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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오력의 투수-284화 (284/325)

[284]

"흐흑, 흐허헝~!!"

핸들 위로, 아래로 동욱의 눈물이 후두둑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아무리 많은 돈이 있어도 병을 낫게 할 수는 없다.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어머니를 구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성공을 하여 돈을 많이 벌었으니 치료에 드는 비용의 걱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유일하게 안도할 수 있는 점이었다.

처절한 무력함에, 그리고 이제 정말로 엄마가 세상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허탈한 마음이 동욱을 나락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크게 울면서 감정의 일부를 털어낸 동욱은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옆을 보자 보조석에 있는 배트가 보였다.

그것은 엄마가 동욱이 프로에 입단했을 때 사준 선물이었다. 이전에 동팔과의 접전에서 한 번 깨졌지만, 깔끔하게 복원되어 금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동욱은 안다. 이제 더 이상 이 배트로 경기에 나설 수는 없다. 단 한 번이라도 잘못 맞으면 겨우 붙인 곳에 균열이 생겨, 또 한 번 쪼개진다.

이미 한 번 깨진 엄마의 선물을 다시 쪼갤 수는 없었다.

그래도 동욱은 엄마가 선물로 준 배트를 미국으로 가져갔다. 애초에 사용하기 위해 가져가는 것이 아니다.

그저…자신이 우승해야 할 목표였기 때문이었다.

*     *     *

미국 뉴욕으로 돌아온 동팔은 제일 먼저 민희와 만났다.

"왜 이렇게 빨리 왔어요? 좀 더 있다 오지."

민희의 말에 동팔이 말했다.

"너 혼자 두고 어떻게 오래 있겠어. 승현인 어때?"

지금 방에서 잠들어 있는 자신의 아들을 찾았다. 마침 아빠가 왔다는 것을 알았는지 승현이가 깨어나 울었다.

"으앵~."

"어머. 이제 막 일어났네."

민희가 서둘러 올라가 아들을 챙겼다. 이제 막 일어난 승현은 간만에 아빠를 보자 바로 손을 뻗었다.

"옳지, 옳지. 아빠 여기 있다."

동팔은 아들을 민희에게 받아서 안았다. 그리고 평상시에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을 했다.

"우르르르~ 까꿍!"

동팔의 행동을 보면 황제라도 아기에게 재롱을 떤다는 말이 실감되었다. 다행히 잠만 깼을 뿐 별 문제가 없어서 승현이는 울지 않았다.

동팔이 아기를 돌보는 사이, 민희는 동팔이 가져 온 짐을 풀기 시작했다. 그러다 동팔이 가져온 낡은 글러브와 야구공을 봤다.

"이건……."

이전부터 본 글러브다. 자신이 돈을 들여서 바꾸자고 했지만, 끝까지 안 바꾼 글러브였다.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동팔을 계속 만나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네요. 어머님께서 잘 간직 해주셨나 봐요."

"응. 덕분에 찾느라 고생하지 않아도 됐어."

동팔은 이 글러브에서 자신을 같이 봤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글러브… 정말 오래 썼죠? 고교 선수 시절부터 재기하기 전까지……."

이것은 동팔의 선수로서의 역사였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 점점 낡아가는 것이 보여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이 글러브를 포기하는 순간, 자신의 꿈도 포기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더 좋은 글러브를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그러지 않고 재기할 때까지 썼다.

드디어 재기에 성공하는 순간, 프로무대에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된 글러브는 별수 없이 현역에서 은퇴해야 했다.

"이 글러브는 왜 가지고 왔어요? 다시 새롭게 마음을 다지기 위해서?"

"그것도 있어.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야. 이건 확실히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해준 역사. 그리고…동시에 꿈이야."

"꿈? 어떤 꿈이요."

민희의 물음에 동팔이 답했다.

"이 글러브처럼 뛸 수 있을 때까지 뛰다가 은퇴하는 것."

그 말을 듣자, 민희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눈물은 갈라진 글러브 가죽위로 떨어져 빨려 들어갔다.

