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242화 (242/325)

[242]

항상 안타를 치는 타자는 없다. 인간이 아무리 정교한 타격 능력을 가진다 하더라도 한계가 있다.

설령 동욱처럼 공이 느리게 보이는 경우라 해도 마찬가지다. 날아오는 공을 배트로 정확히 타격하기 위해선 타자의 배트 컨트롤 능력이 우선된다.

하지만 바람에 의해 변화되는 궤적과 예상한대로 공이 간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거기에 타격 시 극히 감지하기도 어려운 약간의 차이로 안타와 범타가 결정된다.

애초에 아무리 훈련을 많이 한 타자라도 빠르게 날아오는 공을 치는 것 자체도 쉽지 않다.

그것이 쉽다면 타자는 투수의 공을 계속 커트하면서 투구 숫자를 늘릴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옆에서 보는 것과 달리, 공의 궤적은 상대하고 있는 타자의 생각보다 크다. 그리고 배트가 감당할 수 있는 면적은 지극히 좁고, 공과 배트가 통과하는 시간은 더 짧다.

그런 상황에 3할의 타율을 유지한다는 것은 그만큼 운이 아닌 실력으로 채워야 가능한 일.

그러니 삼진이 쉽지 않고, 볼넷을 잘 골라내며, 스트라이크 존을 걸치는 모든 공을 치는 타자는 투수의 입장에서 악몽과 마찬가지다.

결국 타격을 허용한 다음, 하늘과 수비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한동욱을 상대함에 있어서 동팔보다 전문가는 없겠지. 그래도 실점에 대한 우려는 항상 해야 하는 법이야.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승리하는 방법은 수비에 있지 않아. 오직 더 강한 공격으로 상대 마운드를 폭격해야지."

구단의 제일 큰 목적은 월드시리즈 우승.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승리를 필요로 한다.

어차피 가까스로 이긴 승리나, 많은 점수 차이로 이긴 승리나 같은 1승.

축구처럼 같은 승점을 가질 확률보다 야구에서 승타가 같을 확률이 현저히 낮다.

그러니 점수보다 승리에 집중하는 것이 나았다. 그리고 어차피 어느 정도 실점할 것을 감안해야 한다면 그 이상의 점수를 얻으면 승리할 수 있다.

"그러니 오늘은 타자들 단단히 준비시켜. 동팔이 최대한 막아도 그 이상의 점수를 못 내면 못 이기니까."

*     *     *

감독과 코치진이 오늘 대회를 준비하고 있을 때, 남들과 조금 늦은 패턴으로 하루를 보내는 동팔과 지완도 일어나 오늘 있을 경기를 대비하고 있었다.

평상시엔 따로 훈련하러 가니 만날 일이 거의 없지만 동욱을 상대하는 오늘은 예외였다.

지완이 동팔의 집에 와서 늦은 아침을 먹으며 물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달리 보이지 않는 상황이 있기에 이야기하는 것도 달랐다.

"동욱이 지금 뭐 한데? 따로 연락 없었어?"

"어. 그쪽 일은 자신이 알아서 한다면서 나보고 무리하지 말라고 하더라. 아니, 무리하더라도 어차피 회복되니 한 번 해보라나?"

"그 녀석 다운 말이네."

지금 그들이 상대해야 할 진짜 적은 헤럴드와 데미안이 있는 시애틀 매리너스다.

이미 영혼이 해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계약자들이 해방되는 것을 막으려는 악마의 사냥개들.

적어도 그들을 저지하지 않고선 월드시리즈 우승은 쉽지 않았다.

그 관점에서 생각하면 동팔과 동욱은 동업자였다.

하지만 동업자라도 이렇게 맞붙게 된 이상, 월드시리즈에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 승리를 위한 경쟁을 해야 한다.

"그래서 이번에 동욱이는 어떻게 상대하게? 전에 혜진이가 말해준 방법이 있지만… 이제 그 방법에 대항할 방법도 이미 찾지 않았을까?"

