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274화 (274/325)

[274]

동팔이 말에 동욱이 답했다.

"나도 어머니를 남기고 순순히 죽을 생각은 없어."

"알아. 그러니까 온 거야. 적어도 이번 시즌에서 너만큼은 해방되어야 다음 시즌에 내 발목을 잡진 않겠지."

이미 두 사람은 커도 너무 커졌다.

동팔이 클리블랜드에 가는 것은 그만한 몸값을 지불할 능력이 구단에 없으니 불가능하다. 반대로 동욱이 양키즈로 가는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재정이 탄탄한 양키즈라도 타자로서 역대 최고의 몸값을 지니게 된 동팔을 영입하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적어도 지니고 있는 투수와 타자 중 일부를 팔아서 동욱을 영입하는데 전부 투자해야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럴 바엔 동욱의 실력에 못 미치더라도 더 많은 선수를 영입하는 것이 나았다. 물론 5할 타자라는 강력한 타이틀과 실력은 그만한 투자를 하도록 강렬하게 유혹하고 있었다.

다음 시즌에 같은 팀이 될 가능성이 너무 낮았다. 그러니 이번 시즌에서 동욱이 월드시리즈에 우승하지 못하게 될 경우, 다음 시즌에 둘 중 하나는 죽는다.

어쩌면 둘 다 죽을 수도 있었다.

"그 전에 먼저 처리해야 할 녀석들이 있는 건 알고 있지? 그렇지 않아도 직접 상대했으니 잘 알 거고."

"알아. 투수와 타자로 나서면서 경기 결과를 자기 마음대로 하는 녀석들을 잡아야 해."

동팔의 말에 동욱은 물이 끓자 찻주전자에 물을 넣으며 말했다.

"그래서 방법은 있어? 너랑 지완이 있어도 어떻게 하진 못했잖아. 아마 지완이 선발로 나서서 너와 같이 완봉승을 거둔다 하더라도 2승이 한계야. 남은 세 경기를 그 녀석들이 다 가져갈 거다."

"알고 있어. 적어도… 공식적인 경기에서 두 녀석이 있는 팀을 완전히 누를 수는 없겠지. 정규시즌은 적당히 1위할 정도로만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포스트시즌에선 계약자가 있는 팀이 있다면 전력을 다 하는 놈들이니까."

대화를 하는 사이, 두 사람의 앞에는 잘 우러난 녹차가 놓여 있었다. 차를 마시며 잠시 생각과 감정을 정리해 나가는 두 사람.

그러다 동욱이 말했다.

"방법이 없는 건 아냐. 불법적인 것도 아니고, 그 녀석들이 있는 시애틀을 무너트릴 방법이 있어."

"응? 그게 뭔데?"

동팔의 물음에 동욱은 뜨거운 차를 다시 한 번 입에 가져갔다. 거의 마시지 않고 닿기만 했지만 더 이상 들이키지 않고 내려놓았다.

"말할 수 없어. 그리고 이건 네가 할 수 없는 일이야. 오직 나만 가능한 일이지."

동욱의 말에 동팔은 계속해서 그게 무엇인지 물어 봤다. 하지만 동욱은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다만 힌트로 이것만은 말해줬다.

"하기 전에 경고를 할 거야. 지금 하고 있는 비열한 행동을 그만두지 않으면… 단단히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

챔피언십의 첫 경기.

명실상부한 시애틀의 1선발이었지만, 강동팔을 피했던 헤럴드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클리블랜드에 동팔만큼 경계해야 할 투수가 없었으니 첫 경기부터 선발로 등판했다.

다른 투수에 비해 빠듯하게 움직여야 했지만, 디비전의 두 번째 경기 이후 등판하는 것이라 힘들 것이 없었다.

그리고 지극히 효율적인 투구를 하였으니 무리가 가는 것도 없었다.

헤럴드는 마운드에 오르기 전, 동욱이 보낸 경고의 메시지를 받았다.

'더 이상의 사냥은 용납하지 않겠다. 그러니 마음 고쳐먹고 더 이상 나대지마.'

도발적인 동욱의 메시지였지만, 헤럴드에겐 가소로웠다.

