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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처음 상대했을 땐 동욱은 이미 강타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동팔도 신인이었지만 압도적인 구위로 RG의 에이스였다.
한국 리그에서 각자 최고의 위치에 있던 두 사람이 만났고, 서로의 기록을 끊으면서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지금 동팔의 생각대로 리그가 달라졌지만 두 사람이 각자 최고의 위치에 있는 점은 같았다. 또한 나라는 달랐지만 큰 관심을 받고 있다는 점도 같았다.
"그땐 내가 홈런을 당했고, 그 다음에 동욱이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는데……."
같은 느낌이 든 만큼 같은 결과가 나온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때는 서로가 잘 알지 못했던 상태였지만 지금은 서로의 강점과 약점, 패턴을 경험하고 파악한 뒤였다.
그사이에 있었던 두 사람의 대결은 중계진이 말한 대로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동욱이 홈런이나 장타를 치면 동팔은 어떻게든 그를 삼진으로 한 번 아웃시켰다. 반대로 동욱이 먼저 삼진으로 물러나면 어떻게든 장타를 때렸다.
그러니 이번 경기에서도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다만 동팔이 동욱에게 삼진으로 물러나게 할 것인지, 동욱이 동팔에게 장단의 안타를 칠 것인지. 어떤 것이 먼저 이뤄질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이번에도 이전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는 보장은 없다.
무엇보다 서로가 치열하게 상대하며 힘과 힘, 기교와 속임수, 상대의 속임수를 먼저 파악하고 대응할 것인지가 중요했다.
그들이 각자 투수와 타자를 상대하면서 가볍게 상대할 일은 없었다. 하지만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대결인 만큼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무언가가 끓어오른다.
그리고 시청자가 어떤 것을 원하는지 먼저 파악해야 하는 방송국과 광고업계에서 발 빠르게 움직이기 마련이다.
이미 두 사람의 치열한 대결이 예상되는 경기로 인해 광고료는 2배 이상 치솟고 있었다.
그러건 말건 양키스타디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기에 민희와 혜진, 하얀 늑대의 벗과 간만에 만난 목사와 웜우드가 와 있었다.
"토너먼트가 아니라 편하게 볼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어차피 동업자 아닌가. 라이벌이라 하긴 좀 그렇고 호적수라고 봐야겠지만… 그래도 이런 경기는 다른 경기보다 관전하는 재미가 있다."
언론과 각종 스포츠 매체에선 두 사람의 투타 대결에 집중하고 있지만 그들에게 있어선 좋은 이벤트였다.
물론 아직은 목숨을 걸 때가 아니었고, 서로에 대해 파악할 수 있는 정찰 격이라 봤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와중에 하얀 늑대의 벗은 자신의 커다란 품에 예은이를 안아 혹시라도 날아올 공과 불상사로부터 보호했다.
예은이 야구장에 온 것은 처음이었지만 평상시와 달리 듬직하게 느껴지는 하얀 늑대의 벗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예은이가 불안하긴 불안한가 봐요. 큰 삼촌한테 떨어지지를 않네."
"예은이한테는 생소한 곳이니까."
이내 혜진이 예은이에게 가져온 이유식을 먹였다.
예은이는 하얀 늑대의 벗의 곁을 여전히 떠나지 않으며 엄마가 주는 이유식을 받아먹었다.
배가 부르자 이후에는 편하게 관람을 시작하는 일행.
그 와중에 예은이를 보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 웜우드였다. 하지만 그가 악마라는 사실로 인해 마냥 좋게 볼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에 예은이의 눈동자가 웜우드를 따라가는 모습을 발견했다.
"설마 예은이는 웜우드를 볼 수 있는 건가요?"
"아마 그럴지도 모릅니다. 아이의 눈은 순수하기 때문에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아도 자신의 탐욕대로 이용하는 어른들과는 다르게."
목사는 하나님의 지혜가 무지한 아이들에게는 드러나고, 머리 좋고 많은 것을 아는 지혜자들에게 드러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설교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하얀 늑대의 벗이 목사의 설교를 끊었다.
"여긴 야구장이다. 설교하려면 예배당에 가서 해라."
