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285화 (285/325)

[285]

"응? 그게 무슨… 동팔이는 우완이잖아."

그의 말에 쉬고 있던 타자들이 마운드가 있는 곳을 보았다. 그러자 정말로 신기하다는 눈빛을 했다.

"정말이네."

"진짜로 왼손?"

"그냥 연습하는 건가?"

신기하게 생각하지만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한 사람이 주변을 봤다.

"야, 이상한 것 없어? 오늘따라 기자들이 없잖아."

보통 스프링캠프가 시작되면 기자들도 출입하기 시작한다. 구단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는 팬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가 제일 큰 이유다.

언제 어떤 이슈가 생길지 모르니 미리 와서 항상 카메라로 훈련 장면을 촬영한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로 기자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다른 타자가 말했다.

"그래? 그럼… 혹시 정말로 제대로 던지려고?"

그 말을 할 때, 동팔이 왼손에 공을 쥐더니 기다리고 있는 포수를 향해 공을 던졌다.

휙~ 퍽!!

공은 정확하게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했다. 빠르고 경쾌한 투구에 타자들은 바로 알아차렸다.

"지, 진짜다……."

"지금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공이야……."

"스위치타자가 있기는 하지만, 스위치 투수라니……. 그거 메이저리그 역사상으로 따져도 몇 명 없는 거잖아. 그것도 19세기 기록이 전부라고."

야구의 분업화가 일어나기 전이라도 양손으로 공을 던지는 투수는 희귀했다. 그리고 지금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들의 상식을 넘어선 일을 동팔이 보여주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좌타자든, 우타자든 전부 유리하게 상대할 수 있다는 거잖아?"

"그렇지… 날아가는 궤도가 완전히 반대로 되니까……."

그러던 중, 한 사람이 또 다른 사실을 떠올렸다.

"아, 맞다. 동팔이랑 스위치라는 말을 들으니 생각난 건데… 같은 나라 사람인 한동욱도 스위치타자 아니었어?"

그러자 다른 사람이 말했다.

"맞아. 들어본 적, 아니 본 적이 있어. 좌완 투수에게도 강하긴 하지만, 에이스급의 좌완을 만나면 왼쪽 타석에 섰었지?"

그 말을 듣자,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가 쳐졌다.

"그럼…한국에선 대체 저런 괴물이 왜 자꾸 튀어나오는 거야?"

*    *     *

동팔이 극비리에 스프링캠프에서 좌완 훈련을 하고 있을 때.

동욱도 우타가 아닌 좌타 훈련을 하고 있었다.

다만 이전에도 종종 왼쪽 타석에 섰던 적이 있었으니 동팔과 달리 극비리에 훈련을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금 하는 훈련은 팀을 나누어 실전 같은 느낌으로 하는 것이었다.

"동욱이 좌타로 잘할 수 있을까?"

"실력 자체가 있으니 걱정할 건 없겠지만, 익숙한 위치는 아닐 텐데……."

좌완을 상대로 왼쪽 타석에 서는 것이 조금 더 유리하다. 같은 이치로 우완투수를 상태로 오른쪽 타석에 서는 것이 더 유리하다.

그러나 그것을 알아도 우타자들은 좌완투수를 상대로 왼쪽 타석에 서지 않는다. 익숙하지 않은 타석만큼 자신의 실력을 깎아내는 것은 태만으로 인한 훈련부족밖에 없다.

하지만 이제 같은 팀이 된 LA다저스 동료들의 걱정과 달리, 동욱은 볼을 잘 고르더니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려던 공을 제대로 때렸다.

따악~!!

동욱의 배트에 맞은 공은 수비수의 키를 넘겨 안타가 되었다.

생각보다 능숙하게 왼쪽 타석에서 안타를 치자 동료들의 걱정도 날아갔다.

"여~ 대단한데."

"역시 실력은 어디 가지 않아."

어차피 지금은 훈련이라 1루수를 하고 있는 선수나, 주루코치는 동욱의 안타를 축하해 주었다. 그러나 그들의 축하에 동욱은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그리곤 다시 훈련에 집중하는 동욱. 그의 모습을 보면서 다른 선수들은 생각했다.

