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252화 (252/325)

[252]

물어보면 답변과 경험을 말해줄 사람이 쌓여 있었고, 그 중에 탁월한 사람은 역시 4번 타자인 데니 행크스였다.

"그래도 팀에 도움이 되니 동팔이 타격을 잘 하면 좋기는 한데… 자세를 볼 수 있을까?"

가르치는 것에 있어선 코치가 제일 잘 한다. 다만 지금은 모든 코치들이 회의에 들어간 상황이라 그럴 수 없었다.

그리고 타격 코치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타자의 타격을 살펴보는 것이지 투수에게 해당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안 보는 건 아니다. 기본적인 타격이 가능하도록 훈련을 지켜보고 가르쳐주지만, 깊게 들어가지 않는다.

거기에 동팔이 바라는 것은 심도 있는 훈련이 아니라, 가능한 빨리 단기적이라도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동팔로선 코치보다 직접 뛰고 있는 선수에게 물어보는 것이 더 편했다.

동팔은 데니 행크스의 말대로 자신이 타격하는 폼을 하며 그대로 보여줬다. 그러자 데니 행크스가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동팔의 폼은 나무랄 곳이 없어. 정석 중에 정석이야. 중요한 건 그걸 기반으로 자신만의 타격폼을 찾아가는 거거든. 그런데 그걸 찾아가기엔 시간이 오래 걸려."

그러면서 데니 행크스는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평상시에 하는 것도 아니고, 이번 인터리그에 열을 올리는 이유가 뭐야? 단순히 기록을 더 세우기 위해선 아닌 것 같은데."

이미 투수로서 압도적인 기록을 쌓아가는 중인 동팔이다. 여기에 타자로서 기록까지 겸하면 좋겠지만, 그건 무리다.

처음부터 투수로 시작했고, 타격에 대한 훈련도 재기를 준비하는 과정에 처음으로 시작했다.

데니 행크스의 말대로 타자로서 기록에 신경을 썼다면 시즌을 준비하기 전부터 열심히 타격 훈련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갑자기 신경을 쓰니 궁금함을 지울 수 없었다.

데니 행크스의 계속되는 물음에 동팔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양키스타디움의 청소부인 제임스와 그의 딸인 루시의 이야기를 해줬다.

그러자 데니 행크스는 버럭 화를 냈다.

"잠깐, 너 정말 그렇게 할 거야?"

동팔은 그가 왜 분노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 왜?"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그가 분노한 이유를 바로 알게 되었다.

"이런 좋은 일을 너 혼자 하겠다고? 이건 다 같이 하면 더 좋은 거잖아?"

사람을 돕는 일을 하면 그 자체로 뿌듯하다. 특히 미국의 경우 어린이의 꿈과 희망을 부수는 것에 대해선 엄격히 금한다.

오히려 아이의 꿈과 희망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 말로 미덕 중 하나였다. 그 과정에 상당한 재정이나 인력이 필요하다면 호응하는 사람들이 몰려서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데니 행크스는 어떻게 보면 그런 통상적인 미국인 남성 중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동팔이 말에 데니 행크스는 기본만 알려주려던 생각을 버렸다.

"자세는 바꿀 것이 없으니까 감각을 끌어올리는데 집중하면 될 것 같아. 그러면 네가 선발로 올라오는 날, 메츠의 선발 투수가 누구인지 알면 미리 준비할 수 있을걸."

미리 준비한다는 말에 동팔은 또 한 사람이 떠올랐다.

"아, 그럼 혜진이한테 따로 부탁하면 되겠네."

적어도 분석에 대해선 그녀만큼 뛰어난 사람은 없다. 상대의 구위에 대한 분석은 물론 주로 사용하는 볼 배합에 대한 분석도 가능하다.

물론 100%의 확률로 예측할 수 없겠지만, 한참 낮은 성공확률을 상당히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덤으로 제임스와 루시의 이야기는 바로 선수들에게 알려졌다. 좋은 일을 하겠다는 건데 그들도 반대할 이유가 없었고, 오히려 격하게 반응하며 동조했다.

