
동팔은 보스턴의 타선을 무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력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 생각했으니 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마음이야 어찌되었건 지금 동팔의 행동은 그들에게 충분히 모욕감을 느끼도록 만들기 충분했다.
동팔은 보스턴 레드삭스가 어떻게 생각하던 관심없이 타석에 오른 2번 타자를 어떻게 상대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동시에 타자도 동팔이 어떤 공을 던질지 예상하거나 노리고 있었다.
'포심 패스트볼. 아니면 슬라이더.'
그리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동팔을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지금 강동팔은 좀 던질 줄 아는 좌완투수다. 그냥 좀 던지는 좌완투수야.'
동팔이라는 압박을 이기기 위해 취하고 있는 자구책이었다. 그의 생각대로 지금 동팔의 좌완의 구위는 특출한 것은 아니었다.
최고 구속도, 던질 수 있는 구종도 우완이 비하면 많이 떨어졌다. 그렇다고 방심해도 된다는 건 아니다.
동팔의 좌완 투구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충분히 통하고, 지난 세 이닝을 통해 증명되었다. 하지만… 압도적인 것은 아니다.
스윽~휙!!
공이 빠르게 날아오자 타자는 자신이 생각한 구종 중 하나가 확실하다고 판단했다. 남은 것은 변화구인지 직구인지를 선택하는 것.
그리고 지금 선택한 것은 슬라이더였다.
타악!!
둔탁한 소리와 함께 공은 뒤로 넘어갔다. 원하는 결과는 아니지만, 타자는 어느 정도 만족했다.
'확실히 슬라이더였어. 다만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덜 휘었을 뿐이야.'
조금만 더 빠졌다면 배트에 제대로 맞아 또 다시 안타가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판단과 선택이 맞았음을 확인했으니 마음이 더 가벼웠다.
반면 동팔은 볼카운트가 자신에게 조금 유리했지만,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던질 수 있는 구종의 한계가 있으니 예상할 수 있는 범위를 좁힐 수 있어. 분명히 다음에 노리는 건 빠르면 포심. 그리고 느리면 커브나 체인지업이라 생각하겠지. 하지만 감이 좋은 선수라 특정한 공을 노리고 치지는 않을 거야.'
동팔은 혜진의 분석을 통해 상대하는 타자가 즉각적인 반응으로 치는 타자임을 알았다. 그리고 혜진의 생각대로 타자는 이미 자신이 행동할 패턴을 정하고 있었다.
'빠르면 직구라 보고 휘두르기. 그리고 느리다 싶으면 커브나 체인지업이겠지만, 체인지업은 좀 난감해. 하지만 던지는 순간의 동작에서 아주 미묘한 차이점이 존재하고 있어. 우완과 달리 좌완은 모든 투구를 동일한 동작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냐.'
무언가 힘차게 던진다면 포심이거나 체인지업이다. 그리고 느린공이라면 거의 커브일 확률이 아주 높았다.
'조금 기다릴까? 아니면 휘두르기?'
휘두르면 확률은 2분의 1. 기다릴 경우 자신이 생각한 공이 오면 거의 칠 수 있지만, 빠른 공이 오면 칠 수 없다.
하지만 동팔을 상대로 5할의 타격 가능성을 예상한다면 아주 높은 것이었다. 물론 타격을 한다고 해서 전부 안타가 되는 건 아니지만.
고민을 하던 중, 동팔이 공을 던질 자세를 취하자 그 또한 자세를 더 정확하게 취했다. 그리고 동팔이 공을 던지는 모습을 보자 단번에 결정을 내렸다.
'기다린다. 빠른 공이 아니야.'
찰나의 순간에 내린 결정은 정확했다. 그리고 날아오는 공의 궤적을 보자 그의 선구안으로 배트를 휘두르지 않았다.
휙~ 퍽.
공은 스트라이크 존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하지 않았다. 헛스윙을 유도하려 했지만, 공의 변화가 커서 주심의 판정은 볼.
볼카운트는 1스트라이크 1볼. 그리고 노아웃에 주자는 1루에 나가 있었다.
우완으로 던져도 견제가 가능하지만, 좌완이기 때문에 주자는 도루 시도를 더 못하고 있었다.
주자를 보며 시선으로 견제를 한 다음, 동팔은 다시 공을 던질 준비를 했다.
브라이언과 사인을 교환한 다음, 던질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교환을 마친 공을 던졌다.
휙!!
이번에 던진 것은 포심 패스트볼. 그것도 전력을 다해 던지는 공이었다. 빠르게 공이 날아오자 타자는 즉시 배트가 나갔다.
따악!!
공은 스트라이크 존을 걸치는 곳을 향해 날아갔지만, 타자의 배트가 먼저 치는데 성공했다.
공은 바닥에 빠르게 날아가 튕겼다. 강습형 타구였지만, 기다리고 있던 유격수가 쉽게 공을 잡더니 바로 2루수를 향해 던졌다.
휙~ 턱.
이미 1루주자가 달려오고 있는 상황이라 평상시 연습한대로 2루수는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공을 받고, 발로 2루 베이스를 밝자마자 송구 견제를 위해 슬라이딩을 하는 주자를 피해서 1루로 송구했다.
휙~ 턱.
타자는 타구의 방향과 수비의 위치를 보고 열심히 달렸지만, 공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결국 병살타로 인해 보스턴 레드삭스의 기회는 날아갔고, 뉴욕 양키즈는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
"휴……."
수비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긴 동팔은 유격수인 브렛 버틀러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하지만 방심하기엔 아직 일렀다.
