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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월드시리즈 우승을 위해선 시애틀보다 양키즈가 올라오는 것이 나았다. 그러면 둘 중에 한 팀이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할 수 있게 되고, 다른 팀이 다음 시즌에서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면 둘 다 해방이 된다.
하지만 동욱은 그럴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와 반대의 경우를 바랐다.
'차라리 시애틀이 올라오는 것이 나아. 그것을 위해서라도…….'
* * *
이번에도 작년과 같은 대진에 의해 뉴욕 양키즈와 시애틀 매리너스가 디비전 시리즈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전과 같이 동팔이 1선발로 첫 경기에서 마운드를 굳건하게 지켰다. 일부 타격을 허용했지만 무실점으로 막는 것에 성공했다.
그리고 데니 행크스의 솔로 홈런에 힘입어 첫 경기는 승리로 장식했다. 하지만 양키즈의 팬들은 마냥 기뻐하지 않았다.
"지난 디비전에서도 첫 경기는 놓쳤었지? 유일한 안타였던 데미안의 홈런에 당해서."
"그랬지. 하지만 이번에는 그 반대야. 거기에다 작년에 비해 양키즈 전력이 늘어났잖아. 반면에 시애틀은 그대로고."
"하지만 작년 월드시리즈 우승팀이야. 방심할 수 없어. 의외로 헤럴드는 포스트시즌에 특별히 강해."
양키즈 팬들의 불길한 예상대로 두 번째 경기에서 시애틀은 헤럴드를 선발등판 시켰다. 그리고 그의 철저히 효율적인 투구에 의해 양키즈는 점수를 얻지 못했다.
결국 두 경기에서 각자 1승 1패를 기록한 두 팀은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세 번째 경기를 하게 되었다.
경기를 하면서 이제 더 이상 디비전 시리즈에서 선발로 등판할 수 없는 동팔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이제부터 사실상 3전 2선승제. 이미 선발투수를 발표했을 때부터 짐작한 거지만…….'
시애틀의 선발은 어떤 의미로 보면 비겁했다. 서로가 영입한 투수 중에서 제일 잘하는 투수끼리 경기를 하지 않고, 일부러 피했다.
이것은 처음부터 3연승이 목적이라면 하면 안 되는 작전이었다. 그러나 동팔을 상대함에 있어 작년에 비해 헤럴드로선 불안하다 생각했으니 나름 최선책이라 볼 수 있었다.
동팔을 상대로 헤럴드가 승리하면 좋겠지만, 객관적인 기록을 살펴보면 거의 불가능했다.
그리고 실패하게 될 경우, 그나마 높은 승률을 기록하는 헤럴드라는 선발 카드를 잃게 된다. 그러니 시애틀 매리너스의 감독으로선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 안전을 택했을 뿐이었다.
비록 그것이 팬들에게 야유를 듣는 선택이라 할지라도 그는 알고 있다.
'어차피 지금은 욕을 먹어도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면 다 잊혀질 일…….'
그 또한 지난 시즌에 겪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니 비겁하게 승부를 피한 것이라 해도 당당하게 실행할 수 있었다.
반면 양키즈 입장에선 늪에 빠진 기분이라 좋을 수가 없었다.
"이참에 승기를 잡아서 치고 갈 수 있나 싶었는데……."
"이렇게 나왔네. 짜증나지만 막지 못했고……."
이상하게도 헤럴드의 구위는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치는 것이 어려웠다. 정타를 때리는 것이 어려우니 맞추더라도 범타로 끝난다.
결국 몇몇 운이 좋아 나온 정타만 안타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진루를 하더라도 헤럴드의 장기 중 하나인 견제에 당하거나, 후발 주자가 생기지 않아 점수로 이어지지 못했다.
경기를 시작하기 전, 동팔과 지완이 이야기했다.
"이제부턴 시애틀의 투수를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역시 데미안이 문제지?"
"그렇지. 정규시즌 때와 다르게 본격적으로 배트를 휘두르니까."
정규시즌의 기록과 포스트시즌의 기록이 다르면 여러 가지로 혼란스럽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로 인해 방심하게 된다면 그 결과는 패배로 이어지기 마련.
