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281화 (281/325)

[281]

"난 민철씨랑 만난 다음, 다시 광주에 내려가려고 하는데, 넌?"

"저요? 일단 만날 수 있는 사람들 다 만나려고요. 민철이 형은 만났지만, 스틸러스 사람들도 만나야 하고, 우랑우탄 분들도 만나고, 회사 사람들이랑 친구도 만나야죠."

"다들 네가 연락해주길 기다리겠다. 나야 어차피 미국에서 다시 만날 건데 오래 만날 필요 없잖아."

그 말을 하고 두 사람은 작별인사를 한 다음 헤어졌다.

이후에 동팔은 지애에게 말했던 것처럼 만날 수 있는 사람을 최대한 많이 만났다.

제일 먼저 만난 사람들은 동팔이 힘겨운 재기를 준비할 때, 항상 같이 있어주고 응원한 스틸러스 사람들이었다.

"안녕하세요."

동팔이 약속 장소인 고깃집에 들어오자 이미 기다리고 있던 스틸러스 사람들이 크게 반겨 주었다.

"당연히 안녕하지. 오랜만에 보니까 좋다."

"확 마 니 펄펄 날아댕기는거 보니 억수로 좋다 안 카나."

동팔이 오기 전에도 이미 왁자지껄 했지만, 동팔이 오자 분위기는 더욱 흥겨워졌다. 그리고 이미 차려진 상에 주문한 고기가 바로 올라왔다.

고기 굽는 향기로운 냄새가 퍼지면서 스틸러스의 사람 중 한 명이 나와서 진행을 시작했다.

"아아, 마이크는 없지만 이대로 진행하겠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이 사람을 모르면 간첩. 아니 어쩌면 간첩이 더 잘 알고 있을 우리 스틸러스의 자랑인 강동팔을 소개합니다. 다 함께 박수!!"

짝짝짝짝짝짝!!!!

스무 명의 건장한 남자들만 온게 아니라, 동팔과 만나기 위해 온 지인도 있었다. 그러니 족히 40명이 되는 사람이 동팔을 향해 박수를 치자 식당 전체에 울려퍼졌다.

"자, 자. 그럼 동팔아, 나와서 자기소개 부탁할게."

그의 말에 동팔은 익숙하지 않지만, 자리에 일어났다.

"네, 강동팔입니다. 지금 뉴욕 양키즈에서 투수로 있습니다."

동팔의 소개에 사람들이 말했다.

"와~ 소개가 너무 간단하다. 사회자. 자기 입으로 말하긴 그런 것 같으니까 네가 마저 소개해라."

그들의 말에 사회자가 메모를 꺼내며 말했다.

"그렇죠. 한국에서 자기자랑하면 많이 쑥스럽잖아요. 그래도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한국인 최초로 투수로서 최고의 상인 사이영상을 작년에 수상. 그리고 올해 또 받아서 2연속 사이영상 수상. 메이저리그에서도 방어율이 0점대이고 현역 투수 중에서 정규 이닝을 소화한 투수 중 압도적으로 낮은 피안타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럼 다 함께 박수!!"

사회자의 설명에 동팔은 조금 민망하지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상이 귀하고 명예롭긴 합니다. 하지만 힘든 시간에 응원하고 함께 해준 형들과 동생들의 격려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저는 사이영상보다 여러분과 함께 야구했던 순간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동팔의 말에 한 사람이 말했다.

"마, 이 자슥. 사람 울컥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네. 나 지금 눈물날라 칸다."

"진짜 몇 년 전만 해도 이렇게 성장할 줄 알았냐."

"그러면 우리가 더 고맙지. 앉아라.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고기 구워 먹고 힘내자."

동팔이 다시 감사를 표하고, 다시 자리에 앉자 사회자가 말해다.

"고기 타지 않게 뒤집어 주세요. 그리고 이제 확실하게 아셨죠? 우리가 그동안 동팔이랑 같이 야구했다는 걸 안 믿으시는 분이 많으셨는데, 이걸로 확실히 증명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널리널리 알려 주시고, 사인볼은 나중에 받으실 수 있으니 조급해 하지 마세요. 하하하. 그럼 다 같이 식사합니다!!"