'자기가 뭔데 경고를 하고 지랄이야? 자기 처지도 모르나?'

지금 동욱은 헤럴드와 데미안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월드시리즈에 진출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갈린다.

어차피 내셔널리그에서 챔피언십까지 올라온 두 팀 중에 계약자는 없었다. 그러니 굳이 월드시리즈 우승에 매달릴 필요가 없는 헤럴드.

지금 그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동욱이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다음, 우승하여 해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런데 자신이 유일한 즐거움을 포기하라는 동욱의 말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동욱의 목숨은 헤럴드의 손에 달린 것과 마찬가지.

그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릎을 꿇으며 빌지 않고 있었다. 그런다고 한들, 애초에 봐줄 생각 따위는 그들에게 없었다.

그래서 헤럴드는 이렇게 생각했다.

'한동욱은 배트에 걸리는 모든 공을 칠 수 있어. 차라리 이렇게 도발을 하여 나를 감정적으로 만든 다음 실투를 노리려는 거겠지. 그런데 알고 있으려나? 이런 전법으로 날 흔들려 한 녀석이 있었지만, 결국 악마의 손에 영혼을 빼앗겼다는 사실을?'

헤럴드가 생각한 한동욱의 대처는 아주 간단했다.

휙~ 퍽. 휘~ 퍽.

배트가 닿지 않을 곳을 향해 연속으로 공을 던졌다. 그리고 고의 볼넷을 만들어 동욱을 1루로 보냈다.

투수가 타자에게 고의 볼넷을 주는 경우는 단 하나.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존심보다 사냥감을 묶는 것에 목적을 둔 헤럴드에게 자존심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대신 한동욱을 제외한 모든 타자는 효율적인 투구로 제압하면 되었다. 그렇게 생각을 했다. 하지만 헤럴드가 감안하지 않은 사실 하나가 있었다.

스윽~.

헤럴드가 공을 던지기 위해 발을 떼는 순간, 동욱의 발도 2루를 향해 재빠르게 달려나갔다.

다다다다다닥.

이미 발을 들어 올린 이상, 갑자기 견제구를 던진다면 보크에 걸린다. 그러니 동욱은 악마의 힘을 무리하여 강하게 하지 않으면서 최적의 타이밍으로 도루를 시도했다.

남들과 더 빠른 출발. 그리고 반 발자국 더 가까운 곳에서 시작하는 동욱의 도루. 거기에 헤럴드의 공은 아주 빠른 공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 타자도 동욱이 도루를 하자, 볼이든 스트라이크든 일단 배트를 휘둘러 포수가 견제구 던지는 것을 약간이나마 늦추려 했다.

촤악~턱.

포수는 공을 잡자마자, 2루를 향해 던지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동욱이 슬라이딩을 하여 안전하게 2루 베이스에 닿는데 성공했다.

"쳇……."

포수는 아쉬워했지만 동욱의 도루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아쉽지만 현실을 빠르게 받아들였다.

다만 헤럴드는 자신의 뒤에 와 버린 동욱이 귀찮았다.

'이거 또 이러네…….'

같은 리그에 있으니 종종 다른 지역과 경기를 치를 때 마주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번 시즌에는 한 번 두 사람이 맞붙은 적이 있었다.

그때엔 승패가 별로 상관없었던 때라 대충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그리고 동욱이 주자로 나왔을 땐, 항상 이렇게 도루를 하여 헤럴드의 시선을 분산시켰다.

'너무 신경 쓸 필요 없어. 어차피 더 이상 단타가 나오지 않으면 점수가 나올 일은 없지.'

그러면서 혹시나 이번에도 또 도루를 할까 싶었다. 하지만 헤럴드를 상대함에 있어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동욱은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허를 찌르고 3루까지 가는데 성공했다.

그러자 헤럴드는 클리블랜드의 작전. 즉, 한동욱의 작전을 직감했다.

'이대로 번트를 대서 점수를 얻겠다는 건가?'

아직 채워야 할 아웃카운트가 2개 남았다.

그런 상황에 주자가 3루에 나와 있고, 그 주자는 도루 능력이 뛰어나다. 그렇다면 1루로 공이 흐르도록 번트를 댄다면, 그 사이에 주자가 달려와서 점수를 얻을 수 있다.

