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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상태를 끌어올리고 실력을 높이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하는 곳은 뉴욕 양키즈만이 아니다. 당연히 모든 구단도 스프링캠프를 하며 이번 시즌에 작게는 포스트시즌 진출이나, 크게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노린다.
그 중 한동욱이 있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도 따듯한 곳에 내려와 훈련을 하고 있었다. 역대 최고 타자라는 말을 듣는 동욱이 타석에 들어선다.
그런데 감독과 코치들은 동욱을 걱정어린 눈으로 보고 있었다.
"작년과 달리 타율이 좀 떨어졌지?"
"시범경기라 크게 신경쓸 건 없다고 생각하지만, 작년 타율에 비하면 떨어집니다."
그래도 많이 걱정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떨어졌다고 해도 작년 타율 기준이지, 3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걱정되는 것은 타점이 떨어졌다는 거겠죠."
타자가 안타를 치고 그 중에 장타나 홈런을 치려는 건 단 하나의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점수를 내는 것이다.
자신이 친 안타로 점수가 나면 그것에 곧 타점이 된다. 본인이 홈으로 돌아와 점수를 내는 득점과는 다른 개념이다.
"거기에 아직 한 번 밖에 없긴 하지만 실책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실전에서 단 한 번의 실책도 없었는데 공을 놓치고 말았어요."
작년과 다른 모습에 그들은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모습만으로도 캔자스시티에서 그를 따라갈 타자가 거의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동욱이 지난 시즌 어떤 활약을 펼쳤는지 알 수 있었다.
"실전에서 회복된 모습을 보이면 상관없어. 시범 경기는 연습에 불과하니까. 일일이 신경쓸 것 없지. 그래서 동욱이는 자신이 왜 이러는지 파악하고 있나?"
"본인의 말로는 잠시 감이 떨어질 때가 간혹 찾아온다고 합니다. 일년에 한두 번, 기간은 이틀이나 일주일 정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어제 그게 끝났다고 하니 오늘은 다르지 않겠습니까?"
코치의 말에 감독은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래? 그럼 차라리 지금 그게 찾아오는 것이 다행인지도 몰라. 덤으로 상대팀에게 혼란을 줄 수도 있을 거고."
그렇지 않아도 동욱은 리그를 떠나 모든 구단이 경계하고 분석하는 타자다. 동욱이라는 산만 넘으면 그 이후는 상대적으로 편한데, 그 산을 넘기가 힘들다. 절반은 성공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통한의 안타를 허용하여 무너지게 된다.
"하지만 그가 한 말이 핑계가 아니었으면 좋겠어."
감독이 말을 하기 무섭게, 그렇지 않아도 주자가 나가있는 상태에서 동욱이 배트를 강하게 휘둘렀다.
따악~!!
경쾌한 소리를 내며 날아간 타구는 펜스를 가뿐히 넘었다. 동욱의 통쾌한 타격에 감독과 코치의 걱정도 같이 날아갔다.
"좋군. 기대해도 좋겠어. 이젠 다른 녀석들도 분발했으면 하는데… 어렵겠지?"
"동욱의 절반만, 아니 조금 못할 정도만 되어도 충분합니다. 월드시리즈 우승하는데 말이죠."
"그렇지. 마운드가 어려워도 상대 마운드를 폭격하면 이기는 건 같으니까."
이번 시즌도 동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더 편해질 것을 생각하면 그들의 입가에 절로 웃음이 피어나왔다.
그렇게 모든 구단이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사이, 스프링캠프 기간이 끝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 세계 야구팬들이 기다리는 메이저리그의 개막전이 시작되었다.
***
비록 작년에 지역 우승을 한 양키즈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작년까지의 이야기. 새로 시작된 시즌에서는 역시 다른 팀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출발선에서 승리와 패배를 쌓아가야 한다.
그리고 개막전에는 당연히 1선발인 동팔이 마운드에 올랐다.
비록 작년 포스트시즌에서 시애틀 매리너스의 데미안에게 통한의 피홈런을 당하는 바람에 패전 투수가 되었다.