"그럴 수도 있지만 내가 타자가 아니다 보니 어떤 방법이 있는지 짐작도 안 된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타자 입장에서 상대하기 제일 까다로운 투수가 강동팔이다.

강속구도 100마일을 돌파했고, 실전에서 다양한 변화구를 던질 수 있는 투수라 예측도 쉽지 않다.

"혹시 혜진이 동욱이에 대해 뭐라 하지 않았어?"

"이전과 별다른 방법이 없다던데."

"그래……."

동욱을 삼진으로 잡을 수 없지만 범타 확률을 끌어올리는 방법을 알아낸 사람이 혜진이었다.

방법은 단순했다.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질지 파악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전부다. 그렇게 할 수 있는 투수가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방법은 아닌데 신경 쓰이는 건 있대."

"뭔데?"

"이미 알고 있겠지만 타율이 들쭉날쭉하다는 거야. 잘 치는 때가 있지만 못 치는 때도 있다면서."

"그야 알고 있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한 경기에 안타 한 개 이상 치던 녀석이 기복이라니… 역시 뭔가 있다는 건가?"

"원래 그 녀석 능력이라면 기복이 있을 수 없어. 자기관리도 철저히 하니까 체력이나 건강 문제였다면 기복도 일시적이겠지."

그들의 말대로 동욱의 기복은 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할에 가까운 타율을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주목할 것은 기회에 특히 강해졌다는 점이야. 주자가 나가 있거나, 대량 득점을 올릴 수 있다면 어김없이 방망이에서 불이 나와. 아주 빵빵 터트리고 있어. 그래서 타율은 작년과 같은데 타점은 더 많아졌고."

"작년의 타점도 장난 아니었는데 그보다 더? 정말 미치겠네."

"결국 동욱을 상대하기 전에 주자가 나가도록 하면 안 된다는 거지. 동욱이를 완전히 막을 수 없다면 다른 타자를 막아서 실점을 최소화시켜야 이길 수 있다는 거야."

지완이 말한 것은 야구의 기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는 건 싫지만 지금 하는 경기는 수많은 정규 리그 경기 중 하나야. 물론 무게가 떨어지는 건 아니어도 결과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할 수는 없지."

토너먼트도 아니고, 다른 지역의 팀과 하는 경기 중 하나였다. 영향이 없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지역 우승에 영향을 주는 건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럼 혜진이 경고한 건 클리블랜드에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거지?"

"그렇지. 지난 시즌보다 기회가 왔을 때 더 강해지니까. 그 이유는 알 수 없고, 물어봐도 알려줄 거 같지 않아."

지완의 말에 동팔이 그 이유를 짐작했다.

"그야… 다음 시즌에 경쟁하게 될 것을 생각하면 숨기는 것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니까."

그러자 지완이 물었다.

"그럼 넌 숨기는 것이 있기나 하고?"

지금 동팔에게 회복 능력이 있으며, 지금은 다른 사람의 회복도 가능하다는 것은 동욱도 알고 있다.

상대가 자신의 능력은 알지만 동팔은 상대의 능력을 전부 알지 못한다.

이것은 나중에 두 사람이 경쟁하게 되었을 때 치명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지완의 말에 동팔은 시즌 초반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그때… 모든 것이 느리게 보였지?'

생사가 걸린 결투나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할 때 온다는 것과 비슷했다.

주변의 모든 정보가 선명하게 들어왔다.

눈만 아니라 냄새, 촉감을 통한 바람의 느낌과 쥐고 있는 공의 상태까지 전부.

그래서 그 순간만큼은 타자의 반응과 자신의 몸 상태를 바로 파악하며 최고의 투구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없었다.

'설마… 그건 우연이었겠지. 무협지에서 말하는 그거처럼…….'

동욱과의 대결에서 다시 한 번 그 상태가 되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많은 부분에 있어 운에 의지해야 했다.

투수로서 운에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만큼 동욱은 강타자였다.

"모르겠다. 있으면 좋겠는데… 마땅한 게 없네."

"그것도 그렇지만 지금은 그 녀석이 타자라는 것이 부럽네. 우리랑 달리 매 경기마다 나설 수 있으니까."

