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
다음날.
'응? 오늘은 뭔가 다른데……?'
존 지라디 감독은 오늘 선수들의 눈빛이 전과 다르다고 느껴졌다. 각오를 세운 것 같은 눈빛이었지만, 그렇다고 낙관하지는 않았다.
'각오가 있다고 해서 모든 일을 성공하는 건 아니다.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된 이유가 있겠지…….'
그래도 나쁘지 않은 변화다. 지금 당장 성과가 없을지 몰라도,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표식이 될 수 있었다.
"오늘도 수비 훈련이다.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이상, 확실히 채워서 팬들에게 승리로 보답해. 이상!!"
"네!!"
선수들의 각오와 함께 훈련이 시작되었다.
연패가 계속되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제일 믿을 수 있는 동팔이 선발이다. 크게 실수하지 않는다면 연패를 끊을 확률이 아주 높았다.
승률이 높아져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오늘따라 왠지 선수들의 분위기가 다른 점이 코치들의 시선을 끌었다.
"뭔지 몰라도 각오는 좋네."
"부디 각오를 한 만큼,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는데……."
"그 전에 무리해서 다치지 말아야지."
선수들이 의욕에 앞서 무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코치들은 냉정하게 훈련을 지시하고, 또 준비했다.
그러는 사이, 지완과 같이 훈련장에 온 혜진은 감독과 만나고 있었다.
"오늘은 분위기가 좋군요."
"그렇죠? 한 눈에 봐도 느껴지니 마음은 좋습니다."
"네… 그리고…좀 달라진 점이 보이기도 하고."
"달라진 점?"
혜진의 말에 감독은 무엇이 달라졌는지 다시 한 번 살펴봤다. 하지만 지금 선수들이 하고 있는 훈련을 보면 이전과 달라진 점이 보이지 않았다.
실전에서 실수를 해서 그렇지, 훈련할 땐 메이저리거의 면모를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실전과 같은 훈련을 하며, 지금도 그들은 숙련되고 전문가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달라진 점이 있습니까? 훈련을 잘 소화하는 건 전과 같다는 걸 알겠지만……."
감독의 의문에 혜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보다 자세가 안정되어 있어요. 흔들림이 거의 보이지 않고, 눈빛도 안정되어 있죠. 전에는 너무 긴장을 해서 어떻게든 훈련을 소화했지만, 실제 경기에선 진이 빠지는 바람에 실수를 많이 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그 반대에요."
혜진의 말에 감독은 다시 선수들을 보았다. 그러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맞아. 전에는 확실히 그랬어. 연패하는 상황을 알고 실수하지 않기 위해 항상 민감하게 있었지. 하지만 지금은 아냐. 마치 시즌 중반의 모습처럼 자연스러워.'
감독은 방금 전보다 기분이 더 좋았다. 하지만 이번에 상대하는 팀은 만만치 않은 팀이다.
"분명히 좋은 상황인데… 문제는 이번에 상대할 팀이 연승가도를 달리고 있는 토론토 불루제이스."
양키즈가 1선발인 동팔을 마운드에 세운 것 같이, 토론토 또한 1선발을 내세울 것이 뻔했다. 거기에 타선은 물론 수비의 짜임세도 좋았다. 괜히 연승가도를 달리는 것이 아니었다.
감독의 혼잣말을 들었는지 혜진이 답했다.
"걱정할 필요 없을 겁니다. 연패를 했다면 이제 승리할 때가 되었다는 의미이고, 연승을 하고 있다면 언제 패배를 당해도 이상할게 없는 거죠. 안 그런가요?"
"확실히 확률적으로만 따진다면 그렇죠."
아무리 뛰어난 팀이라도 162경기를 전부 승리로 장식할 수는 없다. 거기에 연승이 주는 흐름은 선수들로 하여금 계속 무리(無理)하는 분위기를 만든다.
그러다 결국 흐름이 끊어졌을 때, 그동안 무리한 대가를 연패(連敗)라는 이름으로 치르게 된다.
