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264화 (264/325)

[264]

하지만 상대 팬들의 격렬한 응원이 무섭다고 기가 죽으면 더 이상 프로라 할 수 없다. 일부 영향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최소화시키고, 평정심을 가지며 최선의 플레이를 하는 것이야 말로 프로.

그리고 프로 중에 프로가 모인 이곳은 메이저리그다.

주변의 상황에 휩쓸리는 것은 절대로 해선 안 되는 행동. 그것이 안 된다면 주전으로 설 자격이 없다 못해,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마이너리그로 내려가야 할지 모른다.

다만 이번 경기에서 양키즈의 선수 중 변화가 생겼다. 그리고 그 변화를 팬들에게 알려주는 사람은 중계진이었다.

"올스타전을 마치고 양키즈의 로스터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항상 변하는 것이 로스터 명단이지만, 이번에 눈여겨봐야 할 선수가 들어왔죠. 바로 남궁지완 선수입니다."

"작년 말에만 해도 재기가 가능할지 의문인 선수였는데, 생각보다 빨리 로스터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여기에서 주의해서 봐야 할 것이 있나요?"

"있습니다. 지금은 7월이라 28로스터가 아닌 26로스터로 운영됩니다. 만약 남궁지완 선수를 부른다 하더라도 저는 28로스터가 가동되는 9월로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빨리 그를 불렀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재기가 완벽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아직 명단 확정이 안 되었으니, 남궁지완 선수를 올렸다는 것은 부진하거나 휴식이 필요한 선수를 내려야 한다는 것이니까요."

지완에 대해 모르는 선수나 관중은 없다. 적어도 작년에 캔자스시티 1선발 급의 선수였고, 신인상을 받았다.

거기에 과도한 혹사로 인한 부상으로 재기가 가능한지 의심스러운 상황에 1년도 되지 않아 복귀를 했다.

다만 관심을 가지는 건 거기까지였다.

"하지만 아무리 완벽하게 재활에 성공했다고 한들, 실전 경험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트리플 A에서도 공을 던지는 모습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경기 분위기의 적응을 위해서일 겁니다. 보스턴에서 하는 양키즈와의 경기는 직접 와보지 않으면 이해하거나 느낄 수 없거든요."

"그럼 마운드에 오를 일은 없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오르더라도 계투진 이외에 없을 겁니다. 한 이닝이라도 던지면 다행일 겁니다. 무엇보다 분위기도 부담스럽고, 이 경기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쉽게 올리지 않겠죠."

작년에 분명히 뛰어난 구위를 가진 투수라도, 오랜 시간 실전을 겪지 않으면 감각이 떨어진다.

그걸 아는 감독이라면 중계진의 말대로 지완을 마운드에 올리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그들의 말대로 지금 지완을 로스터 명단에 올린 이유는 빠른 적응을 위해서였다.

생각보다 빠른 지완의 회복에 이왕이면 이번 시즌에 제대로 활용하려고 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해서 시작이 된 라이벌전.

그리고 라이벌이라는 말에 어울리게, 두 팀은 평상시 다른 경기보다 훨씬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     *     *

오늘 양키즈의 선발인 조니 그라함은 평상시와 다른 분위기에도 자신의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바로 마운드에서 보스턴의 타석을 막는 것.

다만 보스턴 타자들의 분위기가 달랐다. 홈에서 열리는 경기라 보스턴의 일방적인 응원만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이들의 열기와 격렬함을 설명할 수 없다.

홈에서 치른 경기에서 지면 팬들에게 욕을 배부르게 먹는 것은 어느 팀이라도 피할 수 없는 일.

다만 그게 너무 일상화되어 홈팀의 팬들에게 사리가 맺히는 경우가 한국에서 하나 있었다.

그 이외의 경우는 홈에서 연패를 당하면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팬들에게 비난을 당한다. 심지어 살해 협박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팬들의 성향에 따라 정도가 달라지지만, 적어도 양키즈를 상대함에 있어서 제일 격렬한 반응이 나오는 보스턴 팬을 생각하면 보스턴 선수들도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니 타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진루하기 위해서 전력을 다 해야 하고, 투수와 포수는 상대의 공격을 1차로 저지해야 했다.

