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255화 (255/325)

[255]

'결국 지켜보는 것밖에 없나? 아니면 강속구를 감안하고 배트를 휘두를까?'

던질 수 있는 구종이 다양하다는 것은 투수의 입장에서 아주 유리한 고지에 있지만, 타자의 입장에선 역시나 미칠 노릇이다.

그렇다고 아주 느린공은 던질 수 없고, 던질 생각도 없다. 그리고 마침 포수인 브라이언 산체스가 동팔이 생각해도 안성맞춤인 좋은 공을 요구했다.

'확실히 이거라면…….'

동팔은 그가 원하는 구종의 그립으로 공을 쥐고, 빠르게 공을 휘둘렀다.

휙~퍽.

"스트~ 라이크!!"

100마일을 넘어 104마일에 달하는 강속구에 타자는 배트를 휘두를 생각도 하지 못했다. 결국 2스트라이크에 볼은 없었다.

단 한 번의 기회밖에 남지 않은 타자는 자연스럽게 초조해진다. 이것은 타자로서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이걸 넘지 못하면 투수의 의도대로 흘러가기 때문에 최대한 의연하고 유연하게 대응해야 했다.

'2스트라이크는 생각하지 마. 빠른 공을 던졌으니 내가 빠른 공을 던질 거라 예상하고 배트를 휘두르길 바라겠지.'

타자는 방금 전처럼 빠른 직구를 던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가 생각한 것은 빠른 공 다음에 오는 체인지업.

찰나의 불안함을 참고 기다리면 더 좋은 기회가 올 수 있었다.

뛰어난 타격 감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메이저리그의 타석에 설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믿어야 할 것은 자신의 실력. 비록 이번에도 상대가 빠른 공을 던져 스탠딩 삼진을 당해도 버텨야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쉽게도 이번에 동팔이 던진 공은 방금 전과 같이 빠른 공이었다.

휙~ 퍽!!!

"스트라이크~ 아웃!!"

타자는 변화구나 체인지업을 기다렸지만, 예상치 못한 공이 오자 삼구삼진으로 이번 타석을 물러나야 했다.

아쉽지만 이미 모든 기회를 소진했으니, 다음에 올라올 타자에게 타석을 넘겨야 했다.

"젠장……."

타석에서 물러나면서 그는 자신이 잠시 잊고 있던 것을 떠올려야 했다.

여기까지 온 자신의 실력을 믿어야 했지만, 동시에 상대 또한 메이저리그에 올라온 선수라는 것을. 그리고 메이저리그의 투수 중에서 최고의 구위와 활약을 하고 있는 투수라는 사실이었다.

타자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공을 던진 동팔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이전 전적을 보면 지난 시즌에서 나한테 안타를 세 번 친 타자야. 생각보다 껄끄러운 타자를 상대로 삼구삼진이라…….'

메이저리그에 와선 한국처럼 압도적인 기록은 불가능했다. 한국에선 집중력을 잃지만 않으면 노히트 노런을 몇 번 새웠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선 쉽지 않았다. 아무리 집중력을 잃지 않아도, 동팔이 던지는 공을 받아 치는 타자가 있었다.

그래서 지난 시즌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건 단 하나. 그것도 운이 따라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메이저리그의 타자는 힘도 강하지만 타격 감각도 뛰어나 조금이라도 예상한 공이 오면 끊거나 안타를 만들었다.

그 중 운이 좋으면 펜스를 넘어가기도 했다.

다만 그런 경우가 타른 투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낮았기에 사이영상을 받을 수 있었다.

방금 상대한 타자도 동팔에게 안타를 때린 경험이 세 번이나 있는, 뛰어난 타자 중 한 사람이다.

그런 타자를 상대로 일반 타자에게도 힘들다는 삼구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생각보다 편하게 상대한 느낌이야. 평상시보다 더…….'

지금은 그 이유를 모른다. 하지만 동팔은 자신도 모르게 그 방법을 터득해 나가고 있었다. 타자의 입장에서 이전보다 더 깊게 어떤 공을 예측하면서.

