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240화 (240/325)

[240]

"너, 평상시랑 다르게 먹는 이유가 뭐야? 뭐 잘못 먹었… 아니, 이 말이 아니라… 무슨 일 있어?"

그의 물음에 그들은 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래를 위한 투자야."

입에 맞지 않아도 어떻게든 목을 넘기려는 그들의 또 다른 사투가 시작되었다.

*     *     *

클리블랜드의 동욱은 타석에 들어서기 전, 준비하는 곳에서 배트를 휘두르고 있었다.

배트에 묵직한 배트링을 껴놓았기에 평상시보다 더욱 무게가 느껴졌다.

하지만 이것도 계속해 온 것이라 익숙했다.

따악!

잠시 기다리는 사이, 앞서 타석에 선 클리블랜드의 3번 타자가 안타를 쳤다.

가벼운 단타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클리블랜드의 팬들은 크게 환호할 수 있었다. 바로 그 뒤에 올라올 한동욱 때문이었다.

"됐다!!"

"한동욱 앞에 주자가 나갔어!!!"

한동욱의 타율은 2년 차 징크스 따위를 무시하며 여전히 5할에 근접하고 있었다.

하지만 팬들이 걱정하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타율이 들쭉날쭉하던데……."

"잘 칠 때는 전 타석 안타가 종종 나오지만……."

"못 치면 3타수 1안타가 겨우 나왔지?"

3타수 1안타만 해도 타율이 0.333이다.

3할의 타율을 기록하는 것만으로 클린업 트리오에 포함될 수 있으며, 강타자라 불리는 조건이 된다.

그것도 메이저리그에서 3할이라면 무게가 다르다.

하지만 그마저도 동욱의 앞에서는 무게가 확연히 줄어든다. 그의 시즌 평균 타율은 여전히 5할을 노리고 있으며, 그보다 2할이 떨어지는 3할의 타율은 슬럼프가 온 것이 아닌가 걱정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러나 제일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 정치인 걱정이라는 말이 있듯 동욱에게 이런 걱정은 무의미했다.

슬럼프에 빠졌다는 말을 들어도 다른 타자들보다 뛰어난 활약을 보이는 그에겐.

나와 있는 주자는 방금 안타를 친 3번 타자를 포함해 먼저 볼넷을 골라서 나간 1번 타자가 2루에 있었다.

잘 맞은 타구 덕분에 주자가 아웃되지 않았고, 이젠 2사에 1, 2루가 되었다.

이런 경우, 압박을 받는 쪽은 투수보다 타자다.

비록 방금 안타를 맞았지만 투수는 희생플라이의 걱정이 없다.

반면 타자는 삼진, 범타가 허용되지 않는다. 거기에 잘 쳐도 수비가 있는 쪽으로 타구가 가면 주자가 아웃된다.

주자가 아웃되지 않는 코스로 공이 빠져나가거나 홈런을 쳐야 하는 것으로 선택의 폭이 줄어든다.

하지만 동욱을 상대하게 되면 이런 상황에 압박을 받는 쪽은 오히려 투수였다.

'젠장… 어떤 공을 던져야 하는 거지?'

상대하는 선수가 투수라면 잘해야 5일에 한 번.

불펜이라도 한 경기에 한 번 상대하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선발타자라면 계속 상대하게 되니 껄끄럽다.

거기에 단순히 출루율만 높은 것이 아니라 타율이 높은 타자는 더욱 곤란하다. 그것도 힘든데 장타 생산 능력도 발군이며, 타점 생산은 압도적인 1위.

구단의 에이스인 1, 2, 3 선발 급이라면 어떻게든 뚫어보거나 상대할 길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외의 투수들은 상대하기 막막한 동욱에게 얼마나 견제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긴장하지 말고… 홈런을 의식하기보다 차라리 단타로 1점만 나는 것도 각오하자.'

투수가 타자를 상대로 점수가 날 상황을 생각하는 것은 금물.

기본적으로 상대하는 타자를 이길 수 있다는 생각 또는 삼진이 힘들더라도 수비를 믿고 범타 유도 및 기원을 해야 했다.

상황적으로 압박을 받을 타자였지만 한동욱의 능력은 그것을 반대로 만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럴 능력이 충분히 있었다.