그 덕분에 보스턴의 타자는 이전에 없던 집중력으로 양키즈의 투수인 조니 그라함의 투구를 어떻게든 치거나 선별하여 볼넷을 노리고 있었다.

그래도 조니 그라함은 3이닝 동안 실점하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해서 던졌다. 하지만 고작 4회말이 되었을 때, 그의 투수 숫자는 100에 도달하고 있었다.

당연히 양키즈의 고민은 깊어졌다.

"벌써 이렇게……?"

"생각보다 소모가 심합니다. 구종도 빠른 공이 많아 수치보다 더 많이 던진 것으로 봐야 합니다."

아마추어 야구와 달리 메이저리그는 투구수 제한이 없다. 이는 구단이 알아서 선수를 보호하기 때문이고, 선수 조합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선 민감하게 반응한다.

거기에 투수가 던지는 구종과 최고 구속이 각자 다르고, 던지더라도 어떤 공은 가볍게, 어떤 공은 전력으로 던진다.

그 수치를 단순히 던지는 숫자에만 넣어 제한을 하는 건 흥행 요소를 줄일 수 있게 된다.

WBC처럼 단기간에 벌어지는 경기의 경우, 투구 제한을 하는 것이 낫기에 만들어졌지만, 일반 정규 시즌에선 해당하지 않는다.

구단에서도 많은 돈을 쏟아 부어 영입한 선수가 경기 한 번에 혹사당하여 부상을 입으면 이만한 손해가 아니다.

당연히 감독과 코치는 투수가 무리하지 않도록 항상 파악해야 했고, 지금이 그 순간이었다.

"지금은 괜찮지만, 힘이 떨어지면 위험하게 돼. 불펜 가동시켜."

"알겠습니다."

이미 이런 상황을 대비해 불펜의 순서는 정해져 있었다. 감독이 특별히 어떤 선수를 지목하지 않는 이상, 코치는 자동적으로 정해진 순서에 따라 선수를 준비시켰다.

그리고 조니 그라함이 2아웃까진 어떻게 잡았지만, 세 번째로 올라온 타자에게 타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따악~!!

"와아~!!!"

보스턴 타자의 통쾌한 타격에 보스턴 팬들의 환성도 덩달아 커졌다. 그리고 조니 그라함의 구위가 떨어질 조짐임을 확신한 감독은 공을 쥐고 마운드로 올라왔다.

결국 존 지라디 감독의 손에 공이 쥐어진 것을 본 조니 그라함은 어떻게 될 것인지 알았다.

"지금까지 잘했어. 상대가 그만큼 필사적이니 어쩔 수 없었던 거야. 그러니 다음은 동료에게 맡기고 쉬어."

생각 같아선 더 던지고 싶다. 5이닝도 아니고 3과 2/3이닝을 소화하고 내려가자니 2선발이라는 자신의 이름이 울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많은 공을 던졌고, 이후에도 힘 있게 던질 자신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방금 전에 단타를 허용했다.

구위가 떨어진 상황에 보스턴에게 더 두들겨 맞으면 이번 패전의 책임은 자신이 져야 했다.

지역 우승을 다투는 보스턴과의 경기에서 패배의 타격은 크다. 그걸 알고 있으니 조니 그라함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감독의 말에 따랐다.

"… 알겠습니다."

다음 마운드에 오른 선수는 불펜 자원 중에서 마무리를 제외하고 제일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록으로 믿을 수 있더라도, 해당 경기의 성적은 직접 던져봐야 알 수 있는 것이 야구.

오늘 경기 선발도 아니고, 그렇다고 타자도 아닌 동팔은 상대적으로 여유있게 경기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동팔의 옆에는 로스터 명단에 이름을 올린 지완이 있었다.

"어떻게 되겠냐?"

"어렵겠지."

