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
거기에 불규칙한 바운드가 일어난 것도 아니고, 유격수가 기다리고 있는 곳을 향해 날아가는 타구라면 운명은 이미 정해졌다.
툭~ 휙.
유격수인 브렛 버틀러는 타구를 잡더니 바로 1루로 송구했다. 그리고 공은 타자가 베이스를 밟기 한참 전에 1루수의 글러브에 들어왔다.
"아웃."
공 하나로 아웃카운트를 잡은 지완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이 상황을 더그아웃에서 지켜본 동팔은 그가 이번 이닝에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차렸다.
"아…설마 삼구 삼자범퇴……?"
삼자범퇴는 한 이닝에 세 타자를 범타로 물러나게 만드는 것. 그리고 그것을 공 3개로 끝내는 경우를 삼구 삼자범퇴라고 한다.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되는 기록이지만, 가능하다. 그러나 생각보다는 어렵다.
이것은 초구를 노리는 타자가 많다면 그나마 쉽게 할 수 있지만, 신중한 성격의 타자라면 쉽지 않은 일이다.
경계를 한 타자가 처음 오는 공을 무조건 거르면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팔은 방법을 알고 있다. 다만 그 방법은 약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다음에 올라온 타자를 보며 지완은 그에 대한 분석 결과를 떠올렸다.
'신중한 성격. 하지만…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고 배트가 나가.'
초구를 공략하는 타입이 아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이번 이닝에 노리는 건 동팔이 생각한 것처럼 삼구 삼자범퇴.
하지만 지완은 의식하지 않았다. 그저 최소한의 투구로 상대가 쉬는 시간을 극도로 줄이려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스윽~ 휙!
지완은 브라이언과 사인을 교환하면서 자신이 생각한 공을 던졌다. 하지만 지완이 공을 던지기 전에 브라이언은 걱정했다.
'이러다 맞는 것 아냐?'
스트라이크 존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변화구였다. 구종은 슬라이더. 100마일은 아니지만, 빠르게 날아오는 공은 스트라이크 존 한 가운데를 향하고 있었다.
'기회!!'
초구를 노리는 타자는 아니지만, 한 가운데 오는 것을 보자 바로 반응을 했다.
타자는 투수가 동팔에 준하는 구위를 가진 지완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재기하고 이제 막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된 상태에선 이전과 같은 구위를 가질 것이라 생각하기 어렵다.
그래서 지금 던진 공이 실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낙차는 크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착각이었다는 것은 공을 때리자마자 알게 되었다.
타악~!!
깔끔하지 않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공은 생각보다 높이 뛰어 올랐다. 그래도 힘이 있으니 멀리 날아가고 있었지만, 올라가는 각도가 너무 높았다.
그래도 혹시 우익수의 실책을 기대하면서 1루를 향해 뛰어갔다. 하지만 높이 뜬 공의 운명은 거의 대부분 그렇듯이 하나로 귀결되었다.
휘익~ 툭.
높이 뜬 타구는 우익수의 글러브에 빨려 들어갔다.
이것으로 2아웃. 그것도 고작 공 두 개만에 만들어진 카운트였다.
"……."
예상보다 빠른 2아웃에 보스턴의 더그아웃과 관중들에게 잠시나마 침묵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3대 1로 이기고 있는 점수는 관중들이 다시 응원하고, 야유의 압박을 하게 만드는 좋은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러건 말건, 지완은 여전히 무표정하게 다음 타자를 상대할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포수 브라이언은 이전에 동팔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자신보다 강한 승부욕, 그로 인한 강한 정신력. 그리고 승부욕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실력. 그리고…단 한점을 향한 집중력이 대단하다고 했었지? 마치 날카로운 창끝과 같이…….'
확실히 동팔의 공과는 느낌이 달랐다.
두 사람의 공은 뛰어난 제구력을 바탕으로 한 강속구와 변화구다. 그것은 같아도 직접 받는 포수의 입장에선 무언가 달랐다.
