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247화 (247/325)

[247]

휭~ 퍽.

하지만 동욱의 예상과 달리 공은 직구가 아니었다.

'슬라이더?'

거의 바로 앞에 와서 공이 미끄러지듯이 빠져나갔다. 동욱이 휘두른 배트는 생각보다 큰 간격을 두고 공을 지나쳤다.

초구였지만 첫 번째와 두 번째 타석에서 오직 포심 패스트 볼만 던졌던 것과 달리 변화구가 나왔다.

동욱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거… 예상하고 치는 건 어렵겠는데…….'

동팔이 이를 알아차렸다.

'설마 혜진이가 분석한 것이 사실이었나? 이 정도면 동욱이 배트가 나올 일이 전혀 없었어…….'

동팔이 아는 동욱이라면 자신이 공을 던지는 순간, 공의 속도와 궤적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한가운데로 가는 실투성 공이라도, 빠질 것을 알기에 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타자들처럼 완벽하게 속았다.

물론 초구인 이상, 기세에 지지 않기 위해 휘둘렀을 가능성이 높다. 그랬다면 커트되어 파울이 되어야지 스트라이크가 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 악마의 힘이 작용하지 않아 다른 선수와 같아진 동욱은 상대하는 것이 쉽다. 동팔은 방금 전에 한 동욱의 행동과 혜진의 분석을 믿고 더 과감히 공을 던졌다.

악마의 힘이 잠시 작용하지 않아 버거운 싸움이었지만, 동욱은 그 와중에도 분발하며 몇 차례 파울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결국 동팔의 절묘한 변화구에 속아 마지막 타석은 삼진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스트롸이크~ 아웃!!"

간만에 당한 삼진 아웃에 동욱은 표정이 굳은 상태로 더그아웃에 들어왔다. 동료들이 삼진을 당한 동욱을 장난으로 놀리며 환영했다.

"너도 삼진을 당할 때가 다 있네?"

"상대가 상대이니 어쩔 수 없는 건가봐."

그들은 동욱의 삼진을 뭐라 하지 않았다. 그도 당연한 것이 자신들이 당한 삼진의 숫자를 생각하면 비하하는 순간 스스로의 실력은 더 밑바닥을 향하게 된다.

동료들이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방금 당한 삼진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넘어가라는 배려였다.

동욱은 그들의 마음을 알면서도 굳은 표정을 바꿀 수 없었다.

'설마… 내가 당한 건가?'

동욱은 지난 시즌과 달리 짧은 기복이 반복되는 이유를 잘 알고 있다. 그것은 혜진이 예상한 대로 짧은 시간 악마의 힘을 증폭시킬 수 있지만, 그 이후에는 평범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힘이 돌아오는 데에는 약간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지난 타석에서 힘을 증폭시킨 덕분에 이틀 동안 힘이 돌아오지 않을 거야. 그럼 내일도 힘들겠는데… 설마 알아차린 건 아니겠지? 그러면 곤란한데…….'

상대가 자신의 기복의 원인을 파악했다면, 당연히 언제 기복이 생길지 파악하는 것도 간단하다.

좋은 기회가 왔을 때, 힘을 증폭하면 주변이 훨씬 더 느리게 보인다. 당연히 몸의 변화와 컨트롤도 세심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무리하게 힘을 끌어올린 이상 그에 따른 부작용도 있기 마련이다.

그걸 최대한 숨겨야 하는데 만약 드러났다면 반드시 그걸 이용할 것이다.

'전에는 이전의 기록만 보고 알아서 피하는 바람에 쉽게 갔지만… 내 상황을 알고 공격적으로 나오면 당할 수밖에 없어. 이거 어떻게 한다…….'

동욱의 고민이 깊어졌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있었다. 자신의 기복의 비밀을 다른 사람도 아닌 동팔이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만약 시애틀의 두 사람이 알게 된다면 이 부분에서 공략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그들을 상대할 때 미리 알고 있을 것도 감안하고 있었다.

'스크레이치가 언제 와서 보고 갔을지 알 수 없어. 그리고 내 몸에 작용하는 자신의 힘을 본다면 바로 알아차리겠지.'