그 중에 핵심 선수에 대한 잘못된 정보는 특히 더 위험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과 달리 정보의 분석에 있어선 한 시름 덜은 상황.
"이미 혜진이도 모든 정황을 알고 있으니 대비하고 있어. 헤럴드에 대한 대비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데미안 앞에 주자를 쌓지 말라고 경고했거든."
"그래서 위험 등급을 동욱이 급으로 말한 거구나?"
"그렇지. 정규시즌과 달리 포스트시즌에선 동욱이보다 더 잘 때리는 놈이니까. 아직 원리는 몰라도……."
"그래도 대충 알고는 있잖아. 헤럴드의 경우 타자가 노리는 공이 무엇인지 알아낸다는 것. 그리고 데미안의 능력도 그와 비슷하다는 것을."
상대가 노리는 구종을 알고 있다면 그것만 안 던지면 된다. 그리고 그보다 한 수 더 생각하면 타자가 원하는 구종과 비슷하게 던져 헛스윙이나 범타를 유도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타자도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지는지 파악할 수 있다면. 적어도 구종만 파악할 수 있다면 타율은 비약적으로 올라간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동욱이었다. 오히려 동욱보다 더 빠르게 파악이 가능하다면, 그보다 더 위험한 타자로 분류하는 것도 당연한 일.
다만 혜진이 데미안을 한동욱과 거의 동급으로 분류한 것은 그나마 감독과 코치진이 경각심을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적어도 지금 사람들의 인식에선 한동욱보다 더 강한 타자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혜진이 데미안을 한동욱보다 더 위험한 타자로 분석한다면, 아무리 그녀의 분석력을 인정한다고 한들, 농담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전과 달리 데미안이라는 암초를 만나 의외의 홈런을 당하지 않았다.
작년에는 그렇게 당하는 바람에 2승 3패로 양키즈가 챔피언십 진출에 실패했다. 하지만 지금의 동팔은 그때를 교훈삼아 첫 경기에서 방심하지 않고 던졌다. 그리고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에서 첫 승을 거두는데 성공했다.
자신의 할 일을 다한 동팔이라 어떤 면에서 홀가분하지만, 마냥 편하게 이후의 경기를 볼 수는 없었다.
동팔은 여전히 불펜 투수로 남아 있는 지완을 보며 말한다.
"가만 생각하면 나도 차라리 불펜에 있을 걸 그랬나? 그러면 매 경기마다 출전할 수 있을 텐데."
자신이 동욱을 부러워하는 건 거의 없다. 있다면 매 경기마다 타석에 서서 팀의 승리에 지속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것.
물론 선발투수로 나와 상대 타선을 봉쇄하는 것도 아주 중요함을 알지만, 그래도 아쉬웠다.
"네가 매 경기마다 나와서 던지면 되잖아. 불가능한 것도 아닌데."
"그렇긴 해도 그렇게 던지도록 허용해 주겠냐는 거지……."
앞뒤 사정을 모르는 양키즈 구단에선 어떻게든 동팔을 묶어 놓을 생각이었다. 적어도 지금 당장 다른 구단보다 자신들이 계약의 우선권을 쥐고 있다.
재정도 탄탄하니 최강의 선발인 그를 놓치고 싶은 생각은 어디에도 없다. 더군다나 팀 내에서 많은 지지와 친분을 지닌 그가 다른 팀에 갈 경우 손해는 단순히 선발 전력 하나가 사라진 정도가 아니었다.
그걸 생각하면 아무리 월드시리즈 우승이 중요하지만 동팔을 혹사시켜서까지 할 생각은 없다.
그 이후의 미래를 생각하면 더욱더 혹사시킬 수 없었다. 그러다 마음이 떠나면 그를 비롯해 다른 선수들과 팬들도 떠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상태를 설명할 수 없는 동팔의 입장에선 답답했다.
"지금 내 목숨이 달려있는데 가만히 있어야 하다니……."
생각 같아선 지금 당장 마운드로 올라가 공을 던지고 싶었다. 하지만 선수를 선발함에 있어 모든 결정은 감독이 하며, 그 권한에 도전했다간 출전이 불가능하거나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 매 경기마다 나서는 모든 선수가 부러웠다. 그러니 오죽하면 선발이 아닌, 불펜이 낫다는 말까지 하고 있을까.