그 말과 함께 다 같이 본격적으로 고기와 쌈을 먹기 시작했다.

자유롭게 먹으면서 동팔도 옆에 앉은 다른 사람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사이영상도 받았겠다, 이제 남은 것은 MVP랑 월드시리즈 우승이 남았네."

"들어보니 한동욱이 내셔널리그로 옮겼다면서? 솔직히 말하면 그 녀석이 거기로 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심 안도했다."

"우리야 항상 동팔이 편이지만, 그 녀석은 진짜 괴물 아니냐. 물론 그 괴물을 잡을 수 있는 또 다른 괴물이 바로 여기 있지만."

"그래도 동욱이를 정규시즌에서 만날 일은 없을 거고, 거기에 항상 디비전에서 막던 시애틀도 비상이 걸렸다면서? 그 헤럴드인가 뭔가, 특히 포스트시즌에 더 강해지는 투수가 부상으로 끝났잖아."

"동팔이 실력이면 믿을 수 있지만, 월드시리즈가 실력만으로 우승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니까."

"그래도 동팔이 아니면 한국 선수 중에 누가 월드시리즈에서 주역으로 활약할 수 있겠나? 뭐 투수 한정이지만."

그들도 동팔과 동고동락을 하였으니 동팔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그들도 동욱이 어떤 타자인지 알고 있으니 무시할 수 없었다.

"뭐, 솔직히 우리가 동팔이랑 친하지 않았다면 동욱이를 응원했을지도 모른다. 확실히 무시무시한 놈이야. 설마 메이저리그에서 5할 타율을 찍을 줄 알았겠냐."

"그래도 이번에 뉴욕 양키즈는 무시할 수 없어. 기존의 전력이 그대로 유지되었으니 조직력은 더 강해질 것이고, 거기에 지완인가? 네 라이벌 대우받던 녀석. 전에는 언론이 그냥 가져다 붙인 말이었지만, 이젠 정말로 라이벌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실력이 되었잖아."

"지완도 뉴욕에서 계속 있게 되니 투수 전력은 더 강해지겠고, 사실 포스트시즌 진출은 특별히 사고만 없다면 거의 확정일거 같은데. 물론 방심하면 안 되겠지만."

그들은 동팔의 소식을 제일 먼저 보고, 파악하고, 분석했다. 그러니 뉴욕 양키즈가 다음에 어떤 활약을 할지 대략적으로 짐작이 되었다.

"확실히 전력은 거의 그대로지만, 지난번처럼 초반에 어이없이 무너지진 않겠죠. 그 사이 스프링캠프에 가기 전, 방심하지 않고 틈틈이 몸을 만들어야겠지만."

"아~ 그래서 한국에 오래 못 있는다고 한 거였구나. 하긴 월드시리즈 우승이 보통 힘든 게 아니어야지. 한국에서 훈련을 못 할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미국에 있으면 더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으니까."

두 사람의 대화에 다른 사람이 붙어서 말했다.

"역시 프로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구나. 하긴 동팔이가 우리랑 할 때도 프로답게 준비했었지. 제일 빨리 오고, 연습도 제일 많이 하고, 노력도 당연히 더 많이 했고."

"프로 중의 프로인 메이저리그라면 다른 선수들도 뒤떨어지지 않게 노력하겠네."

그러던 중, 한 사람이 동팔이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지금도 좋지만, 내년 이맘때는 동팔이가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끼고 있는 걸 꼭~ 보고 싶네. 안 그러냐?"

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마, 두 말 하믄 잔소리제."

"그걸로 끝이 아니야. 월드시리즈 우승하고, 나중에 은퇴할 때 명예의 전당에 떡하니 이름 올리면 금상첨화지.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지만, 계속 유지하면 인종을 떠나서 당연히 들어가는 거야."

그 말을 하면서 동팔에게 덕담과 축하, 그리고 더 잘되길 바라는 말을 해주었다.

*     *    *

한편, 동팔이 사람들과 만나고 있을 때.

