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
스윽, 휙~.
이번에도 역시 번트가 쉽지 않은 빠르고 회전이 많은 공을 던졌다. 다만 첫 타자를 상대할 때와 달리, 이번에는 공이 높게 튀어 오르지 않도록 좀 더 아래를 향해 던졌다.
딱!
팀의 중심타선답게 초구에 번트를 성공했다. 하지만 속도를 줄이지 못했는지 공은 빠르게 2루와 3루 사이를 향해 날아갔다.
'젠장!!'
'잡히면 희생플레이도 안 돼!!'
그렇다고 1루 주자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미 타자가 달려오고 있었고, 주자는 타자를 위해 1루를 비워야 했다.
비록 2루에서 아웃되더라도 무조건 뛰어야 하는 것이 1루 주자가 해야 할 일.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아웃될 것이 확실한 상황에 2루로 달려가는 현실이 너무 싫었다. 이왕이면 2루까지 진루하여 득점권까지 나가 있어야 흔드는 것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
아마추어도 아니고, 명색이 메이저리그에서 이런 상황은 최소 2루에서 아웃. 최악은 병살타로 이닝이 끝나는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행운이 여신은 보스턴 레드삭스를 향하고 있었다.
"어, 어?"
공이 오길 기다리지 않고, 먼저 달려가 잡으려던 브렛 버틀러. 하지만 바로 앞에서 공이 불규칙하게 튀는 바람에 놓치고 말았다.
공은 그의 다리사이를 지나갔고, 2루수는 브렛 버틀러가 던질 공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2루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나마 뒤에서 혹시라도 모를 사태를 대비해 따라온 좌익수가 빠져나온 공을 잡더니 바로 2루를 향해 던졌다.
휙~ 턱.
하지만 판정은 한 끝 차이로 세이프. 이대로 끝낼 수 없으니, 상대적으로 출발시간이 늦은 타자를 아웃시키기 위해서라도 2루수는 1루로 공을 던졌다.
휙~ 턱.
하지만 이번에도 한 끝 차이로 타자는 살아남았다.
졸지에 1아웃 상황에서 1,2루가 된 상황.
첫 안타야 행운의 번트로 생각해서 넘어갈 수 있었지만, 두 번째의 경우는 안타가 아닌 실책으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올라오는 타자는 계약자 중 한 사람인 지미 테일러.
솔직히 동팔은 공을 잡지 못해 병살을 실패한 유격수에게 짜증이 났다. 하지만 짜증을 누르고, 다른 누구보다 미안하고 민망할 그를 노려보지 않았다.
오히려 괜찮다는 손짓을 하고 넘어갔다.
'이거 좀 난감할지도…….'
팀의 실책에 의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진 동팔. 그렇다고 해서 큰 위기도 아니었으니 이번에 어떻게 할지 생각했다.
'지미 테일러가 단타를 치면 무조건 실점이야. 안타는 생각하지 말고, 그렇다고 볼넷을 주고 싶지 않아.'
어차피 지난 시즌에도 무난히 상대한 선수다. 다만 지금은 위험의 정도가 더 높아졌으니 조심해야 했다.
그러던 중 동팔은 포수의 사인을 보게 되었다. 동팔은 바로 사인대로 행동했다.
휙!!
동팔은 몸을 뒤로 완전히 돌리지도 않고, 2루로 향해 공을 던졌다. 갑작스러운 동팔의 행동에 당황한 1번 타자는 즉시 슬라이딩을 하면서 베이스에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그의 손이 닿기 전에 공을 받은 2루수의 글러브가 끼어들었다.
"아웃!"
스프링캠프에서 했던 견제 방법 중 하나. 하지만 쉽게 하기 어려운 견제 방법이었다. 그건 포수가 사인을 보내면, 투수가 바로 2루수에게 공을 던져 주자를 견제하는 것.
주자가 미리 알고 움직이면 이미 늦다. 그래서 그 시간을 최대한 주지 않기 위해 준비 동작없이 던지는 것을 연습했다.
공을 던지는 투수가 실수하거나, 2루수가 포수의 사인을 보지 못해 날아오는 공을 놓치면 실패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스프링캠프에서 연습을 많이 했으니 성과가 바로 나타났던 것.
