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280화 (280/325)

[280]

"아~ 이거? 그래도 내가 찍은 거랑 다르네."

그러면서 동팔은 아들의 사진을 엄마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여기 처음 찍은 것 보이지? 처음에 이랬는데, 나중에 보니까 짜잔. 이렇게 귀엽게 바뀌었다. 그리고 여기 봐. 여기 눈썹 보이지? 이거 보면 나 닮았고, 여기 눈매는 민희 닮았어."

동팔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아들의 사진을 넘기며 침이 튀도록 자랑을 했다. 그러다 동팔은 엄마의 시선이 사진을 향하지 않고 자신을 향하고 있자 물었다.

"응? 뭘 그렇게 봐? 뭐 묻었어?"

동팔의 물음에 엄마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래 묻었다 이 녀석아. 아들 태어났다고 이렇게 자랑하는 걸 보니, 확실히 네가 아빠가 되긴 했나 보구나."

그러던 중, 마침 아빠가 거실에 나오셨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해?"

"당신 오셨어요? 그렇지 않아도 잘 됐네. 지금 동팔이 보니까, 이전 당신 모습 떠오르는 거 있지?"

"내 모습? 뭘 했는데?"

"뭘 하긴요. 동팔이 태어났을 때, 아버님이랑 어머님께 얼마나 자랑했는지 몰라서 그래요? 어쩜 사진 한 장 가지고 그렇게 많이 자랑할 수 있는지 난 처음 봤다니까. 항상 과묵한 건 동팔이도 아빠 닮더니, 아들 자랑할 때 말 많은 것도 닮았는지 몰라."

엄마의 말에 동팔은 놀라며 물었다.

"네? 아빠가 정말로 그러셨어요?"

엄마의 말씀대로 항상 과묵한 아빠의 모습만 기억하는 동팔로선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하지만 엄마의 말에 과거가 들킨 아빠는 당황하며 말했다.

"여, 여보. 내, 내가 언제 그랬다고 참… 크흠……."

애써 부정하고 있지만 오히려 떨리는 목소리가 엄마의 말이 진실이라는 증거가 되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아빠도 보세요. 승현이가 말이죠……."

그 이후로 동팔의 아들 자랑은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손주의 귀여운 사진에 좋아하시던 부모님이셨지만, 생각보다 동팔의 자랑이 길어지자 결국 동팔의 입을 막아버렸다.

"됐다, 이제 그만 해라. 많이 들었다."

"그래서 아빠가 된 느낌이 어떠니?"

엄마의 물음에 동팔은 겨우 핸드폰을 들고 말했다.

"처음에는 잘 모르겠어요. 민희 뱃속에 내 아이가 있다는 것이 처음에는 그냥 신기하게만 생각했는데… 나오고 직접 안아보니까 이상하게도 눈을 뗄 수 없더라고요. 처음 봤을 때 정말 이상하게 생겼었는데."

"처음 나오면 다 그렇지 뭘. 너도 처음 태어났을 때 털 없는 빨간 원숭이 새끼인 줄 알았어. 며칠 되지 않아서 살이 오르고 하얗게 되면서 귀여워졌지. 지금 승현이처럼 말이야. 그걸로 아빠가 된 감상은 끝?"

"아뇨. 그건 아니고… 보면 볼수록 저랑 닮은 무언가가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 신기했죠. 지완이는 딸이 있어서 간혹 돌봐줄 때가 있었는데, 제가 먹여주는 것도 잘 받아먹거든요. 그것도 좋지만, 그때랑 다른 느낌이에요. 뭔가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뭉클함?"

동팔의 말에 아빠가 말했다.

"그 느낌 잘 알지. 그리고 지금이 참 좋을 때란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 신기하게 느껴지겠지. 하지만……."

"하지만?"

동팔의 물음에 아빠는 곧 동팔에게 다가올 지옥의 단편을 말해주었다.

