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
그러는 사이 동팔의 말이 이어졌다.
-선수들을 주로 받는 호텔이라 그런지 시설이 좋아.
"아… 그래? 혹시 너 말고 또 다른 사람 있어?"
-응, 브라이언도 같이 있어.
브라이언은 동팔은 물론 다른 투수와도 호흡을 맞추는 양키즈의 선발 포수였다. 그리고 이후로 두 명의 선수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동팔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있다는 말을 듣자 펍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던 그들은 약간 돌기 시작한 취기가 단번에 사라졌다.
'동팔도 이렇게 하는데 왜 우린 여기에 있지?'
'이렇게 놀아도 될까?'
그런 생각이 들 때, 동팔의 말이 그들의 귀를 통해 마음에 박혔다.
-이제 시즌 시작이야. 아직도 갈 길이 멀어. 그러니 벌써부터 안주하면 다음에 어떤 일이 어나도 모르는 거야.
나직한 그의 말. 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마음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었다.
고작 한 번의 대승으로 만족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그들은 마시고 있던 맥주를 놓았다. 그리고 동팔에게 말했다.
"좋은 것 하고 있으면 말을 해야지. 잠깐 기다려, 우리도 곧 갈게."
그들은 곧 호텔 종업원에게 물어서 헬스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거 아는 친구들 얼마나 있을까?"
"많지 않을 걸."
"그럼 뭐해? 당장 알려 줘야지. 여기가 아니라 다른 곳에 가서 즐기고 있을 녀석들이 있을 것 아냐?"
비상연락망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다른 선수들에게 직접 통화를 하거나, 통화가 되지 않으면 문자를 주는 방법으로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반응이 나왔다.
"뭐? 동팔이 오늘도?"
"항상 한다고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할 줄이야……."
덤으로 동팔의 소식을 제일 먼저 들은 선수들은 다른 선수에게 동팔이 한 말도 같이 전해줬다.
'시즌은 이제 시작이야. 마음 놓기에 너무 일러.'
그리고 그 말로 인해 열심히 승리의 기분을 즐기고 있던 선수들이 택시를 타고 빠르게 복귀하기 시작했다.
맥주라지만 술을 마셨으니 음주운전을 할 수 없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래도 역시 받는 연봉을 생각하면 택시비 정도는 우습다.
호텔 헬스장에 도착한 양키즈 선수들이 본 것은 동팔을 비롯하여 다른 선수들이 헬스장을 가득 채운 모습이었다.
"와… 정말이네……."
"그런데 동팔은 아직도 있어? 말을 들어보면 지금쯤 방으로 가 있어야 하는 것 아냐?"
그들은 동팔이 벤치 프레스 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머리 위로 다른 선수가 바벨의 중간을 잡아, 들기 쉽게 도와주고 있었다.
동팔이 들고 있는 바벨을 보면 한 눈에 봐도 육중한 무게가 느껴졌다.
"끄읍……."
처음에는 힘들어 보였지만, 결국 끝까지 든 다음 바벨을 걸어놓았다.
"고마워, 브라이언. 덕분에 겨우 들었네."
"너무 무거운 것 아냐?"
"아냐. 오늘은 많이 던져서 힘이 든 거지, 평상시에도 이 정도는 해."
동팔은 벤치프레스에서 일어났다.
"그럼 난 가볼게. 내일 봐."
"어, 내일 봐."
제일 먼저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으니 먼저 가는 것도 당연한 일. 나오는 길에 마침 들어온 다른 동료와 만나자 역시 내일 보자는 인사와 함께 헤어졌다.
동팔이 자리를 떠나자 방금 온 선수가 재빨리 움직였다.
"이게 동팔이 했던 거지? 얼마나 무거운지 한 번 들어보자."
바벨의 무게를 확인도 하지 않고, 바로 들려고 하자 브라이언이 말렸다.
"야, 잠깐. 이게 얼마나 무거운데……."