"쳇."
비디오 판독을 요청할 필요도 없이 완벽한 아웃이었으니 주자는 심판에게 따지지 않고 더그아웃으로 뛰어갔다.
그래서 지금은 2아웃 상황에 주자는 1루. 그렇다고 지미 테일러에 대한 위험이 낮아졌을지언정, 사라진 건 아니다.
이런 가운데 중계진들은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전과 달리 동팔 선수의 위력적인 투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아직 공을 10개도 던지지 않았으니 속단은 금물이지만 혹시 2년차 징크스의 시작인가요?"
"말씀하신대로 속단은 금물입니다. 상대의 번트 작전에 동팔 선수도 대비를 했는지 잘 대처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런 상황이 일어난 것은 어디까지나 유격수 브렛 버틀러의 실책 탓이 큽니다."
신인 때 뛰어난 활약을 보이다 2년 차에는 작년과 달리 힘을 못 쓰는 선수가 자주 나와서 생긴 말이 2년차 징크스였다.
그들의 말대로 고작 10개의 공도 던지지 않은 상태였지만, 압도적인 피칭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을 보니 중계진도 그 단어를 떠올렸다.
비록 견제사를 당하여 2루 주자가 아웃되는 바람에 상황이 안 좋아졌지만, 좋은 기회인 것도 사실이다.
그나마 보스턴에서 동팔의 공을 칠 가능성이 제일 높은 타자는 지미 테일러밖에 없는 상황에 주자까지 1루에 있었다.
다른 선수와 달리 번트 자세를 취하지 않고 타석에 선 지미 테일러.
동시에 동팔도 이번 위기를 넘기기 위해서 빠른 시간 안에 어떤 공을 던질지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타자들이 약한 공은 몸쪽 아래. 지미 테일러도 마찬가지지만, 공격적인 성향을 이용하는 것이 낫다. 하지만 나를 상대할 때만큼은 수비적으로 나서는 경향이 있다고 했지?'
이것은 혜진이 분석한 기본적인 내용이었다. 그리고 동팔은 그녀에게 들은 그 이상의 정보를 떠올렸다.
'작년 중반기까지 변화구를 이용하여 삼진을 끌어냈지만, 후반기엔 수비적으로 나서서 끝까지 공을 보는 바람에 볼넷을 하나 허용했어. 이번에도 마찬가지가 될 가능성이 높아… 그렇다면…….'
그 전에 유리한 볼카운트를 잡는 것이 중요했다. 상대가 번트를 하지 않는 이상, 번트 아웃은 기대하기 어렵다.
공격적이든, 신중하든 변화구는 타자를 상대함에 있어서 좋은 무기인 것은 사실. 다만 제구가 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붙지만, 동팔에게 있어 그 정도는 쉬웠다.
스윽, 휙!!
몸쪽 아래가 약하다는 것은 본인 스스로 알고 있으니 항상 주의한다. 그러니 그곳으로만 집요하게 던지면 충분히 다음 공을 예상할 수 있게 된다.
아무리 자신에게 약한 공이라도 예상을 한 공이 날아오면 못 칠 것도 없다.
당연히 한 곳으로 가는 공만이 아니라 다양한 곳을 향해 꽂아 넣어야 했다.
퍽!
"스트~ 라이크!!"
이번에 날아간 공은 몸쪽 위로 향하더니 바깥쪽 아래로 급격히 휘어져 갔다. 변화구지만,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했으니 당연히 판정은 스트라이크.
그 이후에 동팔이 던진 공은 같은 코스로 향해 날아오는 공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지미는 치지 않았다.
휙~.
분명히 홈 플레이트 앞까진 방금 전과 같은 코스였지만, 이번에는 바깥쪽 아래가 아니라 몸쪽 위로 향해 그대로 갔다.
다만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지 않았기 때문에 볼카운트는 1스트라이크 1볼이 되었다.
동팔에게 조금 불리한 카운트가 되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동팔은 물론 상대하는 지미 테일러에게 큰 의미가 없었다.
서로에게 아직 여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다음에 날아온 공을 이번에도 지켜본 결과 볼. 그리고 그 다음에 날아온 공은 한 가운데로 향했다.