'너무 집중하는데.'

'좋은 행동이긴 한데… 너무 긴장했다? 아니 무언가 조급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나이가 있는 주루코치의 생각대로 지금의 동욱은 마음이 급했다.

'최대한 격차를 늘려야 해. 아니 다음에 만났을 때, 어느 누구와 만나더라도 더 유리한 고지에서 준비할 수 있어야만 해.'

동욱은 아주 작은 틈이라도 놓칠 수 없었다. 그런 그가 좌타와 우타의 차이를 넘어갈리 없었다.

이전에는 우타자의 능력으로만 5할 타율을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5할의 타율에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내가 있는 LA다저스는 내셔널리그에서 제일 탄탄한 마운드. 그러니 거기에 대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 내가 전에 있었던 클리블랜드보다 뛰어나. 그럼 남은 것은 단 하나…….'

승리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뻔했다. 점수를 허락하지 않는 마운드. 그리고 유기적인 수비와 함께 점수를 얻는 것.

그리고 점수를 얻는 최선봉이자 중추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었다.

# 나 혼자 당할 수 없다.

뉴욕 양키즈의 스프링캠프가 시작된 그 다음날.

"유후~ 여기가 양키즈 캠프? 생각보다 화려하지는 않네."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피트 카터는 유유자적하게 캠프로 들어왔다.

그가 타고 온 자동차는 누가 보더라도 단번에 알 수 있는 고가의 스포츠카였다. 자신이 메이저리거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주차장에 있는 차를 보면 제일 비싼 차 중 하나였다. 그는 주차장에 있는 차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말끔하지만 중량이 큰 SUV차량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여기 양키즈 선수가 아닌 사람도 주차하나? 아~ 하긴 선수만 여기 오는 건 아니지. 직원도 올 수 있는 거니까."

여기를 관리하는 청소부나 행정지원을 하는 직원이 왔을 거라 생각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그는 모르고 있었다. 그가 우습게 여기는 차량의 주인이 양키즈에서 제일 높은 연봉이 될 사람의 차량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늦지 않게 오면 우습게 보이니까 이건 어쩔 수 없다고. 내가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줘야……."

자신이 괜히 하루 더 지각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차피 스프링캠프에 합류하는 날짜는 최소한 이 날에는 오라는 것.

그러니 구단에서도 하루나 이틀 정도의 여유를 두고 캠프를 소집한다. 그리고 피트 카터는 양키즈의 고액 연봉자들도 그렇게 하리라 생각했다.

'데니 행크스나 강동팔이라면 내일이나 모레 와도 누가 뭐라고 하겠…….'

그 생각을 하며 훈련을 하고 있을 캠프에 도착하는 순간, 자신의 예상이 처참하게 깨지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뛰어, 뛰어, 뛰어!!!"

"굼벵이 삶아 먹었냐? 잘 치고 아웃되고 싶어?"

"스윙이 그게 뭐야!! 그동안 배때기에 기름만 추가시켰어?"

넓은 훈련장에선 선수들이 땀을 흘리며 훈련에 집중하고 있었다.

투수는 마운드에서 전력으로 공을 던진다. 타자는 실전처럼 타격에 집중하였고, 이미 나가 있는 주자들은 언제라도 도루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다른 곳에선 프로에 들어오는 순간 거의 하지 않는다는 펑고까지 하고 있었다.

따악!!

휙~ 턱.

내야는 물론 외야를 담당하는 수비들은 어디로 공이 날아올지 모르니 항상 대기 자세를 취한다. 그러다 공이 날아오면 재빠르게 몸을 날려 공을 잡더니, 바로 정해진 곳을 향해 송구했다.

이 모습을 보며 피트 카터는 과연 지금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인지 의문스러웠다.

'어? 뭐지? 내가 잘못 찾아왔나? 혹시 양키즈 캠프가 아니라 다른 곳?'

