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267화 (267/325)

[267]

쉽게 스트라이크를 잡은 지완은 다음에 던질 공을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타자가 다음 공을 예상하고 대비하기 전에, 타자가 자세를 취하는 것을 보자마자 공을 던졌다.

쉭~퍽!!

이번에는 안쪽 위로 향하는 강속구. 그렇지 않아도 빠른 공이 자신의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것처럼 보이자 타자는 움찔하며 치지 못했다.

하지만 공은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며 그의 걱정과 달리 안전하게 포수 미트로 공이 들어왔다.

"스트~ 라이크!!"

볼도 없이 2번 연속으로 스트라이크가 되자 타자는 조급해졌다.

'벌써 이렇게?'

이렇게 되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삼진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볼을 골라내던지, 아니면 어떻게든 타격을 해서 넘어가야 했다.

물론 헛스윙을 해도 아웃이 되니 신중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

'이번에도 포심 패스트 볼? 아니면 변화구로 나오려나?'

지금의 선택권은 오직 투수의 마음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그만큼 투수인 지완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고지에 있었다.

당연히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타자는 지완의 투구 동작을 집중하며 보았다. 그리고 방금 전과 같이 힘차게 공을 던지자 바로 배트가 움직였다.

'포심 패스트볼!!'

강속구는 미리 움직이지 않으면 칠 수 없다. 그것도 100마일에 달하는 구속이라면 투수의 손에서 공이 떠나는 것을 보고 치면 이미 늦었다.

지완이 제구가 안 되는 강속구를 던지면 와일드피칭으로 볼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도 제구가 되는 강속구를 던질 수 있는 투수는 쉽게 볼 수 없다.

그리고 지완은 그게 가능한 투수 중 한 사람. 가만히 있으면 이대로 삼진이라는 생각에 타자는 빠르게 배트를 휘둘렀다.

하지만 그의 추측과 달리 공은 생각보다 느리게 날아왔다.

휭~.

배트가 휘둘러진 다음, 공이 포수 미트로 들어왔다. 강속구에 이은 체인지업. 고리타분하고 대부분의 타자들에게 익숙한 볼 배합이지만, 그만큼 위력을 보여주는 조합이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결국 방금 전의 헛스윙으로 인해 삼구삼진으로 물러나고 만 타자는 자신이 완벽히 속았다는 것을 알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젠장!! 빌어먹을!!"

하지만 욕을 하고 화를 터트린다고 해서 결과가 바뀌지는 않는다. 그러니 분통이 터져도 다음 타자에게 타석을 넘기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2번 타자는 방금 전 지완의 투구 내용을 보자 긴장되었다.

'작년에 상대했을 때랑 달라진 것이 없잖아? 어떻게 상대하지?'

이전 이닝에선 구속이 생각보다 떨어져 몸 상태가 이전에 비해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앞선 타석에서의 투구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때처럼 100마일에 달하는 강속구를 던지고 있었다. 그것도 완벽하게 제구력으로.

'아직 변화구를 보진 못했어. 하지만 강속구의 제어가 된다는 것은 변화구도 마찬가지라는 건데…….'

비록 앞선 타자가 삼구삼진으로 물러났지만, 덕분에 방심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한편, 지완은 간만에 실전에서 강속구를 던진 후 몸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이전에는 무리한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 그때보다 편해. 설마 그 인디언이 한 말이 사실인지도…….'

오늘이 있기 전, 하얀 늑대의 벗과 만났을 때 그가 말했다.

'뼈도 한 번 부러진 후, 붙으면 그 부위는 주변보다 더 단단해진다. 근육도 마찬가지.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파열되었지만, 동팔의 힘으로 회복되면서 더 강해지고 단단해졌다.'

그것은 단순히 몸의 회복과 강화를 의미하지 않았다.

'이전에는 몸에 무리를 하면서 공을 던져 뛰어난 구위를 가졌다. 하지만 지금은 무리하지 않아도 이전의 구위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축하한다. 난관을 뚫고 더 강해졌다.'