'동팔의 공은 언제 어떤 공이 날아올지 모르는, 방패가 돌진해 온다는 느낌. 하지만 지완의 공은 절묘하게 파고 들어오는 날카로운 창.'
단순히 창 한 자루라면 어떻게든 상대할 방법이 보인다. 하지만 지완이 던지는 구종은 동팔만큼은 아니더라도 다양하다.
그러니 창 한 자루가 날아오는 것이 아니라, 치기 제일 싫은 곳으로 날아오는 여러 자루의 창을 상대하는 느낌이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지난 시즌에 지완과 상대를 해본 타자들. 그리고 지금 브라인언 산체스와 같이 포수 정도가 전부였다.
이번에 타석에 서는 타자는 보스턴의 9번 타자.
보통 마지막 타순의 타자의 경우는 타격 능력보다 수비 능력에 중점을 두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아무리 타격 능력이 떨어지더라도 메이저리그에 올라 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경계해야 할 이유가 충분했다.
그리고 타자도 지금 어떤 상황인지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초구에 공을 때려서 범타로 물러나면 정말 삼구 삼자범퇴… 그것만은 절대로 할 수 없어!!'
삼구 삼자범퇴를 막을 수 있는 제일 확실한 방법이 있다. 바로 초구에 배트를 휘두르지 않는 것이다.
지금 올라온 타자가 그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건 지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바로 공을 던지지 않았다.
"……."
지완은 전과 달리 시간을 들였다. 다음 공을 던지기 전까지 10초도 걸리지 않음을 생각하면 생각보다 오래 걸리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타자의 생각은 처음과 달리 번민하고 있었다.
'잠깐, 이러다 투수가 초구를 한 가운데 스트라이크를 꽂아 넣으면? 그렇게 되면 시작부터 불리하게 진행되는데…….'
확실히 1스트라이크부터 시작하면 타격에 약한 그에겐 상당한 부담이 된다. 남은 기회는 두 번 밖에 없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공 3개로 삼자 범퇴가 되느냐, 5개로 되느냐의 문제였다. 그 차이는 고작해야 2개.
타자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보자 지완은 바로 자세를 잡더니 공을 빠르게 뿌렸다.
쉭~!!
그렇지 않아도 타자가 걱정한대로 공은 스트라이크 존 한 가운데를 향하고 있었다. 그러자 마음을 정했어도 흔들린 상태의 타자는 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였다.
"읍!!"
타악~!!
한 가운데로 오는 공인 줄 알았지만, 홈플레이트 근처에 오자 궤적이 바뀌었다. 그로 인해 생긴 변화로 인해 이번에도 배트는 공을 제대로 때리지 못했다.
어정쩡하게 맞은 공은 힘없이 구르더니 기다리고 있던 2루수의 글러브에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2루수는 잡은 공을 1루로 가볍게 던져 아웃카운트를 올렸다.
결국 한 명의 투수가 공 3개로 이닝을 지우고 말았다.
공수교대를 하면서 더그아웃으로 들어온 양키즈 선수들은 웃으며 이야기했다.
"방금 전에 나왔는데, 또 들어가네."
"이렇게 빨리 끝난 적이 있었나?"
반면 더그아웃에서 조금이나마 쉬고 있던 보스턴의 선수들은 초반보다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나와야 했다.
"이제 막 엉덩이 붙였더니 일어나라고?"
"젠장……."
방금 전에 뛰어 들어왔는데, 다시 수비하기 위해 뛰어 나가야 했다. 그들은 불만을 터트려도 화를 내진 않았다.
지금은 2점 차이로 이기고 있는 상황. 그러니 바로 앞에 보이는 승리로 인해 나오려던 화도 사그라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8회초가 끝났다. 지금과 그 다음에 있을 양키즈의 타선을 막으면 눈앞의 승리는 확정된다.
* * *
공 3개로 이닝을 지운 지완은 무리하지 않고 어깨를 가볍게 스트레칭 했다. 그러던 중에 존 지라디 감독이 와서 말했다.