하지만 브라이언이 경고를 마치기도 전에 그 선수는 동팔이 방금 들었던 바벨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동시에 신음이 터져 나왔다.
"으윽… 뭐 이렇게 무거워……? 헬미(help me), 헬미!!"
처음에는 호기롭게 들어 올렸지만, 점점 바벨이 내려가더니 가슴 위로 내려왔다. 그리고 내려온 바벨은 다시 올라가지 못했다.
그러자 다급했는지 평상시와 달리 다급한 목소리로 도움을 요청했다.
브라이언이 얼른 바벨의 중간을 잡아들어 올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거 150kg이야. 준비운동도 하지 않고 갑자기 들면 훅 간다."
"뭐? 어쩐지……."
그래도 오후 훈련 때, 웨이트 트레이닝을 꾸준히 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정말로 큰 부상을 당할 뻔 했다.
바벨을 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게를 확인했다.
"와… 정말로 150이잖아? 오늘 힘이 많이 빠졌는데 이렇게 무거운 걸 들어도 되는 거야?"
야구는 힘보다 정교함과 순발력을 더 필요로 하지만, 그렇다고 근력이 무시되는 운동은 아니다.
빨리 달리기 위해서, 그리고 강한 타격을 위해선 강한 근력이 필수다. 거기에 부상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체력을 키우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덤으로 빠르고 강한 공을 던지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렇게 무겁게 들 필요가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러자 브라이언이 말했다.
"오늘 선발이니 이 정도로 끝나는 거야. 다른 날엔 170까지 들어. 어쩌면 우리 팀에서 힘으로 따지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걸?"
브라이언의 말에 다른 선발 투수인 델린 피네다가 말했다.
"너희들 아직도 모르는 것 같은데 악력은 제일 강해. 동팔의 변화구가 괜히 날카로운 게 아니야. 내가 우연히 그걸 보지 않았다면 계속 모르고 있었겠지만."
투수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타자들은 모르고 있는 사실이었다.
"얼마나 강한데?"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맨손으로 호두를 부술지도 몰라. 손가락 하나로 푸쉬업을 쉽게 하거든."
델린 피네다의 증언에 그 사실을 처음 들은 다른 선수들. 또는 그것을 보지 못한 선수들이 깜짝 놀랐다.
"정말? 혹시 동팔은 태권도가 아니라 쿵푸를 익힌 거야?"
"나 그거 알아. 중국 무술 영화에서 봤어."
"소림사에서 하는 그거 맞지? 그런데 그거 연출 아니었냐? 사람이 어떻게 그걸 하지?"
몸을 극한으로 단련시킬 이유가 없으니 그 정도까지 단련시키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쉽게 믿을 수 없다는 그들의 말에도 직접 그걸 본 증인들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오늘은 어려우니 내일 되면 보여달라고 해."
"그럼 우리가 왜 이 말을 했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
그동안 동팔은 손가락만으로 몸을 지탱하여 푸쉬업을 해왔다. 하지만 그걸 본 코치가 부상을 염려하여 더 이상 하지 못하게 했다.
어차피 회복되는 몸이지만, 일일이 설명할 수 없으니 구단에서 훈련할 때는 자중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항상 했었던 손가락 푸쉬업.
이제 완전히 에이스가 된 지금, 코치가 보지 않을 때 손가락 푸쉬업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말렸던 코치였지만, 이전부터 이렇게 해왔다는 동팔의 말과 완전히 에이스로 인정받은 그의 위상으로 인해 계속 말리지는 못했다.
덕분에 지금은 동팔의 악력의 비밀이 투수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나도 지금은 손가락만으로 하려고 하는데…쉽지 않더라. 동팔의 말대로 무리할 필요는 없으니 조심하고 있지만."
손가락의 근육은 섬세하고 작기 때문에 항상 주의해서 다뤄야 한다. 특히 투수에게 있어서 손가락은 어떤 구종을 던질지를 정하는 중요한 부위다.