그의 말을 처음으로 실감했을 때는 훈련하는 중이었다. 이전처럼 전력을 다해 던졌고, 최고 구속도 조금 더 올라갔다.

그런 이후에는 항상 몸 관리를 위해 따로 관리해야 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는 훈련 중이라 체감의 단계까지 느끼진 못했다. 그러나 지금 실전에서 승승장구하는 보스턴의 타선을 상대로 자신의 공이 먹히자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전에는 전력의 강속구를 던져도 몇 번 던지면 힘이 떨어졌어.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때보다 두배는 더 던질 수 있을지도…….'

그래서 지완은 실험해 보고 싶었다. 지금 자신의 상태가 보스턴의 중심 타선을 상대로 얼마나 통할지.

그 중에 첫 시험은 가볍게 통과했고, 지금 새로운 시험지가 타석에 들어섰다.

'리드오프지만 힘이 더 강해. 그렇다고 어려울 것은 없어. 보스턴의 계약자인 지미를 제외하면 별로 볼 것이 없으니까.'

그렇다고 방심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상대는 메이저리그의 중심타선 중 하나. 계약자가 아니더라도 실력 자체는 진짜다.

'방금 전에 내가 던진 것을 봤으니 어느 쪽으로 가던지 반응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지. 그럼…….'

지금까지 초구는 전부 강속구나 범타를 유도할 수준의 공을 던졌다. 그러니 이번에는 변화구를 던질 거라 생각하는 것이 더 나은 판단이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예상에 힘을 실어 주는 과거 기록도 있었다.

'뛰어난 투수지만, 강속구보다 변화구를 위주로 던졌던 투수. 방금 전에 세 번 연속 강속구를 던졌으니 체력을 생각해 변화구를 던질…….'

아무리 120여개의 공을 던지는, 체력이 좋은 선발이라도 연속적으로 강도 높은 강속구를 던지지 않는다.

단번에 하는 벅찬 운동은 사람을 쉽게 지치게 만드니 강약 조절은 필수. 그러나 이번 이닝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는 지완에게 통하는 건 아니었다.

쉭~ 퍽!!

타자의 예상과 달리 지완은 빠른 강속구를 이어서 던졌다.

"스트~ 라이크!!"

"……."

당연히 타자는 강속구에 배트를 휘두르지도 못하고 볼카운트가 불리해졌다.

'이러면 안 되는데… 설마 다음에도 또 강속구를…….'

쉭~ 퍽!!

하지만 이번에도 타자의 예상과 달리 빠르게 꽂히는 강속구가 날아왔다.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반사적으로 배트를 휘둘렀지만, 이미 공은 포수 미트로 빨려 들어간 다음이었다.

"……."

생각보다 어이없이 순식간에 볼 카운트가 2스트라이크가 되었다. 그러자 타자는 심각한 위기감이 들었다.

'설마 나까지 삼구삼진?'

다른 타자가 삼구삼진을 당했을 경우, 놀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자신이 당하는 것은 결코 사양이다.

야구를 하면서 삼구삼진을 당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당하지 않는 것이 훨씬 나았다. 그리고 모든 경기의 기록은 메이저리그의 역사에 선명히 기록되니 지울 수도 없다.

나중에 자녀가 인터넷을 통해 아빠의 기록을 보며 부끄러워하게 만들 수 없었다.

물론 설령 삼구삼진을 당해도 메이저리그에 기록된 많은 삼구삼진 중 하나에 불과하다.

하지만, 당하고 싶은 건 절대로 아니었다.

단지 공 2개 만에 2스트라이크가 되자 타자는 이전에 없던 집중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방금 전에 있었던 것처럼 첫 타자가 당했던 것을 떠올렸다.

'이 상황에서 체인지업은 확실히 뛰어나. 아니면 변화구로 속이려 하겠…….'

그래서 속지 않게 신중하게 나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지완의 손에서 공이 빠르게 날아왔다.

쉭~ 퍽!!

