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289화 (289/325)

[289]

"투수의 보강은 할 필요가 없으니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리고 타선의 보강이 있었죠. 하지만 정확히 보면 타선의 보강이 아니라 수비 보강이 맞는 말일 겁니다. 트레이드를 한 피트 카터는 유격수 백업 요원으로 보이고, 마이너리그에서 콜업된 마크 루스는 외야수로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죠."

"아쉽지만 그와 관련된 영상이 없군요. 타격은 특출나지 않더라도 빠른 발과 높은 점프력을 가졌다고 합니다. 과연 그동안 부족했던 뉴욕 양키즈의 외야수비의 공백을 마크 루스 선수가 얼마나 채워줄지 지켜보는 것도 좋은 관전 포인트가 될 겁니다."

중계진은 마크에 대해 집중해서 소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이 마크에게 관심이 없어도 가족만큼은 아니었다.

"마크!! 우리가 왔다!!!"

"형!!!"

그들은 쉽게 올 수 없는, 그리고 쉽게 구할 수 없는 메이저리그 개막전의 티켓을 직접 사서 들어왔다.

마크가 직접 사서 부모님께 드리려 했지만, 마크의 부모님은 말리셨다.

"됐다. 우리 아들의 메이저리그 첫 경기인데 이건 반드시 우리 돈으로 가야지. 그러니 이 입장권은 환불하고, 나중에 받을게."

마크가 뉴욕 양키즈 25로스터 명단에 이름을 올림과 동시에 연봉도 크게 뛰었다.

이미 더블 A에 올라왔을 때부터 연봉이 한 번 크게 올랐지만, 이번에 올라온 수준은 그때와는 또 달랐다.

이젠 마크의 연봉만으로 가족들이 먹고 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부모님은 일을 완전히 그만두지 않았다.

마크가 중견수로 나와 있는 모습을 보며 부모님은 감회가 새로웠다.

"녀석… 그렇게 힘들게 하더니 드디어……."

"생각보다 빨리 메이저리그에 데뷔할 줄이야."

마크가 부상을 당해 더 이상 재기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부모에게도 역시 절망이었다.

단순히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능력이 없어서 아들의 앞길을 발목 잡았다는 죄책감으로 괴로웠다.

하지만 이렇게 당당히 뉴욕 양키즈의 선발 중견수로 나와 있는 모습을 보니 안 좋았던 모든 것이 쓸려 내려가고 있었다.

'그때 민희씨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쩔뻔 했는지…….'

'좋은 사람과 만나서 다행이야.'

그리고 이런 기회를 열어준 민희에게도 고마웠다. 처음에는 의심의 눈으로 봤지만, 지금은 다른 누구보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가족들은 이렇게 지켜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 마크는 이제 데뷔한 초짜 선수에 불과했다.

"그럼 이제 보스턴 레드삭스의 타선을 살펴볼까요? 이번 개막전의 타선을 보면 흥미롭습니다. 한 타자를 제외하면 전부 좌타인데요. 플래툰 시스템이야 알게 모르게 항상 가동되는 것이지만 이건 너무 노골적인 것 아닌가요?"

"우완에게 좌타가, 좌완에게 우타가 타격에 유리합니다. 이건 물리학적인 상식이죠. 하지만 구단이 모든 선수를 1:1로 좌완과 우완, 좌타와 우타를 영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최대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선 플래툰 시스템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죠. 하지만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너무 노골적입니다."

"혹시라도 잘 맞으면 점수를 낼 수 있으니 그렇겠죠. 그 전에 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만."

동팔도 이미 발표된 보스턴의 선발 라인업을 보자 그 정도는 알아차렸다.

'최대한 유리한 고지를 얻으려는 것을 알겠지만,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동팔은 그동안 우타와 좌타를 가리지 않고 뛰어난 성적을 보였다. 그런데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좌타자를 내보낸다면 이질감이 드는 것도 사실.

'단순히 저항하려는 것? 그것도 아니면 내가 모르는 약점을 알아차렸나? 하지만 혜진은 두드러지는 약점이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데.'