"아, 그렇군. 미안합니다. 이것도 직업병이라… 하하하."
하얀 늑대의 벗의 도움으로 설교의 지옥을 벗어날 수 있었던 민희가 혜진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봤다.
"그런데 언니. 언니라면 더그아웃에 들어갈 수 있지 않나요? 구단 관계자니 허용될지도 모르잖아요."
"분석관은 힘들어. 거긴 선수와 코치, 감독만 들어갈 수 있거든. 물론 감독님이 나보고 코치 자격으로 들어오게 할 수는 있지만 내가 거부했어. 거기에서 볼 수 있는 건 한계가 있고, 가져갈 수 있는 물품도 제한되거든."
말을 마친 혜진이 캠코더를 꺼냈다.
"그동안 동욱이에 대한 정보를 얻었지만 정작 분석할 수 있는 자료는 많지 않아. 그리고 이미 분석이 다 끝난 것이 전부였고. 그러니 지금 당장 정확하고 필요한 자료를 얻으려면 여기가 최적이거든."
"네? 어떻게요?"
"그야… 내가 지금 꺼낸 이걸로."
혜진의 말에 예은이의 부른 배를 마사지해주는 하얀 늑대의 벗이 말했다.
"좋은 캠코더다. 보통 초당 24프레임을 녹화하는 것과 달리 600프레임까지 녹화할 수 있는 모델이다. 천 분의 2초까지 파악할 수 있는 기기라 비쌀 텐데. 어떻게 구했지?"
"그야 구단에 협조 요청을 했죠. 동욱이를 분석하는 데 필요하다고 하니까 바로 구해주던데요?"
이미 한 번 동욱을 상대하는 방법을 알아내 타율을 떨어트린 장본인이 혜진이었다.
그녀의 부탁이었고, 동욱을 상대하는 모든 팀은 그에 대한 대처법을 알아내기 위해 지금도 전력을 다하고 있다.
덕분에 다른 타자들에 대한 분석이 미비하여 자료가 상대적으로 부족해진다는 단점도 있었지만, 그것을 감수할 만큼 동욱은 상대하기 버거운 타자였다.
"그럼 어떤 것을 파악하려구요?"
"이번 시즌에 보이고 있는 기복에 대한 분석이야. 한 순간에 그러면 이해하겠지만 시즌을 시작하고 계속 그러니까 이유가 있을 것이 분명해. 그걸 알면 보이지 않는 틈을 발견할 가능성이 아주 높아져."
혜진의 말에 하얀 늑대의 벗이 놀라며 말했다.
"보통 그런 경우라면 요행으로 동욱의 기복이 자신에게 유리하길 바란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렇게 기복을 분석하겠다는 것은 남들이 가볍게 여기는 것에 비밀이 있다고 파악한 것이겠지."
남들이 시도하지 않고, 포기한 것. 또는 당연하다 생각하는 것에 의문을 가지고 다가가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시도해봤자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도전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어요. 지금 동욱이를 상대하기 위해선 아주 작은 것도 놓칠 수 없으니까요. 일단 시도는 해 봐야죠. 시도도 안 해보고 포기하면 안 되니까요."
어떻게 보면 이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필사적인 행동이었다.
"완벽한 투수도, 타자도 없어요. 틈은 반드시 있을 겁니다. 반드시……."
* * *
1이닝은 서로 예상한 대로 흘러갔다.
양키즈와 인디언스는 이번 경기에서 팀의 최고 투수인 1선발을 내세웠다. 항상 그러는 건 아니지만, 이 경기의 주목도를 생각하면 첫 이닝부터 얻어맞는 에이스는 거의 없다.
만약 있다면 그건 사고에 해당할 낮은 확률의 일이었다.
서로가 1이닝에 집중하면서 0대 0으로 마무리되었고, 클리블랜드의 두 번째 공격인 2회 초가 시작되었다.
첫 타석에는 클리블랜드의 4번 타자이자 메이저리그 최강의 창인 한동욱이 올라왔다. 철벽의 마운드를 지키고 있는 동팔이 계속해서 공을 던질 준비를 했다.
