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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병원에 가지 않는가?"
"네? 분명히 아기가 있다고……."
"아기가 있는 것은 있는 것이고, 그 이후의 일은 병원에 맡기는 것이 좋다. 주술로 알아내는 것은 간단하지만, 이후의 보호와 건강을 챙기는 것은 병원에 있는 의사의 조언에 따르는 것이 훨씬 낫다."
의학에서 쉽게 할 수 없는 일을 주술이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주술이 할 수 없는 것을 현대 과학과 의술이 할 수 있다.
어느 한 쪽만 일방적으로 의지하지 말라는 말에 동팔과 민희는 다시 집을 나섰다.
동팔이 미국에 온 이상, 그와 오래 떨어질 수 없는 하얀 늑대의 벗도 같이 갔다.
그리고 근방에 있는 산부인과를 통해 확실히 알게 되었다.
"한국인은 임신한 것을 빨리 아는 건가요? 임신 1주차입니다."
이 정도 시간이면 자각증상이 생길 수 없다. 물론 예민한 사람의 경우는 예외겠지만, 아무리 빨라도 2주나 3주가 되어서야 겨우 알아차리는 것이 보통.
심하면 몇 달이 지나도 모르다가 5개월 후, 배가 부풀어 올라서야 알아차리는 경우도 있다.
의사의 말에 민희와 동팔은 함께 기뻐했다.
"그럼 조심할 것이 있나요?"
"어떻게 해야 하죠?"
의사는 익숙하게 임신한 여성이 주의해야 할 것. 그리고 주변에서 해줘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그리고 사람의 기억력에 한계가 있으니 비치된 안내 책자도 덤으로 주었다.
"다른 사람이 말하는 속설에 너무 휩쓸릴 필요 없습니다. 태교가 중요하긴 하지만 집착할 것도 없어요. 먼저 임신부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클래식이 좋다면 들어도 좋지만, 싫다면 억지로 들을 필요가 없어요."
민희가 조심해야 할 것도 있지만, 동시에 동팔이 주의해야 할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기본은 민희와 아기가 큰 충격을 받게 될 일이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병원을 나오면서 동팔과 민희는 들어갈 때와 다른 감회가 느껴졌다.
특히 임신한 당사자인 민희는 자신의 아랫배에 작은 생명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방금 전에 받은 초음파 사진은 믿기지 않는 사실을 믿게 해주었다. 비록 아주 작아 잘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무언가 자신의 뱃속에 있었다.
아들인지 딸인지 파악하기는커녕, 아직 사람의 형태도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의 분신이었다.
동시에 동팔도 자식이 생겼다는 생소한 사실이 금방 다가오지 않았다.
그래도 전에 지완이 했던 말이 떠오르자 새로운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두 사람을 남기고 떠날 수는 없어…….'
자신이 감당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생겼다. 그리고 그걸 감당하기 위해선 반드시 살아남아야 했다.
분명히 부담되는 의무이자 책임이었지만, 그것이 동팔로 하여금 각오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각오는 동팔의 행동에 변화를 가져왔다.
***
"정말 그렇게 하려고?"
지완의 물음에 동팔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제부턴 전처럼 느긋하게 있을 수 없어."
동팔의 말에 지완은 생각했다.
'느긋? 언제부터 느긋하게 있었다는 거야?'
이전부터 의식하며 지켜보았기에 잘 안다. 결코 느긋하게 살아온 적이 없다. 노력의 화신이 있다면 동팔이 포함될 것이라 장담할 수 있었다.
너무 심하게 노력하는 바람에 혹사로 인한 부상을 입지 않았던가.
그리고 회복된 이후에는 회복 능력을 바탕으로 이전보다 더 많은 노력과 훈련을 했다.
그런데 그것도 느긋하다고 말하면 대체 지금부터 할 것은 어느 정도란 말인가?