동팔의 악력이 부럽긴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 수년간 노력했음을 생각하면 성급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던 중, 헬스장에 양키즈의 코치가 들어오더니 깜짝 놀랐다.
"어? 너희들 왜 여기 있어?"
지금이라면 승리의 기운에 취해 적당히 즐기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평상시와 달리 헬스장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자 데니 행크스가 먼저 말했다.
"선발인 동팔이가 오늘도 트레이닝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왔습니다. 동팔이도 몸을 푼다고 왔는데 우리가 안 올 수 없잖습니까."
이어서 브라이언이 말했다.
"거기에 아직 시즌 초반이잖습니까. 승리의 삼페인을 터트리기엔 이르죠. 동팔의 말대로."
그들의 말에 코치는 동팔을 찾았다.
"그래? 그럼 동팔이는?"
"트레이닝 다 하고 방에 올라갔습니다."
"그러냐? 알았다. 무리하지 말고 적당히 하고 쉬어."
"네!!"
코치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다. 전에는 경기의 승패에 따라, 자신의 기분에 따라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때도 있고, 안 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시즌만큼은 예외로 두기로 했다. 그리고 그 작은 결심의 차이가 뉴욕 양키즈를 크게 변화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 다시 영광의 팀으로 향하기 위해
토론토와의 3연전에서 스윕한 뉴욕 양키즈는 기세가 등등한 상태로 뉴욕에 도착했다. 존 지라디 감독은 혜진과 만나며 왜 갑자기 팀의 분위기와 성적이 바뀌었는지 알았다.
"역시 마음의 문제였다는 거군요."
"네. 사람이라면 항상 편하게 있고 싶어 하는 것이 본능이죠. 메이저리그에 와서 고액의 연봉을 받으면 제일 먼저 봉착하는 난관은 안주하려는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바꾸냐는 것이거든요. 특히 고액 연봉자가 많은 뉴욕 양키즈라면 이 문제가 더 심각해집니다."
"하지만 그동안 그 문제는 드러나지 않은 문제였고, 항상 주의하는 것인데… 왜 지금 문제가 된 건지 짐작하십니까?"
"전에는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이니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에요. 하지만 이번 시즌에 새로 들어온 선수가 많았고, 나온 선수도 많아 팀플레이에 영향을 많이 준 거죠. 또한 고액 연봉으로 계약한 선수가 많다는 사실도 있습니다."
혜진은 자신이 분석한 자료를 보여주었다.
"확인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오히려 연봉이 적은 선수의 실책 및 실수가 적었어요. 거기에 경기 후에 따로 자발적으로 나와 트레이닝을 한 선수도 마찬가지. 초심을 지킨 선수는 실력을 유지하거나 높였지만, 아닌 선수는 반대의 결과를 가져왔던 거예요."
혜진의 말에 존 지라디 감독이 물었다.
"그럼 이걸 미리 말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중요한 것은 마음의 문제. 그리고 의지에 대한 문제는 안다고 해서 해결할 수 없다는 것.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전부터 경고를 했었지만, 감독님을 포함해 코치들은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으셨잖아요? 단순히 팀워크의 문제라고만 인식하고 거기에 대한 회의만 하다가 끝났었죠. 기억 안 나세요?"
"그건……."
솔직히 말해 기억이 잘 안 난다. 다만 혜진의 말에 존 지라디 감독은 이전에 그녀가 보고했던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하긴 그 비슷한 것을 말한 것 같기는 한데…….'
초심을 잡으라는 권고가 있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은 실력향상 및 몸의 상태를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스프링캠프에서 팀워크를 강하게 하기 위한 훈련을 위주로 하지 않았던가.
전에도 이번 시즌 시작이 어려울 것 같다는 혜진의 분석이 있었지만, 그걸 표면적인 원인만 보고 있었다는 것은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혜진이 아직도 말하지 않은 사실이 있었다.
'제일 중요한 건 감독님과 코치들이 초심을 잃었다는 거지요……. 안주가 아닌, 성적에 집착함으로 인해 야구의 즐거움을 잊었다는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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