휭~ 퍽.
하지만 공은 몸쪽 아래로 떨어지며 지미의 헛스윙을 유도했다.
볼카운트는 2스트라이크 2볼.
투수와 타자 중, 타자에게 더 불리한 상황. 점수를 내지 못해도 어차피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지미 테일러는 생각을 바꿨다.
'치면 가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지. 무슨 공이 오더라도 친다.'
동팔을 상대로 신중하게 대응하던 것을 그만두고 공격적으로 나올 생각이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동팔은 조금 더 생각하더니 빠르게 팔을 휘둘렀다.
휭!!
전형적인 강속구의 투구 동작에 지미 테일러의 배트가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 달리 동팔이 던진 공은 강속구가 아닌 체인지업.
역동적인 동작에 비해 힘이 실리지 않은 공은 이미 돌아간 배트를 뒤로하고 포수 미트에 빨려 들어갔다.
"스트롸잌~ 아웃!!"
만약 지미 테일러가 배트를 휘두르지 않았다면 볼이 되었을 코스. 분명히 동팔은 그가 자신을 상대할 때, 신중해지는 것을 알면서도 과감하게 느린 공인 체인지업을 던졌다.
물론 이런 선택을 한 이유는 있었다.
'아무리 신중하게 하려고 해도 기본적인 성향은 어디 가지 않아. 본인이 어렵다는 상황이 되면 결국 자신의 습관대로 생각하고 움직이기 마련… 이라고 혜진이가 말했었지?'
혜진이 분석한 정보는 생각보다 정확했고, 훨씬 유용했다.
동팔도 상대하기 어려운 계약자인 지미 테일러를 상대로 생각보다 쉽게 삼진을 뽑아내는데 성공한 것이 그 증거였다.
지미 테일러를 삼진으로 잡아 쓰리 아웃을 채운 양키즈의 선수들은 공수교체를 위해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해서 개막전 첫 이닝을 겨우 마무리한 양키즈 선수들. 하지만 아직 위기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 총체적인 문제와 균열
상황이 어떻게 흐르면 투수가 실수하지 않아도 이렇게 몰릴 수 있을까 궁금해지는 때가 있다.
지금 바로 양키즈 선수들과 팬들의 공통된 의문이었다.
하지만 한 걸음 멀리 떨어져서 보고 있는 감독과 코치의 눈에는 지금 상황과 그에 대한 원인이 훤히 보였다.
'동팔이 아무리 잘 던져도 범타성 타구를 놓치면 뭐가 되는 거지?'
'타구를 잡아도 제대로 송구하지 못하고, 오히려 넘기는 바람에 실책으로 한 점을 내줬어. 거기에 지금은 1사에 만루…….'
한 이닝에 이렇게 많은 실책이 나올 수 있는가 싶었다.
그래서 동팔이 건투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뉴욕 양키즈가 1대 0으로 밀리는 상황. 거기에 아직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나마 단 한점 실점한 것도 실책으로 기록되었으니 투수의 자책점은 아니었지만, 그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
'하아… 이것도 혜진이에게 듣기는 했었는데… 생각보다 심각하잖아?'
새로 온 선수가 많기에 팀워크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혜진은 다른 분석관들이 한 것 보다 더 높은 확률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게 개막전에서 터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제 수비를 믿기가 어려워. 지금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으니…….'
처음에 실수하면 만회하기 위해 각오를 세운다. 하지만 계속 누군가의 실수가 연속적으로 일어나며 분위기가 크게 가라앉고 위축된다.
그래서 실수하지 않을 부분에서 과도하게 힘이 들어가거나 당황하게 된다. 그러면 당연히 실책을 저지를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흐름과 상황은 양키즈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 거기에 먼저 실점을 당했으니 패전투수의 멍에를 질 가능성도 높아졌다.
물론 그렇게 되면 실책을 저지른 선수들이 동팔에게 더욱 미안해지겠지만.
'미안하지만 수비를 못 믿으니 내가 전부 처리하는 수밖에 없겠지. 효율적으로 가려 했지만, 그게 안 된다면 정공법으로 가는게 더 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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