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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정말 지금도 잠자리에 누우면, 자신도 모르게 이불을 발로 뻥뻥 차게 만든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만드는 중요한 기억이었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갈 필요 없어. 다리는 굳건하게, 배트 헤드는 세우고, 팔은 편하게. 그러면서 배트를 쥔 손은 강하게…….'
타자에게 있어 자세는 중요하다. 이것은 축구에 있어서 포지션과 같은 역할을 한다. 원하는 위치에 이미 가 있어 상대의 공격을 끊거나, 수비망을 와해시키는 것과 같다.
자신이 원하는 공이 언제 올지 모르고, 어느 공이 오더라도 능숙하고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선 자세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특히 메이저리그는 구속이 빠르기 때문에 타격 자세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다.
그 차이를 알고 실행할 수 있으면 일류 선수가 되는 것이고, 그러지 못하면 영원히 삼류를 벗어날 수 없게 된다.
데니 행크스는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일류였기에 억대 계약을 할 수 있었다.
어느 4번 타자가 그렇듯이 데니 행크스도 공격적인 타자다. 그리고 공격적인 타자의 대부분은 초구를 노린다.
상대의 틈을 노리며 처음부터 투수가 자신에게 유리한 볼카운트를 가져가기 위해선 초구에 빠른 직구를 던지는 경우가 꽤 많기 때문이다.
그걸 알지만 치지 않는 타자가 있고, 틀릴 수 있더라도 과감하게 배트를 휘두르는 타자가 있다.
어차피 초구에 헛스윙을 하더라도 다음에 또 기회가 있는 이상, 주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데니 행크스.
마침 강적을 상대로 볼카운트를 더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 하프는 빠른 직구를 던졌고, 데니 행크스는 그걸 제대로 받아쳤다.
휙~ 따악.
배트에 정확히 맞진 않았지만, 강한 힘으로 밀어붙여 공을 더 멀리 보내려고 했다.
행크스의 힘에 의해 타구는 더 멀리 뻗어나갈 수 있었고, 결국 펜스를 넘어갈 수 있었다.
퍼벙~!!
홈런이 나오자 전광판에선 홈런이라 크게 써서 알려주었다. 더불어 폭죽이 터지며 데니 행크스의 3점 홈런을 축하해 주었다.
루상에 나와 있던 주자들이 전부 홈으로 들어왔고, 홈런을 친 데니 행크스를 축하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데니 행크스가 홈플레이트를 확실히 밟자 전광판의 점수판은 3대 0을 표시했다.
"잘 했어!!"
"역시 하니까 되잖아!!"
기다리고 있던 브렛 버틀러와 데이비드 왓슨이 데니 행크스의 헬멧을 치며 축하해주었다. 그리고 더그아웃에 들어왔을 때, 하이파이브를 하며 역시 열렬히 축하해 주었다.
그 이후로도 타자들은 하프를 상대로 끈질기게 승부를 걸며 괴롭혔다. 전과 달리 쉽게 범타나 삼진으로 물러나지 않으며 결국 2점을 추가하는데 성공했다.
갑작스러운 양키즈 타선의 폭발에 토론토의 감독과 코치들은 고민에 빠졌다.
"다음에 투수를 교체해야 하나?"
감독의 말에 투수 코치가 말했다.
"하지만 하프의 구위는 나쁘지 않습니다. 실투가 일부 있었지만, 제구는 잘 되고 있습니다."
"그런가……."
"그렇습니다. 이건 오히려 양키즈 타선이 오늘따라 잘 터진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상황에 괜히 투수를 교체했다간 역으로 더 큰 일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 아직 불펜도 준비가 안 된 상태입니다."
"그럼 2이닝에 던지는 것을 보고 결정하도록 하지. 혹시 모르니까 불펜은 준비시켜. 하프에겐 내가 말하지."
"알겠습니다."
첫 이닝부터 다섯 점을 실점하며 안 좋은 고민을 한 것과 달리, 양키즈는 다른 의미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타선이 폭발해? 왜 이러는 거야?'
'좋기는 한데 이유를 모르니 더 불안하잖아.'
