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
턱.
3루 주자는 빠르게 달려오더니 여유 있게 홈플레이트를 밟았다. 그리고 1루 주자는 2루를 돌더니, 아직도 타구를 잡지 못한 것을 보자 3루까지 가는데 성공했다.
촤악~.
아슬아슬하지만, 슬라이딩으로 3루에 주자가 안착했다. 그러자 보스턴 팬의 함성은 더욱 커졌다.
그들의 거대한 울림에 안타를 맞은 투수는 더 크게 흔들렸다.
볼카운트는 리셋. 주자는 그대로 1,3루에 있었고, 1실점했다.
홈런을 맞는 것 다음으로 안 좋은 상황에 투수는 물론 더그아웃에 있는 양키즈 선수들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예상과 달리 올려 보낸 불펜이 두들겨 맞자 감독과 코치는 당황스러웠다.
'차라리 그대로 버티다가 5회말에 올릴 걸 그랬나?'
투수 교체를 한 건 감독과 코치들의 조심스러운 결정이었다. 하지만 선수 교체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아니면 교체하지 않고 그대로 갔다면 더 안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만약의 상황에 따른 것이지 실제로 일어난 일은 아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결과가 좋지 않다는 것. 그리고 투수가 많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가야 하나? 하지만 방금 브라이언이 나왔는데 또?'
감독은 지금 상태로 공을 던지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브라이언과 마찬가지로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특히 감독이나 코치가 올라오는 것은 포수가 올라가는 것과 무게와 느낌이 전혀 다르다. 흔들리지 않게 하려다, 오히려 더 크게 흔들 수 있었다.
한편,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가자 동팔이 농담삼아 말했다.
"야, 이러다가 너 오늘 등판하는 거 아냐?"
"설마 그럴리가."
"잠깐, 너 설마라고 했어? 그럼 정말로 등판하는 건가?"
"설마라고 다 그게 반대로 이루어지겠냐."
사람이 설마라는 단어를 말하고 이후에 하는 말에는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을 표현한다. 하지만 살다보면 이루어지기 어려운 사건이나 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지완은 지금 막 로스터 명단에 이름을 올린 상태.
훈련할 때에 다른 선수와 같이 훈련을 하고, 동팔과 비견되는 구위를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훈련 상황과 실전은 전혀 다르다.
특히 분위기가 보스턴에 넘어가기 시작하는 흐름이라면 더욱 힘들다.
더군다나 불펜을 바꾸고 얼마 되지도 않은 상황에 다른 투수로 바꿀 수 없었다.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아도 감독의 입장에선 그 다음의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법.
지금 던지는 투수가 컨디션 난조로 힘들겠지만, 그것 또한 경험이다.
비록 이번 경기에 실패하더라도, 이 실패를 딛고 일어서면 더 강한 정신력을 지닌 선수가 된다. 아무리 승률이 높은 팀이라도 패배 자체를 막을 수가 없는 법.
그러니 패배하는 경기에서도 어떻게든 얻어야 할 것을 얻어내야 하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부러 패배할 감독은 어디에도 없다. 이건 어디까지나 정 어쩔 수 없다는 전제에서만 하는 것.
그리고 지금 분위기가 좋지 않더라도 오늘의 승리를 향한 발버둥을 쳐야 했다. 그 중에 하나는 평상시에 없던 패턴을 추가하는 것도 있었다.
그래서 존 지라디 감독은 지완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지완. 7회말이나 8회말에 올라갈 준비를 해."
# 지더라도 지지 않는
예상치 못한 불펜 준비 명령. 하지만 지완은 처음에 놀랐어도 차분히 순서를 기다리며 불펜에서 공을 던졌다.
그리고 지완이 준비하는 사이, 4회말에 양키즈가 3실점하여 보스턴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당연히 보스턴 팬들은 양키즈를 누르고 있다는 것만으로 너무 좋아 함성을 더 크게 질렀다. 그리고 양키즈 불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준비를 하고 있는 양키즈 선수를 향해 야유를 퍼붓고 있었다.
