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278화 (278/325)

[278]

'아직 끝나지 않았어. 절대로…우리 승현이를 아빠 없는 아이로 만들 수는 없어.'

자신이 선수가 아니라 관여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시즌이 시작되기 전, 그 사이에 있을 격렬한 영입 전쟁을 통해 우승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 수 있었다.

이제는 동욱의 사고를 위장한 안타를 통해 헤럴드는 끝났다. 남은 것은 포스트시즌 진출. 디비전시리즈와 챔피언십을 통과한 다음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는 것.

그것을 위해선 무엇이든 할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불법적으로 사람을 써서 한동욱에게 위해를 가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이미 민희도 동욱과 안면이 있었고, 그가 왜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려는지 알고 있었다.

바로 지금까지 자신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희생하신 어머니를 위해서였다. 그리고 인맥을 통해 알아볼 결과 동욱 어머니의 상태를 알게 되었다.

'동욱 오빠 어머니… 많이… 안 좋다고 하셨지? 어쩌면 내년을 못 넘기실 수 있다고 했고…….'

그걸 알게 된 이상, 과한 손을 쓸 수 없었다. 그러니 민희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영향력을 사용하여 영업 전선에 뛰어든 것이다.

출산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프고 힘든 상황에서도.

아기를 출산하면서 온 몸의 뼈가 어그러진 것 같았고, 근육마저 힘이 떨어졌다. 움직이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팔이 더 유리한 고지를 얻기 위해 주변 상황을 파악하는데 신경을 곤두세웠고, 지금 그 효과를 보고 있었다.

'데려갈 수 없다면 동욱 오빠는 멀리 보내는 편이 좋아. 지금은 그것부터 생각하자. 다른 더 좋은 방법이 떠오를 때까지…….'

그리고 동팔의 주변을 돌아보면 도와주는 사람이 많았다.

한 때 연인이었지만, 좋지 않게 헤어지고 만 혜진이 뛰어난 분석력으로 도와주고 있었다. 그리고 라이벌로서 동팔과 겨루던 지완이 같은 팀에서 든든히 마운드를 지켜준다.

거기에 아직 말해주지 않았지만, 마크도 조만간 메이저리그에 올라온다. 외야수가 아쉬운 상황에 마크라면 분명히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동팔과 많이 친해진 데니 행크스는 다른 구단의 제의를 거절하고 양키즈에 남았다. 그리고 이번 시즌에 의외로 활약을 한 로날드 버드도 다른 구단에 가지 않고 남겠다고 구단에 강하게 말했다.

로날드 버드의 경우는 동팔보다 지완의 처제인 은진과의 좋은 관계를 위해서 선택한 것이지만, 사랑의 힘으로 실력이 급상승한 그가 있어주는 것이 좋았다.

거기에 이번에 뉴욕 양키즈는 전력의 변화가 크지 않다. 이것은 올해동안 만들어진 조직력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동욱 오빠는 LA로 가게 된다면 새로운 팀에 적응하는 문제가 있어. 아니, 오빠가 적응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팀이 동욱 오빠한테 적응해야 하는 거지만…….'

아주 빠른 신경 반응으로 어떤 상황에도 깔끔하게 수비할 수 있는 능력이 동욱에게 있었다. 민희의 생각대로 오히려 LA 다저스가 동욱의 뛰어난 실력을 사용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했다.

'지금은 이대로 가자. 역시 동팔 오빠가 움직이는 것보다, 동욱 오빠가 움직이는 편이… 나에게 더 유리하니까.'

그리고 민희가 바라는 대로 동욱은 LA 다저스로 넘겨졌다. 클리블랜드에 막대한 자금을 남겨주면서.

#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를 고향길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이 끝나고 나면, 항상 그렇듯이 트레이드와 자유계약 조건을 얻은 선수를 영입하기 위한 전쟁이 벌어진다.

애초에 동팔은 보호선수로 묶여 있었고, 지완 또한 마찬가지라 이 부분에 신경을 쓸 것이 없었다.

