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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상으로야 그렇지. 하지만 지미. 상대팀을 분석할 땐 기록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있는 진짜 의미를 봐야 한단다."
"진짜 의미요?"
지미의 물음에 같이 아침을 드시던 엄마가 말했다.
"네 아빠 직업병인 분석 병이 또 시작된 거란다. 그래도 이런 쪽에 일가견이 있으니 우리가 이렇게 잘 살고 있잖니. 으스대는 건 닮지 않았으면 하지만… 그래도 아빠의 능력은 본받으렴."
칭찬과 함께 단점도 지적하니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고민하는 아빠.
그래도 마냥 나쁜 말이 아닌 인정을 받았으니 헛기침을 하며 이어 말했다.
"크흠. 일단 야구를 볼 때, 중계 화면에선 기본적인 통계만 나온단다. 하지만 진짜 분석가는 이전의 정보를 바탕으로 더 자세한 것을 파악해야 하지. 그중에 하나가 팀의 분위기란다. 그건 수치화할 수 없고, 직감에 의존해야 하는 건데… 일단 클리블랜드의 막강한 화력은 단 한 사람으로 인해 가능한 거야."
아빠의 부연 설명에 지미도 아빠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아차렸다.
"아, 설마 한동욱 선수 때문인가요?"
그러자 아빠는 한껏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지. 잘 알고 있네. 역시 우리 아들이야. 맞아. 한동욱 때문이지. 이번 시즌에 기복이 있지만 그래도 5할 타율에 육박하는 강타자. 거기에 선구안이 좋아 출루율도 높아. 거기에 가려져 있지만 도루 성공률도 아주 높지.
그럼 투수 입장에서 보면 한동욱은 최고의 클린업이자 리드오프가 된단다. 그런 타자를 상대할 수 있는 투수는 메이저리그에서 최소한 1선발 급은 되어야 가능하겠지.
"
아빠의 말에 지미가 덧붙였다.
"그리고 삼진까지 잡을 수 있는 투수는 세 손가락에 꼽히겠죠? 그중에 한 사람이 옆집에 사는 동팔이 형이고."
나이 차이가 꽤 나긴 했지만 그래도 아저씨 소리 듣는 것보다는 나으니 동팔이 형이라고 부르라 한 것이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입에 익자 이제는 아저씨 소리가 어색해졌다.
덤으로 민희는 누나라는 한국어까지 가르쳐주면서 그렇게 부르라고 했다. 덕분에 지미와 로키는 아무 것도 모르고 민희에게 민희 누나라 부르고 있었다.
"그렇지. 최고 구속을 던지는 뱅가너도 거기에 못 끼지만, 거쇼의 변화구와 오타니의 포크볼. 그리고 다양한 변화구를 자유자재로 던지는 강동팔 정도가 한동욱에게 삼진을 잡을 수 있지. 물론 어느 정도 운이 따라줘야 하지만… 다른 선수는 운이 따라줘도 범타가 전부니까."
일반 팬이 봐도 한동욱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다른 사람보다 분석능력이 좋은 지미의 아빠는 더욱 그러했다.
"강속구에 특히 강하니 의미가 없고, 유일한 틈이라 할 수 있는 변화구도 선구안이 좋으니 쉽지 않아. 거기에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오는 공은 어떻게든 건드리니 삼진도 쉽지 않고. 그나마 잘 맞지 않거나, 운이 좋아 기다리고 있던 수비에게 공이 가는 경우에만 아웃을 잡을 수 있지.
또 견제 사는 당한 적이 없고, 도루 실패도 없어. 나가는 것을 막기가 쉽지 않은데 나가면 주자로서 견제하며, 또한 주루하면 막지도 못해. 이러면 투수는 정신이 사나워서 다음 타자를 상대할 때 흔들릴 수밖에 없지 않겠니?
