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251화 (251/325)

[251]

# 이어지는 손길들

동팔을 통해 전후 사정을 들은 지완.

"그러니까 양키스타디움의 청소부인 제임스의 딸인 루시가 백혈병에 걸렸는데, 투병중인 아이를 응원하기 위해 타석에서 홈런을 쳐야 한다?"

"그렇지."

"좋은 일을 하는 거니 받아들이긴 하겠는데, 내 상황은 너도 알지? 아직 전력으로 던질 때가 아닌 것."

"그야 알지. 그러니까 강속구보다 변화구 위주로 던지면 되잖아."

강속구든, 변화구든 전력으로 던지는 것과 힘을 빼고 던지는 것은 다르다. 그리고 아무리 변화구 위주로 던진다 하들, 구속을 높이기 위해선 역시 전력으로 던져야 하는 건 바뀌지 않는다.

그걸 아는 동팔이었지만, 이렇게 부탁하는 건 투병중인 루시를 응원하기 위한 나름 차선책이었다.

"무슨 의미인지 알겠는데, 전력은 아니니까 그건 감안해."

"그거 감안해서 널 부른 거야. 처음부터 난이도를 높게 갈 수 없잖아."

"언제부터 내가 렙업용 저렙 몬스터가 된 건지 모르겠다."

변화구라도 전력으로 던질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만큼 공을 제어하는 것이 편하다.

"이미 이전부터 타격 훈련을 많이 해왔으니까, 기본은 걱정할 것이 없고… 하긴 타격의 기본이 없는 건 나니까 네가 없어도 뭐라 해줄 말은 없네. 그럼 바로 실전 연습?"

"응. 원하는 변화구를 마음대로 던지면 돼."

상대가 어떤 공을 던질지 알 수 없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야 어떤 공이 오더라도 반응할 수 있거나 미리 겪음으로써 정신이 흔들리는 것을 막을 수 있으니까.

일단 두 사람이 있는 곳은 동팔의 지하 훈련장이 아닌 넓은 야구장이었다.

야구 인프라가 잘 갖추어졌고, 타격 연습에 있어선 좁은 곳보다 넓은 곳이 더 안전했다.

지하 훈련장에서 했다간 벽에 맞은 타구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비록 부상을 당하더라도 동팔이 회복시킬 수 있다. 하지만 괜한 고통을 더 겪을 필요가 없으니 지완의 앞에는 안전망이 쳐져 있었다.

강습형 타구가 투수를 습격해 와도 숙이면 맞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포수는 없었다. 대신 지완이 던진 공을 받아줄 그물망이 쳐져 있었다.

마운드에 선 지완은 타석에 선 동팔을 보자 절로 이 말이 튀어 나왔다.

"야."

"왜?"

"왠지 이거 기분 나쁘네. 이전의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어."

그때는 지완이 동팔을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 때. 재작년 한국에서의 일이었다.

"아~ 그때 내가 홈런친 것? 하지만 그 전에 나한테 수시로 삼진 먹였잖아. 그것도 한 가운데 공으로."

"네가 원해서 받은 삼진이랑, 어쩔 수 없이 당한 삼진이랑 같냐? 날 속이려고 일부러 먹은 삼진이잖아."

그때는 동팔이 지완에게 한 가운데 공에 약하다는 인상을 주기 위한 공작이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의심을 했지만, 경기 끝에 가서도 그런 모습을 보이자 결국 속아 넘어가고 말았다.

"그러게 누가 방심하래? 내가 아무리 그래도 네가 마음을 놓지 않았다면 그때 전 타석 삼진이었어."

"그래, 다 내 잘못이다. 그때 완전히 보내버리려다 내가 가버렸으니."

티격태격 말하면서 지완은 가볍게 공을 던졌다.

스윽~휙!

아직 완전히 재기한 건 아니라 전력은 아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지완이 던진 공은 홈 플래이트에 거의 가까이 와서 방향을 바꾸었다.

휭~.

"큭!!"

동팔은 생각보다 느린공에 방향을 예상하고 휘둘렀지만, 치지 못했다.

지완은 옆에 쌓아둔 공 하나를 쥐며 말했다.

"이전보다 감이 떨어진 것 같다? 전에는 이 정도 공은 커트했잖아."

