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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메츠가 이길 수 있나요?"
"이길 확률이 높아질 겁니다. 미리 겁먹고 피하는 것보다는."
"사실 이 정도는 뻔한 예상이죠?"
캐스터의 말에 해설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요. 강동팔이잖아요. 승리의 여신이 미소를 지어주지 않는 이상 절대 무너지지 않는 철벽의 마운드입니다."
"그럼 타격이 관건이겠습니다. 뉴욕 양키즈의 타격이 메츠의 마운드를 폭격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메츠의 타자들이 강동팔 선수를 상대하는 것보다 수월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메츠의 1선발인 스캇 로웬이 만만한 투수가 아닙니다. 강동팔 선수에 비해 쉬워 보이는 거지 괜히 1선발 투수가 아닙니다."
메이저리그에서 구단의 1선발이란 것은 그만큼 무게가 있다. 적어도 연패를 끊어줄 확실한 카드를 얻기 위해서 구단도 심혈을 기울여 투수를 뽑는다.
1선발은 그 중 제일 신경을 쓰니 특별히 잘하여 사이영상 후보 급의 투수를 제외하면 대부분 실력이 비슷했다.
아무리 메츠가 양키즈에 비해 역사가 짧고, 재정 규모가 적어도 1선발에 대한 투자는 확실히 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팔이 선발로 나오는 날은 상대팀도 대부분 1선발이 등판하기 때문에 더 버겁게 된다.
"관전 포인트는 메츠의 타자들이 강동팔 선수의 공을 얼마나 끊어낼 수 있는가. 그리고 양키즈의 타자들이 스캇 로웬의 공을 공략하여 점수를 낼 수 있는가가 관건이겠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타격만 본다면 메츠가 더 유리하지 않을까요?"
"오늘 경기는 내셔널리그 기준으로 하니까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을 겁니다. 내셔널리그는 지명타자제가 아니니까요. 타석에 익숙한 스캇 로웬에 비해 강동팔 선수는 많이 어색하겠죠. 타격의 흐름을 끊게 되니까요."
"그래도 작년 메츠와의 경기에서 제리스 리드를 상대로 안타를 친 경험이 있습니다. 이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강동팔 선수의 타격 분석은 이미 끝났습니다. 강속구라도 받아쳐 넘길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교한 타격은 어렵죠. 그때의 안타는 행운의 안타라고 보시는 것이 맞을 겁니다. 그런 행운이 다시 오지 않는 이상, 투수가 안타를 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전부터 타격에도 신경을 썼었지 않으면 말이죠."
"하지만 그렇게 되기가 쉽지 않죠.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흐르니까요."
"시간은 공평하지만, 정작 사람마다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정도가 다릅니다. 그것이 실력의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그럼 선발 라인업을 보겠습니다."
중계진들은 동팔과 다른 세 명의 삭발을 너무 깊게 들어가지 않았다. 이것은 동팔이 부탁대로 경기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 * *
다른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이들이 왜 삭발을 했는지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루시가 입원한 병실의 사람들이었다.
"……."
삭발을 한 동팔과 다른 세 명의 모습에 그들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굳이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학교에 가기 전 백혈병에 걸려 친구가 없는 루시. 그래서 투병중인 친구를 위해 삭발을 할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오래 알지도 않은 루시를 위해 동팔만 아니라 모두 네 명의 메이저리그 선수가 삭발을 한 것이다.
비록 경기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방송에 나오지 않았지만, 그들이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들은 뉴욕 양키즈를 응원했다. 그들 중에 메츠의 팬도 있었지만, 적어도 오늘만큼은 양키즈를 응원하고 있었다.
그 중에 당사자인 루시는 이렇게 기도했다.
'제발… 홈런을 칠 수 있기를. 그리고 홈런을 치지 못해도 괜찮으니까 부상을 당하지 않게 해주세요.'