"지완아, 너도 투수니까 잘 알거 아냐. 팀이 승리하는데 투수가 잘 던져야 하는 것은 기본이야. 하지만 그게 승리를 장담하지는 않아. 특히 단 한 명의 투수가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
배구나 축구도 팀으로 하는 스포츠다. 하지만 때론 단 한 명의 뛰어난 선수가 맹활약을 하면 팀을 승리로 이끄는 것이 가능한 스포츠다.
그렇다고 한 선수만 잘 한다고 해서 그 팀이 무조건 승리하는 건 아니다.
다른 선수들의 실력이 뛰어난 선수를 뒷받침 할 정도는 되어야 가능한 일. 거기에 상대도 뛰어난 선수에 대한 견제를 기본적인 전술로 삼아 움직인다.
그러면 뛰어난 선수가 상대팀의 견제를 얼마나 뚫거나 극복하느냐가 또 다른 관전 포인트.
특히 배구의 경우 코트를 상대팀과 같이 쓰지 않기 때문에 한 두 명의 뛰어난 선수가 맹활약을 하는 것이 가능한 스포츠다.
하지만 야구는 그럴 가능성이 없다.
물론 한 선수가 맹활약을 하면 승리에 가까워지긴 한다. 하지만 그것도 서로 팽팽하게 맞서는 상황에서 약간의 차이를 만들어 냈을 때의 이야기다.
바꿔 말해 겉으로 보기에 한 선수가 두각을 보이지만, 그 밑에선 다른 선수들의 보이지 않는 활약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타자 한 명이 홈런이나 안타로 승부가 뒤집히는 것도 마찬가지. 그 전에 균형을 맞춘 상황은 다른 선수들이 고군분투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더군다나 야구는 축구나 배구와 달리 경기장이 아주 넓다. 반면 투입되는 선수는 면적에 비해 적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다른 동료의 도움이 없으면 할 수 없다.
심지어 투수가 노히트노런이나 퍼펙트게임을 한들, 할 수 있는 것은 무승부까지다. 결국 점수를 내는 것은 투수가 아닌 타자의 역할이다.
"한 명의 투수가 선발로 등판하는 것은 잘 해야 5일에 한 번이야. 나머지 경기에서 나서지 못하고, 그땐 모든 것을 팀의 동료들에게 맡겨야 해."
"그러니까 구단에서 뛰어난 선수를 많이 두려는 거지."
"맞아. 그래서 동료가 필요해.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아무리 뛰어난 구위를 가져도 우승까지 가는 것은 혼자서 할 수 없어. 다만 디딤돌 정도가 전부야. 걸림돌이 안 되면 다행이고."
지금도 젊지만, 더 젊었을 적에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느꼈다. 지명을 1순위나 2순위로 받고, 동기들은 물론 혁역 프로 선수들 중에 자신보다 잘 던지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팀의 기둥이 되었으니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연히 팀의 승리는 자신이 이끌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아무리 중요해도 결국 팀의 기둥 이상이 될 수 없다는 한계를 알게 된다.
기둥은 기둥일 뿐, 집이 될 수 없다. 벽을 새울 벽돌이나 비를 막아줄 천장도 있어야 한다. 그 모든 것이 갖추어져야 승리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이 아무리 완벽하게 투구를 해도 점수를 내는 것은 타자다. 반면에 자신의 투구 내용이 좋지 않더라도 타선의 지원이 막강하면 승리투수가 된다.
분명히 노력을 하면 실력이 늘어난다. 하지만 뛰어난 실력을 가져도 승리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뿐이지 장담할 수 있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네가 가능한 빨리 회복해야 해. 동시에 내가 하는 훈려도 늦출 수 없어."
이전에는 민희가 쓰러진 동팔을 도왔다. 하지만 아기가 생긴 이상, 안 좋은 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스프링캠프가 시작되기 전,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해 놓아야 했다.
그런데 마침, 캔자스시티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뉴욕에 온 지완이 있었다. 어차피 지완의 빠른 회복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것.
그래서 동팔은 오전에 지완을 회복시키고, 오후에는 한계를 넘는 전력투구를 할 생각이었다.