그러다보니 동팔이 말려야 할 일도 있었다.

"미안한데 이번 일은 루시에게 비밀로 해줘. 깜짝 선물이 되려면 비밀을 반드시 지켜야 하잖아."

동팔의 말에 선수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오~ 그렇지. 확실히 그게 더 좋겠지."

"깜짝 선물이라… 그럼 제임스 씨까진 괜찮다는 거겠네?"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그런데 제임스 씨가 누구야?"

"청소부라고 했으니 근처에 있겠지. 물어보면 될 거야."

*     *     *

그 일로 인해서 졸지에 청소를 하다 양키즈 선수들로부터 격한 인사를 받게 된 제임스. 그리고 더불어 그들과 이야기를 하게 된 청소부들은 그날 하루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있었다.

한편, 동팔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투구 연습을 하다가 쉬던 중, 의외의 존재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

"좋아 보이는군. 오랜만이야."

"스크… 레이치……?"

하얀 늑대의 벗이 주변에 있는 이후로 얼굴을 볼 일이 없었던 그였다. 비록 계약을 한 상태이지만, 그 계약으로 인해 포식자와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저항하는 관계가 되었다.

생존을 건 적(敵)의 관계임을 알게 된 이상, 동팔도 계약을 했던 초기처럼 편하게 대할 수 없다.

거기에 이제 자신에게 남은 기회는 고작 2번. 그것도 아주 뛰어난 선수와 팀을 상대로 승리해야 했다.

그의 등장에 동팔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곳은 양키즈의 전용 훈련장이라 외부인은 들어오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얀 늑대의 벗은 예외였다.

"캬앙~!!"

이곳에 자주 드나들 수 있는 고양이의 모습으로 나타나 스크레이치가 있는 곳을 향해 이빨과 털을 세웠다.

그리고 동팔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주변에는 강력한 동물의 영령들이 스크레이치의 주변을 포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전부가 달려들어도 단번에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에 스크레이치는 평온하게 앉아서 할 이야기를 계속 했다.

"계약자와 이야기하려고 왔다. 방해하겠다면 나도 더 이상 봐 주지 않아……."

쿵.

스크레이치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힘의 파동이 주변을 휩쓸었다. 물리적인 힘은 없었지만, 한 번의 파동만으로 거대 불곰과 늑대, 그 외 동물들의 영령들은 뒤로 밀려나거나 큰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하얀 늑대의 벗이 스스로에게 건 둔갑술을 강제로 풀었다.

펑!

"큭!!"

그래서 고양이의 형태에서 거구의 인디언 모습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하지만 뛰어난 주술사이자, 오랜 세월을 살아왔기에 바로 다시 형상을 바꾸었다.

힘으로는 결코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바로 옆에서 지켜보기로 했는지 더 이상 행동하지 않았다.

동팔도 어차피 스크레이치가 자신에게 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두려워하지 않았다.

다만 이전에는 가만히 있던 그가, 갑자기 자신에게 나타났는지 모르니 그 부분에 있어선 경계하고 있었다.

"갑자기 웬일입니까?"

"그냥 궁금해서."

"뭐가 말입니까?"

"자기 살길 바쁜 녀석이 다른 사람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걸 보니 이상해서 말이야."

스크레이치의 질문에 동팔은 그와 비슷한 질문을 들은 기억이 났다.

"그 질문, 이전에 한 것 같은데 또 하는 겁니까?"

"그랬나?"

"그렇습니다. 전에, 민희에게 프러포즈할 반지를 사러 가는 길에 들렸던 레슨장에서의 일이죠. 재기하지 못해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사인을 하고 투구하는 법을 가르쳐준 이후에 주차장에서 묻지 않았습니까?"

동팔이 말에 스크레이치가 답했다.

"그때와 지금의 상황은 달라. 그땐 한국 프로 리그에 진출해서 시작의 여유가 있었을 때. 하지만 지금은 고작 2번의 기회 밖에 없어. 그때보다 더 다급한 상황인데도 다른 사람을 돌보는 이유가 뭔지 궁금해서 말이야."