처음에는 단순한 바람이었다. 투수인 동팔이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거의 다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찾아서 보게 된 것은 투수 강동팔이 홈런을 친 모습이었다.
한국에서 간간히 타자로 나와 홈런과 안타를 쳤던 것을 알게 되자, 메이저리그에서도 그 모습을 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보다 일이 커졌고, 자신은 태풍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부담스럽지만, 그렇다고 뒤로 빠질 수도 없었다. 자신이 한 말이니 최선을 다해 지키려 했다.
비록 그것이 수동적인 상황에 있더라도, 적극적으로 버틸 것이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희망이 꺼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 * *
안타까운 일이지만 동팔이 선발로 등판하는 경기는 재미가 없다.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양키즈의 팬뿐일 것이다. 적어도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이기고 있거나 상대의 공격을 철저히 막아내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다.
하지만 양키즈의 팬이 아닌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지루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예상되던 대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야~ 이번 경기에도 되게 잘 던지네……."
"어떻게 실투 하나도 안 던지나?"
타자가 동팔의 공에 속아 헛스윙을 하면 삼진. 어쩌다 타격을 하더라도 수비가 기다리고 있는 범타로 끝난다.
동팔이 던진 공이 안타로 되는 경우는 수비의 실책. 또는 절묘하게 잘 맞아서 정말로 안타가 되는 경우였다.
하지만 확률이 희박하니 두 이닝에 걸쳐 한 번 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화끈한 타격쇼 보다 밋밋한 봉쇄를 보게 되니 지루해지는 건 사실.
그나마 볼 것이 있다면 강속구로 타자가 헛스윙을 하며 돌아가는 모습 정도였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평범한 팬들에 한정되었다. 루시의 병실에 있는 사람들은 다른 관점으로 중계를 보고 있었다.
[타석에 강동팔 선수가 올라왔습니다. 첫 타석에선 범타로 물러났습니다.]
[삼진이나 볼넷으로 진루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타격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적극적인 모습은 좋지만, 팀을 위해선 참을 줄 알아야 할 텐데요.]
중계진의 말대로 양키즈의 팬들은 이왕이면 동팔이 볼넷을 통해 진루하는 것을 바란다. 하지만 동팔이 루시와 어떤 약속을 했는지 모르니 그가 왜 적극적으로 배트를 휘두르는지 알 지 못하고 있었다.
한편, 타석에 선 동팔은 자신에게 찾아온 두 번째 기회를 최대한 살리려고 했다.
'상대는 강속구보다 변화구가 중점인 투수야. 강속구를 못 던지는 건 아니고 제구가 되지 않아 잘 안던지는 거지만…….'
상대에 대한 분석은 기본이다. 그리고 동팔은 메츠의 1선발인 스캇 로웬의 주력 구종이 무언지 알고 있다.
'주력은 슬라이더와 포크볼. 오타니가 던지는 140키로의 포크볼은 아니야. 하지만 130에 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해.'
강속구 전문 투수가 아니라 포심 패스트볼이나 체인지업을 던지지 않는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슬라이더와 포크볼만으로 스캇 로웬이 메츠의 1선발이란 의미는 그만큼 두 구종이 메이저리그의 강타자가 쉽게 치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나다는 의미였다.
그러니 타격 훈련을 많이 하지 못하는 동팔로선 구종을 예상해도 치기가 어려웠다.
'그때처럼, 모든 것이 느리게 보일 수 없나? 그러면 좋을 텐데…….'
힘이 있는데 맞추질 못하니 헛스윙을 자주 한다. 그래서 지금의 동팔은 동욱이 왜 다른 능력보다 신경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선택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투수인 동팔은 공을 더 정확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동팔이 원하는 것은 볼넷이 아닌 안타. 그것도 홈런이었다.
그러니 볼이라는 것을 알아도 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배트를 휘둘렀다.
이전 타석에선 범타로 물러났지만, 새로 다시 타석에 선 이상 지금은 어떤 결과가 나와도 모른다.