하지만, 동팔이 뉴욕 양키즈의 1선발이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개인적인 아쉬운 감정이 있더라도 실력은 진짜였으니까.
이번에 상대하는 팀은 같은 리그, 같은 지역에 속한 보스턴 레드삭스였다.
앙숙인 두 팀은 이번에도 개막전에서 불꽃 튀는 경기를 하게 되었다. 개막전에서 무조건 이기겠다는 각오를 보이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팬들과 달리 양키즈 팬들은 여유가 있었다.
"설마 강동팔이 선발인데 지진 않겠지?"
"적어도 그가 마운드에 있을 때까진 그럴 거야."
"그 전에 승부가 나면 이기겠지만, 끝까지 가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
공략하기 어려운 투수가 있다면 그를 가능한 빨리 마운드에서 내려 보내기 위해 투구 숫자를 늘린다. 하지만 그게 가능한 투수가 있는 반면, 불가능한 투수가 있다.
동팔의 경우 후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상대할 방법이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한들, 승리를 미리 포기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
타석에 선 타자들은 동팔이 어떤 공을 던질지 몰라도 나름 상대할 수단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번트였다.
1번 타자가 올라오자마자, 번트 자세를 취하자 동팔은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짐작했다.
"쓰리번트 아웃을 감수하더라도 어떻게든 저항해 보겠다는 건가?"
번트의 특성상 아무리 빠른 공이라도 훈련을 많이 하면 배트를 갔다 댈 수 있다. 일반 타격의 경우 2 스트라이크 이후에 파울을 쳐도 카운트 되지 않지만, 번트의 경우 아웃이 된다.
하지만 동팔이 어떤 공을 던지더라도 최소한의 반응, 또는 번트를 통해 진루할 가능성이 다른 방법보다 제일 높았다.
보스턴이 동팔을 어떻게 상대할 지에 대해 알게 되자 양키즈의 팬들은 걱정했다.
"이거 잘못하면 계속 주자가 나가다가 실점하는 것 아냐?"
번트가 계속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상대의 번트 작전에도 동팔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에서 몇 차례 겪은 적이 있었어. 그리고 혜진이가 예상한 나에 대한 상대의 대응 방법 중 하나에 불과해.'
상대가 번트를 잘하면 이것만큼 곤란한 것이 또 없다.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는 모든 공을 속도에 관계없이 커버할 수 있다. 거기에 번트를 잘 하는 선수는 배트를 절묘하게 움직여 방향을 잘 잡는 것은 물론, 속도를 크게 줄여 투수나 포수, 3루수나 유격수가 잡아서 던져도 자신은 이미 1루에 도착한 다음이다.
'이미 스프링캠프에서 번트 연습을 많이 했겠지. 다른 훈련을 하지 못하는 대신… 하지만…번트를 한다고 해서 전부 성공할 수 있는 건 아냐.'
타격 연습을 하는 동팔은 당연히 번트 훈련도 많이 해봤다. 그리고 직접 경험하면서 느낀, 번트를 하기 어려운 공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스윽~ 휙~!!!
동팔의 손에서 빠져나온 공은 빠르게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했다. 그리고 투구에 맞추어 타자도 배트를 움직여 갖다 대었다.
딱!
큰 소리가 나며 배트에 맞은 공. 그리고 그 공은 아래로 향하지 않고 오히려 위로 튀어 올랐다. 그것도 앞으로 튀어 오르지 않고 위로. 거기에 거리도 아주 짧았다.
"어?"
공이 위로 튀어 오르자 포수는 공을 더 잘 보기 위해 포수 마스크를 벗어 바닥에 던졌다. 그리고 약 5미터 위로 튀어 오른 공을 놓치지 않고 포수 미트로 간단하게 잡았다.
"아웃!"
고작 공 1개로 아웃카운트를 간단하게 잡았다. 그리고 그 장면을 보고 있던 양키즈의 유격수 브렛 버틀러는 무언가 따분한지 하품을 작게 했다.
'이거 이번에도 할 일이 없겠어.'