다만 의외로 클리블랜드가 동욱을 트레이드하여 막대한 자금을 손에 넣었다는 것. 그리고 동욱은 아메리칸 리그가 아닌 내셔널 리그 소속인 LA 다저스로 가게 되었다.

이 소식은 메이저리그의 각종 언론은 물론, 한국의 스포츠 매체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이후에는 시상식이 있는데 이번에도 동욱이 5할 타율을 달성함에 따라 아메리칸 리그 MVP가 되었다. 동팔도 작년과 같이 뛰어난 성적을 기록하여 2회 연속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당연히 이 소식은 한국의 매체를 통해 모든 국민들에게 알려졌다.

하지만 정작 상을 받은 두 사람은 여전히 위험한 자신의 목숨으로 인해 마냥 기뻐하지 못했다.

그래도 상을 받지 못한 다른 선수들의 마음을 생각해 영광스럽다는 형식적인 인사말과 미소를 남겼다.

메이저리그에서 일정을 마친 후, 동팔과 동욱, 지완은 한국으로 떠났다. 혜진도 지완과 같이 예은이와 함께 떠났다.

하지만 민희는 태어난지 얼마 안 된 아들이 아직 조심해야 할 때라서 가지 못했다.

탑승이 가능한 신생아는 생후 7일 이상. 그리고 민희의 아들은 생후 한달이 지났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야 하니 가지 않는 방향으로 정했다.

집에서 승현이를 돌보며 민희는 혜진과 예은이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예은이는 승현이처럼 미국에서 태어났다고 했지? 임신 9개월이 지나면 안 태워주는 항공사가 대부분이라 그 전에 미국에 왔다고 했었고, 그 전이라도 8개월 이후는 진단서가 있어야 탈 수 있었다니까……."

그것도 상당히 위험을 감수하고 온 것이었다. 예은이가 태어난 달은 1월. 그리고 미국에 온 때는 그 전년도 11월이었다.

두 사람 다 원정출산을 하게 된 상태였지만,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출산하는 때와 남편의 스케줄이 겹치는 바람에 일어난 일이었을 뿐.

그러다 민희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예은이도 내년 1월이 되면 두돌이 되네. 우리 승현이랑 거의 두살 차이가 나고… 어릴 때야 차이가 크겠지만 다 자라면 두 살은 큰 차이가 안 나니까."

확실한 것은 예은이는 사고가 생기지 않는 이상 미인 확정이었다. 혜진 집안의 유전자와 지완의 유전자가 합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뻔했다.

'확실히 혜진 언니 딸이면 예쁠거야. 그것도 많이. 성격도 보면 까탈스럽지 않은 것 같고. 혜진 언니 성격 상, 나쁜 아이로 키울 것 같진 않으니까 분명히 인기가 많겠지?'

그래서 민희는 아직 눈도 뜨기 힘든 승현이를 보며 말했다.

"승현아, 예은이 누나랑 많이 친해져야 한다. 안 그러면 후회할지도 몰라."

동팔과 지완이 계속 같은 팀에 있으리란 보장은 없다. 지금이야 양키즈가 두 선수를 잡으려고 하지만, 언제 무슨 트레이드가 될지 알 수 없는 것이 프로의 세계.

그래도 팀이 달라지더라도 그들의 인연이 끊어지는 것은 아니니 계속 만날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민희는 아들인 승현을 안으면서 다짐했다.

'일단 어울리는 짝이 되려면 승현이도 잘 자라야 하는데. 착해야 하지만 어리석게 이용당하지 않아야 하고, 이왕이면 능력도 있으면 좋고.'

이제 태어난 아기에게 어떤 재능이 있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자신이 겪었던 것처럼 천편일률적인 교육을 받게 하고 싶진 않았다.

'어떤 재능이 있는지 모르지만, 그 재능을 꽃피우게 하고 싶어. 나랑 나의 아빠 세대와 달리 지금 우리에게는 그럴 여력이 있으니까…….'

