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253화 (253/325)

[253]

한편, 루시를 전담으로 맡던 악마는 너무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젠장!! 하필 그때 그 녀석이 와선 무슨 짓을 하고 간 거야!!!!"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작업을 해왔는지 모른다. 백혈병에 걸리게 하는 것으로 시작해 루시를 절망에 물들이고 있었다.

아무리 순수하고 착한 영혼이라도 계속되는 고통을 버티기란 어렵다.

백혈병에 의한 고통. 그리고 항암치료로 인한 고통. 거기에 항암치료의 부작용 중 하나인 탈모와 외형의 변화로 인한 자신감 상실.

그것도 모자라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죽음의 공포를 이용하여 루시의 영혼에 절망을 각인시켜 나갔다.

그 와중에 천사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힘들지만 부모님과의 면회. 그리고 주변에 같이 있는 병실 사람들의 친절함과 배려. 의사와 간호사의 다정한 치료 과정들이 절망에 빠지는 것을 저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세한 쪽은 악마였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었다. 이렇게 루시의 영혼을 절망에 물들이고, 타락시키려는 과정이 순조롭게 이어졌다.

그러나 동팔이 제임스와 만나고, 이어서 루시와 만나는 순간 전세는 역전되었다.

한 순간의 만남이었지만, 동팔과 민희와 대화를 하면서 루시의 영혼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공들여 각인시킨 절망이 순식간에 떨어져 나갔다.

그래서 악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공격. 죽음의 공포를 다시 떠오르게 했다.

'좋아할 때가 아니야. 내일, 아니 바로 지금 죽을 수도 있는 것이 지금의 네 상태라는 것을 몰라?'

하지만 이전처럼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루시는 하얀 종이를 꺼내더니 무언가 쓰기 시작했다.

그러자 같은 병실에 있던 사람이 물었다.

"루시, 뭐 쓰는 거니?"

그러자 루시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편지요. 동팔 오빠한테 보내는 거예요."

"그래? 왜?"

"그야…제가 언제 하늘나라에 갈지 모르니까요. 그 전에 만나러 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거든요."

루시의 말에 병실에 있던 사람들은 숙연해졌다. 병에서 해방되어 살아남기 위해 있는 곳이 병원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제일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먼저 생각하는 루시를 보자 안타까움이 절로 나왔다.

생각했던 반응이 안 나오자 악마는 짜증과 분노가 치솟았다.

'제길. 이제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그러던 때, 스크레이치가 병실에 나타났다. 그가 나타나자 악마의 계략이 통하지 않는 것을 보고 웃던 천사들이 긴장했다.

스크레이치가 나타나자 루시를 담당하던 악마가 말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당신들이 하는 여흥으로 성공한 동팔이 없었더라면 루시의 영혼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일개 악마가 장관인 스크레이치에게 따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유가 있었다. 루시가 동팔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순조롭게 진행되었을지도 몰랐다.

스크레이치는 악마를 보더니 비웃었다.

'무능한 놈들은 잘 되면 자기 탓. 안 되면 꼭 주변 상황을 탓하지.'

스크레이치의 말에 악마는 황당했다.

'뻔뻔해도 정도가…….'

악마가 말을 다 하기 전에 스크레이치는 쥐고 있던 지팡이로 악마의 뺨을 후려쳤다.

뻐억!!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지팡이로 악마의 머리를 계속 후려쳤다.

뻐억!! 뻐억!! 뻐억!!

'말 했다. 무능한 놈이, 분수도 모르고, 감히 어딜, 기어, 올라와!!'

수차례의 구타가 이어진 후, 몽둥이찜질이 멈추었다. 악마가 악마를 때리고 있었지만, 천사들은 오히려 긴장하고 있었다.

교활한 스크레이치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매를 통한 훈육은 이걸로 끝내지. 대체 학교에서 무얼 배운 건지 알 수가 없어!!! 내가 교육 장관으로 있을 때 만든 교재가 네 머리속에 있기는 한 거냐!!'

그러면서 스크레이치는 밝은 미소를 짓고 동팔에게 편지를 쓰는 루시를 보았다.

'분명히 네 녀석은 제일 좋은 수단이라면서 죽음의 공포를 주려고 했겠지. 하지만 내가 말했을 터이다. 죽음의 공포는 분명히 절망을 이루기 위한 좋은 재료지만, 상황에 따라 적절히 써야 한다는 것을.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원수가 바라는 방향으로 가게 만드는 부작용을 만들게 되지. 그럼 묻겠다. 이런 상황에 있을 때, 학교에서 가르친 방법은 무엇이냐.'

'그, 그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악마로서 인간을 괴롭힐 생각에 대충 들었던 것이 화가 되었다.

'엄한 녀석이 교육 장관을 하더니 벌써 이 꼴이라니… 그럼 내가 직접 보여주마.'

스크레이치는 자신의 지팡이 끝으로 바닥을 찍었다. 그러자 검은 고리가 지팡이를 중심으로 병실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지나갔다.

그 사람 중, 제일 아픈 사람이 말을 툭 내뱉었다.

"유명한 사람 만나서 이야기했다고 좋아하기는……."

냉담한 그의 말은 차가운 송곳이 되어 루시의 연약한 마음을 단번에 찔렀다. 그의 말에 루시의 밝은 표정이 단번에 굳으며 즐겁게 써내려가던 손이 멈추었다.

그것을 보며 악마는 스크레이치를 경이롭게 보았다.

'역시 악마 장관 스크레이치. 제일 교활한 악마이자 지하에 계신 아버지께서 총애하는 악마 중 하나라더니…….'

도저히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한 마디의 말로 루시의 마음을 꺾어 버렸다.

스크레이치는 여전히 쓰러진 악마의 목을 잡더니, 자신이 눈앞에 얼굴을 끌고 와서 말했다.