그동안 동팔이 선발로 올라오면 바쁜 것이 없었다. 간혹 운 좋게 때린 타구라도 수비에 막혀 범타로 끝난다.
비록 상대가 번트작전으로 나온들, 이미 대응법을 준비한 이상 걱정할 것이 없었다.
1번 타자를 공 하나로 잡았으니 이번 경기는 자신과 같은 타자들이 어떻게든 점수를 내는 것이 중요했다.
투수가 승리의 발판을 만들어 주었으면, 그 발판을 딛고 점수를 내서 승리하게 만드는 것이 자신들의 역할이다.
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이번에도 번트를 준비하고 나온 보스턴의 2번 타자.
동팔은 번트를 준비한 타자를 상대할 때, 두 가지 방법을 동시에 사용한다.
우선 공이 떨어져 느리게 가는 것을 최대한 막기 위하여 빠르게 던진다. 그러면 번트를 준비하고 있던 타자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 배트를 살짝 뒤로 빼는 타이밍을 쉽게 잡을 수 없다.
그리고 두 번째 수단은 공의 회전을 강하게 주는 것이다.
일반 타격이라면 파울이 되어도 카운트가 되지 않지만, 번트의 경우는 아니다. 그러니 맞추더라도 파울지역에 계속 날아가면 세 번째에 아웃되어 타석을 나와야 한다.
다만 어떠한 경우라도 운이라는 요소를 무시할 수 없다. 간혹 가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우연히 잘 맞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처럼.
딱~!!
번트를 하더라도 거의 파울이거나 아웃이 될 공을 던졌지만, 그 틈을 뚫고 번트에 성공했다. 그래서 서둘러 달리며 겨우 1루에 안착한 2번 타자는 주루 코치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기뻐했다.
"됐어. 잘 했어."
진루에 성공한 타자의 물품을 받으며 조용히 말했다.
"이런 경험은 많지 않으니까 계속 흔들어. 알겠지?"
투수의 투구가 완벽할수록, 갑작스러운 변수를 많이 겪지 못하니 당황스러워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동팔이 이런 경험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갈듯 말듯 흔들면 뭐하나? 어차피 못 나갈 텐데.'
메이저리그에서 주자로 나서는 선수들은 기본적으로 도루 능력이 있다. 물론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이 있지만, 메이저리그로 올라오는 사이에 경험이 쌓이는 것이다.
당연히 투수의 시선을 분산시켜, 타자에게 더 유리하도록 만드는 건 기본이었다.도루를 할 수 있는 거리와 견제를 하였을 때, 살아있을 수 있는 거리를 오간다. 그러자 동팔은 일단 견제구를 간단하게 던졌다.
휙~ 턱.
처음부터 아웃을 노리고 던진 것이 아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견제에 불과하다. 지켜보고 있으니 함부로 도루하지 말라는 경고.
그리고 나서 동팔은 다음 작전을 생각했다.
'병살로 가자. 최대한 투수 숫자를 줄여서 압박하는 것이 좋아.'
본인이야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으니 상관없다. 하지만 상대 투수가 쉴 수 있는 시간과 정신적인 압박을 주기 위해선 상대의 공격 시간을 최대한 줄여주는 것이 좋다.
공격은 타자의 몫이지만, 이런 방식을 취함으로 공격에 도움을 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병살로 인해 득점기회가 어이없이 사라지면 상당한 정신적인 타격이 되니 일석이조.
심지어 3번 타자 마저도 번트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동팔은 개의치 않았다.
병살을 유도해야 했기 때문에 어려운 공을 던질 생각은 없다. 주자가 있는 상태에서 4번 타자인 지미 테일러는 피하는 것이 상책.
옆집에 사는 꼬마와 이름이 완전히 같지만, 나이와 상황은 전혀 다른 선수였다.
상대하는 것이 시애틀의 데미안과 비교해 쉽지만, 그렇다고 계약자인 그를 상대하는 것은 껄끄럽다.
장타나 홈런을 맞을 확률이 다른 선수들보다 더 높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번에 올라온 타자를 마지막으로 이닝을 끝내는 것이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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