1회초부터 상대 에이스 투수인 하프로 하여금 41개의 투구를 하게 만든 타선에 칭찬을 했다. 하지만 이유를 잘 모르니 이렇게 고민에 빠진 것이다.
"오늘부터 왠지 훈련을 받을 때 분위기가 다르긴 했었지?"
"거기에 혜진씨도 오늘은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했지만… 그건 어떻게 알고 말한 거지?"
하지만 말을 해준 혜진은 토론토가 아닌 뉴욕에 있었다.
그녀가 말한 원인을 알기 위해선 통화를 하거나, 직접 가야 가능한 일. 하지만 지금은 경기중이라 통화는 어렵고 경기가 끝나야 확인이 가능했다.
"적어도 타선의 집중력이 좋다는 건 확인되었어. 이제 남은 것은 수비에서 실책을 얼마나 줄일지가 관건이야."
"그래도 동팔이 선발인 이상,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겁니다."
코치가 말한 것을 쉽게 할 수 있는 투수는 거의 없다. 하지만 동팔은 위기 상황에 빠져도 삼진으로 넘어가는 것이 가능한 투수라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뉴욕 양키즈의 수비라인이 얼마나 변화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타순은 당연히 1번 타자부터 시작이었다.
동팔은 이미 변화된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확실히 전과 달라. 그럼… 혜진이 말을 믿고 실험해 볼까?'
개막전 이후에는 수비의 계속되는 실수와 실책으로 실점까지 했다. 비록 투수의 자책점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마운드에 올라왔을 때 실점하는 것은 결코 좋은 기분이 아니다.
그리고 마침 동팔은 감독과 코치들이 듣지 못한 혜진의 말을 미리 들었다.
'지금 선수들의 마음을 보면 초심으로 돌아가 있어. 이미 실력이 갖추어진 상태에서 마음을 새롭게 먹은 이상 전과 같지 않을 거야. 확실해.'
증거는 경기 후에 알아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자처했다는 것. 비록 많이 한 것은 아니지만, 약간의 차이가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말도 첨부했다.
'어차피 상대가 쉴 틈을 주지 않는 것이 좋아. 그렇지 않아도 나쁘지 않은 구위에 얻어맞았으니 하프도 많이 흔들리고 있어. 더그아웃에 쉬는 사이 회복할 시간을 주면 안 돼.'
같은 투수지만, 그래도 상대팀인 이상 철저히 흔드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삼구삼진을 연속으로 성공할 수 없었으니, 메이저리그에서 더 어렵기 마련이다.
삼진 욕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효율적인 투수와 빠른 공수 교대를 위해선 범타 유도만큼 좋은 것은 없다.
따악!
마침, 좋은 공이 오는 것처럼 보이자 토론토의 1번 타자는 바로 배트를 휘둘러 2,3루 사이로 타구가 날아갔다.
유격수인 브렛 버틀러가 있는 곳과 어느 정도 떨어진 곳을 향해 날아가는 타구.
범타를 노렸지만, 의외로 잘 맞는 바람에 안타성 타구가 되었다. 그러자 양키즈 팬들은 바로 포기했다.
'끝났어. 이건 안타야!!'
'이것보다 쉬운 것도 못 잡았는데 무슨…….'
계속되는 수비의 실책으로 인해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타구를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있던 브렛은 바로 다이빙 캐치로 타구를 잡았다.
"와~!!!"
"잡았어? 정말?"
예상치 못한 파인 플레이에 놀라는 쪽은 오히려 양키즈 팬들이었다. 동팔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번에는 운이 안 좋아서 맞았는데 다행히 잘 잡았어…….'
동팔이 아무리 잘 던져도 이렇게 종종 안타성 타구가 나온다. 그리고 한국에서와 달리 압도적인 기록이 나오지 않는다.
한 경기에 두 세 번의 피안타는 기본으로 맞는다. 때론 정말로 운이 없으면 생각없이 휘두른 타자의 배트에 홈런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홈런이 아닌 이상 연속해서 맞지 않으니 실점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평균 자책점이 0점대를 기록하는 것이다.