이럴 땐, 돈을 많이 벌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민희는 아들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그에 대한 준비와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아쉬운 것이 있었다.

"아… 나도 집에 가고 싶은데……."

지금 당장 집에 가서 엄마 아빠의 얼굴을 보고 싶고, 친구들과 만나서 아들 자랑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태어난지 한달 겨우 지난 아기에게 비행기를 장시간 태워도 되는지 걱정이었다.

민희는 그로 인해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았다. 그렇다고 전화까지 안 하는 건 아니었다.

엄마에게 전화하여 이와 같은 투정을 했더니 엄마는 딸에게 말했다.

-그게 바로 엄마가 되었다는 거야. 하고 싶은 걸 자식 생각해서 하지 않는 것.

그 말에 민희는 출산했을 때 이후 처음으로 확실하게 자신이 엄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     *

한국에 바로 돌아온 동욱이 간 곳은 집이 아닌 병원이었다.

누나가 알려준 병원에 들어오자 제일 먼저 그의 얼굴을 본 사람들이 다가왔다.

"저기, 한동욱 선수? 팬입니다."

"메이저리그에서 MVP를 연속으로 받으신 것 축하해요."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를 연고지로 하는 지아에서 성장했다. 그리고 지금 메이저리그에서 전설적인 기록을 세워나가는 타자가 되었다.

그 자체로 동욱은 광주의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어도, 자신에게 다가오는 팬들이 사인을 바라는 것을 알아도 동욱은 그들의 요구에 응할 수 없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어머니를 뵈어야 해서요. 죄송합니다."

동욱의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계신 상황에 팬들도 그에게 계속 사인을 원할 수는 없었다.

"그래요? 어쩌나……."

"쾌차하시길 바랄게요."

아쉽지만 장소가 장소이다 보니 팬들이 물러섰다. 동욱이 서둘러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그때가 되어서야 불평이 터져 나왔다.

"잘 나가면 다야?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무시하면 돼?"

그러자 다른 사람이 말했다.

"어머니가 편찮으시다고 하잖아. 이렇게 귀국하자마자 서둘러 올 정도면 보통 상태는 아닌갑지."

"아니, 그래도 그렇지……."

"됐어. 덮어 두고, 어머니한테 안 좋은 일 생겨 혹시 다음 시즌에 안 좋은 성적 거두게 돼도 그 말할 건가."

결국 어찌어찌 무마되면서 동욱이 병원에 나타난 순간은 넘어갔다.

한편, 동욱은 엄마가 입원한 병실 앞에서 들어가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그리고 병실 옆에 있는 엄마의 이름을 확인하자 절로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계속 그대로 있을 수는 없으니 마음을 단단히 먹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동욱이 들어오자 보이는 것은 넓은 병실. 그리고 환자는 엄마 밖에 없었다. 엄마 옆에는 여동생이 간병인을 위한 낮은 침대에 앉아 있었다.

엄마는 동욱을 보자 환한 표정으로 반겼다.

"우리 아들 왔어? 오기 전에 연락을 좀 하지."

"그러려고 했는데, 그럴 시간이 없어서 못했어요. 지금은 괜찮으세요?"

"그냥 그렇지 뭐……."

이미 누나를 통해 들었다. 길을 가다가 갑자기 쓰러지신 엄마는 결국 자신의 몸 상태가 심각하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치료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들었다.

남은 시간은 고작해야 1년 남짓.

동욱이 오자 여동생은 자리를 옆으로 비키며 말했다.

"서 있지 말고 앉아, 오빠. 할 이야기도 많을 텐데."

그리곤 냉장고로 가서 시원한 음료를 꺼내서 동욱에게 주었다.

"고마워."

"고맙긴. 내가 더 고맙지. 나 잠시 밖에서 쉬고 올 거니까 나 대신 엄마 좀 봐줘."

그렇게 말을 하고 여동생은 동욱이 엄마와 단 둘이 있을 수 있도록 병실을 나갔다. 그러자 엄마가 동욱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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