상대는 연승으로 기세가 오른 상태. 그리고 열정적인 팬들이 대부분의 관중석을 차지하여 열렬한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거기에 지면 정말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보스턴 선수들을 더욱 필사적으로 만들었다.

아무리 약한 상대라도 죽음을 각오하고 달려들면 상대하는 것이 어렵다. 물론 이건 어느 경우에나 적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창을 든 병사가 총을 든 병사를 향해 어떤 각오를 하고 달려든들, 어차피 방아쇠 한 번 당기면 끝난다.

압도적인 전력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 열세라고 하는 전제에선 약팀이라도 강팀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는 것이 스포츠다.

비록 자신의 팀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걸 말로 하기 어렵다. 하지만 미국에서 한국어로 말하는 건 상관없었다.

자신들의 대화를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같은 한국인밖에 없으니까.

그래도 가능한 표정은 좋게 하며 이야기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점수를 내야 하는데 쉽지 않아. 그리고 어떻게든 버티고 있지만, 생각보다 저쪽 타선이 강해."

"새로 올라온 투수의 공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이전부터 상대해 왔으니 그럴 수 있는 시간은 많이 필요 없겠지. 어쩌면 바로……."

지완이 그 말을 할 때, 마침 새로 올라온 투수의 공이 좌중간으로 뻗어나갔다.

따악~!!

"와아~!!!!"

큼직한 타구였지만, 좌익수의 빠른 커버로 타자는 1루 이상 나가지 못했다. 하지만 1루 주자는 달릴 준비를 마쳤고, 타구의 방향을 보자 전력으로 달렸다.

그래서 지금은 2아웃이지만, 와일드 피칭 하나면 바로 실점이 가능한 1,3루의 위기 상황이 되었다.

"후……."

투수는 어떻게든 평정심을 유지하며 지금 위기를 극복하려고 한다.

'가볍게 생각하자. 어차피 희생 플라이는 불가능. 볼넷이라도 2루가 비어 있으니 너무 의식할 필요 없어.'

이전이라면 바로 평정심을 회복했겠지만, 보스턴 팬의 격렬한 응원 소리가 귀를 울리고, 심장을 때리고 있으니 쉽지 않았다.

그리고 양키즈 선수를 향한 야유도 멈추지 않고 있었다.

흔들리는 투수의 눈빛을 본 포수 브라이언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대로는 안 돼. 일단 내가 나와서 끊는 수밖에.'

고민은 되었다. 지금 자신이 일어나 투수에게 간다면, 투수가 흔들리고 있음을 모든 사람에게 알려주게 된다.

상대가 이미 알아차렸다면, 당연히 가야 하지만 확인이 되지 않은 상황에 나서는 건 모험이었다.

그러나 그동안의 경험으로 쌓인 직감은 브라이언으로 하여금 투수에게 나가도록 했다. 그래서 그는 주심에게 잠시 경기를 멈추길 요청하고, 투수에게 다가갔다.

"아직 여유 있으니까 긴장하지 마. 어차피 쫓기는 쪽은 우리가 아니라 보스턴이야. 졌을 경우 타격은 우리보다 보스턴이 더 커."

그리곤 투수의 어깨를 가볍게 친 다음 자리로 돌아왔다.

브라이언의 격려가 통한 것인지 처음 두 개의 공은 스트라이크와 살짝 벗어나는 볼이 들어왔다.

제구가 되자 브라이언은 방금 전에 자신이 한 행동이 맞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투수의 제구가 된다고 해서 무조건 스트라이크나 삼진을 잡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제구가 안 되어도 타자가 못 치는 경우도 있고, 제구가 잘 되었다 한들, 맞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양키즈 입장에선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후자였다.

따악~~!!

그러자 이번에는 전과 비교할 수 없는 함성이 터졌다.

"이에~!!!"

단순히 타격에 성공한 것을 넘어, 타구의 방향도 수비가 없는 곳으로 향했다.

이미 3루 주자가 있는 상황. 그리고 2아웃이 되었으니 어떤 타구가 되든 주자는 일단 달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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