*     *     *

동팔이 선발로 등판한 경기는 최소 지지 않는다. 그리고 무승부가 사실상 없는 메이저리그의 특성 상, 거의 승리로 이어진다.

다만 타선이 점수를 내지 못하고 동팔이 마운드를 내려올 때엔 결과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동팔이 마운드를 내려오고, 대신 마운드를 지키는 투수는 결코 약하지 않다. 양키즈에서 승리를 얻기 위해 올려 보내는 투수인 이상, 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상대하는 팀의 입장에서 보면 동팔보다 공략하기가 쉽다. 그래서 동팔이 마운드를 내려오면 전의를 더욱 불태우며 어떻게든 승리를 하기 위해 집중하고 또 집중한다.

동팔이 선발로 등판한 경기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 중, 제일 확률이 높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경기는 아니었다.

타선에서 적더라도 점수를 낸 덕분에 동팔은 승리를 거의 확정하고 마운드를 내려올 수 있었다.

그리고 경기를 마치고, 관중들도 경기장을 빠져나갔을 때, 양키즈의 변화된 또 다른 모습이 일어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수고 많으십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승리 축하해요."

이전에는 마주쳐도 아는 척을 하지 않았던 청소부들과 인사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동팔을 통해 제임스와 루시의 이야기를 들은 선수들이 청소부들 또한 자신과 같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임을 느꼈기 때문에 생긴 변화였다.

처음에는 제임스에게 루시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제임스만 아니라 다른 청소부들과 인사를 하며 많이 친해졌다.

그리고 지금은 인사만 아니라, 간단히 대화를 할 정도가 되었다.

"오늘은 어떤 것 같아요? 쓰레기가 좀 많이 나왔나요?"

"항상 그렇지 뭘. 그렇다고 쓰레기가 너무 없으면 그것도 곤란하니까."

"그러면 몇몇 분들이 위험하다고 그랬죠?"

"그래. 그냥 쓰레기는 적당히 나왔으면 해. 너무 많이 나와도 안 좋아. 분명히 청소부를 더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만 늘어날 것이 분명하거든."

쓰레기를 길거리에 버려서 청소부를 더 많이 고용하게 만든다는 논리가 말도 되지 않는 이유가 있다.

그건 어디까지나 쓰레기의 양이 늘어나는 만큼 청소부를 고용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가능한 일.

문제는 현실에 있어서 그 전제가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쓰레기가 늘어나도, 청소부를 고용하지 않고 그들에게 일을 더 전가시킴으로써 예산을 아낄 것이 일반적인 패턴.

그리고 고용주의 입장에서 청소부가 과로로 일을 그만두거나 혹사하여 사망하더라도 다른 청소부를 고용하면 그만이다.

물론 고용주가 그 부작용(副作用)이 너무 심하다 판단하게 되면 청소부를 고용할 수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일부만 고용한다. 그리고 그 과정까지 얼마나 많은 청소부들이 희생을 하게 될지 생각해보라.

거기에 이런 패턴은 비단 청소부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회사원들에게 일어나는 일 중 하나에 불과했다.

쓰레기의 양을 담당해야 할 업무의 양으로 생각한다면 회사원들이 과로로 죽는 이유가 자연적으로 설명이 된다.

고용주가 사원이 담당하는 업무의 양을 생각하지 않고, 적은 인력만으로 유지하려 한다. 그러다 한 사람이 과로로 죽게 되면 그가 하던 일을 다른 직원이 담당하게 된다.

자신의 일을 그대로 하면서.

사원을 더 고용해야 과로로 이직을 하거나 죽는 경우가 없겠지만, 사업을 하는 사장의 입장에서 한 사람을 더 고용한다는 것은 자신의 이윤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혜로운 사장이라면 이것을 항상 파악하면서 균형이 무너지지 않게 주의를 기울이고, 때론 과감한 투자를 한다.