아기가 생기기 전에는 하루에 동시에 하는 건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만드니 자중했다. 하지만 의무와 책임이 생기면서 이전에 없던 각오가 생겼다.
그러니 동팔을 걱정하는 사람은 본인이 아니라 듣고 있던 지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팔의 결심은 바뀌지 않았다.
동팔은 제일 먼저 시즌이 끝나고 다시 시작되는 사이에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것은 지완의 빠른 회복. 그리고 이전보다 구속을 더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변화구에 대한 제구는 감각을 최대한 유지하는 방향으로. 또한 타격도 마찬가지였다.
타격의 경우 이미 힘을 키워놓은 상황에 필요한 것은 정교한 타격이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본래 투수인 동팔이 전력을 할 수 있는 훈련은 아니었다.
만약 시간이 남들보다 많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니 시간 사용의 배분에 있어서 선택과 집중은 필수였다.
"그러니까 팀의 성장은 물론 본인의 실력 향상도 동시에 하고 싶다는 거잖아."
지완의 말대로 동팔이 원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양키즈에선 이번에 시작할 시즌을 대비해 상당한 자금을 투입했어. 잘 하면 좋은 기회가 될 거야."
"하지만 지난 시즌에 잘 했다고, 그 다음에도 잘 한다는 보장은 없어. 나처럼 무리했다가 힘이 떨어져서 본래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 너처럼 회복이 빠르지 않는 이상.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들어온 선수들 자료를 혜진이가 파악하고 있는데 좀 힘들겠다는 판단을 했어."
이미 혜진의 분석력은 민희를 통해 양키즈 구단에 알려졌다. 캔자스시티에서 쉬쉬하려고 했지만, 시즌이 마무리되었을 땐 소문이 한참 퍼진 다음이었다.
혜진의 분석으로 승률이 오르자 은근슬쩍 자랑했던 과거가 발목을 잡은 것이었다.
한 지역의 승률을 바꿀 정도로 혜진의 분석과 판단은 정확하다. 하지만 그것이 시즌을 시작하기도 전에 예견할 정도인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뭐래?"
"지금까지의 기록과 변화된 몸 상태로. 어떻게 보면 사소한 것이라 잘 관리하면 넘어갈 수 있지만, 언제 슬럼프에 빠져도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이미 보고했데."
"그럼 결국 남은 것은 구단의 방침과 본인들의 준비에 따라 다음 시즌이 달라진다는 말이잖아?"
"아무 것도 모르고, 슬럼프에 빠지는 것보다 낫겠지. 그래서 훈련보다 휴식과 회복에 중점을 두려는 것 같아. 이것도 어떻게 될지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경기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 전에 선수들은 훈련을 하고, 훈련을 지원하기 위해 코치가 있다. 또한 상대에 대한 철저한 분석으로 감독과 선수가 경기에서 더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분석관도 있어야 한다.
양키즈가 지완을 영입하면서 얻은 것 중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혜진의 분석력이었다.
이젠 비자문제까지 한국에서 해결하고 당당하게 양키즈의 전력분석관이 된 혜진.
그래서 선수들보다 더 바쁘게 정보를 파악하고 분석하고 있었다.
둘이 이야기하고 있을 때, 하얀 늑대의 벗이 지하 훈련장에 들어왔다.
"시간이 되었다."
그러자 동팔과 지완은 각자 입에 물 마우스피스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자신이 누울 침상위에 앉았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동팔과 지완의 말에 하얀 늑대의 벗이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민희와 혜진이 신경쓰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지금 그들이 해야 하는 것은 앞서 말한대로 지완의 빠른 회복이었다. 한두 번으로 회복될 수준이 아니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수 십 차례에 걸쳐서 진행해야 했다.
두 사람은 침상에 누운 후, 마우스피스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서로 손을 잡은 뒤 동팔이 말했다.
"안아(간다.)"
비록 마우스피스를 입에 물어 제대로 된 발음이 되지 않았지만 그 의미는 확실히 전해졌다.
"으양 애(그냥 해)"
그리고 지완의 말 또한 발음이 되지 않아도 동팔에게 확실히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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