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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욱은 헤럴드가 선발 등판한 두 경기에서 클리블랜드가 패배한다고 전제하면, 남은 다섯 경기에서 4개의 승리를 거두어야 월드시리즈로 진출할 수 있다.
한 번의 패배는 가능하지만, 두 번째 패배를 당하게 될 경우 진출은 물 건너가게 된다.
하지만 어떻게든 헤럴드가 등판한 경기에서 한 번이라도 더 승리하면 다섯 경기 중 세 번만 이기면 된다.
기회가 한 번 더 생김으로 인해 진출할 확률도 높아지는 것이다. 헤럴드는 그걸 알고 있어도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발버둥을 치면서 저항하는 동욱을 보자 더욱 사냥할 맛이 났다.
'그렇지. 너무 무기력하게 당하는 것도 재미없잖아? 이렇게 대놓고 저항을 해야 할 마음이 생기지…….'
헤럴드에게 있어서 사냥감이 저항을 하든 말든 결과는 같다. 저항하지 않으면 그대로 숨통을 끊어버리고, 저항하더라도 꼼짝 못하게 하여 절망을 느끼게 한 다음 목숨을 끊는다.
그래서 헤럴드는 한동욱이 있는 클리블랜드가 월드시리즈로 진출할 수 없도록 더욱 철저히 막기로 했다.
그로인해 첫 경기는 클리블랜드가 선취점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챔피언십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한 헤럴드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소용없음을 보여주었다는 생각에 절로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좌절에 빠졌을 한동욱의 표정을 기대하며 그가 있는 곳을 봤다. 하지만 헤럴드의 예상과 달리 한동욱은 좌절에 빠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분노하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소리없이 입술로만 한 말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네가 자초한 거야.'
처음에는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걸 알아차린 때는 일주일도 넘지 않았을 때.
바로 헤럴드가 챔피언십에서 두 번째로 선발 등판한 때였다.
* * *
클리블랜드와 시애틀은 여섯 번째 경기까지 치르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결과는 2승 3패로 클리블랜드의 열세. 이 상황에서 클리블랜드가 지게 된다면 월드시리즈에 진출할 수 없게 된다.
지더라도 챔피언십 준우승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겠지만, 여기까지 올라온 이상 그것만으로 만족할 팀은 어디에도 없다.
아직 기회가 열려있는 이상, 모든 것을 걸고 전력을 다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처음과 달리 헤럴드는 더 능숙하게 클리블랜드의 타석을 막았다.
그리고 데미안도 본인의 능력을 발휘하여 점수를 뽑아냈고, 결국 7회말에 5대 1의 점수로 클리블랜드가 지고 있었다.
타석에 선 동욱은 경기의 결과를 이미 예상했다.
'졌어… 내가 홈런을 쳐도 이 정도 점수 차이라면 이기는 것은 불가능해.'
헤럴드가 일반적인 투수였다면 그나마 희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타자가 노리는 공을 미리 알고, 그것을 이용할 줄 아는 투수에게 연달아 안타를 얻어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적어도 동욱처럼 같은 계약자이거나, 뛰어난 타자가 많다면 모를까.
결국 양키즈와 같이 클리블랜드도 월드시리즈에 진출할 수 없게 되었음을 알았지만 동욱은 좌절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좌절하지 않은 동욱의 표정을 보자 헤럴드의 기분이 나빠졌다.
'자기 목숨이 위험한 걸 모르나? 이대로라면 다음 시즌이 마지막 기회인데?'
아무리 타자가 매 경기에 나서서 점수를 뽑아도, 팀 전체적으로 실력이 떨어지면 승리하기란 어렵다.
하나보다 둘이 협력을 하면 강한 상대라도 이길 수 있는 법. 헤럴드와 데미안은 그걸 확실히 이용하며 계약자들이 해방되는 것을 막았다.
그러니 아무리 뛰어난 투수가 있는 뉴욕 양키즈라도, 최강의 타자가 있는 팀이라도 승리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이번 기회를 잃게 되면 남은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그걸 알고 있어도 동욱의 표정에 변화가 없으니 헤럴드는 단번에 흥미가 떨어졌다.
