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248화 (248/325)

[248]

그래도 계속되는 치료에 돈이 빠져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자신과 아내가 열심히 돈을 벌고 있지만 버는 족족 치료비로 나가니 모일 틈이 없었다.

그 와중에 싼 교통수단인 지하철과 버스가 끊겼다.

아직 시간은 남아있지만, 루시가 병상에서 기다리다가 이미 잠들었을 수 있었다.

'어떻게 하지?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 갈등을 하는 가운데 그의 눈에 보인 것은 밝은 웃음을 지으며 다른 사람과 인사한 다음 집으로 가는 선수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지금 그가 생각하는 것은 부러움보다 다른 것이다.

'병원까지 차에 태워달라고 할까?'

그러면 확실히 교통비를 아낄 수 있었다. 하지만 유명한 메이저리거인 그들과 일개 청소부인 자신을 생각하면 다가가는 것이 어려웠다.

그러던 중 차량 하나가 자신의 옆을 지나갔다. 그 차량을 보며 제임스는 포기했다.

"됐어. 어차피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사람인데……."

당연히 자신과 그들이 사는 곳이 다르니 그냥 갈 것이라 생각했다. 평상시처럼 그들은 자신을 봐도 아무 말하지 않고 지나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자신의 옆을 지나간 차량이 가던 방향을 바꾸더니 후진을 했다.

"……?"

왜 갑자기 후진을 하는 걸까? 혹시 놓고 온 물건이 생각나서?

어떻게 생각을 해도 자신과 연관이 없었다.

후진하던 차량은 자신이 있는 곳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창문이 아래로 내려가면서 어여쁜 젊은 여성이 보였다.

그 여성이 제임스에게 물었다.

"혹시 어디로 가시나요? 방향이 맞으면 타세요. 그렇지 않아도 지하철이랑 버스가 끊겨서 가시는 것이 쉽지 않으시죠?"

"네?"

이게 무슨 말일까? 자신을 무시하거나, 설령 무시하지 않더라도 그들이 먼저 자신에게 대화를 걸 거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 있는 동양인 부부는 아니었다. 자신을 보자 가던 것을 멈추고 물어봐 주었다.

제임스는 운전석에 앉은 사람을 보고 단번에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강동팔… 선수?"

모르면 이상하다. 뉴욕에서 그를 모르면, 특히 양키즈와 연관이 된 사람 중에 그를 모르면 자신의 지적 능력에 대해 의심해야 한다.

동양에서 온 루키.

데뷔 첫 해에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사이영상을 받은 투수. 이번 시즌에선 2년차 징크스 따위 날려버리고 양키즈가 일으키고 있는 폭풍의 중심.

양키즈의 1선발이자, 재계약을 할 때 억대 계약을 하지 않으면 그에 대한 모욕이 될 거라는 말이 당연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왜 일개 청소부인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제임스는 그 충격에 민희의 물음에 바로 답하지 못했다.

"아, 제 발음이 좀 이상했나요? 혹시 어디로 가시나요? 가시는 방향이 비슷하면 같이 타요. 최대한 바래다 드릴게요."

민희의 말에 자신이 잘못 듣지 않았음을 안 제임스.

그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기… 이렇게 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그의 물음에 민희는 의아해 하면서도 답했다.

"같이 돕고 살아야죠. 혼자 가시는 것 같은데 이왕이면 같이 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자신이 괜히 나선 건 아닌가 싶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멈출 수도 없었다. 민희의 말에선 진심이 느껴졌다. 제임스의 자신의 지갑 사정상 택시비라도 아껴야 했다.

제임스는 자존심은 둘째 치고, 자신을 위해 후진까지 한 이상 거부하는 것도 좋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감사합니다. XX병원으로 가야 하는데 가시는 방향에 겹치는 길에 내려주시면 됩니다."

"네. 마침 저희가 가는 길에 목적지가 중간에 있네요."

결국 그 말로 인해 제임스는 동팔의 차에 탔다.