혜진이 발견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발견하기란 더 어렵다. 물론 세상은 넓으니 그녀보다 더 뛰어난 분석력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분석한 자료가 다른 구단에 들어가는 루트는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안하여 알아차리더라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나오면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된다.

'혹시 그냥 한 번 해보는 건가? 어쩌면 이것으로 알아내는 것이 있을 거라고? 설마…….'

그러나 동팔의 예상과 달리 설마는 사실이었다.

"일부러 플래툰 시스템을 사용하긴 했는데 효과가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강동팔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강하니까요."

"알고 있어. 이건 어디까지나 가능성을 보기 위해서 할 뿐이야. 그리고 동팔의 투구폼에 대해선 질릴 정도로 보게 했어."

감독의 말에 코치가 말했다.

"네, 정말 질릴 정도입니다. 어떻게 대부분의 구종을 완벽할 정도로 똑같이 던질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약간 다른 동작으로 같은 공을 던지니 더욱 헛갈립니다."

"하긴 타자가 투수의 공을 예측하는 것엔 한계가 있는데, 그 한계에 제한까지 걸어버리니……."

투수의 공을 예상하기 위해선 모든 것을 파악하는 것이 좋다. 주로 사용하는 볼배합과 주력으로 던지는 구종. 그리고 팔의 각도나 동작이 달라지는 것을 통해 즉각적으로 파악한다.

그게 본능적으로 되던지, 이성적으로 되던지 중요한 것은 속도.

아무리 정확하게 예측해도 이미 공이 지나가 있다면 소용없으니까.

그런데 동팔은 어느 쪽도 쉽지 않았다. 지금 그게 가능한 선수는 오직 한동욱이었다. 아니면 운에 의지하여 어떤 공이 오리라 미리 생각을 하고 배트를 휘두르는 것 뿐.

그럼 확률을 높일 수 없다면 파워라도 올리기 위한 플래툰 시스템이었다.

"어차피 치기 어려운 공이라면 맞혔을 때, 더 멀리 나갈 수 있는 토대는 마련해야……."

보스턴의 감독이 보니 동팔이 양키즈의 코치에게 무언가 받더니, 다시 무언가를 주었다. 그것은 바로 글러브였다.

"들고 온 글러브에 이상이 생겼나? 왜 갑자기 바꾸는……."

하지만 동팔의 행동에 이번에도 하던 말이 끊겼다.

"어? 지금 내가 본 것이 맞아? 지금 동팔이 오른손에 글러브를 꼈어?"

우완투수는 공을 오른손으로 던진다. 그렇다면 글러브는 왼손에 껴야 한다. 그런데 반대로 끼자 코치는 설마하며 말했다.

"혹시… 왼손으로도?"

그 말을 할 때, 아직 경기가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연습투구를 할 수 있어서 동팔이 공을 던졌다.

휙~ 퍽!!

공을 빠르고 정확하게 포수 미트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스피드건에 표시된 숫자는 95.3 마일.

기존에 오른손으로 던지는 공이 최대 103마일에 달하는 것을 생각하면 느리다. 하지만 95마일에 달하는 구속은 메이저리그에서도 빠른 측에 속한다는 것.

그리고 스위치타자도 아니고, 스위치 투수의 모습을 동팔이 보이자, 지켜보는 모든 관중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지켜보기 시작했다.

"정말로 왼손으로 던지는 거야?"

"재미있겠다."

"설마 스스로 패널티를 주는 건가? 오른손으로 던져도 못 치니 왼손으로 던져주겠다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실제 보스턴 더그아웃에선 비상이 걸렸다.

"제길!! 동팔의 왼손에 대한 정보 있어?"

"없습니다. 한국에서도 왼손으로 던진 기록이 없습니다. 던졌다면 이미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럼 대체 왜 그동안 왼손으로 안 던지고 있었지? 저 정도 구위는 실전에도 충분히 통할 텐데."