그러니 연승한 후에 연패가 따라오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문제는 그 흐름이 언제 끊어지는지가 중요했다. 토론토 연승의 흐름이 오늘 끊어질 수 있지만, 반대로 연승의 제물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감독이 아직 모르는 사실을 아는 혜진은 단언할 수 있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 오늘의 양키즈는 이전의 양키즈와 다를 테니까."
당시 그 말을 들은 존 지라디 감독은 혜진이 자신에게 힘내라는 의미로 그렇게 말을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그날 경기를 통해 확인하게 되었다.
***
뉴욕 양키즈와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경기는 토론토의 홈경기로 치러졌다.
지금 이 경기에서 팬들이 주목하고 있는 것을 중계진이 정확히 말했다.
"과연 토론토의 연승이 추가될 것인가. 아니면 양키즈가 반등을 하여 연패를 끊을 수 있을 것인가? 그 결과가 궁금한 경기입니다."
"결국 서로의 기록이 이어질지. 아니면 끊어질지의 대결이 되겠습니다."
이어서 중계진의 본분인 이번 경기의 향방과 관전포인트에 대해 말했다.
"일단 마운드로 보면 양키즈가 우세합니다. 팀의 계속되는 연패를 끊는 것은 에이스의 역할입니다. 그리고 강동팔 선수는 에이스의 역할을 충분히 했습니다. 만약 그가 지난 선발 등판한 경기가 아니었다면 양키즈는 8연패가 되었을 겁니다."
"확실히 마운드는 양키즈가 우세합니다. 하지만 수비에서 보면 많이 밀리고 있죠?"
"실책이 너무 많습니다. 새로 들어온 선수가 많다는 건 사실이지만, 이렇게 호흡이 안 맞을 수 있나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강동팔 선수의 위기관리 능력이 있어서 이번 경기에선 큰 틈이 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양 팀의 타선이 얼마나 활약하는지가 관건이 될 것입니다."
해설자의 말에 캐스터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럼 결국 호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토론토의 타선이 약한 건 아니지만, 강동팔의 철벽 마운드를 공략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반면 양키즈의 타선은 시즌 시작부터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거기에 상대해야 할 투수는 토론토의 에이스인 하프 에스트라다 입니다."
"강타선이지만 역시 상대하는 투수가 강한 토론토. 반면 그나마 틈을 노려볼만 하지만 타선이 약한 양키즈. 결국 양팀의 타선이 상대 투수를 어떻게 공략하느냐가 이번 경기의 승패를 결정할 것이라 예상할 수 있습니다."
중계진의 말을 들을 수 없는 양키즈의 타자들은 그들의 말에 화를 낼 수 없었다. 설령 듣더라도 화를 낼 명분도 없었다.
시즌 시작부터 지금까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으니 변명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변명이 있었다. 바로 자신들의 실력을 타격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그냥 승리가 아니라 대승이 목표야. 파란 새 새끼들에게 뉴욕의 맛을 보여주자. 화이팅!!"
"화이팅!!"
각오를 다지며 먼저 공격에 나서는 뉴욕 양키즈.
1번 타자인 브렛 버틀러는 타석에 들어서며 배트를 가볍게 휘둘렀다. 전에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이럴 때마다 피부가 민감해져서 따끔거리듯이 아팠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숙면을 취한 다음 일어난 것처럼 몸이 가뿐했다. 그리고 정신도 더욱 뚜렷했다.
1번 타자인 리드오프의 역할은 타격보다 출루에 더 중점을 둔다. 이는 브렛 버틀러 또한 잘 아는 사실.
그는 최대한 침착하게 하프 에스트라다의 공을 지켜봤다.
휙~ 퍽.
초구는 볼. 하지만 절묘하게 빠지는 공이라 브렛 버틀러는 자신도 모르게 배트가 나갔다가 들어오고 말았다.
"휴……."
일단 잘 참아서 조금 유리한 볼카운트를 만들었다. 고작 1볼이라 유리하다고 장담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 이후로 브렛 버틀러는 자신이 왜 메이저리그에 입성했으며, 명문 구단 중 첫 손에 꼽힐 양키즈의 1번 타자인지를 스스로 증명해 나갔다.