적어도 동팔이 생각하기에는.
다른 사람들은 동팔이 진루에 성공하기만을 바랄 뿐, 안타라 홈런은 전혀 기대하기 않고 있었다. 심지어 양키즈의 팬들도 현실적인 응원을 하고 있었다.
'그냥 볼넷으로 진루만 해줘. 제발!!'
'공을 보는 눈이 좋으니까 잘 골라내거나 끊기만 해도…….'
하지만 그 정도만 잘해도 타자의 능력으로 보면 발군이다. 아마추어도 아니고 프로에서 투수가 던지는 공에 속지 않는 것만으로도 상대하는 투수에게 상당한 제약을 주게 된다.
적어도 동팔이 아웃되지 않고 무난히 넘어가 점수를 얻을 기회를 이어가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동팔의 순서 다음에는 양키즈의 1번 타자가 다시 순차적으로 타석에 오른다. 적어도 동팔이 진루만 해도 효과적인 공격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동팔은 그걸 알아도, 좋은 공이 오면 배트를 멈출 수 없었다.
휙~.
'빨라. 슬라이더인가?'
문제는 슬라이더라도 어느 한 방향으로 빠지는 것이 아니다. 던지는 방향과 공의 회전에 따라 휘어지는 방향이 바뀌는 것이다.
그래도 제일 잘 빠지는 쪽이라 생각하고 배트를 휘둘렀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공은 다른 방향으로 휘었다.
퍽!!
"스트~ 라이크!!"
치지 못해서 아쉬웠다. 무엇보다 가만히 두었으면 볼이었을 공이라서 양키즈의 팬들은 더 아쉬웠다.
그걸 알아도 동팔은 마음을 가다듬고 다음을 준비했다.
'너무 나가지 말자. 칠 수 없는 공이라면 보내야 더 좋은 기회를 만들 수 있어.'
그 생각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모든 투수가 선구안이 좋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동팔의 선구안은 뛰어나 볼을 계속 구분하면서 볼카운트를 늘려나갔다.
결국 풀카운트의 승부를 다시 하게 된 동팔. 동시에 상대하는 투수인 스캇 로웬은 짜증이 나고 있었다.
'뭐 이렇게 끈질겨? 그리고 전 타자처럼 볼넷으로 보낼 수 없는데…….'
상대의 선구안이 좋다보니 쉽게 속일 수 없었다. 그러니 이번에 볼넷을 피하고 싶지만, 상대가 배트를 휘두르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된다.
'오히려 역으로 큰 변화구를 통해 헛스윙을 유도하는 것이 있지만…….'
결국 어느 공이 더 좋을 지는 결과만이 말해줄 뿐.
그래서 스캇 로웬은 이 승부를 끝내기 위해 모험을 하기로 했다.
스윽~ 휙!!
제구가 쉽지 않지만, 과감하게 강속구로 상대의 배트를 유도하는 것.
강속구의 특징상 초반에 어느 곳으로 날아올지 타자가 짐작할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제구가 안 되어도 타자를 향해 날아갈 정도로 안 되는 건 아니다.
스캇 로웬이 노리는 것은 빠른 공에 동팔이 반사적으로 배트를 휘두르는 것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의도대로 동팔은 예상외의 강속구에 배트가 나왔다.
휭!
하지만 동팔의 배트가 나가는 방향이 좋지 않았다. 동팔의 배트가 향하는 곳은 스트라이크 존 중앙에서 윗부분.
그러나 공이 향하는 곳은 바깥쪽으로 빠지고 있었다.
'안 돼. 이대론!!'
순간적이었지만, 동팔은 삼진 아웃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순간,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이전에 겪었던, 주변의 모든 것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어? 왜 갑자기…….'
왜 이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는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날아오는 공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자신이 휘두르는 배트가 얼마나 어긋난 상태로 휘둘러지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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