"아마도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 그랬을 겁니다. 이젠 더 집중되는 견제가 있고, 분석도 더 많이 되었을 테니까 혼란을 주려면 이게 좋은 방법일 겁니다. 하지만…지금 구위를 보면 이전부터 왼손으로 꾸준히 훈련을 했다는 거겠죠……."

상대 투수를 파악하기 위해선 정보가 필수다. 그리고 구위가 좋은 투수보다 알려진 정보가 없는 투수가 제일 상대하기 난감하다.

물론 실력이 없는 상대라면 정보가 없어도 두들길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뛰어난 구위를 보여주면서 정보가 없으면, 정보를 얻기 위해 많은 타석과 아웃카운트를 투자해야 가능했다.

그리고 지금 동팔의 좌완 투구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한 첫 희생양이 바로 자신들이었다.

"공을 최대한 많이 던지도록 만들어. 초구를 노리지 말고, 한 타석에 최소 3번의 공을 볼 수 있어야 해!!"

"알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어이없이 당할 생각은 없다. 정보가 없다면 최대한 정보를 뽑아내야 했다.

비상이 걸린 보스턴 더그아웃과 달리, 양키즈의 더그아웃은 소란스럽지 않았다. 다만 걱정이 있을 뿐이었다.

"너무 빨리 공개한 건 아닐까요?"

동팔의 좌완 투구는 스프링캠프에서도 극비였다. 이미 알고 있는 신지예를 제외하면 기자가 있을 때는 절대로 던지지 않았다.

설령 던지더라도 다른 투수들이 전부 좌완으로 던지는 투구를 할 때, 가볍게 던지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벌써 개막전에 공개할 줄은 몰랐다.

"보스턴이 대놓고 좌타자를 선발 출전시키지 않았다면 그랬겠지.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이보다 좋은 연습상대는 없잖아?"

"연습…상대 말씀입니까?"

"맞아. 연습상대지. 실전을 겸하면서 좌완에 약한 좌타자를 상대해야 하는 것 아니겠어? 그리고 지금은 초반이니 동팔이 좌완으로 던진다고 한들, 갑자기 대타 카드를 쓰지는 않을 거고."

"그야 당연합니다. 이제 1회초인 것을요. 규정상으로 보면 가능하겠지만, 어느 멍청이가 지금 사용하겠습니까."

대타는 경기가 중반을 넘어간 이후에 분위기를 반전시킬 타격을 위해 선택한다. 하지만 타자가 바뀜으로 인해, 그 다음에 있을 수비에도 나와야 한다.

즉, 수비의 균형이 무너지는 것을 감수하면서 타선을 강화하여 점수를 내겠다는 의도로 선택하는 것이 대타다.

그래서 대타 카드를 꺼내는 순간은 빨라야 중반. 이기고 있는 상황이라면 잘 꺼내지 않는다. 그리고 지고 있는 경우라면 마지막 공격기회일 때 세 타석 전부 사용하여 어떻게든 추격하려고 한다.

그 사실을 생각하면 코치의 말대로 1회초에 대타 카드를 꺼낼 감독은 없었다.

"지금은 보스턴이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하겠지만, 곧 방법을 찾을 거야. 동팔의 좌완 투구가 좋기는 하지만, 우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수월해."

"네, 그렇습니다. 우완으로 던질 수 있는 구종과 좌완으로 던질 수 있는 구종의 차이만 봐도……."

하지만 그것은 보스턴의 입장에선 지금 당장 알아낼 수 없는 극비 정보였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서 보스턴은 즉흥적인 작전을 세워 나가고 있었다.

*     *     *

첫 타석에 들어선 보스턴의 1번 타자는 좌완인 동팔을 보며 당황스러웠다.

'왜 하필 내가 처음인 거야?'

하지만 당황하는 것으로 끝이었다. 그 또한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타자. 여기까지 오는데 수많은 경기와 경험을 한 선수였다.

동팔이 약간 연습 투구를 하는 틈에 감독이 부르자 달려갔다. 감독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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