"
아빠의 말에 야구에 큰 관심이 없는 엄마도 동욱을 상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약간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확실히 동팔이 형이 동욱을 상대로 삼진을 거둔 적이 있다는 것이 놀라워요. 전에 동팔이 형한테 물어보니까, 형도 동욱을 상대할 땐 하늘에 맡기는 심정으로 던진다고 하던데요?"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다른 투수는 어떻겠니?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12점이나 먹은 것은 너무했어. 한동욱에게 털릴 수는 있지만, 다른 타자들에게 털린 건 정신이 흔들려서 그래. 한동욱이 어떻게 행동하든지 싹 무시하고 상대하면 5점 이내로 끝낼 수 있었어."
"그러니까 어제 대패한 이유는 한동욱에 의한 것은 사실이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란 거죠?"
"그럼. 그에게 계속 홈런을 맞아도 잃을 점수는 많아야 3점. 주자가 나가 있을 경우를 감안해도 5점을 넘기 어려웠다. 하지만 계속 주자에게 신경을 쓰니 제구가 흔들리고, 실투를 던지게 되고, 결국 그것을 놓치지 않은 타자가 계속 안타를 치고, 그 주자가 나가 다시 흔들고… 그런 악순환이 반복되었어. 그것도 두 이닝 사이에."
간단히 말하면 지미의 아빠는 패배는 용납할 수 있지만 형편없는 경기력에 대해선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지미가 말했다.
"하지만 오늘을 다를 거예요. 무엇보다 동팔이 형이라면 흔들리지 않을 테니까요."
지미의 말에는 동팔에 대한 믿음이 담겨 있었다.
"반대로 동팔이 마운드에 올라도 진다면 타격은 꽤 클 거야. 분위기와 흐름이 안 좋은 쪽으로 흐를 테니까."
* * *
어제 경기에서 대패한 이상, 이번 경기는 어떻게든 이겨서 반등해야 하는 뉴욕 양키즈.
당연히 선수들이 일어나기도 전에 감독과 코치들이 모여서 오늘 있을 경기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역시나 한동욱이 문제인가?"
"그것도 있지만… 투수가 너무 흔들린 것이 제일 큰 문제입니다."
"알고 있어. 하지만 어느 투수라도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흔들리기 마련이야. 그때 우리가 재빨리 나서서 끊어야 했어."
감독은 절로 자조적인 생각이 들었다.
'연승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라는 경고가 있었는데도 이런 꼴이라니…….'
그는 혜진이 경고한대로 선수들이 승리의 분위기에 과도한 고취를 보이면 지체 없이 교체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상태를 봐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감독만이 아니라 코치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제 경기에서 투수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으면서도 괜찮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
이전이라면 바로 포수에게 지시를 내려 투수에게 가라고 하던가, 아니면 투수 코치가 다가가서 안정을 시켜줬을 것이다.
덤으로 상대의 흐름을 끊어주는 효과도 있으니 안 하면 이상한 일.
그러나 연승의 분위기에 의해 위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아차렸음에도 행동이 너무 늦었다.
결국 4회 초에 대량 실점을 하였고, 이어서 불펜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 바로 올라온 투수도 흔들리는 바람에 또 대량 실점을 하고 말았다.
"그래도 어제 진 덕분에 정신이 바짝 드는군. 그리고 마침 오늘 경기는 상대적으로 편하게 준비할 수 있다는 점이 다행이고."
오늘 선발등판하는 투수는 명실공이 메이저리그 최고 투수로 평가받는 강동팔이었다.
뛰어난 투수가 있다는 사실은 대패를 한 다음에도 여유를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
"동팔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준비는 해야지. 사실 클리블랜드의 다른 타자들보다 한동욱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하니까."
감독의 말에 코치들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그건 강동팔이 선발로 나왔을 때 이야기입니다. 동욱에 가려져서 그렇지, 다른 타자들도 강하죠. 3번과 5번 타자는 다른 팀에 갔으면 4번 타자가 되었을 선수들입니다."
"클리블랜드의 타선은 클린업 전부가 4번 타자 급의 역량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1, 2번의 타율도 꽤 높고, 하위 타선이라고 만만하게 볼 수 없습니다. 쉬어갈 수 있는 타선이 없습니다."
