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244화 (244/325)

[244]

사실상 메이저리그에 와서 처음으로 저지른 와일드 피칭. 하지만 나가 있는 주자가 없었으니 영향은 없었다.

다만 지켜보고 있던 양키즈의 팬들이 의아해 할 따름이었다.

"오늘 동팔의 피칭이 좀 안 좋은가?"

"나 동팔이 와일드 피칭하는 건 처음 봐."

"아, 첫 와일드 피칭이라던데? 혹시 몸이 정말로 안 좋나?"

"그래도 동팔 말고 저 친구를 상대할 투수가 없잖아."

팬들과 달리 이미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짐작하는 감독과 코치들은 걱정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동팔의 피칭에 감탄하고 있었다.

"구속의 제한이 걸렸어도 이렇게까지 던질 수 있을지 몰랐어."

"이번에 한동욱에게 세 번 다 맞아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버틸 수 있다니……."

동팔이 전력으로 상대해도 쉽지 않은데 구속과 구종의 제한을 받으며 상대하고 있었다.

이미 감독과 코치진은 이번 작전을 받아들이면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상태였다. 그래도 강속구만으로 어느새 풀카운트까지 갔으니 두 사람의 투지가 얼마나 강한지 짐작할 수 있었다.

동시에 동욱은 혼란스러웠다.

'왜 강속구만 던지고 있지? 변화구는 정말 안 던질 생각인가?'

시험을 본 다음, 자신이 생각하는 정답을 답안지에 적는다. 그런데 객관식의 답이 특정한 번호로 계속 이어진다면 저절로 이런 생각이 든다.

'정말 내가 푼 것이 정답일까?'라는 생각이. 보통 객관식의 정답은 번갈아서 나오고, 연속되더라도 세 번을 넘지 않는다. 그런데 평상시와 달리 번호가 연달아 나오면 자신이 푼 문제의 답이 정답인지 의심하게 된다.

설령 연속된 모든 번호가 정답이라 해도.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해서 정답임을 확신하지 않는 이상, 헷갈린 사람은 답을 고쳐 쓰다가 나중에 후회하게 된다.

지금 동욱이 그러했다.

동팔이 계속 강속구만 던지니 더 혼란스러웠다. 언제 변화구를 던질지 알 수 없으니까. 하지만 와일드 피칭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동팔은 강속구를 계속 던졌다.

그러자 풀카운트까지 가게 되니 동욱은 절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설마 이걸 노리고?'

오히려 한 구종만 던지니 더 혼란스러웠다. 만약 동욱이 일반적인 타자였다면 휘말려 실수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욱은 강속구를 상대하더라도 예상하고 치는 타자가 아니다. 오히려 날아오는 강속구를 보고 판단할 수 있으니 속거나 실수하지 않았다.

거기에 동팔이 강속구만 계속 던지니 이런 생각도 들었다.

'설마 날 무시하는 건 아니겠지?'

철저히 자신을 분석하기 위해서가 정답이지만, 동욱의 생각은 거기까지 가지 못했다. 가능한 승리를 쌓아 안전하게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것이 중요했다.

거기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양키즈에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타석에 선 동욱만이 아니라 클리블랜드의 감독과 코치들도 마찬가지였다.

"계속 직구만 던지는 이유가 뭐지?"

"혼란을 유도하는 것 아닐까요? 저라면 변화구로 예측하다가 배트가 몇 번 나갔을 겁니다. 동욱이는 지금 잘 참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두 번의 강속구가 이어서 날아왔다. 당연히 동팔은 동욱이 치기 좋은 공을 던질 리가 없다.

비록 구종의 제한을 받고 있지만 가능한 아래쪽이나, 몸쪽으로 붙어서 던졌다. 설마 동팔이 계속 강속구를 던질까 싶어 계속 지켜보던 동욱은 타이밍을 못 잡아서 자신이 원하는 스윙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스트라이크 존에 걸치는 것은 무조건 커트했다. 마지막엔 동팔의 공이 너무 높게 뜨는 바람에 볼넷으로 나가게 되었다.

일단 출루를 하게 되었지만, 동욱은 물론 클리블랜드는 좋아하지 않았다.

'뭔가 속는 느낌인데… 뭔지 알 수가 없어.'

