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229화 (229/325)

[229]

당시 행크스가 한 행동은 그의 실수였다. 동시에 실수를 하도록 상황을 만든 것도 사실이었다.

평상시에 잘 나오지 않는 혜진을 나오게 한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전날 다른 선수들로 하여금 혜진이 누구인지 알려준 것도 그 이유였었다.

행크스는 모르고 있지만, 혜진은 행크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할 때마다 결혼반지를 낀 손가락을 다른 손으로 가렸다.

더군다나 행크스는 혜진에게 잘 보이려는 건지 어깨에 힘이 들어갔고, 그로인해 혜진이 바로 앞에 가서 충고할 기회도 생겼다.

자신의 실수에 야단을 맞으니 흔들리기도 했지만, 동시에 격려를 해주니 더 흔들렸다. 그리고 심리적인 흔들림에 의해 생각보다 빨리 혜진에게 고백을 하고 말았다.

물론 혹시라도 생길 불상사를 막기 위해 타격코치가 조심스럽게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또한 이미 다른 선수들도 어쩌면 생각보다 빨리 일어날 그의 실수를 기대하며 슬쩍 지켜보고 있었다.

거기에 이런 모든 것을 지완도 알고 있었고, 적당히 연기를 하며 화난 척을 했다.

덕분에 억대 계약자인 데니 행크스의 기를 잡는 것에 대성공. 이제는 어깨에 힘이 빠지고, 뻣뻣한 목이 부드러워졌다.

그래서 지금은 다른 선수들과 생각보다 빨리 친해지며 팀워크를 강화하는데 성공을 거두었다.

"나중에 알아도 그냥 넘어가지 않을까요? 그리고 나중에 새로 온 선수를 속이는데 더 나설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죠?"

"응. 아쉽게도 여전히 외야수가 더 필요해. 어느 자리가 되든지 간에."

수비는 마운드에서 전부 다 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잘 던지는 투수라도 실투를 하기 마련이고 그것을 노린 타자가 안타나 홈런을 친다.

홈런을 막을 방법은 없지만, 안타를 범타로 만들 수 있는 것이 바로 뛰어난 수비였다.

"지금 외야수 중 중견수로 있는 선수가 좀 그렇죠……. 타격은 좋은데 수비능력은 좀… 보살능력도 없고, 다리도 느리고……."

"그렇다고 빼자니 타격이 빈약해지니까 문제야. 그래서 마크라는 아이는 지금 어때?"

"마크요? 확실히 그 아이라면 뛰어난 외야수죠. 자리는 가리지 않고, 오히려 중앙에 있으면 더 효율적이고, 거기에 점프력도 좋죠. 시범 경기 몇 번 하더니 바로 싱글 A로 올라갔어요."

"정말? 생각보다 빠르네. 잘하면 중반 넘어가기 전에 더블 A로 올라갈지도 모르겠어. 혹시 다른 훈련을 하고 있니?"

혜진의 말에 대답을 한 사람은 하얀 늑대의 벗이었다.

"하고 있다. 지금은 스프링캠프라 하지 못하고 있지만 타격훈련을 동팔과 같이 했었다. 동팔이 없고, 마크의 시간이 남으면 내가 공을 던져준다."

그의 말에 민희가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생각보다 야구 배우는게 빨라요. 포심 패스트볼이랑 커브를 던질 수 있으세요."

"그냥 스트라이크 존 안에 겨우 들어간다. 던질 줄만 아는 거다. 제구력은 형편없다."

"그래도 동팔 오빠만큼 제구력을 바라시는 건 좀… 제가 생각해도 오빠의 제구력은 너무 날카로워요. 동팔 오빠나 지완 오빠나."

민희의 말에 혜진이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두 사람의 제구력은 장난 아니지. 지완이야 몸이 좀 안 좋으면 실투가 나오지만, 동팔이는 바로 회복되니 그것도 없어. 거기에 간혹 나오는 한 가운데 공은 도발용이지 실투가 아니니까."

