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290화 (290/325)

[290]

"갑자기 좌완이라 당황스럽지? 우리도 그렇다. 하지만 생각해봐. 네가 그동안 상대했던 좌완 투수를. 지금 동팔의 좌완 투구에 대한 정보는 없어. 하지만 그동안 던져온 우완보다 뛰어날 건 없다. 동팔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정체를 알 수 없는 좌완 투수를 상대한다 생각해. 덤으로 초구는 웬만해서 노리지 말고, 최대한 공을 지켜봐."

감독의 조언과 지시가 의미하는 바를 그가 모르진 않았다.

'분명히 내 타석을 이용하여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내겠다는 거겠지. 적어도 우리 타순이 한 번 이상 돌아가야 주력으로 던지는 구종에 대해서 대략적인 파악이 가능할 거야. 그리고…그 정도면 충분해.'

지금 그들이 모르는 것은 동팔이 어떤 구종을 던지는지 였다. 그것만 알아내면 생소한 경우라도 빠르게 대처가 가능하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은 있었다.

'그런데…설마 우완으로 던질 때와 같이 대부분의 구종을 던질 수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러면 생각하는 것이 복잡해진다. 더군다나 지금은 어떤 공을 던질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정보는 방금 전에 던진 연습 투구가 전부.

'변화구도 좀 던질 것이지 왜 전부 포심 패스트볼만 던져?'

물론 이것도 정보가 노출되는 것을 최소화시키는 것임을 안다. 그리고 아직 파악하지 못한 것이 많았다.

'잠깐 좌완으로 던지고 우완으로 바꾸려나? 아니면 계속 좌완으로? 포심 패스트볼만 던질 수 있다면 경기에서 좌완으로 던질 이유는 없겠지. 한 번 선택하면 다음 타자를 상대할 때까지 던지는 손을 바꿀 수가 없으니까.'

적어도 확인이 가능한 것은 포심 패스트볼의 구속이 빠른 편에 속한다는 것. 그리고 분명히 최소 하나 이상의 변화구를 던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연습 투구가 끝나고 타자는 자세를 잡았다.

'일단 두개 까지는 지켜보는 것으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지금 자신이 상대하는 투수는 리그 최강인 강동팔이었다. 이번에 데뷔하는 신입이 아니다.

공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드디어 동팔이 공을 던졌다.

휙~.

공은 연습 투구를 했을 때보다 느렸다. 한 가운데를 향해 날아오자 타자는 자신도 모르게 배트가 나가고 말았다.

'실투!!'

만약 동팔이 오른손으로 던졌다면 실투가 아니라 변화구라 생각하여 배트가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좌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익숙하지 않은 공에 첫 실전이라 실투라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그가 동팔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내린 오판이었다.

휭~ 퍽.

공은 홈플레이트 근처에 오더니 아래로 향해 내려갔다. 전형적인 커브. 그리고 타자는 직구라 생각한 자신의 오판으로 인해 헛스윙을 하고 말았다.

'쳇… 일단 변화구는 커브인가?'

그리고 동팔의 첫 투구를 보자 보스턴과 눈썰미가 좋은 관중 및 중계진도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방금 던진 공은 커브였습니다. 아주 정석적인 커브였어요. 타자가 완전히 속았습니다."

"적절한 위치에 궤적의 회전이 예술이었습니다. 우완으로 던질 때의 커브가 명품이지만, 좌완으로 던져도 역시 명품이군요."

"투수가 되면 제일 먼저 배우는 기본적인 변화구지만, 그만큼 대성하기 어려운 공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금 커브를 보면 강동팔 선수가 던질 수 있는 변화구는 그것만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보스턴에게 더 무서운 것은 따로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죠?"

"바로 체력 분배입니다. 타석 단위로 던지는 팔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럼 체력이 떨어짐으로 인해 구위가 떨어질 일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죠. 설령 연장전에 돌입한다 하더라도 투수교체를 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아, 던질 준비를 하는군요. 이번에는 과연 어떤 공을 던질지 보겠습니다."

동팔이 좌완으로 던질 수 있는 구종의 파악은 보스턴만 아니라 지켜보는 모든 사람의 관심사였다.