"우우우~."
"양키는 꺼져라!!"
하지만 선수에게 직접적인 야유나 협박은 경기 규정에 어긋나고, 사무국으로부터 직접적인 제재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야유를 퍼붓더라도 직접적으로 하지 않고, 허공을 향해 크게 소리지르는 것으로 대체해야 했다.
하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선수들이 받는 압박은 상당했다.
특히 다른 선수에 비해 체구가 작은 지완에겐 더 노골적인 야유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래도 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인종차별적인 발언이었다.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차원이 아니라, 공개적인 장소에서 하는 인종차별 발언은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물론 미국 전반에서 허용할 수 없는 발언이었다.
아무리 흥분한 보스턴 팬들이라도,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을 경우 자신들이 사랑하는 팀에게 어떤 악영향이 가는 것을 알고 있으니 자중하고 있었다.
이 장면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도 보스턴 팬들은 멈추지 않았다.
'투수가 흔들리면 승리할 가능성이 더 높아.'
'이미 이기고 있지만, 우리가 바라는 건 대승!!!'
'양키 놈들을 이참에 완전히 발라버려야 해!!'
그러던 와중에 한 때 캔자스시티의 에이스인 지완이 불펜에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과연 그가 제대로 된 구위를 선보일지 알 수 없지만,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압박을 하는 것.
하지만 이것은 지완의 승부욕에 대해 몰라서 한 실책이었다.
"하하…이것 봐라… 완전 열 받게 만드네……."
지고 있는 경기였지만, 자신이 맡은 이닝은 확실하게 책임을 질 생각이다. 하지만 도를 넘은 보스턴 팬들의 행동에 지완은 슬슬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렇다고 해서 관중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올리지는 않았다. 그것은 하책 중에서도 하책.
지완은 지금 자신의 위치에서 야유를 보내는 저들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응징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불펜에서 공을 던지며 몸을 푸는 지완은 슬슬 구속을 올리기 시작했다.
휙~ 퍽.
처음에는 가볍게 던졌다. 지완의 느린 공을 본 보스턴 팬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했다.
"팔에 힘도 안 들어오는 투수를 투입하겠다고?"
"양키즈가 이렇게 여력이 없었냐?"
"이번에 그냥 이기겠다."
처음에는 지완의 낮은 구속에 여유로운 표정으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완의 투구는 점점 속도를 높이더니 10번째 던졌을 땐, 옆에서 눈으로 따라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쉭~ 퍽!!!
멀리 떨어져 있어도, 주변에 거대한 함성소리가 울리고 있어도 투구를 받는 포수 미트의 소리가 귀를 때린다.
마치 하나의 날카로운 창이 함성의 벽을 뚫고 보스턴 팬들의 귀에 꽂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처음에는 낮은 구속을 보며 놀리던 그들도, 생각보다 빠른 지완의 구속에 놀라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지금 구속이 어느 정도 나온 거야?'
'확실히 빠른 것 같은데…….'
'설마 100마일?'
확실히 재기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으니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방금 전에 던진 공이 빠르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더 놀라는 사람은 불펜 포수였다.
'빠르면서도 날카로워. 지금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을 미묘하게 통과하고 있어.'
메이저리그에서도 주심에 따라 스트라이크 존이 약간씩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는 단순히 사람이 가진 관점과 경험에 따라 다른 것도 있다.
하지만 종종 특정 심판은 백인에게 더 우호적이던가, 인종을 떠나서 인기 있는 선수에 관대한 주심이 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분석은 이미 오래전에 마쳤으니 걱정할 부분이 아니었다.
그나마 지금 판정을 하는 주심은 공정한 측에 속하는 주심이라 스트라이크 존이 투수에 따라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사람이 아니었다.