스크레이치의 말에 동팔이 답했다.

"그때와 지금의 답변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동팔의 말에 스크레이치는 비꼬면서 말했다.

"아~ 사람이니 서로를 도우면서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그때와 달리 지금은 네가 얻을 것이 없어. 가르친다는 것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니 넘어가지만, 지금은 전혀 그런 것이 없잖나."

그렇게 말하는 스크레이치의 눈빛에는 작은 분노와 짜증이 어려 있었다. 하지만 동팔은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고, 민감한 하얀 늑대의 벗이 알아차렸다.

스크레이치의 말에 동팔이 답했다.

"내가 잘하는 것만으로 루시가 건강해질 수 있다면. 아니 건강해지지 않더라도 힘을 낼 수 있는 계기가 되면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나에게 어떤 이득도 없다 하더라도."

그의 단호한 말에 스크레이치는 자신의 본심을 숨기며 말했다.

"그럼 잘해보게. 자네의 알량한 자비가 결국 너의 목숨을 끊게 될 테니……."

그 말을 끝으로 스크레이치의 형상은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하얀 늑대의 벗은 다시 본래의 몸으로 돌아왔다.

"갔다."

"갔군요… 그런데 왜 갑자기 나타난 건지 아십니까?"

동팔의 물음에 하얀 늑대의 벗은 자신의 경험과 직감을 토대로 말했다.

"짐작은 간다. 아마도 악마의 일에 걸림돌이 되니까 나타난 것이다. 의외로 악마들의 협조 체계는 정밀하고 효율적이다."

"네? 그게 어째서요?"

"악마가 노리는 영혼이 비단 너 혼자인 건 아니다. 당연히 루시의 영혼도 포함된다. 어리고 순수한 영혼일수록 그들은 더 좋아한다. 속이기도 쉽고, 이용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그의 말에 동팔은 그가 짐작한 이유에 대해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럼… 제가 루시와 만난 이후로 루시의 마음이, 영혼의 상태가 바뀌었다는 건가요?"

"그렇다. 그렇지 않고서야 악마 장관에 있는 자가 직접 나섰겠는가? 자신과 연관된 일이기도 하고, 네가 자꾸 이런 일에 나선다면 계속 미혹하는 악마들의 전선에 차질이 생기게 된다."

"만약이긴 하지만… 제가 루시의 약속을 저버리고 제가 살길을 찾기 위해 행동했다면……."

"그걸로 널 뭐라 할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다. 하지만 루시가 희망을 찾는데 시간이 더 오래 걸렸을 지도 모른다."

"없다곤 말씀하지 않으시네요."

"루시의 구원이 너만을 통해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위대한 대정령의 안배는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깊고 넓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락하는 인간을 보면 다른 의미로 대단하다."

동팔이 입장에서 솔직히 말하면 그다지 신빙성이 있는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하지 않으니 그냥 넘어갔다.

"결국…저는 루시의 바람에 응해야 한다는 거네요. 바로 앞에 희망을 보았는데, 그 희망이 꺼지면 바로 절망이 될 테니까."

"그렇다. 이미 응한 이상, 그대에게 책임이 부과된다. 하지만 억울하게 생각하지 마라. 이 선행으로 인해서 그대 본인. 그리고 그대의 가족과 태어날 아기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그의 말에 동팔이 물었다.

"그거 정말인가요?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는다는 것이. 주변을 보면 착한 일을 해도 손해를 보고 사는 사람이 정말 많던데요."

그 생각은 동팔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하얀 늑대의 벗은 자신의 생각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그동안 지켜 본 경험이다. 다만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선행으로 인한 복, 악행으로 인한 업의 결과는 생각보다 느리게 온다. 하지만 확실하게 온다. 그리고 막상 그것들이 왔을 때, 생각보다 빠르다고 느끼겠지. 이전의 느낌과 달리."

하얀 늑대의 벗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동팔도 지금 중요한 것은 팀의 승리. 그리고 루시를 위한 홈런 선물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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