"아기는 생활 주기가 짧아. 방금 먹고, 싸고, 자고, 그러다 배고프면 울고. 그것이 무한 반복 돼. 어른이랑 생활주기가 다르니 자는 중에도 몇 번 깨울 거다. 지금이야 버틸만 하고, 귀여우니까 넘어가지? 조금만 시간이 지나봐. 할 수만 있다면 귀엽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그냥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거다."

물론 실제로 그렇게 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다보면 아기가 자라겠지만.

"잠깐만요. 그럼 저도 그랬어요?"

"당연히 다 겪었으니까 그런 거 아니겠냐? 승현이는 누굴 닮아서 어떻게 할지 모르겠지만, 간혹 조용한 아기도 있으니까. 그건 정말로 축복이지 축복. 암~ 축복이고 말고."

아들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새 자신의 과거까지 알게 된 동팔. 그 이후로도 가족들과 계속 이야기를 하며 단란한 때를 보냈다.

그리고 그날 밤.

"흐흥~."

동팔은 여전히 아들의 사진을 보며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아직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았으니 밤이 되면 될수록 정신이 멀쩡해졌다.

이미 민희와 통화를 했고, 방금 전에 찍은 사진도 받았다. 그러면서 동팔은 아직도 선명하게 느껴지는, 아들이 잡은 자신의 손가락 끝을 본다.

'신기했지… 날 알아보고, 내 손가락을 잡고… 그리고 한 동안 놓지 않고…….'

원래 아기의 몸은 성인보다 조금 더 따듯하다. 하지만 동팔이 느낀 것은 따듯한 차원이 아닌 뜨거움이었다.

말할 수 없는, 강렬하고 뜨거운 무언가가 아기의 손을 통해 손가락으로부터 팔을 거쳐 심장에 닿았다.

그때, 동팔은 알았다.

'지완이가 예은이 덕분에 살았다고 하더니…….'

몸이 완전히 망가지고,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을 때 지완은 예은이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스크레이치가 준 독약을 마시지 않았고, 지금 동팔의 도움으로 완벽하게 재기할 수 있었다.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땐, 흔히 하는 부모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자신도 아빠가 되자 그때 지완이 했던 말이 자신의 앞에 실체적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내가 죽게 된다면…? 그럼 부모님은……?'

지금 만약 승현이에게 일이 생겨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그 슬픔과 절망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태어난지 고작 한달이 된 아기도 그런데, 근 30년간 키운 자식이 세상을 떠난다면?

그러자 동팔은 자신의 목숨이 자신의 것이 아님을 실감했다.

'내가 왜… 그 악마랑 계약을 해가지고…….'

차라리 계약을 하지 않고, 민희와 도란도란 사는 길이 있었다. 큰 성공을 할 수 없지만, 비록 중견회사에서 언제 잘릴지 알 수 없는 인생을 살아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적어도 이렇게 시한부 인생을 살지 않을 것이다.

'아냐. 후회하지 말자. 계약을 하지 않았더라면, 분명히 다른 이유로 후회했을 거야. 끝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어떻게 보면 아직 희망이 있었다. 비록 그 희망을 이루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여도, 가능성이 제로가 아니었다.

우우웅~. 우우웅~.

그러던 중 핸드폰의 울렸다.

'응? 동욱이가 왜?'

늦은 밤에 전화를 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보통 상황은 아니니 전화했을 거라 생각한 동팔.

"동욱이냐? 왠일로 전화했어?"

-…….

동팔의 물음에 동욱의 대답은 없었다.

'뭐지? 자는 중에 잘못 눌렀나?'

그래서 끊으려는 찰나, 동욱이 말했다.

-동팔아… 미안한데… 혹시 네 능력으로 병을 낫게 할 수 있냐?

마지막 희망을 붙잡듯 하는 동욱의 말. 동팔은 왜 전화를 했는지 알았다.

"어머니께서… 많이 안 좋으신가봐."