희생번트 작전은 보기에 안쓰럽게 보일지 몰라도 운과 실력, 그리고 호흡이 맞아야 할 수 있는 작전이다.

타자가 생각한 번트를 대는 순간과 주자가 달리는 순간이 일치해야만 성공률이 절반이라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번트를 대기 어려운 공을 던져야 한다는 말인데…….'

번트하기 어려운 공이라면 역시 아주 빠른 공을 던지거나, 예상한 곳으로 가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 공의 회전을 높여야 한다.

하지만 희생번트라면 속도를 죽이는 것보다, 튕기는 방향이 높은 곳으로 향하지 않게만 하면 된다.

동팔이나 지완, 정도의 에이스급의 투수라면 그 정도의 공을 던질 수 있다. 물론 범타로 끝나게 만들 확률이 높일 수 있다는 것이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팀의 1선발인 헤럴드지만, 그에게는 아쉽게도 번트치기 어려운 공을 던질 실력은 없었다.

'차라리 타격을 준비하는 것이 더 나은데…….'

강속구를 던지더라도 100마일이 아닌 95마일이 최고 속도다. 그리고 던질 수 있는 변화구의 종류는 꽤 많지만, 결정구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구질은 아니었다.

어느 쪽도 번트를 막는데 효과적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금 타자를 내보내면 쓸데없이 주자를 쌓게 되니 그럴 수도 없었다.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한 상태였으니 혹시라도 와일드피칭을 하게 되면 바로 실점으로 연결된다.

그러던 중, 타석에 서 있던 클리블랜드의 5번 타자는 배트로 자신의 발바닥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쳐서 털어냈다. 그리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러자 동욱의 눈빛이 빛났다.

하지만 지금 타자의 행동에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은 시애틀의 선수들. 그리고 헤럴드도 와일드피칭을 하지 않기 위해 신경을 쓰다 보니 알아차리지 못했다.

일단 주자를 내보내는 것을 줄이기 위해 헤럴드가 선택한 것은 범타 유도. 더불어 동욱이 섣부르게 뛰다가 아웃되는 것을 노려야 했으니 당연한 선택인지도 몰랐다.

스윽~휙!

그래서 헤럴드는 타자가 욕심을 내도록 쉬워 보이는 공을 던졌다. 물론 마지막에 가서는 움직임이 크니 빗맞도록. 하지만 타자의 배트는 나가지 않았다.

타격을 준비하던 자세에서 바로 번트자제로 바꾸더니 공과 마주치기 직전에 배트를 뒤로 살짝 뺐다.

툭.

비록 타격은 힘들겠지만, 스트라이크 존으로 오는 공을 번트로 튕기는 것은 가능했다. 그리고 헤럴드가 공을 던지는 순간 동욱은 전력으로 달렸다.

다다다다닥.

당연히 번트를 한 타자도 최대한 속도를 내며 1루를 향해 달려갔다. 그 사이, 미리 달려오던 동욱은 홈플레이트를 밟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굴러가는 공을 달려가서 잡은 헤럴드는 이미 늦은 홈보다 타자 주자를 잡는 것을 선택했다.

'쳇…….'

의도한 것과 달리, 무실점은 불가능해졌고 1실점하고 만 헤럴드. 어느 투수든 실점하게 되면 당연히 기분이 나쁘다.

하지만 헤럴드가 이번 실점에 기분나빠하는 것은 자신이 원해서 한 실점이 아니라는 것.

정규시즌에선 상대가 경계하는 것을 막아야 하니 적당히 던지고, 원하는 때, 원하는 정도의 실점을 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한동욱이 월드시리즈로 나가는 것을 철저히 막기 위해선 무실점으로 막아야 하는 것이 기본.

지금 헤럴드가 전력으로 행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클리블랜드는 작전을 통해 1점을 얻어냈다.

마운드에 다시 올라온 헤럴드는 생각했다.

'이거…생각보다 어려울지도…….'

한동욱이 원하는 것은 헤럴드가 선발로 올라온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 그러면 클리블랜드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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