그들의 말에 감독이 말했다.
"그건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적어도 오늘은 한동욱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는 거지. 그리고 그를 깬 분석관이 우리 팀에 있으니까 더 좋은 기회야."
감독의 말에 다른 코치가 말했다.
"분명히 한동욱에게 약한 공이 있고, 어떤 공인지 알아낸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런 공을 던질 수 있는 투수는 우리 투수들 중에 세 명이 전부입니다. 아, 지완이 복귀하면 네 명은 되겠군요."
"그래도 그게 어딥니까? 다른 팀은 두 명 겨우 채울 겁니다."
명문 구단에 재정이 탄탄한 덕분인지 뛰어난 역량을 지닌 선수가 있다는 증거. 그리고 뉴욕 양키즈의 저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 수 있는 대화였다.
"지완의 복귀 시점은 나중에 정하기로 하고, 중요한 건 동욱에게 약한 구질이지?"
"그렇습니다. 놀라운 사실인 반면 그러니까 동욱이 왜 강타자가 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신경 전달 속도가 몇 배 빠르다는 건 그만큼 운동하는 모든 선수들에게 유리한 능력이죠. 아마 복싱을 했다면 무하마드 알리의 재림이라 불렸을 겁니다."
"맞아. 그건 인정해. 아무리 빠른 100마일(161km/h)의 강속구라도 30마일(48.3km/h)의 속도로 보이면 못 칠 것이 없겠지."
"거기에 관찰력도 좋아서 투수가 공을 던지는 순간의 그립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변화구를 던져도 예측이 가능하니 5할에 준하는 타율을 유지할 수 있는 겁니다."
다른 타자들에겐 투수가 공을 던지고 나서 0.3초 내외의 시간밖에 허용되지 않는다.
단순히 절대적인 시간으로 보면 동욱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동욱은 상대적으로 0.3초가 아닌 1초 내외의 시간을 가지고 투수의 공을 공략할 수 있다.
믿기 어려운 사실이었지만 그동안의 결과도 믿을 수 없는 것이니 받아들여야 했다.
"당연히 강속구로 동욱을 상대하는 건 미련한 짓입니다. 이미 모든 투수들에게 경고했지만, 강속구가 막히면 다른 방법이 없는 투수는 그냥 맞으라는 것밖에 안 되는 지침이죠."
"그래서 중요한 건 동욱이 구종을 확인할 틈을 최소화시켜야 하니 팔을 최대한 비틀어야 하고, 공의 속도도 느리면 안 됩니다. 그에겐 너클볼도 다른 구종과 마찬가지로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야 너클볼은 예측할 수 없지만 느리니까. 특히 더 느리게 느끼는 그에겐 좋은 먹잇감 중에 하나겠지."
"거기에 동팔이 던질 수 있는 자이로볼도 통하지 않죠. 처음 통했던 것은 생소한 투구 폼과 구종 때문이지 이젠 소용없다고 합니다."
코치의 말에 감독이 물었다.
"그건 누가 그렇게 말했나? 혜진이?"
"아닙니다. 동팔 본인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공부와 분석을 많이 하기 때문에 빠른 반응이 가능하지만, 반면 해당하는 투수가 처음 던지는 구종에 약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한 번 던지면 그것까지 감안하기 때문에 상대하는 것이 더 어려워진다고 합니다."
"속도의 차이겠지. 동욱이 투수의 공에 적응하는 것은 빠르지만, 투수가 실전에서 던질 수 있을 만큼 구종을 단련시키는 것에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알면 알수록 상대하는 방법이 보이지 않는 타자였다. 심각해지는 분위기에 감독이 말했다.
"하지만 삼진이 거의 없고, 볼넷이 많을 뿐. 아웃 안 당하는 것도 아니야. 그게 아니었으면 탸율이 5할을 훌쩍 뛰어넘었어. 그게 아니란 건 역시 상대가 불가능하지 않다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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