이번 경기의 제일 관전 포인트인 두 사람의 대결에 양키스타디움은 한순간 짙은 침묵에 빠졌다.
서로가 각자의 팀을 응원하는 것을 잠시 잊을 정도로 그들은 몰입했다.
'이거… 분위기 왜 이래?'
'작년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수비를 하는 양키즈 선수나, 더그아웃에서 결과를 기다리는 인디언스 선수들도 무거운 침묵에 눌렸다.
하지만 고도의 집중을 발휘하는 동팔과 동욱은 주변의 상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포수인 브라이언 산체스는 이번만큼은 볼 배합에 있어 동팔에게 전권을 주었다.
그가 사인을 주고받는 이유는 단 하나. 동팔이 어떤 공을 던질지 알아서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사인을 받은 뒤, 동팔과 동욱, 브라이언은 모두가 주목하는 첫 순간을 준비했다.
스윽, 휙.
동팔은 익숙한 몸동작으로 공을 빠르게 뿌렸다.
다른 타자들처럼 초반에는 낮은 구속으로 상대하다가 점점 올리는 방식으로 상대할 수 없었다. 그러니 동팔은 동욱을 처음 상대할 때부터 전력을 다해 던졌다.
동욱이 공을 상대적으로 느리게 볼 수 있다지만,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은 줄이는 게 좋다.
동팔이 처음부터 강속구를 이용하여 타자들이 제일 치기 어렵다는 몸쪽 아래로 던졌다. 동팔의 제구력으로 인해 스트라이크 존에 걸치는 곳.
원하는 공이 아니었다. 그리고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 쳐 봤자 운이 좋으면 단타, 보통이라면 범타로 물러나게 된다.
수비 쉬프트가 통하지 않는 타자라 이미 수비망은 균일하고 넓게 펼쳐져 있었다.
지금은 작은 차이도 용납할 수 없었다. 당연히 기세도 마찬가지였다.
파울을 치나, 가만히 있으나 같은 볼카운트다. 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투수를 압박할 수 없다. 그래서 동욱은 배트를 휘둘러 동팔의 공을 때렸다.
따악~
공은 뒤로 넘어가면서 포수가 잡을 수 없는 곳으로 갔다. 볼 카운트는 1스트라이크.
타자에게 조금 불리했지만, 상대하는 사람이 보통이 아니라 누가 더 유리하고 불리한지 알 수 없었다.
이는 두 사람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동욱이에게 2스트라이크의 의미는 없어. 오히려 볼의 숫자가 투수의 입장에서 압박이 돼.'
파울을 아무리 많이 쳐도 2스트라이크 이후엔 카운트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볼은 아니다. 3볼 이후, 볼을 던지게 되면 주자는 바로 출루한다.
하지만 동욱이 모르는 것이 있었다. 지금 동팔은 다른 때와 달리 제약을 받고 있었다.
'이번 경기에서 동팔을 상대할 때, 가능한 구속을 같게 던져달라고 했지? 그래야 분석이 편하다면서…….'
동팔은 오늘 경기가 있기 전, 혜진에게 부탁을 받았다.
동팔이 방금 생각한 대로 가능한 구속을 균일하게 유지해달라는 거였다. 하지만 구속을 유지하면 던질 수 있는 구종에 제한이 생긴다.
무엇보다 처음부터 100마일의 구속을 던졌으니 그에 준하는 공을 던지기 위해선 강속구 이외에는 없었다.
그럼 동욱을 상대함에 있어서 속도의 제한을 받는다면, 남은 방법은 던질 곳을 다양하게 하는 것이다.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거나, 아니면 배트가 닿지 않는 곳으로 던지거나.
그러다보니 동팔은 웬만해서 하지 않을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휙~ 퍽.
동팔의 공은 타자의 배트에 맞지 않는 이상, 포수 미트에 빨려 들어갔다. 하지만 이번에 던진 공은 바깥쪽 위로 너무 빠지는 바람에 포수가 공을 받지 못했다.
이건 포수의 잘못이라기보다 동팔이 동욱의 타격 가능한 영역을 피하려다 생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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