차에 타면서 제임스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모르는 사람에게 같이 타자고 하면 큰일나는데……."

설마 한국은 생각보다 치안이 좋아서 모르는 사람에게 이런 제안을 할 수 있는 걸까? 하지만 동팔은 둘째 치고 민희는 순진한 사람이 아니었다.

"모르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민희가 확신할 수 있게 해준 사람은 동팔이었다.

"이전부터 지나칠 때 마다 뵈어서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 한 번 이야기할까 했는데 바빠 보이셔서 그럴 수 없었거든요. 성함이 제임스 씨 맞으시죠?"

확실히 그는 경기가 끝나고 청소를 마친 후에 제일 많이 본 선수가 동팔이었다. 그런데 동팔이 자신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거기에 이름까지도.

밤이 되어서 그런지 뉴욕이어도 길은 막히지 않았다. 그래도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으니 그 사이에 가만히 앉아만 있지도 않았다.

"아, 오빠가 말하고 나니, 나도 기억나네. 오늘 경기 중에 몇 번 마주친 것 같아. 혹시 덩치 큰 인디언 아저씨 보셨나요?"

"모를 수 있나요. 멀리서 봐도 한 눈에 띄는데. 그리고 덩치에 맞지 않게 아주 귀여운 아기를 안고 있지 않았나요? 그리고 옆에 동양인 남자가 있었고, 다른 분들도 계셨죠."

"맞네요. 중간 중간 오셔서 바닥을 청소하시는 것 봤어요."

의외로 생각보자 자주 마주쳤던 것 같았다. 그러니 더 궁금했다.

"그런데 청소부인 제가 여기 같이 있어도 될까요? 괜히 냄새만 날 텐데……."

청소부라서 항상 더러운 쓰레기와 떨어질 수 없다. 당연히 냄새가 배기 마련이고, 그 냄새는 평상시에 잘 느껴지지 않지만 이렇게 생소한 공간에 오면 확실히 느껴졌다.

그러자 동팔이 말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직업에 귀천은 없다고 하셨어요. 그 중에 사람들의 인식이 어떠하던지 반드시 존중해야 할 직업이 있으니 그건 소방관, 경찰, 군인. 그리고 청소부라고 하셨거든요."

"그런가요? 소방관이랑, 군인은 당연히 존중해야 하지만 경찰은… 하긴 경찰도 제대로 일하는 사람은 존중해야죠. 범죄와 싸우는 사람들이니……."

소방관과 군인은 일반 사람이나 민간인과 마주칠 일이 거의 없다. 소방관이 출동할 때는 사고가 발생해서 구조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

그리고 군인은 따로 부대에서 훈련을 받다가 명령에 따라 작전 지역으로 배치되어 목숨을 걸며 전투를 치른다.

그러니 그들을 숭고하게 대우하며, 임무 수행 중 순직하였을 시, 다른 직업보다 예우를 갖추어 장례를 치른다.

심지어 큰 사고와 천재지변으로 인해 사람을 구조하다가 많은 소방관이 순직할 경우, 연방 대통령이 직접 장례식에 참석하기도 한다.

또한 강력한 국방력을 지닌 미국은 군인에 대한 예우도 남다르다. 막 졸업하여 아직 부대가 정해지지 않은 신입 장교라 할지라도 미국의 국민은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에게 배려와 예우를 해준다.

그들 덕분에 나라가 외국의 공격을 받지 않고 안전할 수 있음을 알고 인정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경찰의 경우, 총기 허가에 따른 부작용으로 인해 과도한 제압을 할 때가 있다. 그리고 백인 경관에 의해 흑인에게 총격을 가하여 죽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며, 그럴 때마다 인종차별을 항의하는 시위가 일어난다.

또한 경찰의 입장에서 범죄가 일어났을 때, 목격자가 정말로 순수한 목격자인지 확신할 수 없다.

범죄를 저지르고 경찰의 눈을 속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고, 실제로 각종 수법을 동원하며 자신의 범죄를 숨기는 경우가 아주 많다.