그것이 성공할 때도 있고, 아닐 때가 있다. 그래도 적은 인원으로 과도한 업무를 감당시키려다 사람이 떠나면서 사업이 망하게 된다.

다행히 양키스타디움에서 팬들이 버리는 쓰레기의 양은 고용된 청소부들이 감당할 만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요즘 스윙이 불안한 것 같더군. 혹시 안 좋은 일이라도 있나? 아니면 요즘 슬럼프라서 자신감이 떨어졌어?"

"그게 보이세요? 그렇지 않아도 코치님이 그 말씀을 하셨거든요."

"내가 자네 스윙을 한 두 번 본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놀라? 잘 나가기 시작할 때처럼 과감하게 휘둘러. 한 번 휘두르기로 했으면 자신을 믿고 끝까지 가봐. 가다가 멈추면 안 하는 것만 못하니까."

이렇게 오늘의 경기에 대한 느낌도 바로 들을 수 있었다.

코치와 감독의 분석도 중요하지만, 때론 일반인의 눈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종종 느끼게 된다.

"그런데 요즘 루시는 어떤가요? 들려오는 소식이 있나요? 조혈모세포 이식인가? 그거 해야 한다면서요?"

"이식이 아무 사람 잡고 할 수는 없잖아. 맞는 사람이 나타나야 가능한 거지. 계속 찾고 있는 것 같아. 계속 항암 치료만 할 수도 없으니 원……."

제임스에게 직접 들을 수 없다면, 그와 같이 일하는 청소부들을 통해 듣는 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백혈병의 치료 방법 중에 조혈모세포 이식에 대해 듣게 된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골수이식에 참여했다.

등록을 한다고 해서 바로 하는 것은 아니었고, 헌혈할 때 동의를 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등록된 정보를 바탕으로 환자와 비교하여 이식이 가능한 사람을 찾아내고, 나중에 일정을 조종하여 조혈모세포를 기증할 수 있게 된다.

다만 프로 선수로 있다 보니 기증할 수 있는 기간이 정해져 있었다. 적어도 골수이식을 하려면 시즌이 끝난 다음에 가능했다.

그래도 그때가 되면 어느 누군가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     *

시간이 조금씩 지나며 인터리그가 시작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전후 사정을 알게 된 감독과 코치는 일정을 조금 조정하며 메츠가 홈일 때, 동팔이 선발로 등판하여 타자로 설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지만, 동팔은 투수로서는 물론 타자로서 훈련에 매진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팔은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히 홈런을 치면 다행이지만, 못 치면 어떻게 하지?'

타자에게 있어 홈런은 일종의 사고와 같이 행운이 따라줘야 가능하다. 그리고 실력이 좋으면 좋을수록, 행운을 얻을 확률은 올라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뛰어난 투수일 수 있어도, 뛰어난 타자는 아닌 동팔이 고작 세 번의 타석. 잘 해야 네 번의 타석에서 홈런을 치기란 아주 힘들다.

그나마 동팔이 이전부터 한 타격 훈련에서 힘을 키웠기에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제대로 타격을 해도 공의 위력을 버티지 못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얀 늑대의 벗이 말한대로 타석에 서서 루시를 위해 배트를 휘두르는 것만으로 큰 위로가 될 것이다.

하지만 동팔은 그것으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이왕이면 홈런을 치지 못하더라도 루시에게 큰 힘을 주고 싶었다. 그러던 중 동팔은 루시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어서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아, 그런 방법이 있었지?'

하지만 그건 혼자서 결정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동의가 필요한 사람에게 가서 물어봤다.

"민희야."

"네, 오빠."

"나 삭발하려고 하는데 괜찮겠어?"

결혼을 하면 자신의 몸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건강관리는 기본이며, 헤어스타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왕이면 옆에 있는 사람이 더 멋있길 바라는 건 남녀공통의 욕구. 그리고 부부인 이상 같이 길을 갈 일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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