지금 동팔을 상대할 수 있는 타자는 동욱을 제외하고 거의 없다. 클린업 트리오가 그나마 뛰어난 타자들이지만, 그들도 동팔의 공을 치기 위해선 운에 의지해야 하는 게 컸다.

동팔은 간만에 볼넷을 기록했기 때문에 기분이 좋진 않아도, 팀이 실점할 기회를 줄인 것에 만족했다.

그리고 지금 관중석에서 동욱을 분석하고 있을 혜진을 생각했다.

'이제 1차가 진행되었는데… 잘 됐을까?'

*     *     *

혜진은 방금 전에 찍은 동욱의 타격 장면을 세밀하게 살펴보고 있었다.

캠코더에는 동욱이 공을 던졌을 때의 시작점과 반응 및 공이 들어오거나 타격되었을 때의 모든 타이밍을 알 수 있게 찍혀 있었다.

"언니. 잘 찍혔어요?"

"일단은… 하지만 지금 찍은 건 비교를 위한 샘플이야. 물론 기본이 잘 되어야 이후에 얻을 또 다른 자료와 비교할 수 있으니 중요하지만……."

그러면서 혜진은 이번에 있었던 대결의 장면을 느린 장면으로 보기 시작했다. 화면 아래에는 녹화된 시각이 100분의 1초 단위로 나와 있었다.

혜진이 면밀히 살펴보는 사이, 동팔은 동욱 이후의 타자들을 삼진과 범타로 연달아 잡으며 이닝을 마무리했다.

양키즈와 클리블랜드가 각각 세 번의 공방을 마무리한 시간에 혜진은 1차 분석 결과를 내놓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자료를 보면 이게 맞아."

혜진은 메모장에 숫자를 적으며 민희에게 말했다.

"민희야. 미안한데 지금 동팔이에게 사인을 보내 줘. 2차 자료 수집을 해야 하니 위험을 감수해야 할 거야."

"네. 언니."

혜진의 부탁에 임신 4개월이 되어가는 몸이지만 과감히 일어나 양손을 Y자로 뻗어 팔을 흔들었다.

그러자 마운드에 와 있던 동팔과 눈이 마주쳤다.

'2차 자료 수집하라고? 그럼 1차 자료 분석이 끝났다는 의미?'

이건 동팔이 동욱과 했던 1차 접전에서 그만큼 좋은 정보를 뽑아냈다는 의미다. 민희의 사인을 받자 동팔은 조금 더 긴장되었다.

일단 동팔은 이전에 약속한 사인인 자신의 글러브에 공을 세 번 가볍게 던지는 행동을 했다.

아직 투구를 시작한 것도 아니라 동팔의 행동은 보크에 걸리지 않았다.

동팔이 사인을 보내자 민희는 더 이상 사인을 보내지 않고 편하게 앉았다.

"휴… 제가 다 긴장돼요. 이제 동욱이 오빠 앞에 일부러 주자를 보내야 하는 거잖아요."

"그렇지. 범타를 유도하는 것도 아니고, 안타 중에서도 단타를 유도해야 하는 거니까. 홈런은 절대 안 되고, 볼넷으로 보내면 더 안 돼."

"까딱하면 상대가 알아차릴 것을 막기 위해서죠?"

"응. 다른 투수라면 넘어갈 수 있지만 동팔이가 어디 볼넷을 준 적이 없잖아. 동욱이를 제외하면. 그러니 다른 타자에게 볼넷을 허용하면 의도가 있다는 게 읽힐 수 있어. 그러면 파악해야 할 변수가 늘어나니까 안 돼. 그럴 가능성은 싹을 잘라야 편하거든."

혜진의 말에 민희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주자가 나간 상태에 특히 강한 동욱 오빠라면 반드시 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까딱하면 2실점을 할 지도 모르는데."

민희의 걱정에도 혜진은 동요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런 계획을 준비한 거잖니. 동욱이 기복의 특징 중 하나가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는다는 거야. 그 이후에는 짧은 슬럼프가 찾아온 것처럼 평상시의 압도적인 타격은 없었… 아, 설마 그런 건가……?"

자신이 말하면서 무언가 알아차린 것 같은 혜진의 말과 표정. 그러자 민희가 물었다.