그러자 지완이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내가 최대한 해 볼게. 대신…잘못되면 각오 해."
지완이 무리하면 2이닝이 아니라 3이닝 이상도 가능하다. 그러면 지완이 감당하는 만큼 승률이 올라간다. 다만 그로인해 부상을 입을 가능성도 높아진다.
혹시라도 부상을 입게 될 경우, 사양하지 않고 동팔의 회복 능력을 사용할 것이다. 물론 그로인해 따라올 고통을 각오해야 하지만.
그렇게 해서 지완은 경기가 막바지에 이를 때마다 등판하여 양키즈가 승리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려고 했다.
지완이 등판할 때마다 완벽한 투구 내용으로 타자를 봉쇄했지만, 그 이전에 데미안이 벌어놓은 틈을 시애틀의 타자들이 비집고 들어오면서 점수를 많이 냈다.
그 결과 작년과 다르게 첫 경기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뉴욕 양키즈는 이번에도 2승 3패로 챔피언십 진출에 실패했다.
* * *
챔피언십 진출에 실패한 양키즈와 달리, 한동욱이 있는 클리블랜드는 보스턴 레드삭스를 누르고 진출했다.
보스턴은 뉴욕 양키즈가 올라올 것이라 생각하며 분발했지만, 한동욱을 포함한 클리블랜드 타선의 폭발을 감당하지 못했다.
그래서 월드시리즈로 진출하기 위한 챔피언십은 한동욱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그리고 악마의 사냥개가 된 헤럴드와 데미안이 있는 시애틀 매리너스의 대결이 되었다.
첫 경기가 있기 하루 전.
동팔은 동욱과 만나고 있었다.
"여기까진 어쩐 일로 온 거야? 그냥 전화하면 될 걸."
"나야 이번 시즌은 끝났으니까.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니 찾아왔을 뿐이야."
동부에 있을 동팔이 중부인 클리블랜드에 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이번에도 시애틀에 막혀 챔피언십에 진출하지 못했으니 심적인 타격이 상당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동팔은 그에 개의치 않고 동욱을 직접 찾아오기까지 했다.
동팔이 찾아온 이유를 어림짐작한 동욱은 작게 중얼거렸다.
"성격 좋은 건 평생 못 고칠지도……."
그리고 동팔을 들이고 식탁 앞에 있는 의자에 앉으라고 했다.
"커피? 아니면 차?"
"혼자 사는데 그런게 있어?"
"커피는 선물받은 거고, 차는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거야. 아는 분께 받으셨데."
"그래? 그럼 차. 여기서 한국에서 보낸 차 마시는게 조금 힘들잖아. 차 종류는 뭔데?"
"녹차."
동팔의 주문에 동욱은 포트에 물을 넣고 전원을 켰다. 물이 끓는 사이, 간단하게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어머니께선 어떠셔?"
"항상 그렇지."
"건강하시면 다행이고. 이거 끝나고 며칠 뒤면 한국가겠네."
"당연하지. 그런데 얼마 전에 출산했다면서? 아들?"
"응, 다행히 둘 다 건강해. 한국이랑 달리 산후조리원이 있는게 아니라서 조금 불편하지만 괜찮아."
산후조리원이 미국에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만큼 많은 건 아니었다. 대부분 산부인과에서 출산을 하고 기본적인 치료와 회복이 되면 퇴원하는 방식이었다.
"이제 아빠가 되었으니 죽으면 안 되잖아. 그런데 생각보다 표정이 나쁘진 않다."
이번에도 시애틀에 막혀 챔피언십 진출이 좌절되었다. 이제 남은 기회는 다음 시즌밖에 안 남았다. 그럼에도 동팔의 표정은 좌절에 빠진 사람의 것과 달랐다.
"이기적인 말일지 모르겠지만, 최악의 상황이 되더라도 나의 일부가 세상에 남아 있다는 것 때문인지도 모르지. 그렇다고 해서 순순히 죽겠다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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