그리고 운이 안 좋아 안타성 타구가 나와도 이렇게 수비에서 커버를 하면 부담은 당연히 줄어든다.
동팔은 브렛 버틀러의 호수비로 가벼운 위기를 넘기자 그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이어서 브렛만 아니라 다른 내야수와 외야수를 믿으며 과감하게 승부해 나갔다.
그 결과 1회말은 고작 다섯 개의 공으로 연속 범타 처리. 결국 토론토의 선수들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다시 더그아웃에서 나와야 했다.
***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원정경기에서 뉴욕 양키즈는 12대 0이라는 압도적인 점수 차이로 대승을 거두었다.
그러니 그들은 자신들이 타고 온 선수단 버스에서 절로 환호성이 튀어나왔다.
"브라보!!!"
한 목소리로 외치며 오늘의 대승을 자축했다. 연패를 화려하게 끊고, 상대의 연승가도를 저지시킨 성취감에 절로 흥이 달아오른다.
그 기분을 가지고 자신들이 묶는 토론토의 호텔에 도착했다. 이후에는 승리의 기쁨을 각자의 방법으로 만끽하기 위해 헤어졌다.
그 와중에 누구보다 많은 부담감을 가지고 있던 데니 행크스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호텔에 있는 펍(pub)에서 다른 동료와 함께 즐기고 있었다.
그는 내일 있을 경기를 생각해 높은 도수의 술을 자중했다. 그렇다고 시원한 맥주까지 포기하는 건 아니었다.
"캬~ 좋다."
맥주가 시원한 것은 물리적으로 시원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현재 기분이 상쾌하기 때문이다.
억대 연봉 계약자로서 성과를 내지 못하다, 오늘 중요한 경기에서 홈런은 물론 장단 안타를 터트리며 맹활약을 했다.
덕분에 이번 경기에서 간만에 MVP로 선정되는 명예까지 누릴 수 있었다.
시즌의 시작과 동시에 받던 압박감을 털어냈으니 안 좋을 수가 있을까. 하지만 그도 지금의 승리가 누구로 인해 가능한지 알고 있었다.
"아, 그런데 동팔은?"
동팔이 마운드를 굳건하게 지키며, 위기 상황을 만들지 않고 범타 유도와 삼진으로 상태 타선을 완벽하게 봉쇄했다.
물론 범타 유도는 투수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수비의 도움이 있어야 가능하다. 하지만 수비망이 촘촘한 곳으로 타구를 보내도록 유도하는 것은 투수의 역량에 좌우한다.
가끔 운이 안 좋아 빠지는 타구가 있었지만, 그 정도는 야구를 하면서 생기는 어쩔 수 없는 불운에 불과했다.
결국 끝까지 완봉을 한 동팔과 타선의 폭발로 이번 대승이 이루어졌으니 데니 행크스는 이 기쁨을 동팔과 같이 만끽하고 싶었다.
하지만 동팔이 보이지 않으니 다른 동료에게 물었다. 그러자 동팔과 제일 친한 마이클이 답했다.
"내가 전화해 볼게. 지금 쉬고 있을지도 몰라. 오늘 선발이었으니까."
전화를 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동팔이 받았다.
"동팔? 나 마이클이야. 지금 어디에 있어? 오늘은 같이 하자."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마이클의 제안. 그들은 지금 동팔이 자신의 방에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동팔의 대답은 의외였다.
-나? 지금 호텔 헬스장에 있어.
동팔의 말에 마이클은 물론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사람도 놀랐다.
"뭐? 헬스장? 여기에 그런게 있었어? 아니 거기에 왜 간 거야? 오늘 선발이라 쉬어야 하잖아?"
마이클의 말에 동팔이 답했다.
-이게 쉬는 거야. 많이 던진 다음, 확 쉬어 버리면 오히려 다음날에 더 뻐근해. 과하지 않을 정도로 풀어주기 위해선 적당히 운동하는 것이 더 좋더라고.
"아… 그래……."
선발로 나선 오늘도 헬스장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뉴욕 홈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캐나다 토론토로 원정을 온 상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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