민희가 말해줘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다만 지난번 챔피언십 진출에 실패한 후 만나서 이야기했을 때, 괜찮다는 동욱의 말에 굳이 따지진 않았다.

-응. 내년을 넘기기 어렵다더라.

"그래……."

자식이 죽는 것을 보는 것도 절망 중에 절망이지만, 물심양면 보살펴주신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것을 봐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특히 동욱이 스크레이치에게 요구한 것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자신의 모습을 어머니가 보게 하는 것.

그 정도로 어머니께 지극정성인 동욱이 지금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훤히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동팔은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미안하지만, 전에 루시의 일로 알아봤는데, 내 능력은 부상만 회복시킬 수 있다고 하더라."

-그래. 누가?

"웜우드."

-그렇군…….

다른 누구도 아닌 계약의 서를 수정한 웜우드의 말이라면 사실 그 자체였다. 어쩌면 유일한 희망이 사라졌지만, 동욱은 주저앉지 않았다.

-동팔아, 나 이번이 마지막이야. 절대 포기할 수 없어.

어머니께 자신이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자신도 살아남는다. 하지만 동팔도 마찬가지였다.

"알아. 하지만 나도 포기할 수 없어. 부모님을 두고,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특히… 이제 태어난 내 아기를 두고 떠날 생각은 없어."

하지만 지금은 둘 다 다른 팀에 있다. 결국 서로가 양보할 수 없는 이상, 둘 중 하나는 죽는다.

애초에 서로가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양보하지 않음에 대한 분노나 짜증, 미움이나 증오는 없었다.

"그럼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네."

-그렇지. 그것밖에 없지. 우리에게 남은 것은…….

둘 다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둘 중 하나라도 살아남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 조건을 두 사람은 서로에게 동시에 말했다.

"월드시리즈에서 보자."

-월드시리즈에서 보자.

# 다시 만나야 할 사람들

"그렇구나… 어쩐지 취재를 해도 동욱이가 거기까지 말하지 않더라니……."

지애의 말에 동팔이 말했다.

"그렇죠. 말하고 싶은 건 아니죠."

누가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의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을까. 그래서 동욱이 엄마와 함께 산책하는 장면이 찍혀도 큰 이슈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어머니의 상태를 기자들이 알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지애도 알고 있었다.

"이건 진짜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할 비밀이네. 까딱하면 오히려 동욱이 어머님께 안 좋게 작용할 수 있으니까."

동팔은 설마 과도한 취재 경쟁으로 불상사가 일어나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지금도 그래요?"

"그 정도까진 아니야. 감동적인 사실을 조금 각색할 수 있겠지만, 거기까지. 그리고 이건 바글바글 달려들 것도 아니고. 하지만 일반인, 그것도 몸이 아픈 사람에게 몇 명이라도 기자가 계속 찾아오면 심각한 스트레스잖니."

동팔은 지애의 말에 큰 걱정은 덜었지만, 확실히 입단속을 해야 할 사안이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계속 동욱이 취재하실 건가요?"

그렇지 않아도 지금 동욱이 엄마와 같이 있는 사진은 지애가 찍고 있었다. 동팔의 물음에 지애가 답했다.

"응. 네 말을 들으니 더 가야 할 것 같아서. 이번에는 너랑 달리 동욱이가 더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으니까. 이런 말을 하긴 그렇지만… 아마 내년 월드시리즈가 끝나면 지금 찍어 놓은 사진이 동욱이에게도 좋은 추억이 되지 않을까?"

"흐음… 그 말씀은 동욱이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길 바라시는 건가요?"

지애는 말할 수 없는 사정을 모르니 그렇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도 해. 그러면 더 감동적인 이야기가 될 테니까. 하지만…나는 동팔이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길 바라거든. 지금은 둘 다 응원하고 있지만…현실은 아무리 잘해도 둘 중 한 사람만 가능하니 어쩔 수 있겠니. 지금은 모든 것을 하늘에 맡겨야 하는 걸.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월드시리즈 우승은 실력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지애는 그 말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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