머나먼 미국에서 한국에 온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한국인도 아니었고, 관광이 목적인 사람도 아니었다.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단 하나.

"헤에, 로날드."

"오! 은진."

그의 이름은 로날드 버드.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나기 위해 한국에 왔다.

여기 오기 전, 로날드는 가족들의 걱정을 받았다.

"한국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데 거길 가려고 해?"

"거기 전쟁 중이잖아."

"가 봤자 폐허밖에 없는데 뭐하러 가?"

분명히 자신이 있는 팀에 한국인 투수가 두 명이나 있지만, 가족들은 여전히 한국에 대해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도 동팔과 직접 만나기 전에. 그리고 은진과 만나서 한 눈에 반하기 전에는 한국을 몰랐다.

적어도 전쟁의 폐허에서 서서히 회복되어 간다는 것만 알았을 뿐.

하지만 그들을 통해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되자 자신의 상식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뭐? 오성이 한국 기업이었다고?"

"동팔이 한국인? 일본사람 아니었어? 하긴 어쩐지 이름이 좀 다르더라니……."

"어라? 여기 드라마에서 나온 한국이랑 다른데? 여기 정말 한국 수도인 서울이야?"

"그 갱남 스타일이 한국 노래였다고?"

그들이 알고 있는 한국은 어디까지나 북한의 처참한 상황. 핵폭탄과 핵미사일로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위험한 국가라는 것이다.

다만 북한만 초점에 맞추다보니 남한이 어떤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걱정하는 가족들에게 한국을 알려준 다음, 메이저리거라는 자신의 신분을 이용하여 한국 비자를 얻었다.

물론 이 때에 맞추어 오기 위해 미리 신청을 했다.

자신의 몸 상태를 생각하여 티켓은 퍼스트 클래스로 왔다. 뉴욕에서 한국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메이저리거인 그의 당연한 선택이었다.

넓은 자리에서 최상의 서비스를 받으며 왔지만, 그래도 14시간에 달하는 비행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피로도 은진을 보자 단번에 날아갔다.

"많이 기다렸어?"

"아뇨. 그런데 머리 많이 자랐네요."

"싫어? 다시 자를까?"

"괜찮아요. 그때의 로날드가 좋았지만, 지금의 로날드도 좋거든요."

어느 모습이라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로날드는 날아갈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방심하기엔 일렀다.

"너무 가까워."

"아직 혼담이 오가는 것도 아닌데 벌써 그러면 안 되지."

로날드와 은진의 입술이 가볍게 부딪히려는 찰나, 뒤에 있던 지완과 혜진이 막았다. 그들의 말에 로날드는 눈치를 보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은진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두 사람이 그 말을 할 처지는 아니라고 보는데. 예은이가 언제 생겼더라~?"

두 사람의 속도위반을 은근히 지적하자 지완과 혜진은 입이 막혔다. 그리고 그 틈에 은진은 로날드에게 속삭였다.

"두 사람은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대신 부모님이 계실 때만 조심하시면 돼요."

쪽.

"……!!"

그리곤 은진은 로날드의 뺨에 가볍게 입맞춤을 했다. 그러자 그렇지 않아도 하얀 로날드의 얼굴이 누가 봐도 알아차릴 정도로 빨갛게 익어버렸다.

로날드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어버버 거리자, 은진은 그와 팔짱을 끼고 공항을 나왔다.

그 모습을 보며 지완은 생각했다.

'처음부터 완전히 붙잡혀 살다니… 결혼하면 어떻게 하려고…….'

절로 안쓰러운 생각이 드는 지완. 그런데 그의 생각을 어떻게 알았는지 혜진이 지완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지금 로날드 걱정했지? 이제 완전히 붙잡혀 살겠다면서?"

"아, 아냐. 그럴리가……."

확실히 혜진은 아름답고, 머리도 좋고, 성격도 착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사람이 완전한 것은 아니고, 때론 서로가 하고 싶은 것이 달라서 싸우기도 한다.

사귈 때와 깨가 엄청 쏟아질 때야 지완이 무조건 일부러 졌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슬슬 혜진에게 대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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