"타격 훈련을 하긴 했지만, 실전이랑 느낌이 달라서 그래. 계속 타석에 섰다면 건드렸을 거야. 그리고 전엔 일부러 공을 유인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니까. 그리고 상대할 투수들이 방심한단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야."

"하긴 투수가 투수에게 안타 맞으면 그것도 꽤 기분 나쁘지. 그게 싫어서라도 어떻게든 삼진으로 보내버리려고 하니까."

인터리그에서의 경험은 지완도 있다.

상대하는 투수가 타석에 섰을 때, 동팔에게 당한 경험으로 인해서 어떻게든 삼진이나 범타로 끝내려 한다.

물론 타격 훈련을 거의 받은 적이 없는 지완이니 공을 골라내지 않는 이상 진루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

지완에게 있어 자신이 내셔널리그가 아닌 아메리칸 리그에 있다는 점이 다행이었다.

그 이후로 지완은 몇 번 던졌다 쉬고, 다시 몇 번 던졌다 쉬는 것을 반복했다.

당연히 동팔은 지완이 공을 던지면, 날아오는 공을 예상하고 배트를 휘둘렀다. 하지만 전력이 아닌 상태에서 던지는 지완의 공은 날카로웠다.

절묘하게 빠지는 공들은 동팔이 예상한 것보다 더 많이 휘거나 떨어지며 헛스윙을 유도했다.

간간히 예상한 공이 오면 맞추긴 하지만, 정타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점점 시간이 가고, 훈련하는 양이 늘어날수록 동팔의 배트도 점점 지완의 공을 맞추기 시작했다.

"야, 좀 쉬자."

"오케이."

계속 회복할 수 있는 자신과 달리, 지완은 휴식을 취해줘야 한다. 물론 지완이 허락한다면 바로 회복해서 던질 수 있지만, 굳이 그러고 싶진 않았다.

조금만 쉬면 될 일을,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시간을 단축하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은 고액 연봉을 받는 메이저리그 선수답지 않게 편의점에서 산 이온 음료를 마시며 쉬었다.

"너 요즘도 아프냐?"

"어쩔 수 없지. 하루에 한 번은 필수인걸."

"그것도 계속 겪으면 고생이다. 지금은 어느 정도까지 익숙해진 거야?"

"항상 겪어도 고통이 익숙해지겠냐? 아픈 건 여전히 똑같아. 대신 평상시에도 조절을 하면 한 번에 아프지 않다는 것이 그나마 나아진 점이고."

"회복되는 만큼 고통이 따른다… 나 같으면 진즉에 계약을 맺지 않았을 거야."

"어쩔 수 있냐. 그땐 다른 길이 보이지 않았을 때였으니까. 난 그 녀석이 왔을 때, 장난인가 싶었는데 사실일 줄은 꿈에도 몰랐지."

동팔은 그 말을 하면서 캔에 남아있는 음료를 마저 마셨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자 그와 멀리 떨어지지 않는 하얀 늑대의 벗이 보였다.

적어도 그가 있음으로 인해 주변에 악마가 얼씬거리지 못한다는 것은 좋았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도 떠올랐다.

다음 시즌 안에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하면 자신은 강제적으로 죽는다. 그것은 동욱도 마찬가지.

'이렇게… 팔자 좋게 다른 사람을 돕고 있어도 될까? 지금 나 하나 살아남기도 벅찬데.'

하지만 동팔은 이내 그런 생각을 버렸다.

'아냐, 지금은 그걸 생각하지 말자. 이미 루시에게 약속했잖아. 곧 있을 뉴욕 메츠와의 경기에서 홈런을 치기로…….'

하얀 늑대의 벗의 말대로 꼭 홈런을 치지 않아도 된다. 타석에 들어서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루시의 마음에 응하는 것이다.

물론 홈런을 치면 더 극적이겠지만, 인생이 꼭 극적으로만 흘러가지는 않기에 큰 기대를 할 수 없었다.

한편, 비록 하얀 늑대의 벗으로 인해 스크레이치는 동팔의 가까이 갈 수 없었다. 하지만 주변에 넘실거리듯 흘러넘치는 악마들 사이에 몸을 감추고 있었다.

멀리 있지만, 바로 앞에서 보는 것처럼 볼 수 있는 그는 무언가 고민하던 동팔을 보았다.