"다음에도 가능하지? 어떻게 되든 잘 막아 봐."
"알겠습니다."
10개 이상을 던졌다면 다음을 생각해 교체를 고려하겠지만, 고작 3개의 공만 던졌다. 그것도 전력으로 던진 것이 아닌 적당히 빠른 공으로.
단순히 수치로 보면 2이닝을 감당하는 것이지만, 실제로 한 이닝을 던지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지완과 수비가 세 타자를 범타로 빨리 처리하자 타자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삼구 삼자범퇴로 인해 보스턴 레드삭스로 흘러가던 흐름이 단번에 끊어진 상황.
무엇보다 지금 자신들에게 남은 공격 기회는 단 두 번 밖에 없었다.
그 덕분인지 양키즈의 타자들은 전보다 더 강한 집중력으로 투수를 괴롭혔다. 그래서 주자도 나갔지만, 끝까지 홈으로 불러들이지 못하는 바람에 점수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물고 늘어진 덕분에 양키즈 선수들은 더그아웃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고, 그 상태에서 공수교대가 일어났다.
이번에도 지완이 마운드에 오르자 보스턴 팬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젠장!! 또 지완이야!!"
"한 이닝 했으면 됐지 왜!!"
불펜 계투진이면 계투진 답게 한 이닝만 던지고 다른 투수와 바뀌길 바랐다. 이왕이면 양키즈의 마무리 투수로.
하지만 이번에도 지완이 계속 올라오자 이번 보스턴의 공격도 아무런 수확이 없을 것 같아 짜증이 났다.
그래도 양키즈 입장이라면 이미 잘 던지고 있는 투수를 내릴 이유가 없음을 아는 팬들도 많았다.
"예상된 결과야."
"설마 이번에도 공 3개로 삼자범퇴가 되진 않겠지?"
방금 전에는 방심한 것이라 생각하고, 타자들이 진지하게 상대하면 기회는 있을 것으로 봤다. 그런 생각이 가능한 것도 이번에 올라올 타순이 보스턴에게 좋았다.
시작부터 보스턴의 1번 타자가 타석에 오르는 것이다.
삼구 삼자범퇴를 당한 이상, 쉽게 방망이가 나가지 않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투구 숫자를 늘리면, 다음 경기를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지완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이왕이면 점수 차이를 더 벌리고, 9회말을 할 필요 없이 경기를 끝내는 것이다.
당연히 이를 위해선 마운드에 오른 지완의 정신을 흔들어 놓는 것.
이전보다 더 큰 목소리로 함성을 지르며 지완을 압박하려 했다.
"아… 절라 시끄럽네……."
하지만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오히려 큰 함성이 지완으로 하여금 더 큰 투쟁심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한 번 타오르기 시작한 투쟁심은 지완으로 하여금 더 높은 집중력을 만들어 주었다.
'1번 타자답게 리드오프로서 뛰어난 타자. 하지만 힘은 조금 떨어져. 그러나 진루하는 것만으로도 짜증을 유발하는 타입. 하지만… 진루하지 않으면 무의미하잖아?'
신중하다는 것은 그만큼 초구를 잘 노리지 않는 다는 것. 그리고 방금 전에 겪은 상황으로 인해 배트가 쉽게 나가지 않을 거라는 점이었다.
그 점을 지완은 놓치지 않았다.
스윽~ 휙!!
방금 전과 달리 이번에는 전력을 다한 강속구였다. 그리고 향하는 곳은 스트라이크 존 안의 바깥쪽 아래.
이전부터 100마일에 달하는 구속을 가졌다. 그리고 이번에 던지는 구속은 그때와 비교해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쉭~ 퍽!!
지완이 던진 강속구는 빠르게 포수 미트에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타자는 예상보다 빠른 공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스트~ 라이크!!"
심판의 판정은 정확했다. 그리고 중계 화면을 통해 보여주는 리플레이 장면에서도 스트라이크임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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