하지만 얼굴을 보면 익숙한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제일 유명한 사람인 강동팔은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고 있었으며, 양키즈의 4번 타자인 데니 행크스는 다른 훈련장에서 펑고를 하며 몸을 날리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 역시 입에 단내가 날 정도로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어리둥절하고 있는 피트 카터를 본 데니 행크스가 크게 소리쳤다.

"야!! 너 뭐야!! 뭔데 훈련 안하고 그냥 서 있어?!!!"

데니 행크스의 작정하고 외친 큰 소리에 피트 카터는 그대로 바짝 군기가 들었다.

"피, 피트 카터입니다. 이번에 양키즈에 왔습니다!!"

그러자 데니 행크스가 소리쳤다.

"왔으면 다야? 뛰어!!!"

"네? 네!!"

데니의 호통소리에 피트 카터는 그가 있는 곳을 향해 뛰었다. 그 모습을 보는 다른 선수들은 웃음을 참느라 혼나고 있었다.

'저거 작년 그 모습이랑 똑같잖아?'

'전에는 타격 코치가 뭐라 하더니, 이젠 그 자리를 자기가 하고 앉아 있네.'

'자기 혼자 당할 수는 없다고 이렇게 까지 펑고에 열심히 할 줄이야…….'

'대신 효과는 만점이었지만.'

이 모든 것은 짜고 치는 사기도박과 같았다. 하지만 여기의 유일한 피해자인 피트 카터는 그것을 꿈에도 알 수 없었다.

달려가면서 피트 카터는 생각했다.

'양키즈에선 4번 타자도 펑고를 피할 수 없는 건가? 여기 분위기 원래 이래?'

양키즈에 처음 온 그가 그걸 지금 당장 알 수는 없었다. 그러니 지금은 일단 무서워 보이고, 자신보다 연봉이 몇 배가 많으며, 지난 시즌 성적 또한 자신보다 뛰어난 선수에게 대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도 달려가면서 언뜻 보인 의문의 미녀에게 저절로 눈이 갔다. 바로 혜진이었다.

'어? 누구지? 동양인 같은데, 중국이나 일본 출신인 직원인가?'

인종을 불문하고 미인에게 눈이 가는 것은 만국 남자들의 공통적인 본능이다. 이것은 바로 옆에 애인이나 아내가 있어도 마찬가지.

다만 그 시선을 얼마나 빨리 끊고, 다시 옆에 있는 애인에게 주는 것이 분쟁을 최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하지만 지금 피트 카터가 눈치를 봐야 할 사람은 애인이 아닌, 호통을 치고 있는 데니 행크스였다.

솔직히 데니 행크스는 피트의 눈동자가 혜진을 향하자 내심 쾌재를 불렀다.

'됐어. 끝났어.'

만약 안 본다면 어쩌나 싶었다. 하지만 분위기가 좋지 않아도 절로 혜진에게 눈길이 갔다면 의도한 것의 절반은 이미 끝난 상태.

그러나 데니 행크스는 자신이 지금 즐기고 있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너 지금 제정신이야? 지금 다른 사람들이 보여? 너 빼고 모두 어제 왔다. 그런데 넌 신입 주제에 제일 늦게 와? 미쳤냐? 엉?"

"그게……."

피트 카터의 입장에선 솔직히 양키즈 선수들이 이렇게 성실할 줄은 몰랐다. 지금 오면 적어도 중간쯤은 되리라 생각했지만, 데니 행크스의 말대로 제일 늦게 온 사람이 될 줄이야.

'양키즈라면 양키답게 불성실해야 할 것 아냐. 이름값 좀 할 것이지.'

하지만 절대 그 말을 할 수 없다. 그리고 그건 피트 카터만 아니라 데니 행크스도 알고 있는 사실.

'이럴 줄 몰랐다는 말이 목젖까지 치고 올라오겠지. 크크크. 하지만 진짜는 지금부터 시작이야.'

데니는 여전히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 훈련 중이니까 인사는 나중에 하고, 당장 준비운동 한 다음 기초체력 훈련하고, 타격 훈련 받을 준비해. 어서!!"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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