지금 한동욱은 안타를 칠 수 있느냐 없느냐로 고민하지 않았다.

'후우… 그냥 홈런으로 끝낼까? 아니면 계속 공격을 이어갈 수 있게 흔드는 쪽으로 갈까?'

이대로 홈런을 쳐서 3점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주자가 일거에 사라져 투수를 흔들 방법이 줄어들게 된다.

빅이닝은 하나의 홈런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여러 개의 안타와 볼넷 및 실책이 연이어 나오면서 생기기 때문이다.

'지금 상대하는 투수의 구위가 생각보다 좋지 않아. 그럼 후속 타자들도 충분히 노릴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비록 투 아웃이긴 하지만 노아웃이라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니다. 가끔 가다가 삼중살로 인해 한순간에 이닝이 종료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아웃 카운트를 하나 남겨놓은 상태에서도 충분히 많은 점수를 내는 것도 가능하다. 투수가 흔들리고 있다면.

동욱은 상대 팀의 불펜을 슬쩍 봤다.

'불펜은 방금 전에 막 가동되었어. 하긴… 아직 초반이니 준비되지 않았겠지만…….'

혹시라도 모를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상대팀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그리고 동욱은 알고 있다.

몸이 최상의 상태가 되기 위해선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동욱은 결정을 빠르게 내릴 수 있었다.

긴장하는 것은 투수만이 아니라 수비도 마찬가지.

투수 혼자서 동욱을 감당하라는 것이 너무 가혹한 일임을 그들도 안다.

그렇다면 투수가 타격을 허용하게 되더라도 그 이후에 자신들이 수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경기의 흐름이 바뀜을 알고 있다.

그래서 어느 곳으로 타구가 오더라도 대응할 수 있도록 적절히 몸에 힘을 분산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초구를 노린 동욱.

따악!!

경쾌한 소리를 내며 동욱의 타구가 빠르게 날아갔다.

각도는 높지 않아 홈런의 가능성은 낮았다.

이미 2아웃인 상태였기에 주자들은 어떻게 되든지 간에 일단 뛰었다.

휙!!

제일 먼저 유격수가 몸을 날려 동욱의 타구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정확한 타격과 강한 힘이 실린 타구는 유격수의 글러브와 한끝차이로 빠져나갔다.

"와~!!"

유격수를 통과한 이상, 남은 것은 외야수.

그중에 중견수와 좌익수의 커버가 얼마나 빠르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데 유격수의 틈을 뚫은 타구는 둘 사이의 어중한간 곳을 향해 갔다.

이미 날아오는 타구의 방향을 읽은 중견수와 좌익수는 타구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둘의 동선이 겹쳐지지 않도록 중견수는 앞으로 향했다. 반면 좌익수는 중견수의 커버를 위해 뒤로 향했다.

효율적인 공간 활용으로 인해 중견수마저 뚫은 타구는 좌익수의 글러브에 들어왔다.

당연히 주자를 저지하기 위해 송구하려 했지만 이미 1루 주자는 홈에 도착했다. 그리고 타격과 동시에 전력으로 달린 2루 주자도 슬라이딩을 하며 홈에 안착했다.

거기에 동욱도 빠르게 달리며 2루에 안착한 다음.

좌익수가 할 수 있는 것은 동욱이 3루로 가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견제하는 것이 전부였다.

"와~!!!"

주자를 쓸어 담은 2타점 2루타. 거기에 여전히 주자가 있으니 투수의 입장에선 여간 껄끄러운 것이 아니다.

홈런을 맞은 것보다 더 최악의 상황이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남들보다 주력이 조금 더 빠를 뿐만 아니라, 반사적인 움직임이 뛰어나 동욱을 견제하는 것이 어렵다.

실제로 타율에 가려져서 그렇지 도루 시도와 성공률이 아주 높은 선수가 한동욱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남들보다 느린 세계에 살고 있는 동욱에게 있어 주자 견제는 우스운 일에 불과했다.

거기에 투수가 공을 던지는 타이밍과 도루할 수 있는 정확한 차이를 파악할 수 있다. 또한 뒤에 있으니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질지 알 수 있기 때문에 2루에서의 도루가 훨씬 쉽다.