하지만 언제 힘을 더 강하게 발동할지의 선택은 자신이 한다. 그리고 그 때는 스크레이치라도 알 수 없다.

'상황을 유도할 수 있지만, 그 녀석들을 상대할 때만 주의하면 그만. 그나저나 지금 중요한 건 수비인데…….'

이전에는 타격만이 아니라 수비할 때에도 스크레이치에게 받은 힘이 유용했다. 하지만 그 힘이 작용하지 않은 지금은 그동안 해온 훈련의 성과가 중요해졌다.

다만 동욱이 수비를 더 걱정하는 이유는 또 있었다.

타격은 이것으로 끝났지만, 유격수로선 경기가 끝날 때까지 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욱의 걱정과 달리 그는 자신의 역할을 감당함에 있어 실수하지 않고, 오늘의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     *     *

뉴욕 양키즈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3연전은 동욱의 타격 부진으로 인해 뉴욕 양키즈가 위닝 시리즈를 거두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양키즈 팬들은 환호하며 강적인 클리블랜드에게 위닝 시리즈를 거둔 것에 기뻐했다. 이는 양키즈 선수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승리는 당연히 좋다.

거기다 강적을 상대로 거둔 승리는 더욱 큰 기쁨을 준다.

더군다나 내일은 경기가 없으니 야구 선수에게 있어 휴일과 다름없는 날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미 시작한 개인 훈련을 쉬지 않겠지만, 오늘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건 사양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시즌이 끝나지 않았으니 그들은 경기 후, 몸을 풀기 위해 헬스장에서 가볍게 트레이닝을 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그들이 모르는 일이 양키스타디움에 일어나고 있었다.

"에휴……."

경기가 끝나면 관중이 버린 쓰레기와 오물이 바닥에 뒹군다. 당연히 다음에 있을 경기를 위해 이를 치워야 한다.

로봇 공학이 발달하여 무인 로봇에 쓰레기를 처리해 주면 좋겠지만, 지금은 로봇보다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 훨씬 싸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일컬어 청소부라고 한다.

양키스타디움에 고용된 청소부인 제임스는 오늘도 한숨을 푹푹 쉬면서 쓰레기를 치우고 있었다.

"오늘도 오지게 많이 버리고 갔네… 이거 언제 다 치우나……."

넓은 관중석을 혼자 치울 일은 없다.

이미 같이 일하는 다른 청소부들이 각자 맡은 구역에 가 있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하나였다. 지금 담당하는 구역에 있는 쓰레기가 적기를, 덤으로 혐오스러운 오물이 없기를 바란다.

운이 좋으면 자신이 있는 구역의 청소가 빨리 마무리된다. 그렇다고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다른 구역의 청소를 도와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구역의 청소가 1차로 정리되면 오늘의 일은 마무리된다.

그 이후에 있을 2차 정리 및 청소는 다음 날 아침부터 하면 된다.

이미 힘을 다 뺀 상태에서 섬세한 작업이 어렵다는 것을 감안한 일정이었다.

일단 눈에 보이는 큰 쓰레기를 봉투에 담고, 봉투가 다 차면 간단한 지게 차량이 오갈 수 있는 통로에 둔다.

그러면 또 다른 역할을 하는 청소부가 와서 가득 찬 봉투를 지게 차량에 담아 쓰레기를 따로 모으는 곳으로 가져간다.

월급제로 일하니 오래 일한다고 더 받지 않고, 일이 마무리되어야 퇴근할 수 있었다. 때문에 그들의 손을 느리지 않았다.

특히 제임스의 손은 다른 사람보다 더 빨랐다. 그러자 마침 지게 차량을 운전하는 청소부가 와서 말했다.

"너무 서두르지 마. 여기 다 끝나도 다른 구역에 가서 도와줘야 하잖아."

이왕이면 일을 덜하고 가는 것이 좋으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제임스는 그럴 수 없었다.

"안 돼. 안 그러면 딸아이 면회를 갈 시간이 늦어버려. 그렇지 않아도 오늘은 가겠다고 약속했는데."

제임스의 말에 그의 사정을 아는 청소부가 말했다.

