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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프링캠프
특별히 야구와 관련된 국제적인 이벤트. 즉 올림픽이나 WBC, 프리미어12와 같은 대회가 없다면 대부분의 선수들은 다음 시즌을 준비한다.
구단의 공식적인 훈련인 스프링캠프가 있기 전에 선수들의 생활은 자유롭다. 그러나 다음 시즌을 준비하기 위해선 멍하니 쉴 수 없는 것이 현실.
자신이 쉬는 만큼, 다른 선수가 훈련하면 그만큼 뒤쳐지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훈련에만 집중하면 몸이 버티지 못하여 시즌 중 슬럼프라는 현상으로 찾아온다.
그러니 선수들은 스프링캠프가 시작되기 전까지 훈련과 휴식의 균형에 신경을 쓴다.
그렇게 하여 메이저리그에선 구단 자체적으로 준비된 스프링캠프가 시작되었다.
추운 곳에서 훈련을 하면 몸이 움츠러들고, 근육이 경직되어 부상 위험이 크다. 그리고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체온조절을 못하면 몸의 균형이 어긋나기 마련.
그러니 메이저리그라도 스프링캠프는 따듯한 곳에서 하는 것이 기본이다.
스프링캠프의 목적은 이번 시즌을 준비하며 몸의 상태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훈련을 빨리 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훈련을 하더라도 더 효율적으로, 그리고 안전하게 하기 위해선 가능한 좋은 환경에서 하는 것이 좋다.
이동경비와 숙소 비용을 아끼려다가 오히려 선수가 부상당하면 더 큰 손해가 발생하기 마련.
거기에 다른 구단에선 좋은 환경에서 훈련하며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있다. 하지만, 정작 본인들의 구단은 인색하게 연고지에서 훈련하게 되면 효율의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그것은 곧 시작될 정규시즌에서 다른 구단과 비교해 승률이 떨어지는 성적표로 받게 된다.
물론 정신력이 강하면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자신의 선수들만 정신력이 강한 것이 아니라, 다른 구단 선수들의 정신력도 강하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어찌되었든 양키즈 구단의 40로스터 명단에 든 선수들은 따듯한 플로리다주에서 스프링캠프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들이 플로리다에서 스프링캠프를 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같은 미국 동부이면서 따듯한 남쪽이라 시차에 대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다 같이 모여 전용기를 통해 가지만, 때론 개인적인 사정이 있거나 그외 여러 가지 이유로 나중에 합류하는 선수가 있기 마련이다.
미국이란 나라의 땅은 아주 넓으니 각자의 집이 항상 뉴욕에만 있는 건 아니다. 보통은 뉴욕에서 보내겠지만, 대부분은 가족들이 사는 곳이 다르거나, 일부는 멀리 있다.
때론 플로리다에 가족이 있어 거기에서 휴가를 보내는 선수도 있기 마련. 그런 선수에게까지 강제로 뉴욕에 온 다음 같이 떠나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도 기본은 있다. 정해진 장소에 늦지 않게 오는 것이다. 다만 그래도 하루나 이틀 정도 늦게 합류하는 경우는 있다.
당연히 그 전에 구단에 양해를 구하는 건 기본. 그렇지 않으면 팀 스포츠인 야구에서 제대로 된 팀워크가 가능할지 의문이 들게 된다.
특히 특급 이상의 역량을 가진 선수는 일종의 특혜와 같아 구단에서도 막지 않는다. 선수들도 그걸 알고 있지만, 동경하는 선수가 있는 반면, 마땅치 않게 생각하는 선수도 있기 마련이었다.
"데니 행크스는 내일 온다는데?"
"데니? 이번에 억대 계약자 중 한 사람이잖아? 누가 억대 연봉 아니랄까봐… 부럽긴 하지만 너무 으스대는 것 아냐?"
"이번에 우리 팀이 타선을 보강하려고 데려온 녀석? 타율이 3할5푼에 타점도 높으니 억대가 가능했겠지. 그래도 이번에 첫 만남인데 너무 건방져."