"그건 어쩔 수 없잖아. 그리고 그것도 동욱이가 그만큼 뛰어나니까 가능한 거야. 다른 팀의 일반적인 4번 타자였으면 그런 부러움도 없었겠지."

"그건 그렇지. 그래도 한 경기에서 승리가 결정됨에 있어서 제일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은 역시 투수니까."

어쩔 수 없다.

타자는 번갈아가며 투수를 상대하지만 선발투수는 상대 팀의 모든 타자를 상대로 공을 던져야 한다.

승리를 위해선 여러 가지 요인이 충족되어야겠지만 상대가 점수를 얻지 못하게 막는 임무의 최전선에 투수와 포수가 있다.

투수와 포수가 상대 타선에 뚫릴 경우를 대비해 수비가 있는 것이다.

결국 두 사람이 내리는 결론은 감독과 코치진이 내린 것과 다르지 않았다.

"일단 동욱이를 잡다가 나머지를 놓치지 말고, 다른 타자를 잡는 것이 중요하겠지."

"이번에는 타자들이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하길 바라는 수밖에……."

바꿔 말하면 타자들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다면 이번에도 패배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그 녀석들… 아직도 널 따라다녀?"

동팔이 말하는 그 녀석들은 다름 아닌 혜진의 여동생을 노리는 젊은 선수들이었다.

"응. 어차피 결정은 은진이가 하겠지만."

"그럼 그 이후엔 어떻게 하게?"

이전에는 혹시 모를 기대감으로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 희망이 끊기면 지금 받는 대우도 끊길 수 있었다.

물론 선택을 받은 그 사람은 제외하고.

그것을 예상하면서도 지완은 결코 걱정하지 않았다.

"상관없어. 처제는 내가 재기한 다음에 여기 놀러 올 예정이거든."

*     *     *

뉴욕 양키즈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팬들은 물론, 메이저리그를 보는 대부분의 팬들이 관심을 가지는 경기가 곧 시작된다.

그들이 이 경기에 관심을 가지는 건 두 팀 때문이 아니었다.

메이저리그의 두 리그를 포함해도 최고 투수라 평가 받는 강동팔과 역대 최강의 타자로 인정받는 한동욱의 대결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팀으로 인해 관심을 가졌다면 어제 있었던 경기부터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의 많은 팬들이 오늘 있는 경기에 집중하는 것은 투타의 대결이 될 두 사람의 대치 및 상대하는 과정과 결과였다.

거기에 두 사람 다 한국인이었으니 코리안 더비로 명명될 수 있었다. 이전에도 코리안 더비가 있긴 했지만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는 더비가 아니었다.

고작해야 한국 팬 정도나 관심을 가질 더비.

하지만 오늘 있을 코리안 더비는 미국 전역에 있는 야구팬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메이저리그의 중계진은 물론 중계 화면을 통해 한국에서 중계하는 사람들도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전적의 기록을 파악하여 소개하고 있었다.

[역시 용호상박이라 할 수 있죠. 어느 한쪽이 일방적인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한국에서 있었던 두 사람이 첫 대결에서 강동팔 선수는 한동욱 선수의 연속 무삼진 기록을 끊었지만, 한동욱 선수는 강동팔 선수에게 첫 홈런을 각인시켜주었죠.]

[하지만 마지막 세 번째 타석에선 한동욱 선수가 범타로 아쉽게 물러났습니다. 생각보다 싱거운 결과였죠. 거의 무승부라고 봐도 될 정도였습니다. 그때 강동팔 선수는 잘 던졌고, 잘 던진 공을 한동욱 선수가 잘 받아쳤지만 힘이 조금 부족했습니다.]

한국의 중계 화면에선 프로야구연맹의 도움으로 얻은 화면이 나오고 있었다.

중계가 나오는 사이, 더그아웃에 있는 동팔은 기시감이 들었다.

'리그도, 팀도 달라졌는데도 이런 감각이라… 하긴. 처음 상대했을 때 그 느낌이 이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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