"설마 알아내신 거예요?"

민희의 물음에 혜진이 답했다.

"확신할 수 없어. 그 확신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무조건 계획대로 가야 해. 거기에 대한 준비는 이미 끝났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     *     *

혜진의 말대로 이미 양키즈의 더그아웃에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동팔이가 사인을 보냈어. 바로 2단계로 넘어간다. 이번 이닝에 동욱이가 타석에 서지?"

"네. 세 번째 타석에 올라옵니다."

"마침 딱 좋군. 지금 나와서 사인 보내. 작전 2단계 진행하니까 단 한 명만 적당히 보내라고."

감독도 안타를 유도하기 위해 공을 던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쉬운 공을 던지다 제대로 맞으면 펜스를 넘어가기 마련이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볼넷이나 몸에 맞는 공이 아닌 안타로 주자를 내보내는 것.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범타로 끝날 공을 수비의 실책으로 받지 못하는 것.

"애들이 연기를 잘 할까요?"

너무 뻔한 공을 놓쳐서 자신들의 의도가 들키는 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감독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못 해도 상관없어. 어차피 우리 말고 아무도 모를 테니까."

확신에 찬 감독의 말에 코치가 물었다.

"확신하실 수 있는 이유가 뭔지 궁금합니다."

그러자 존 지라디 감독이 말했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법이야. 우리가 연기를 못해도 상대는 운이 좋았거나 우리가 방심했다고 생각하겠지."

감독의 말에 코치도 납득했다.

"그렇군요. 하긴 그쪽으로 생각하는 것이 더 당연하겠습니다."

조금 더 편하고 여유 있게 상황을 볼 수 있었다.

"다행히 한동욱 앞에 두 번의 기회가 있습니다. 둘 중에 하나만 보내면 되는 거니 수비도 어설픈 연기를 할 확률이 조금은 줄겠죠?"

코치의 말에 감독이 답했다.

"글쎄… 그럴까? 오히려 첫 기회를 놓치고 두 번째에 너무 긴장하는 건 아닌가 모르겠어."

감독이 그렇게 말하니 코치도 그게 걱정되었다. 하지만 이어서 한 말을 듣자 걱정은 사라졌다.

"긴장한 만큼 실수가 더 잘 나오겠지. 그럼 굳이 실책을 의식할 필요 없이 진짜 실책을 하게 되니 더 좋을 수도… 그리고 실수는 어디까지나 내야수만 해당해. 정 안 되면 외야수도 나서야겠지만……."

어쩌다보니 지금은 자연스러운 실책을 바라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경우가 또 있겠느냐만, 그걸 각오하고 분석해야 할 정도로 한동욱의 존재감은 거대했다.

마침 동팔이 던진 선심성 투구에 클리블랜드의 2번 타자가 타격에 성공했다.

따악~

맑고 경쾌한 소리를 내며 날아간 타구는 아슬아슬하게 유격수의 글러브를 벗어나 뒤로 빠졌다.

어차피 공이 빠지는 연기는 내야수가 하는 거지 외야수는 아니었다. 양키즈에서 바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1루까지 갈 수 있는 단타였다.

외야수가 공을 놓치게 되면 범타조차 장타로 바뀌게 되니까.

타구의 방향으로 보면 유격수가 진짜든 가짜든 실수하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중견수는 일찌감치 유격수의 뒤쪽에 와서 커버를 하다가 안전하게 흐르는 타구를 잡았다. 의도한 대로 주자는 1루에 진출했다.

단순한 1루타였지만, 동팔을 상대로 뽑아냈으니 클리블랜드의 팬들은 환호했다. 그렇다고 뉴욕 양키즈 팬들의 기분이 나빠진 것도 아니었다.

"괜찮아. 어차피 운이 좋았을 뿐이야."

"범타로 끝날 거였는데 브렛이 놓치지만 않았으면……."

팬들은 그렇게 말했지만 기록은 동팔의 피안타로 되었다. 유격수인 브렛이 공을 잡았다 놓친 것도 아니고, 타구가 브렛이 있는 정면으로 날아온 것도 아니니 당연한 일이었다.

실책이든 안타든 1루에 주자가 진루하는 데 성공하자 클리블랜트의 더그아웃에선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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