'밝혀진 건 포심 패스트볼이랑 커브.'

'그런데 과연 그것으로 끝일까?'

사람들의 기대를 알고 있는지 몰라도, 동팔은 이번에 던질 구종을 정했다.

스윽~ 휙!!

이번에도 방금 전에 던진 공과 비슷한 속도로 날아왔다. 그러자 타자는 신중하게 지켜보기로 했다.

'포심인가? 아니면 커브?'

일부러 느린 직구를 던져 속일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그리고 지금은 최대한 많은 공을 던지게 만들어 정보를 빼내는 것이 중요했다.

휙~ 퍽.

"스트~ 라이크!!"

공은 이번에도 포수 미트에 빨려 들어가며 동팔의 제구력이 좌완으로도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바로 앞에서 본 타자는 지금 지나간 구종이 무엇인지 알았다.

'커브? 맞아 커브야. 하지만 방금 전에 비해 휘어지는 각도가 적었어. 그래서 스트라이크… 만약에 포심 패스트볼이든, 방금 전의 커브라 예상하던 휘둘렀다면 바로 범타로 끝났을 거야.'

직구로 예상하고 쳤다면 공의 윗부분을 쳐서 땅볼. 그리고 급격한 커브로 생각했다면 너무 아랫부분을 쳐서 공이 위로 떴을 것이다.

운이 좋아야 파울볼이 나왔을 공의 궤적에 타자는 동팔의 공의 진짜 무서운 점을 느꼈다.

'같은 구종이라도 같은 궤도로 날아오지 않아. 어떤 구종이라도 자신이 원하는 궤적으로 공을 던진다. 그게 무서운 거지…….'

그리고 이건 지켜본 중계진도 파악하여 야구에 대한 지식이 없는 시청자들에게 알려주었다.

"분명히 방금 전의 커브와 비교하면 휘는 각도가 작습니다. 하지만 지금만큼 유용한 공은 없을 겁니다. 만약 배트가 나갔다면 무조건 범타로 아웃입니다."

"자신이 던질 수 있는 구종을 최대한 늦게 알려주겠다는 의도죠. 실제로 직구와 커브만으로 뛰어난 성적을 거둔 투수가 있거든요. 힘들지만 가능합니다. 지금 강동팔이 던진 것처럼 예상할 수 없는 궤도로 자유자재로 던질 수 있다면 말입니다."

"이 공으로 인해 보스턴의 타자들은 머리가 더 복잡해졌을 겁니다. 그리고 강동팔이 지난 두 시즌 동안 최고의 투수로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를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공이었습니다."

동팔은 이제 볼카운트가 자신에게 유리하자 조금은 안도하고 있었다.

'좌완으로 하는 첫 경기라 긴장했는데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심할 수는 없어. 내가 던질 수 있는 구종의 한계가 드러나면 본격적으로 공략하려 하겠지.'

그래서 동팔은 첫 타자를 상대함에 있어서 포심 패스트볼과 커브 이외에 사용할 생각이 없었다. 이미 두 번의 커브를 사용한 이상, 지금 던지는 공은 포심 패스트볼.

그리고 타자도 그걸 짐작했는지 배트 그립을 고쳐 쥐고 있었다.

'최대한 정보의 노출을 느리게 한다. 그렇다면 이번에 패스트볼이 날아올 가능성이 높아. 그리고 분명히 스트라이크로 삼진을 노릴 가능성이 높겠지. 그럼…….'

방금 전에 던진 연습 투구를 보면 제구력은 좌완으로 던진다고 해서 떨어지지 않았다. 분명히 치명적인 공을 던질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투수의 예상대로 동팔은 포심 패스트볼을 던졌다. 강속구를 치기 위해선 더 빨리 배트를 휘두르는 것 뿐.

그래서 타자는 동팔이 공을 던지자마자 배트를 휘둘렀다. 타자의 예상은 맞았다. 하지만 틀린 것이 있었다.

휭~퍽!!