'스트라이크 존의 파악을 했다는 건 이미 보면서 정확히 분석했다는 거겠지. 올라온다는 보장이 없어도…….'
이것은 지완이 평상시에 경기를 어떻게 준비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포수가 감탄하는 것은 또 있었다.
'거기에 구속도 빠르고, 내가 사인을 보낸 공으로 정확하게 보내고 있어. 약간의 차이도 없이…….'
강속구를 던질 수 있는 투수는 많지 않다. 하지만 그 중에 강속구를 던지며 제구가 되는 선수는 적다.
그게 가능하다면 그 자체로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고 보면 되었다. 물론 강속구만 던지는 것이 아니라 한 두 개의 변화구도 던질 수 있다는 조건이 붙겠지만.
그래도 제구가 되는 강속구가 메이저리그의 강타자를 상대로 살아남을 수 있는 뛰어난 무기인 것은 사실.
그래서 다른 누구보다, 비록 불펜의 포수지만 그는 기대하고 있었다. 지완이 마운드에 오를 순간을.
그리고 지완이 마운드에 오르는 시간은 생각보다 빨랐다. 감독이 말했던 것 중 빨랐던 7회말.
보스턴이 3대 1로 앞서 나가고 있는 그때, 이대로 진행되면 단 두 번의 수비만 가능한 상황이었다.
공수 교대가 일어나고, 지완은 이번 시즌 처음으로 마운드에 올라왔다. 그리고 그 전에, 지완은 동팔에게 말했다.
"말 잘해서 내가 승리투수가 될 수 있게 해봐."
"뭐?"
"대타 뛰라고 새꺄."
그 말을 하고 지완은 마운드를 향해 갔다. 지완의 말에 동팔은 잠시 고심을 하더니 감독에게 가서 말했다.
그러자 존 지라디 감독은 허허 웃었다.
"그래? 지완이 그런 말을 했다고?"
지금 마운드에 올라온 지완이 승리 투수가 되겠다는 것은 이대로 보스턴의 타선을 완벽하게 봉쇄하겠다는 의도.
그리고 팀의 승리를 바란다는 자신의 마음을 말한 것이다.
당연히 지고 있는 상황에도 선수가 승리를 바라보는 것은 감독으로서도 아주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렇고, 현실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9회초까지 공격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8회초엔 안 돼. 하지만 이 상태로 9회초까지 진행된다면 마지막 타석에 올라갈 준비를 해."
* * *
동팔의 대타 조건이 말해지고 있을 때.
지완은 마운드에 올라 타석에 선 타자를 살펴본다. 그리고 지금 수비가 어떤 형태로 있는지 확인을 했다.
'우타자에 당겨 치는 타입이라 수비는 좌측으로 움직인 건가? 그럼…….'
이미 원정을 온 상태라 홈관중들이 흔들기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도 모자라 2점 차이로 이기고 있는 팀이 흔들릴 일은 없다.
하지만 지완은 알고 있다.
이들을 흔들릴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스윽~ 휙!!
지완은 익숙한 동작으로 공을 던졌다. 그리고 공은 마침 타자가 바라는 공이었다.
'됐어!!'
따악!!
경쾌한 소리를 내며 공을 때린 타자.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공을 때렸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표정은 단번에 굳었다.
'젠장, 빗맞았다!!'
자신이 생각한 커브가 들어왔고, 예측한 궤도로 배트를 휘둘렀다. 하지만 커브의 낙차는 생각보다 컸다.
그래서 타자가 친 공의 부위는 낮은 부분이 아니라, 높은 부분. 그래서 공은 회전도 걸리지 않고, 맞은 부위의 방향에 의해 바로 땅을 향해 날아갔다.
툭~.
타구의 속도라 아무리 빨라도, 이미 수비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한다면 무의미하다. 그리고 실수가 많은 아마추어도 아니고, 능숙한 수비 중 한 사람인 유격수가 못 받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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