'어차피 홈런을 맞아도 주자가 없으니 5대 2밖에 안 돼. 이미 끝났으니 대충… 던져야지.'
의욕이 사라지니 한동욱을 상대로 좋은 기록을 만들 생각도 사라졌다. 이대로 경기를 끝내고, 월드시리즈도 계약자가 있는 팀이 올라온 것이 아니므로 역시 대충 던질 생각이었다.
특히나 한동욱의 경우는 배트에 걸리는 족족 칠 수 있으니 어떤 공을 던질지 머리를 쓰는 것도 귀찮았다.
'용납할 수 없다고? 나대지 마? 그런 말을 하면 뭐해? 막을 힘도 없는 놈이…….'
한동욱을 깔보며 치기 좋은 공을 적선하듯 던졌다. 순간 한동욱의 눈빛이 빛났다.
휙~.
동욱은 이미 경기를 뒤집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중을 위해 기록을 더 세우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큰 감흥은 없었다.
타석에 들어서기 전 동욱은 이미 결정을 내렸다.
'나는 분명히 경고했어. 더 이상의 사냥은 용납할 수 없다. 그리고…나대지 말라고…….'
하지만 헤럴드는 동욱의 경고를 무시하고 여전히 동욱의 월드시리즈 진출을 막았다. 이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보이는 그때, 동욱은 지금이 아닌 다음을 위한 준비를 결심했다.
헤럴드가 공을 던지자 동욱은 즉시 본인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증폭시켰다. 동욱은 정규시즌 때와 달리 능력을 최대한으로 증폭시켰다. 이로 인해 부작용이 지속되는 시간도 늘어나지만, 어차피 이번이 끝이니 상관없는 일이다.
그러자 헤럴드의 손에서 공이 떠나는 장면이 눈에 선명하게 보였다. 덤으로 자신을 깔보고 있는 그의 표정 또한.
동욱은 헤럴드의 비웃는 표정보다 날아오는 공을 살펴봤다.
'포심 패스트볼. 하지만 속도는 다른 때와 달리 느려. 홈런이나 안타를 유도.'
그동안 볼넷만 던지며 자신과의 싸움을 피한 것과 달리 이번에는 치기 좋은 공을 던졌다. 그 의도를 모를 수 없었다.
즉, 이거나 먹고 떨어지라는 의미.
하지만 동욱은 헤럴드의 의도대로 갈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안치겠다는 건 아니었다.
'궤도 계산… 완료. 배트와 겹치는 포인트 파악… 완료.'
계산은 끝났다. 남은 것은 배트를 휘둘러 치는 것뿐. 하지만 평상시와 달리 동욱은 하나의 변수를 추가시켰다.
동욱은 공을 던지고 이제 릴리즈 동작으로 넘어가 충격을 흘려보내고 있는 헤럴드를 보았다. 그 중에 특히 헤럴드의 팔을 주목하고 있었다.
격하게 던졌으니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동욱이 눈에는 그 이후에 헤럴드가 어떻게 움직일지 선명하게 보였다.
모를 수가 없었다. 그동안 헤럴드가 던지는 투구폼을 잊지 않기 위해 매일 보고 또 봤다. 그리고 타석에 섰을 때마다 주의를 기울여 집중해서 보았다.
'타구 궤도 분석… 목표지점 설정. 타이밍 계산… 완료.'
자신이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해 동욱은 배트를 휘두르면서 각도와 힘에 유의했다. 동욱의 배트는 평상시 공의 아랫부분을 치지 않고, 한 가운데를 쳤다.
또한 힘이 그대로 실리도록 하기 위해 스위트 스폿에 정확히 적중했다. 동시에 동욱이 원하는 방향으로 타구가 날아가기 위해 섬세한 조정도 필수.
따악!!
하지만 동욱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헤럴드는 여전히 비웃고 있었다. 동욱이 친 타구는 바닥에 튕기지 않고, 바로 헤럴드를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빠르게 날아온 단단한 야구공은 헤럴드의 팔꿈치에 정확히 맞았다.