방금 전의 두 타자는 리드오프였지만, 지금부터는 클린업 트리오를 상대해야 했다. 거기에 아직까지 양팀은 점수를 얻지 못한 상황이라 단 한점을 내주더라도 위험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낮은 평균자책점이 아니라 승리. 홈런을 맞아 자책점이 늘어나는 건 괜찮지만 팀이 패배하는 것은 허용할 수 없어.'
그리고 지금의 변화를 중계진은 정확히 잡고 있었다.
"지금 보스턴이 강동팔 선수의 좌완 투구에 적응을 마친 것 같습니다. 병살이 되었지만, 지금 타격은 나쁘지 않았어요. 오히려 잘 맞은 타구였습니다. 그저 운이 없었을 뿐입니다."
"이제 슬슬 강동팔 선수에게 위기가 오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위기가 있었나 싶을 정도의 선수였는데 이런 방식으로 찾아오는군요. 그럼 과연 강동팔 선수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는 다시 오른쪽으로 던지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 좌완에 적응했다면 다시 우완으로 던져 흔드는 것이죠. 그리고 실제로 구위에 있어서 좌완보다 우완이 더 뛰어납니다."
"하지만 지금 강동팔 선수를 보면 바꿀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이대로 이닝을 끝내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클린업 트리오의 시작인 3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그리고 동팔은 중계진의 말대로 계속 좌완으로 이닝을 마무리하려 했다.
동팔의 의도는 분명히 성공했다. 동팔은 왼팔로 공을 던지며 무실점으로 4회초를 막았다.
하지만 이미 동팔의 공에 어느 정도 적응한 보스턴의 타자들은 끈질겼고, 남은 아웃카운트를 채우기 전까지 2명의 타자가 출루했다.
* * *
"으아~ 힘들다."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동팔은 이번에도 수비의 도움으로 4회초의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고마워, 브라이언. 덕분에 살았어."
2아웃 1, 3루의 상황에서 1루 주자가 도루하려던 것을 보고 브라이언이 재빠르게 2루로 공을 던졌다.
아주 아슬아슬하게 공이 더 빨랐고, 결국 그대로 이닝은 종료. 만약 실패했거나, 2루수가 공을 놓쳤다면 바로 실점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기의 순간이었다.
동팔이 고마워하자 브라이언이 답했다.
"내 일이야. 이 정도는 해야 메이저리그의 포수 아니겠어."
그러면서 동팔과 브라이언은 주먹을 가볍게 부딪치며 유대감을 느꼈다. 그러던 중 존 지라디 감독이 와서 물었다.
"동팔, 좌완은 어디까지 던질 생각이야?"
감독의 물음에 동팔이 답했다.
"지금 보스턴의 4번 타자까지 처리했습니다. 루상에 나온 주자가 아웃되었으니 5회초는 5번 타자부터 시작하겠죠. 그럼 적어도 6회까지는 이대로 던지겠습니다."
"그래? 알았어. 대신 6회초에 불펜을 가동할거야. 오른손으로 던질 생각은?"
"없습니다."
"오케이."
동팔의 의사를 파악하자 감독은 즉시 그 다음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지완이 말했다.
"잘 하면 내가 나갈 수 있겠다."
"아마도. 왼쪽으로 계속 던진다면 그렇겠지. 지금까지 던진 투구숫자를 보면 83개. 더 버거워지는 것을 생각하면 7회가 한계일거야."
"그럼 난 8회나 9회에 나갈지도. 아마 그때 올라오는 타순에 따라 결정되겠지만."
그 말을 하고 있을 때, 그들과 가까운 곳에 있는 마크가 와서 물었다.
"첫 데뷔전인데 너무 밋밋한 것 같아요. 그렇다고 형이 실투하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외야수인 마크가 빛을 발휘하는 것은 그만큼 장타를 맞았을 경우에 한했다. 단순히 높이 뜨는 공을 잡는 것은 프로 중의 프로인 메이저리그에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수준이니까.
오히려 뜨는 외야 플라이를 놓친다면 당장 마이너리그로 가도 할 말이 없었다.
마크의 말에 지완이 그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사실 그러니까 네가 이 경기에 선발로 나설 수 있는 거였어. 동팔이 선발로 등판하면 위기가 거의 안 오니까.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 방심하지 마. 모든 수비가 그렇지만, 외야수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장타가 될 공이 단타로 바뀌어."
"알고 있어요. 항상 코치님의 사인에 집중하면서 움직이고 있는 걸요."
중계카메라가 비추는 건 대부분 투수와 타자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선 타자에 따라 수비 쉬프트를 한다.
그나마 중계카메라에 잡히는 것은 내야수비진. 외야수비진이 카메라에 잡히려면 장타가 나오거나, 외야플라이가 나오는 것이 사실상 전부였다.
그러니 마크를 포함한 외야수들이 열심히 움직여도 시청자들은 그걸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들의 노고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야구장에 직접 찾아온 관중뿐이다.
한가롭게 대화를 하고 있지만, 지금도 여전히 0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
그리고 지금은 마크가 타석에 들어설 차례였다.
"두 번째 타석이지? 긴장하지 말고, 나를 상대한다 생각하고 쳐."
"그럼 어떻게 쳐요. 혜진 누나한테 받은 분석자료는 기억하고 있으니까 한 번 노려보겠습니다."
마크는 배트를 든 다음 더그아웃을 나왔다. 편하게 말했지만, 사실 마크는 심장이 쿵쾅거리며 거칠게 뛰고 있었다.
'내가 메이저리그에서 타석에 서다니. 아니 방금 전에 섰으니 두 번째지만 어째서 진정이 안 되는 걸까?'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에 입성했다. 수비를 할 때는 공이 오지 않아서 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타석에 서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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