휙~ 딱.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는 공에는 배트가 나가 커트하고, 볼인 공은 참아가며 카운트를 채워나갔다.
처음부터 풀카운트의 접전 끝에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결국 첫 타자는 볼넷으로 걸어 나갔다.
"아~ 처음부터 볼넷이면 좋지 않습니다. 거기에 아웃카운트 하나도 못 잡았어요. 또한 소모한 투구 숫자는 9개나 됩니다."
"그래도 양키즈가 안심할 단계는 아니죠. 병살을 항상 주의해야 합니다. 이어서 나오는 양키즈의 2번 타자 필 마커를 비롯한 후속 타자들이 잘 해줘야 합니다."
중계진의 예상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예상이다. 다만 예상대로 된다면 양키즈에게 유리하고, 안 된다면 토론토에 유리하다.
아직 어느 방향으로 갈지 알 수 없는 가운데 2번 타자인 필 마커가 타석에 올라왔다.
그 역시 끈기 있게 하프 에스트라다의 공을 노렸지만, 7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삼진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그가 타석에 물러나자 중계진이 평가를 했다.
"삼진으로 끝났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늘어졌습니다. 덕분에 하프 선수의 투구 숫자는 벌써 16개가 되고 말았습니다. 고작 1이닝의 1아웃에."
"이후의 타자들도 역시 끈질기게 달라붙으면 토론토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해집니다. 두 선발 투수 중 체력적으로 우세한 쪽은 강동팔 선수입니다. 그는 구위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이닝 소화능력도 메이저리그에서 최고입니다. 7이닝 이하로 던진 경우가 단 한 번도 없었거든요."
"반면 하프 선수는 평균 투수 숫자가 130개 내외에 한 경기 당 소화하는 이닝도 평균 7.2이닝입니다. 준수한 정도가 아니라 뛰어난 수치죠. 하지만 이렇게 투수 숫자가 빨리 소모되면 6이닝까지 던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게 됩니다."
순간 3번 타자인 데이비드 왓슨이 하프의 실투를 놓치지 않았다.
따악!!
경쾌한 소리를 내며 우중간을 깔끔하게 가로지르는 타구. 수비가 잘 되어 있어 우익수가 빠르게 잡았지만, 이미 1루 주자는 3루에 도착한 다음이었다.
그리고 안전하게 가기 위해서 타자는 1루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다.
1사에 1, 3루. 거기에 이번에 토론토의 하프가 상대해야 할 타자는 억대 계약금을 받은 데니 행크스였다.
토론토의 포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마운드로 향했다.
"하프. 긴장하지 말고, 평상시대로 해. 공은 나쁘지 않아. 그리고 지금 데니는 슬럼프라는 사실을 생각해. 시즌 시작하면서부터 제대로 된 타격이 거의 없었어."
포수의 말대로 데니는 억대 계약자라는 타이틀에 맞지 않게 타율이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그의 타율은 1할 9푼대를 맴돌고 있다. 시즌 극초반이라 이후에 맹활약하면 치솟을 타율이지만, 그렇다고 1할의 타율이 마음에 들리가 없다.
덕분에 지금 데니 행크스는 미래의 먹튀라는 별명을 팬들에게 듣고 있었다.
그 사실을 데니 행크스도 모를리가 없다.
'1사에 1,3루. 그리고 나의 타순이라면… 영웅도 될 수 있는 타순이야.'
적어도 자신들 팀의 마운드만큼은 믿을 수 있다. 그럼 승리를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안타를 쳐서 점수를 내는 것.
그리고 지금 마침 그 기회가 있었다.
"후……."
심호흡을 깊게 하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데니 행크스. 그리고 평상시의 익숙한 느낌으로 배트를 고쳐 잡았다.
'긴장할 것 없어. 전에 내가 혜진씨에게 잘 보이려고 잔뜩 힘이 들어갔을 때를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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