이전에는 이런 경우가 있어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캉도 제일 빨리 와서 우리랑 같이 왔는데 말이야."
"만약 재계약 했으면 억대 이상을 받을 친구잖아."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어도 자만하지 않고 근면하고 성실한 친구야. 그건 확실히 본받아야 해."
사실상 재계약을 한다면 최고 연봉을 찍을 사람은 바로 강동팔이다. 지난 시즌의 기록으로 인해 이젠 자타공인 1선발로 이번 시즌을 시작하게 되었다.
작년에는 아직 메이저리그에서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과 동양인이라는 편견으로 인해 잘 해야 3선발이었다.
하지만 이젠 그와 정반대의 상황이 되었다.
그가 1선발이 되지 않으면 팬들이 가만두지 않을 상황이었다. 거기에 지난 시즌 큰 성공을 거두었어도 전혀 바뀌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노력하고 성공하면 성공한 만큼 행동해도 봐 주는 경향이 있는 미국이다. 하지만, 이런 동팔의 행동은 그들에게 새로운 문화 충격을 주었다.
"처음에 거들먹거리고 무시하던 녀석은 마이너로 내려갔거나 방출되었는데. 역시 세상은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른다니까."
"그렇지. 그런데 이번에 온 저 친구는 왜 여기 있어? 재활해야 하지 않아?"
이번 스프링캠프에선 동팔 혼자만 한국인이 아니었다. 전에 지예가 취재차원에서 오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기자 신분으로 온 것이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오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동팔과 같이 피칭 연습을 하는 한국인 선수가 있었다. 바로 남궁지완이었다.
뉴욕에서 출발하기 전, 이미 지완과 인사를 했었다. 하지만 동팔과 친구라도 갑자기 친해지는 것은 무리.
거기에 안 좋은 소문까지 있으니 선수들은 지완을 두고 수군거렸다.
"듣자니 완전히 끝났다면서?"
"캔자스시티가 어떻게든 속여서 넘기려 했는데 우리가 걸렸다고 하더라."
"그래도 고작 10만 달러에 데려온 것을 보면 완전히 속은 건 아니지 않아?"
"40인 로스터 명단에 없지? 그럼 초청선수 신분으로 참여한 거야? 대체 왜?"
그들은 자세한 정황을 모르니 수군거리만 할 뿐이었다. 부상과 회복에 있어서 직접 묻는 것은 친하지 않는 이상 쉽게 묻기 어려웠다.
선수들의 분위기를 알면서도 감독과 코치들은 지완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
"아직은 비밀이지?"
"네, 비밀이 새지 않으려면 나오는 구멍을 줄이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대로 볼 수도 없어. 분위기가 흐려지는 건 막아야지. 난 지완이랑 이야기 할 테니까, 코치들은 다른 말 안 나오게 훈련시켜."
"알겠습니다."
그리고 감독은 동팔과 이야기하고 있는 지완에게 다가갔다.
"몸은 어떤가?"
"나쁘지 않습니다. 캐치볼 정도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다행이군. 전에는 팔도 쉽게 들 수 없었다면서?"
"동팔이한테 회복하는 오라가 있어서 그런지 회복이 빠른 것 같습니다."
농담처럼 말하지만, 사실과 다를 바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감독은 지완의 말을 사실로 받아들일 일이 없었다.
"회복이 빠르면 좋지 뭐. 하지만 이미 들어서 알고 있지? 지금 자네가 회복이 빠르다는 건 최대한 숨겨야 할 전략적 선택이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 다행이고. 그러니 미안하지만 동료들이 하는 말은 신경쓰지 마. 내가 일을 꾸민 장본인이니 이런 말을 하긴 그렇지만, 나중에 자네가 멋지게 재기하는 순간 지금 하고 있는 말들이 전부 쏙 들어갈 거야."
감독이 걱정하는 것은 선수들의 분위기와 말로 인해 지완의 마음이 상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찌감치 이렇게 직접 와서 이야기를 한 것이다.