"어머, 내가 왜… 이거 어떻게 하지?"

민희는 자신이 흘린 눈물로 글러브가 상할까봐 걱정되었다. 하지만 동팔은 나무라지 않았다.

"괜찮아. 이미 안은 내 땀에 찌들어 있는걸."

글러브의 속은 동팔의 땀이 깊게 스며들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글러브의 겉에 민희의 눈물이 스며들었다.

동팔은 민희의 옆에 앉았다. 아들을 한 손으로 안고, 남은 손으로 민희의 손을 잡아주었다.

민희가 눈물을 그칠 때까지.

그 다음날.

나름 감동적인 하루를 보낸 후, 그들의 집에 누군가 찾아왔다.

띵동~.

"어? 누가 올 사람이 있나?"

자신이 알기로 지금 집으로 올 사람은 없었다. 그러자 민희가 당황하며 말했다.

"아, 맞다. 오빠, 어제 말하려다 못했는데……."

그러는 사이, 동팔은 문을 열기 전에 인터폰 카메라를 통해서 누가 왔는지를 확인했다.

"어? 엄마, 아빠? 그리고 장인어른이랑 장모님까지?"

분명히 얼마 전, 한국에서 본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미국에 온 이상, 더 이상 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떡하니 와 있는 모습을 보니 어안이 벙벙했다.

동팔이 당황하면서도 기다리고 있는 그들을 맞아들이기 위해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지금 동팔이 있는 곳은 지구 반대편에 위치해 있다. 동네 마실 나가듯 오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네가 하도 아들 자랑을 해서 직접 보러 왔다."

"이미 비자는 이전부터 받아 놨었어."

장인어른의 말씀도 이어졌다.

"내가 특전사 중령으로 예편한 것 알고 있지? 군인 경력이 있으면 비자 발급이 더 쉬우니까 그렇게 알고 있게."

참고로 장모님은 장인어른으로 인해 쉽게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결국 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다시 미국 땅에서 만난 그들.

그들은 손주를 보며 귀여워하다가 사돈끼리 농담까지 하게 되었다.

"그거 아세요? 동팔이가 얼마 전에 글쎄 헤어지기 아쉬운지 안으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더라니까요."

"으아!! 엄마!!"

결국 숨기고 싶었던 민망한 과거까지 드러난, 이틀 전만해도 감동적이었던 작별은 이렇게 파국 아닌 파국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동팔이 너무 신경쓰지 않게 하기 위해 일주일 정도 머물다 다시 한국으로 떠났다.

*     *     *

예상외로 어른들이 오시는 바람에 일주일동안 훈련은 거의 못하고 관광 안내에 힘쓰던 동팔은 겨우 쉴 수 있었다.

'괜히 훈련을 했다가 아파하는 것을 보여드릴 수도 없고…….'

하지만 이제 그것은 끝났다. 남은 것은 스프링캠프를 시작하기 전까지 몸을 관리하고 준비를 하는 것.

그래도 하루 정도는 쉬어 준 다음, 지하 훈련실에서 공을 던질 준비를 했다.

이번에는 전과 달리 왼손에 글러브를 끼지 않았다. 지금 글러브를 낀 손은 오른쪽. 생소한 느낌에 동팔은 몸을 풀며 생각했다.

'어색해. 전에는 스위칭을 생각해 왼손으로도 던졌지만, 그때에 비하면 감각이 많이 죽었어.'

이미 몸 상태를 확인하면서 근력과 악력을 비교했다.

'근력은 어쩔 수 없이 오른팔이 더 좋아. 더 많이 던지니 당연한 이야기. 그리고 악력도 마찬가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오른팔과 손가락을 기준으로 했을 때의 이야기다. 조금 어색하지만,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동팔은 간만에 왼손으로 공을 던졌다.

스륵~ 휙!!

던지는 구종은 단순한 직구. 그리고 오랜만에 던져서인지 공은 원하는 곳보다 한 뼘 떨어진 곳으로 날아갔다.

퍽!

공은 완충 매트릭스를 때린 후, 바닥에 떨어졌다. 나온 구속은 나쁘지 않았다.