동팔이 던진 공의 방향은 스트라이크 존보다 훨씬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심지어 바닥에 떨어지는 공을 포수인 브라이언 산체스가 겨우 블로킹을 하여 빠지지 않게 했다.

하지만 이미 배트를 강하게 휘두른 타자는 다시 되돌리지 못하고 헛스윙을 하고 말았다.

"스트라이크~ 아웃!!"

첫 좌완 투구를 하였지만 삼구삼진으로 타자를 돌려세웠다. 그러자 해설자가 감탄을 했다.

"같은 구종이라도 어떻게 던지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걸 어느 상황에 어느 정도로 잘 던지는 것은 투수의 재량이죠. 지금 강동팔 선수는 그걸 제대로 했습니다. 우완으로 던질 때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렇군요. 아, 그런데 방금 전에 어떤 말을 하려다 다른 주제로 이야기한 것 같은데요. 아마 체력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지금 좌완으로 던지기 전. 그러니까 강동팔 선수가 오른팔로 던졌을 때도 완투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면서 구위가 떨어진 적은 없었죠."

캐스터의 말에 해설자가 말했다.

"맞습니다. 이걸 말하려고 했는데 그러질 못했군요. 달라진 점이 있다면 최대 9이닝까지가 한계였습니다. 하지만 이젠 최고 18이닝까지 던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죠. 물론 그 수치는 최대수치이긴 하지만,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입니다. 뉴욕 양키즈는 로스터 명단에 다른 누구를 빼지 않고, 또 하나의 선발 투수를 얻은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둔 것이죠. 다른 팀에선 불펜을 전부 소모하여 18이닝까지 던져도, 양키즈는 강동팔 선수 한 명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거니까요. 정말로 그렇게 되면 끔찍하겠군요. 상대하는 팀의 입장에선."

캐스터의 가정된 상황에 해설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요. 마지막 경기라면 다행이지만, 첫 경기 때 그러면 후유증이 상당히 오래 갈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팔이 좌완으로 첫 타자를 가볍게 잡자 편하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당자사인 동팔은 그럴 수 없었다.

'첫 로테이션은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어. 하지만 그 이후엔… 쉽지 않을 거야. 지금은 혼란스러워하고 있지만, 한 번 공을 직접 상대해 본 이상 어느 정도 적응이 된 다음이니까.'

그리고 동팔의 예상대로 3회초까지 보스턴의 타선을 무난하게 상대했다. 하지만 4회초부터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했다.

# 한계. 그리고 도전

따악!!

4회초가 시작되면서 동팔이 던진 공이 배트에 맞았다. 타구는 빠르게 바닥을 때리더니, 유격수의 글러브를 벗어나 뒤로 빠져나갔다.

"휴……."

처음 삼구삼진을 당했던 때와 달리, 두 번째 타석이 되자 처음으로 안타를 치는 것에 성공했다.

1루에 안착한 타자는 생각했다.

'처음 상대했을 때는 난감했지만, 지금은 아냐. 던질 수 있는 구종의 파악은 이미 끝났어.'

그리고 이번에 타석에 서는 2번 타자는 동팔의 좌완 투구를 떠올렸다.

'포심 패스트볼과 커브. 그리고 슬라이더와 체인지업. 생각보다 많은 구종을 던질 수 있지만, 오른쪽으로 던질 때 보다야 훨씬 낫지.'

동팔은 방금 전의 타구를 보자 확실하게 느꼈다.

'이제 정말로 적응을 했다는 건가? 그럼 이제 어떻게 한다… 이대로 좌완으로 던져? 아니면 우완으로 바꿔? 바꾸려면 지금 바꿔야 하는데.'

스위치 투수가 공을 던질 팔을 바꿀 때는 타석을 기준으로 한다. 지금 상대하는 타자와 승부를 내기 전까지는 바꿀 수 없다.

잠시 고민했지만, 동팔은 글러브를 바꾸지 않았다.

'이대로 가자. 어차피 마주칠 상황이었어.'

오히려 지금의 느낌이 새로웠다. 압도적인 피칭을 하기 전에 느꼈던 긴장감을 느껴본 적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비록 족쇄를 차고 던지는 것 같지만, 불리한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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