"아, 그렇지. 미안허이. 내가 깜빡했어."

그리고 지게 차량을 신속히 조종하며 말했다.

"중요한 날이니 다른 친구들한테도 말하고 올게. 그렇지 않아도 자넨 중간에 다른 파트타임도 하고 있잖아. 몸도 피곤할 텐데 우리라도 조금 더 도와줘야지."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뭘~ 이 정도 가지고. 부디 늦지 않게 갈 수 있기를 바랄게."

그렇게 말하고 지게 차량을 운전하는 청소부는 다른 청소부들에게 연락을 했다. 당연히 마주치는 청소부에겐 직접 사실을 전달했다.

그뿐만 아니라 제임스의 사정을 아는 청소부들은 전과 달리 손을 더 빨리 움직였다. 빨리 끝나는 만큼 퇴근 시간이 빨라지니 허투로 하진 않았지만, 평상시보다 더 열심히 한 건 사실이었다.

그런 와중에 제임스는 아픈 허리를 펴며 경기장을 둘러보았다.

"좋겠다… 저기서 뛸 수 있는 사람들은… 나처럼 돈 걱정은 안 하고 살겠지… 그리고 나처럼 무시당하지 않고 살겠지……."

선수들도 자신들이 노력한 결과를 누릴 뿐이란 걸 그도 알고 있다. 그도 메이저리그에 입성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으니 선수들을 폄하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부러운 것을 숨길 수 없었다.

그들이 버는 막대한 돈도 부럽지만, 어딜 가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도 부러웠다. 청소부라고 무시당하는 자신과 달리…….

"어이쿠. 내가 무슨 청승을… 어서 빨리 해야 루시를 만날 수 있는데……."

제임스는 다시 청소에 집중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바닥에 떨어진 피자와 각종 음식을 보자 절로 욕이 튀어 나왔다.

"이 새끼들… 누군지 몰라도 음식 귀한 줄도 몰라……."

그렇게 욕을 하면서도 그는 손을 쉬지 않았다. 열심히 청소를 한 결과 예상보다 10분 일찍 퇴근할 수 있었다.

제임스는 양키스타디움을 나오면서 주변을 살펴봤다.

"선수들은 다 갔나보네……."

시즌 극 초반, 양키즈가 부진에 빠져 있을 때엔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고 기본적인 일을 마친 후 집으로 가거나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했다.

물론 일부 선수는 남아서 마저 트레이닝을 한 다음 가는 것을 보았다.

청소를 마치고 돌아갈 때, 남아서 운동을 하는 선수를 종종 보았기 때문이다.

그 선수라고 말했지만, 사실 거의 동팔이었다. 그 외에 일부 선수가 같이 가는 것을 봤지만, 포수인 브라이언이나 동팔과 같은 동양인인 지완이었다.

그러다 양키즈가 갑자기 각성한 듯 치고 올라가기 전에 선수들에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경기 후에도 전부 남아 훈련을 했다.

덕분에 제임스는 퇴근할 때 볼 수 있는 선수들의 얼굴이 늘어났다. 하지만 누구도 그와 이야기를 하는 선수는 없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라고 생각하며 그는 터덜터덜 걸어갔다.

'지금은 지하철이랑 버스가 끊겼겠지? 조금만 더 빨랐으면 가능했을까? 그럼 택시를 타야 하는데…….'

그에겐 전용 차량이 없었다.

뉴욕에 머물고 있지만, 자신의 집이 아니라 임대를 한 상황이었다. 높은 물가는 물론 월마다 나가는 월세가 그의 가난에 일조하고 있었다.

그나마 싼 외곽으로 가고 싶지만, 그럴 만한 돈이 없었다. 거기서는 자가용이 있어야 출퇴근이 가능한데 지금 버는 것으론 어림없었다.

그리고 버는 족족 빠져나가는 돈이 있었다.

'이번에 월급이 들어와도 루시 치료비로 절반이 나가겠지. 그리고 월세랑 생활비까지 하면… 아슬아슬하겠어.'

그나마 마이너스가 아닌 것이 다행이었다. 치료비도 보험을 들어 놓은 상황이라 터무니없는 돈을 감당하지 않아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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