"91마일이면… 약 시속 145에서 146 사이. 전에는 155까지 갔었는데… 메이저리그에 오면서 왼손으로 던질 일은 없었으니까……."

메이저리그에서도 낮은 구속으로 에이스의 역량을 발휘하는 투수가 있다. 하지만 그만큼 볼 끝의 움직임이 좋거나, 제구가 될 때의 이야기였다.

"앞으로 왼손으로 던지는 것에 집중해야겠어. 그렇다고 오른쪽의 훈련도 게을리 하면 안 돼."

어차피 아메리칸 리그인 이상, 타격으로 나설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그럼 다양한 방식으로 상대가 자신을 상대하기 버겁게 만드는 것이 최선.

그리고 마침, 레슨장 사장님을 통해 잊고 있었던 방법을 떠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녹이 슬은 왼팔과 왼손에 기름을 치고 원활하게 움직이도록 만들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는다.

"간다. 어떤 고통을 겪는다 해도, 지금까지 겪은 것에 비하면 너무 작아."

그렇게 해서 동팔은 스프링캠프가 시작되기 전까지 지하 훈련장에 매일 살다시피 했다. 자신의 왼팔이 원래의 감각을 되찾을 수 있도록.

그리고 시간이 지나 메이저리그의 각 구단은 이번 시즌에서 우승하기 위해 스프링캠프를 시작했다.

*     *     *

스프링캠프가 시작되자 양키즈의 선수들은 늦지 않게 합류했다. 그 중에는 작년에 일부러 지각한 데니 행크스도 있었다.

스프링캠프에 임하는 모든 선수들은 각자 각오를 다지며 온다.

'이번에야 말로 작년보다 뛰어난 활약을!!'

'후배들에게 밀려날 수 없지.'

'밀리지 않는 차원이 아니라, 뛰어넘어서 우승까지!!'

데니 행크스도 여기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스프링캠프에 합류하는 목적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나만 당할 수 없어."

그의 나지막한 말에 동료는 피식 웃었다.

"아~ 그거? 지완이 와이프에게 고백한 것 말이지?"

"유도한 건 맞지만, 그렇게 쉽고 빠르게 넘어갈 줄이야."

그것은 콧대 높은 고액 연봉자를 누르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 그리고 그 작업에 데니 행크즈는 완벽하게 넘어갔다.

하지만 지난 일을 가지고 화를 낼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의 말대로, 그 수모는 자신만 당할 수는 없었다.

"혜진씨에게 미안하지만, 이번에도 부탁한다고 말했어. 물론 지완이에게도."

이미 사전 준비를 마친 데니 행크스. 하지만 그 전에 중요한 전제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 우리 구단에서 새로 영입한 사람은 두 명이 전부야. 그 중 마크 루스는 이미 동팔이랑 친해서 지완이랑 혜진을 알고 있을 텐데? 그리고 동팔이랑 같이 와서 지각도 안했어."

그러자 데니 행크스가 말했다.

"아~ 물론 알고 있지. 마크를 낚을 생각은 진즉에 버렸다. 내가 노리는 건 다른 녀석이야."

그의 말에 로날드가 그의 이름을 말했다.

"이번에 지명타자로 영입한 피트 카터? 그렇지 않아도 내일 온다던데?"

로날드의 말에 데니 행크스의 눈빛이 빛났다.

"맞아. 그렇지 않아도 명문 중의 명문인 양키즈에 입성했다는 것만으로 거들먹거리고 있어. 나랑 다르게 연봉이나 계약금이 많은 것도 아니면서."

그의 말에 동료들이 생각했다.

'이거나 그거나… 지각이 중요한 것 아냐.'

'그래도 그때 엄청 거들먹거린 건 인정하나보네.'

하지만 그건 과거에 불과하니 문제 삼을 것은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나서주는 데니 행크스를 보니 더 웃긴 면도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사람이 투수들이 훈련하는 것을 보며 의아해했다.

"야, 잠깐. 지금 동팔이 왼손으로 공을 던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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