그 말을 하고 혜진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여전히 떠나고 싶지 않아하는 예은이를 하얀 늑대의 벗에게 안겼다.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이제는 무서워하지 않는 예은이. 다시 엄마와 잠시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예은이의 얼굴은 침울하게 바뀌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귀여운 것이 아기의 매력.

거기에 빼액 거리며 울지 않고, 오히려 참으려는 듯한 모습이 보이니 더욱 안쓰럽고 사랑스럽게 보였다.

"예은아, 엄마 일하러 가야 하니까 큰 삼촌이랑 이모랑 놀고 있어. 냠냠 먹고 싶으면 말하고. 알겠지?"

혜진의 말에 예은이는 여전히 무언가 참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더 떠나고 싶지 않지만, 본인이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럼 예은이는 맡겨 주세요, 대신 부탁드릴게요, 언니."

"응. 나도 부탁해."

혜진이 하는 일은 뉴욕 양키즈의 전체적인 전력 상승을 위한 분석이었다. 여기에는 양키즈 선수의 분석도 있지만, 곧 상대할 다른 구단에 대한 분석도 포함되어 있었다.

뛰어난 선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승률이 높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투수 한 두 명이나 뛰어난 선수 한 명이 있다고 해서 그 팀이 우승하는 것은 아니다.

월드시리즈까지 가기 위해선 지역에서 승률 1위를 해야 하고, 그 중에 뽑힌 8개의 팀들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단판은 아니지만 다섯 번이나 일곱 번의 경기를 통한 토너먼트에 진출해야 한다.

마지막에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더라도 일곱 경기 중, 네 경기를 먼저 이겨야 한다.

까마득한 관문이 있지만, 제일 첫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지역 우승을 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 캔자스시티에서 그녀의 분석으로 인해 승률이 조금 더 올라갔음을 생각하면 혜진이 하는 일은 결코 하찮지 않았다.

약간의 승차로 지역 우승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갈리고, 와일드카드 결정전이나마 진출할 수 있을지 없을지가 갈린다.

전력의 차이는 있겠지만,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이상 아주 큰 차이는 없다. 그리고 차이가 나더라도 얼마나 준비되었는지에 따라 해당 시즌의 성적이 정해지기 마련이다.

그걸 알고 있으니 헤어지기 싫어하는 표정이 역력한 예은이를 두고, 혜진이 어쩔 수 없이 떠나는(떠난다고 하지만 좀 있다가 저녁 시간 이후로 항상 같이 있다.) 것이었다.

혜진이 일하기 위해 가자 민희가 하얀 늑대의 벗의 품에 안긴 예은이를 보며 말한다.

"그래도 처음 봤을 때에 비하면 많이 친해졌네요. 그땐 보자마자 울어버렸는데."

"계속 보니 이젠 익숙해졌을 것이다."

그가 그 말을 할 때, 예은이 그를 보며 말한다.

"으음…냠냠."

아기의 어설픈 발음이지만, 예은이가 원하는 것이 무언지 모를 수 없었다.

"잠깐… 어디보자…여기 있었구나."

하얀 늑대의 벗은 이유식을 꺼냈다. 이미 식어서 차가운 이유식이었지만, 그의 손에 잡히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흡."

주문도 필요 없는 고위 주술사답게, 자신의 힘만으로 이유식을 따듯하게 만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예은이 입에 맞춰 작은데, 그의 손에 들리면 더 작게 보이는 숟가락으로 예은이가 먹기 쉽게 먹여주었다.

먹기 좋게 따듯해진 이유식을 먹는 예은이를 보며 민희가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그건 참 신기하네요. 편하기도 하고."

"편할 걸로 따지면 전자레인지가 주술보다 더 편하다. 지금 당장 쓸 수 없으니 이렇게 했지만."

"그 말씀도 맞죠. 하지만 지금은 이게 더 편하다는 건 사실이잖아요. 문제는 아무나 익힐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는 거지."