빠악!!
빠르고 강하게 날아간 공은 헤럴드의 팔꿈치를 가격했다. 무언가 부러지고 끊어지는 소리가 흘러나왔고, 이내 바닥으로 튕겼다.
"아악!!!"
예상치 못한 강습 타구에 팔꿈치를 다친 헤럴드는 공을 주울 생각을 하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는 사이, 동욱은 1루를 향해 달려가다가 헤럴드가 쓰러지자 속도를 줄이며 갔다. 하지만 헤럴드의 심각한 부상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공을 잡고 던지는 선수는 없었다.
그리고 동욱도 1루 이상 진루하지 않고, 걱정하는 표정을 지으며 헤럴드를 봤다.
"으으…으아!!!"
헤럴드는 팔꿈치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 끔찍한 것이 있었다.
'팔이… 팔에…감각이 느껴지지 않아!!'
맞은 팔꿈치 아래로 감각이 없었다. 단순히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수술을 통해서 어떻게든 재기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감각이 사라졌다는 것은 신경이 끊어졌을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근육이나 인대를 연결하는 수술도 어렵지만, 신경을 다시 이어버리는 것은 일반적인 의학으로 할 수 있는 수술이 아니다.
수지접합이라는 수술이 있지만, 이는 의학적인 지식은 물론, 섬세한 손놀림을 가진 의사가 집도해야만 성공가능성이 높아진다.
헤럴드가 부상으로 쓰러지자 주심은 바로 경기를 중지시켰다. 그리고 선수의 안전을 위해 구급차가 나왔고, 헤럴드는 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한편, 그 모습을 중계로 보고 있던 동팔을 비롯한 사람들.
동팔은 여전히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1루에 있는 동욱을 보며 중얼거렸다.
"무언가 방법이 있다고 하더니… 설마…이런 거였어?"
확실히 동팔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동팔이 하게 된다면 데미안을 상대로 빠른 강속구를 던져 부상을 입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최악이 경우, 다음 시즌에 참가할 수 없는 징계를 당할 수도 있었다.
반면 동욱의 경우는 그 반대였다. 정확한 타격으로 투수에게 공을 날려 부상을 입힌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게 가능한 정도로 정확한 타격이 가능한 타자는 없다. 적어도 동욱이 능력을 최대한으로 증폭시키지 않는 이상.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을 그들도 알 수 있었다.
"이것도 결국 우연히 일어난 사고라고 생각하겠지."
"사고로 선수를 징계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러니까 1루까지 천천히 가면서 헤럴드를 걱정하듯 본 거니까."
실제로 전혀 걱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동욱이 한 행동은 자신의 타구에 헤럴드가 부상을 당하자 걱정하는 행동이었다.
만약 그대로 2루까지 갔다면 여론의 방향이 그를 질타하는 쪽으로 갔을 것이다. 어쩌면 선수 보호에 신경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약한 징계를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동욱은 그럴 가능성조차 만들지 않았다.
"이걸로 인해 헤럴드는 더 이상 선수로 뛸 수 없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다음 시즌에는 나올 수 없다."
헤럴드가 없다면, 데미안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할 수가 없다. 그가 포스트시즌에 한해서 아무리 강한 타자가 된들, 한동욱을 상대하는 것처럼 하면 팀의 승리를 가져오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악마의 사냥꾼이었던 헤럴드가 아웃된 것은 좋다. 하지만 동팔은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다른 걱정이 밀려들어왔다.
"그럼… 이제 진짜 적은… 동욱이가 되겠어……."
적어도 같은 팀이라면 든든한 지원군이 되겠지만, 반대가 되면 상대하는 것이 버거운 강적이 된다.
같은 팀이 될 가능성이 없으니 남은 것은 서로가 적이 되는 것뿐.
무엇보다 두 사람에게 남은 기회는 단 한번.
서로가 가진 모든 것을 걸고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해야만 살아남는다. 그렇지 않다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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