제보자의 입장에서 당연히 목격한 것을 말해도, 범죄자가 더 절묘한 거짓말로 경찰을 속이면 순식간에 제보자는 범죄자가 되고, 범죄자는 억울한 누명을 썼던 사람이 되고 만다.

진실을 아는 것은 어디까지나 범죄 당사자들이지만, 그 당사자가 아닌 제 3자에 불과한 경찰이 그것까지 알아내는 것은 각종 증거 수집과 다양한 사람의 증언을 확보해야 사실과 진실의 파악이 가능하다.

이러니 민간인의 입장에서 자주 마주치면서도 껄끄러운 사람이 경찰이었다. 그래도 동팔의 말대로 제대로 일을 하며 민중의 지팡이이자 범죄로부터 보호하는 방패 노릇을 하는 경찰이라면 당연히 존경해야 했다.

하지만 청소부는 의외였다.

"그런데 청소부는 왜 존경해야 한다고 하셨나요? 항상 더러운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인데."

"그게 바로 존경해야 할 이유라고 하셨거든요. 청소부들이 더러운 것을 치워주니 다른 사람들이 깨끗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거라고 하셨죠.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일을 하지만, 그 희생으로 우리가 청결하게 살아갈 수 있고, 전염병이 도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도 하니 절대로 무시하지 말라고 하셨죠."

그 부분에 있어선 민희의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저의 아버지께선 특전사(Special Forces)셨어요. 오래 하셨으니 중령(lieutenant colonel)까지 하셨다가 예편하셨거든요."

"아~ 군인 아버지를 두셨었구나… 거기에 특전사 중령이라니……."

제임스 또한 미국인이었기에 군인에 대해서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한국에서 중령과 미군에서 중령의 무게는 다르지만, 그가 그것까지 알 수는 없었다.

그래도 한 나라에서 중령에 해당하는 계급은 아무나 달 수 없다. 그것도 최정예 부대에 속하는 특전사라면 더욱 더.

특히 부사관도 아니고 장교였다면 실제로 적지에 침투한 다음, 작전을 수행하며 지시하는 역할도 해야 했다.

육체적인 강함은 당연했고, 작전을 이해하며 우발적으로 발생한 상황에 순간적으로 빠르고 바른 판단을 내려야 한다.

제임스가 군대에 갔다 온 적은 없지만, 군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은 있었다. 그러니 민희의 아버지가 특전사 중령이었다는 것만 들어도 그가 얼마나 엘리트였는지 아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에게 오히려 청소부인 자신이 존경받아야 할 직업이라는 것을 들었다.

그동안 자신이 청소부라는 것. 그리고 청소부를 무시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실제로 무시를 많이 당했다.

반면, 평범한 그들과 달리 노력과 실력을 인정받은 동팔이 오히려 자신을 치켜세우는 말을 해줬다.

"그런데 병원으로 가신다고 하셨죠? 어디 아프신가요?"

"그건 아닙니다. 그리고 이 시간에 병원에 가 봤자 진료도 못 받는 걸요."

"아, 맞다. 그렇지. 응급실이 아니면 불가능하죠. 야간 진료가 되는 병원을 제외하면."

"네. 그냥 면회를 가려고요. 딸 아이가 있는데 저랑 아내가 항상 바빠서 얼굴 볼 일이 많지 않았거든요."

"그렇군요……."

제임스가 아프지 않다는 건 다행이지만, 가족이 아프다는 건 또 다른 걱정이 된다.

"혹시 어떤 병인가요?"

제임스의 상황을 모르니 그의 딸이 왜 병원에 입원했는지 알 수 없다. 그래도 단순한 외상으로 입원했을 수도 있으니 약간의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상황은 좋지 않았다.

"백혈병이랍니다. 전에는 그냥 백혈병이면 그런가 싶었지만… 알고 보니 혈액암의 일종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런……."

백혈병의 발병 원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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