말을 하는 사이에도 예은이는 하얀 늑대의 벗이 주고 있는 이유식을 냠냠 받아먹고 있었다. 이내 배가 찰 때까지 먹었는지 더 이상 먹지 않았다.

"배불러?"

"네."

배가 부른데 더 이상 먹일 이유는 없었다. 원래 아기는 수시로 배가 꺼지고 부른다. 덤으로 수시로 자다가 깨는 것을 반복한다.

어른들과 생활 주기가 다르니 일하는 직장인이 아기를 돌본다는 것은 또 다른 어려움이 있는 이유였다.

많이 먹었는지 예은이의 배는 그 사이 살짝 솟았다. 그러자 하얀 늑대의 멋은 예은이가 다 들어올 손으로 소화가 잘 되도록 배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번 시즌 시작은 좋지 않다고 들었다. 괜찮겠는가?"

그의 물음에 민희가 답했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혜진 언니가 그렇게 예상했다면 어쩔 수 없죠. 그렇다고 스프링캠프를 더 빨리 당길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훈련 때야 드러나지 않겠지만, 시즌 시작하고 나서 초반이 고비일 거라고 말했어요."

민희의 말에 하얀 늑대의 벗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전쟁에서 승패를 결정하는 것은 더 좋은 무기나 어느 한 사람의 용맹이 아니다. 그것은 수단에 불과할 뿐, 결국 싸우는 자들의 사기(士氣)가 얼마나 뛰어난지. 그리고 그것을 유지하거나 상대의 기세를 꺾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오랜 시간 살면서 전쟁을 보았고, 겪었으며, 수많은 싸움의 과정을 지켜본 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역사를 보면 더 좋은 무기를 든 쪽이 보통은 승리하지 않나요?"

"그렇다. 그건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방금 말했듯이 그것은 사기를 변화시킬 수단에 불과하다. 전쟁은 기세의 싸움. 실제로 적에게 죽는 것보다 도망치는 동료에 밟혀 죽는 쪽이 더 많다."

한 기의 기병은 최소 보병 10명과 유사한 전투력을 가졌다고 본다. 거기에 과장되었지만 일기당천이라는 말도 있다.

실제로 백명이 안 되는 병력으로 식민지의 원주민 수천명과 싸워 이기는 경우가 꽤 많다. 분명히 병기와 군율, 용병술은 제국이 더 뛰어나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제국의 병사라도 원주민 10명이 동시에 달려들면 도망쳐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생각하면 100명도 되지 않는 병력으로 수천을 이기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나 하얀 늑대의 벗은 그게 가능한 이유를 알고 있다.

"사람은 살고 싶어 한다.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니 죽을 것 같은 장소에 있다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은 도망이다."

고대에선 전투를 벌이기 전, 자신들이 믿는 신에게 제물을 바치며 승리를 기원한다. 그리고 더 강한 신이 있는 쪽이 승리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전투에 임하는 병사들의 마음을 강하게 만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신이 보호하니 죽음이 넘실대는 전투에 들어가도 살아남을 수 있을 거야. 라는 모르핀과 같이 죽음의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생각을 심는 것이다.

결국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는 자신이 속한 부대의 특성과 본인이 얼마나 기민하게 움직이는 지다. 동시에 운이 따라줘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니 공포에 사로잡히게 하여 마음을 꺾을 수만 있다면, 그 이후로는 일방적인 학살이 있을 뿐이다.

"결국 초반의 분위기를 얼마나 빨리 극복할지가 관건이다. 계속되는 실패는 사람을 쉽게 무기력하게 만든다. 성공과 실패는 자신의 실력과 큰 상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감을 잃게 되지."

"그렇죠. 성공과 실패는 하늘에 달렸으니 진인사 대천명이라는 말이 나왔겠죠."

그냥 들으면 실패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하얀 늑대의 벗은 또 다른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맞다. 승패의 결과는 어떻게 할 수 없다. 하지만…실력이 없는 것은 엄밀히 말해 본인의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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