'꼭 거대하고 강한 것만 좋은 건 아니다. 사람이 제일 상처받고 절망하는 것은 절체절명의 위기가 아닌, 주변의 친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는 사소한 말이란 것을 명심해라.'

그 말을 하고 스크레이치는 악마를 바닥에 던졌다. 그리고 홀연히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러는 사이, 스크레이치가 조작한 상황에 천사들은 루시가 다시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상황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사들의 노력의 결과로 루시가 다시 회복을 했다. 하지만, 루시는 편지 쓰는 것에 손이 가지 못했다.

# 마음을 모아서

루시의 마음이 꺾였다는 사실은 동팔에게 쉽게 알려질 건 아니다.

루시가 원하지도 않거니와 아버지인 제임스가 알아도 동팔에게 말할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의외로 동팔에게 빨리 알려지게 되었다. 바로 민희를 통해서였다.

"루시, 안 좋은 일 있니? 표정이 안 좋은데. 혹시 누가 괴롭혀?"

민희의 물음에 말실수를 한 환자가 움찔거렸다. 그 순간, 왜 루시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스크레이치의 수작이란 것을 알 수 없으니 죄책감에 루시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루시는 그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아뇨… 그런 일 없었어요."

말은 그렇게 해도 루시는 자신의 어두운 표정은 숨길 수 없었다.

루시의 반응에 민희는 자신이 여기에 온 이유를 떠올렸다.

'목사님이 루시라는 아이를 만나라고 하셨지? 왜 만나라고 하셨는지 몰랐는데 만나니까 알겠네.'

물론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루시에 대해서 목사에게 말한 적은 있다. 하지만 어느 병원에 있는지 말한 적은 없었다. 그리고 목사의 경우 교회에 다니는 신도와 만나야 하니까 루시와 만날 일도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목사는 말했다.

가능한 빠른 시간에, 약간의 여유가 있다면 즉시 루시와 만나라고.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이유를 몰랐다. 하지만 지금 만나는 순간 이유를 알게 되었다.

민희는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어두워진 루시를 옆에 앉아서 안아주었다. 항상 팔에 놓인 링겔 튜브를 깔고 앉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그러다 민희는 우연히 루시가 쓰다 만 편지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쓰인 부분에 동팔에게 라는 단어를 보게 되었다.

'오빠한테 편지를 쓰다가? 왜?'

자세한 연유를 알 수 없다. 편지를 쓰다 멈추는 건 흔히 있는 일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루시가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으니 다른 것으로 화제를 돌리려했다.

"어머, 이거 혹시 편지니? 설마 동팔 오빠한테?"

민희가 편지를 손에 들고 읽으려하자 루시는 병약한 이미지와 달리 재빠르게 편지를 낚아챘다.

"아, 안 돼요."

"미안, 함부로 하면 안 됐는데."

"아니. 그게 아니라……."

민희가 갑자기 편지를 보게 되자 당황한 루시. 그래서 루시는 자신이 지금 너무 성급하게 행동한 건 아닌가 싶어 잘못했다 싶었다.

그리고 이런 행동으로 인해 민희가 자신을 싫어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민희는 루시의 걱정과 달리 루시에게 다정하게 말했다.

"괜찮아. 루시가 보여 주기 힘들어 하는 것을 보려 한 내 잘못이지."

"그래도……."

"그럼 뭐라 쓰려고 했어? 여기서 이야기하기 그러면 나가서 이야기할까?"

"… 네……."

솔직히 안 좋은 말을 한 사람이 있는 곳에서 말을 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민희가 잠시 나가자는 말에 바로 반응을 한 루시.

민희와 루시가 나가자 병실에선 어느 한 사람에게 타박을 시작했다.

"왜 하필 그때 그 말을 해서 일을 이렇게 만드나."

"그렇지 않아도 힘들어 하는 아이잖아."

입이 있어도 변명할 말이 없었다.

"그게…나도 모르게 왜 그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어. 정말 이놈의 입이 방정이지."

그렇게 말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본심이 나왔다는 것에 당혹스러웠다. 여기에 있다는 것은 이들도 역시 언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을지 모른다.

이곳은 항암치료를 전문적으로 받는 환자들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증상이 경미한 환자도 있지만, 루시처럼 중증이거나 치료가 어려운 사람도 있다. 동병상련도 있고, 특히 루시가 어린 아이였으니 더 많은 배려를 해주고 있었다.

뉴욕에서 슈퍼스타 급의 선수인 동팔과 개인적으로 만났다는 것에 대해 부러움이 있었고, 루시가 아이였다지만 일부 질투가 있었다.

평상시에는 질투하더라도 어려운 상황이니 티를 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어제, 갑자기 좋아하고 있던 루시의 표정을 보자 그 말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말을 내뱉은 순간, 아차 하며 놀랐지만 이미 물은 쏟아진 다음이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루시는 물론 같은 병실에 있는 환자와 눈을 마주치는 것이 어려웠다.

그러던 중, 나이가 지긋한 어른이 말했다.

"아무리 어린 아이가 대상이라도 잘못을 했으면 사과를 하는 것이 맞는 거야. 언제까지 눈치를 보고 있을 건가?"

"그래도……."

나이가 루시보다 몇 배 많은 자신이 머리를 숙이는 것은 자존심의 문제가 걸려 있었다. 알량하고 가벼운 자존심이지만 그것마저 잃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지금 상황이 편하다는 건 아니었다. 그냥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라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적어도 계속 미안한 낌새를 보인다면.

그러자 나이 지긋한 어른이 말했다.

"설마 시간이 약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다른 사람이라면 그게 통하겠지만, 우리들은 아니야. 특히 루시의 상태가 제일 안 좋은 건 알고 있고? 기다리다가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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