반응 속도가 빠르니 남들보다 반 발자국 더 앞에서 견제도 가능하다. 그리고 그 반 발자국으로 인해 투수는 더욱 신경이 쓰이기 마련.

'잡을 수 있을까?'

더군다나 지금은 투 아웃 상태이니 이대로 2루에 있는 동욱을 잡으면 지옥 같은 이닝을 마무리할 수 있다.

그 유혹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이렇게 두들겨 맞는 중, 아직 불펜이 준비가 되지 않아 교체도 안 되는 상황이라면.

스윽. 휙.

투수는 혹시라도 모를 기회를 잡기 위해 견제구를 던진다. 이미 2루에서 대기하고 있는 2루수는 투수의 견제구를 가볍게 받았다.

하지만 이미 보고 있던 동욱은 2루에 발을 대고 있었다.

공을 받지만 아쉬운 마음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계속 견제를 할 수 없으니 이번에 상대할 클리블랜드의 5번 타자에 집중해야 했다.

하지만 2루에서 아슬아슬하게 있는 동욱이 신경 쓰인다.

'젠장… 집중하자! 집중!!'

동욱을 잡는 것도 좋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 타석에 선 타자를 아웃시키는 것이다.

집중하려 해도 2루에서 언제 3루로 도루할지 모르는 동욱을 슬쩍 한 번 본 다음에 공을 던졌다.

휙~ 퍽!!

하지만 공은 제구가 되지 않아 아래 바깥쪽으로 너무 떨어졌다. 포수가 겨우 잡았지만 하마터면 와일드 피칭이 될 뻔했다.

"휴……."

포수에게 미안하다는 사인을 보내고 공을 받았다.

다시 동욱을 슬쩍 보더니 다시 공을 던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동욱을 너무 신경 썼는지 공이 빠지고 말았다.

휙~ 턱.

공이 빠지자 동욱은 바로 3루로 향해 달렸다. 그리고 슬라이딩을 하여 더 이상 진루에 욕심을 내지 않고 안전하게 도착했다.

포수의 재빠른 행동으로 인해 만약 동욱이 계속 달렸다면 홈에서 아웃될 가능성이 높았다.

이미 투수가 홈에 와 있었으니까.

결국 와일드 피칭으로 3루에 주자를 허용하고 만 투수.

또 한 번 와일드 피칭을 한다면 실점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동시에 투수는 동욱이 도루할 것에 대한 걱정을 지울 수 있었다.

'설마 3루에서 홈으로 달려들지 않겠지.'

와일드 피칭이 아닌 이상 그럴 가능성은 현저히 낮았다.

하지만 단타 하나로 인해 점수가 날 가능성이 월등히 높아졌다는 것도 문제.

결국 이후 타자의 적시 안타로 인해 동욱은 홈을 밟을 수 있었고, 동료의 환호를 받으며 더그아웃에 들어왔다.

큰 실책을 연달아 하지 않는 이상 승리의 기운이 물씬 느껴지는 클리블랜드. 그리고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는 동욱은 이 다음에 상대할 팀을 떠올린다.

'이번 경기를 마치고 뉴욕으로 가지? 양키즈라… 요즘 들어 기세가 등등하던데…….'

그 팀은 바로 동팔이 있는 뉴욕 양키즈.

거기에 두 번째 경기에서 동팔이 선발로 등판한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동욱은 승부욕을 불태우지 않는다.

지금 그가 불태우는 것은 승부를 겨루는 것이 아닌, 새로운 실험과 그 결과의 궁금증이었다.

'과연 동팔이를 상대로 그 능력이 얼마나 통용될지 모르겠지만… 실험은 해보는 게 좋겠지. 그때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그가 바라는 대로 사흘 뒤, 양키즈의 5선발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클리블랜드는 동팔이 등판하는 또 다른 양키즈와 경기를 하게 된다.

#개인과 팀, 팀과 개인

뉴욕 양키즈의 팬이자 동팔의 옆집에 사는 지미네 가족은 오늘 있을 경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무리 5선발이라지만… 그렇게 두들겨 맞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떻게 12대 3이 될 수 있는 거지?"

"클리블랜드잖아요. 아빠. 지금 메이저리그에서 제일 화력이 강한 팀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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