무엇보다 지완의 회복 속도가 그의 마음 상태에 영향을 받는다면 더욱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그렇게 대화를 하고 두 사람은 각자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헤어졌다.
지완이 동팔과 같이 캐치볼을 하는 사이에도 지완에게 다가온 양키즈의 선수는 없었다.
***
그날 저녁 식사시간.
경기 없이 훈련만 있기에 모든 선수들은 정해진 곳에서 식사를 한다. 뷔페식으로 차려진 식당에선 선수들이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골라서 먹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비싼 것을 고르거나 고기 종류만 고르지 않는다. 그들도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프로이기에 굳이 비싼 것을 고를 이유가 없었고, 영양분 공급을 생각해서 조절하는 선수가 대부분이다.
다만 코치나 감독, 또는 구단 관계자의 경우는 여기에서 예외에 해당한다.
그들은 몸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수에 비해 중요도는 떨어진다. 각자 몸의 건강상태에 맞추어 조절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굳이 영양분에 신경쓸 필요는 없다.
그러니 저녁시간에는 스프링캠프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먹는다. 그런데 선수들 중, 한 여성이 보이자 술렁거렸다.
"와~ 우리 구단에 저런 미인이 있었나? 누구지?"
"동양인이잖아. 혹시 동팔이 알고 있지 않을까?"
그녀는 바로 혜진이었다. 혜진은 담백한 입맛을 가졌기 때문에 채소와 과일 종료, 그리고 운동선수들도 웬만해서 먹기 힘들다는 간이 안 된 닭가슴살을 주로 담았다.
그리고 혜진이 간 곳은 동팔과 지완이 앉은 테이블이었다.
그곳에는 이미 두 사람의 쟁반이 놓여져 있었다.
동팔은 혜진과 지완이 담은 것을 보자 한국말로 말했다.
"부부는 닮는다더니 둘 다 비슷한 걸 담았네."
동팔의 말대로 지완도 담백하다 못해 밋밋한 음식을 주로 담았다.
"처음에는 고생했지만, 시간이 지나니까 이게 입에 맞더라."
"나중에 고생하기 전에 식성을 바꾸는 것도 좋아."
그들의 말에 동팔은 질렸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아니, 됐어. 차라리 좀 빨리 가더라도 즐기다 가련다."
그들이 대화하는 사이, 선수들의 술렁거림은 더욱 커졌다.
"역시 동팔과 아는 사이였어?"
"그런데 동팔보다 다른 친구랑 더 가까운 것 같은데? 내 착각인가?"
혜진은 자리에 앉을 때, 지완의 바로 옆에 앉았다. 적당히 떨어진 거리도 아니었고, 단어 그대로 바로 옆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재기할지 못할지도 모르는 반병신 주제에 어떻게 저런 미인이랑?'
'같은 한국인이라 꼬시기 쉬웠겠지? 동팔은 이미 결혼했고, 지완은 아직 부상이 얼마나 심한지 모르니 그런 걸로…….'
그들은 각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지완과 혜진의 사이를 의심했다. 그러던 중 눈썰미가 좋은 한 사람은 생각했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그리고 이미 결혼반지를 꼈잖아. 그럼 이미 상대가 있다는 것 아냐?'
운동선수 중 투수인 지완은 훈련할 때 반지를 끼지 않는다. 실제 경기에서도 반지가 공을 던질 때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착용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니 대부분의 투수는 반지를 손가락에 끼우기보다, 동팔처럼 목걸이로 하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드러나지 않도록 유니폼 속에 넣지만.
하지만 아직도 지완이 어색했고, 인종을 떠나 뛰어난 미인인 혜진과 친하다는 질투심에 가까이 가는 선수가 없었다.
그래도 어딜 가나 튀는 사람은 있기 마련. 그 중에 동팔과 많이 친해진 마이클이 다가왔다.
"안녕. 여기 같이 앉아도 될까?"
마이클은 지완과 혜진이 어떤 마음인지 몰라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거부하는 느낌은 없었다.
"당연히 괜찮지. 그렇지 않아도 소개하려고 했는데 잘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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