체인지업을 예상하며, 그리고 계속 강속구를 던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예상과 달리 강속구로 꽂아 넣었다.

"……."

"스트라이크~ 아웃!!"

결국 가만히 있다가 스탠딩 삼진을 당한 타자는 멍하니 있다가 주심의 우렁찬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타석에서 나오면서 후회와 함께 지완에게 기가 질렸다.

'설마 강속구를 연속으로 계속? 대체 심장이 어떻게 된 녀석이야?'

의표를 찔렀다면 확실하게 잘 찔렀다. 하지만 보통 직구를 계속 던지면, 거기에 대한 대비를 하여 얻어맞기 마련이다.

그걸 알면서도 빠른 공을 계속 던졌다는 것은 보통 대담함이 아니었다. 그만큼 자신의 공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것.

그리고 또 하나 놀라운 점이 있었다.

"대체 체력이 얼마나 좋은 거지? 이 정도까지 던지면 힘이 빠질 때도 됐는데……."

단기간에 벅찬 운동을 하면 숨이 찬다. 공이 가벼워도 그 공을 빠르게 던지기 위해선 강한 힘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강한 힘을 이끌어 내기 위해선 체력을 소모하기 마련.

거기에 떨어진 체력이 회복되기 전에 계속 소모를 하면 힘이 떨어진다. 하지만 지금 지완은 그런 기색이 전혀 없었다.

어쩌면 이번이 보스턴의 마지막 타선이 될 수 있는 상황에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2번 연속 삼구삼진?'

앞서 두 타자가 어이없이 삼진을 당하며 무너졌다. 그것도 타자에게 있어 제일 치욕스러운 삼구삼진으로.

비록 이기고 있는 중이었지만, 지금 상황은 좋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가 어떻게든 흐름을 바꾸지 않으면 위험할지도 몰라. 다음 경기의 흐름을 생각해서라도…….'

지금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자신의 배트로 지완의 투구를 받아치는 것이다. 안타면 좋고 홈런이면 더 좋다.

그렇다고 해서 욕심을 내겠다는 것은 아니다.

'나 다음에는 지미가 올라와. 볼넷이 되든, 안타가 되든 어떻게든 진루만 하면 돼. 그리고… 이번에는 전처럼 강속구를 던지지 않겠지. 만약에 던지더라도 숨을 고른 다음에…….'

그 생각을 하던 중, 생각보다 빨리 지완이 공을 던지려 했다. 그러자 보스턴의 3번 타자는 직감했다.

'변화구, 무조건 변화구!!'

한 번을 제외하곤 강속구를 연달아 던졌다. 그리고 다른 공 하나도 힘이 실리지 않는 체인지업이었다.

바꿔 말하면 구속은 느려도 힘은 강속구를 던질 때와 같이 던진다는 것.

여섯 번 연속 강속구를 던지는 것과 같았으니 지쳤을 것이고, 지친만큼 쉬어야 강속구를 던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쉬는 시간이 짧은 지금이라면 당연히 변화구라 생각하고 대비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이번에는 중간 아래쪽으로 향하는 강속구였다.

쉭~ 퍽!!

"스트~ 라이크!!"

"……."

전혀 예상치 못하게 이번에도 강속구가 날아왔다. 타자는 이번에는 구속이 조금 떨어졌을 거라 생각하고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스피드건에서 찍힌 구속은 101마일.

이전 지완의 최고 구속을 1마일 더 뛰어 넘었다.

'어떻게 된 거야?'

이렇게 전력으로 계속 던지면 지칠 만도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체력과 힘이 남아도는지 구속은 전혀 줄지 않고 오히려 높아졌다. 거기에 표정의 변화는 없으니 어떤 생각을 하는지 파악할 수 없었고, 숨이 차오르는 기색도 전혀 없었다.

이러니 타자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제부터 주로 변화구를 던질 거라 예상했는데…….'

예상과 달리 계속 강속구도 의식해야 했다. 그리고 보스턴 펜웨이파크에 있는 레드삭스의 팬들의 응원과 야유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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