그러자 좋은 기회를 잡은 것처럼 짙은 미소가 그의 입에서 기괴하게 지어졌다.

'이대로 가게 할 수 없어… 현실을 알게 하여, 미래를 볼 수 없게 만들어주지.'

그리고 그의 모습은 다른 악마들 사이에 들어가더니 홀연히 사라졌다.

저급한 악마들은, 바로 옆에 악마 장관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여전히 사람들의 생각을 파고들며 유혹하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     *     *

쉬는 날이야 지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그 외에는 항상 경기에 나서기 위해 준비를 해야 한다.

당연히 동팔이 받는 훈련은 피칭과 관련된 훈련이 중점이다. 타격 훈련을 안 받는 건 아니지만, 그건 정말 기초 중의 기초만 익히고 반복하는 것.

그런 와중에 동팔은 팀의 4번타자인 데니 행크스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러자 그에게 나온 말은 조언이 아닌 의문이었다.

"타격 훈련을? 네가?"

그는 동팔이 대체 뭐가 부족해서 타격훈련에 매진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인터리그를 대비하려고? 하지만 우리는 아메리칸리그라 그리 신경쓰지 않아도 되잖아. 그건 너도 잘 알고 있을 거고."

"알기야 알지. 그래도 내가 구멍 취급받고 싶진 않아."

"그래도 투수 중에 안타 기록하는 건 쉽지 않아. 작년에 안타 친 기록이 있잖아."

아메리칸 리그 특성상, 투수가 타석에 들어갈 일은 많지 않다. 그리고 많지 않은 기회에서 야구 선주 중 절정의 기량을 가지고, 그 중에서 뛰어난 선수가 올 수 있는 메이저리그다.

아무리 메이저리그에서 연패를 당하고 있는 투수라도 다른 리그에 가서 적응만 잘하면 그 리그에서 상위권에 이른다.

그런 투수를 상태로 안타를 친 것. 그것도 메츠의 1선발이었던 제리스 리그에게 안타를 친 건 그만큼 대단한 일이었다.

그 덕분에 양키즈가 메츠를 상대로 승리했다.

"그때는 운이 좋았어. 한국에 있을 때, 타석에도 종종 섰었거든. 그런데 작년에 타석에 설 일이라곤 인터리그 밖에 없었으니 감이 많이 떨어졌지."

한 시즌에서 인터리그는 20경기가 치러진다. 그 중에 10경기는 당연히 내셔널리그의 팀의 홈경기로 치러진다.

그 중에 선발 로테이션이 돌아가면 동팔은 한 시즌에 2경기를 내셔널리그 기준으로 마운드와 타석에 오른다.

그나마 동팔이 오래 던지는 투수라, 한 경기에 적어도 2타석. 많으면 4타석에 설 수 있다. 그걸 감안해도 한 시즌 동안 설 수 있는 타석은 잘 해야 6타석이 전부. 그 중 강타자의 기준인 3할 타율을 생각하면, 한 시즌에 2개의 안타를 치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데니 행크스의 말대로 아메리칸 리그의 투수인 동팔이 안타 하나를 친 것만으로도 그는 할 일 이상의 것을 해냈다.

다만 타석에 설 일이 없는 만큼, 한국에 있었을 때부터 길러온 타격 감각이 떨어졌다. 어제 지완을 통해 훈련을 하여 어느 정도 끌어올렸다.

하지만 그 정도로 메이저리그의 투수를 상대로 안타를 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나마 작년에 칠 수 있었던 것도 제리스 리드의 특성을 먼저 간파했기에 가능했던 것.

그것도 운이 좋아 계속 공을 거르거나 끊을 수 있었고, 마지막엔 안타까지 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번 인터 리그에도 그런 운이 따른다는 보장은 없다. 그리고 운이 아니라면 실력으로 안타를 칠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실력이란 것이 바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란 점이다.

그런 이유로 포기할 수 없다. 어떻게든 가능한 빠르게 실력을 늘려야 했다. 계속 유지할 수 없더라도 단기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정도는 되어야 한다.

바로 성과나 실력을 높이는데 있어서 제일 좋은 방법은 더 잘하는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 그리고 여기는 타격에 관해 아주 잘 하는 사람이 즐비한 메이저리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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