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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오력의 투수-222화 (222/325)

[222]

동팔과 동욱과 달리 그들은 이미 계약에서 해방되었다. 그러니 그들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들의 앞길을 방해할 것이다.

동욱이 말했다.

"사실 내가 모이자고 한 것도 그것 때문이야. 웜우드를 통해 확인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걸 이용하면 확실히 막을 수 있어."

동욱의 말에 동팔과 지완은 얼마나 중요한 정보인가 궁금했다.

"한 번 계약의 서로 계약을 한 사람은 해방된 이후에 또 계약을 할 수가 없어. 즉 계약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이란 거지."

"그래? 그건 몰랐는데… 하지만 해방된 다음에 굳이 또 계약하려는 사람이 있을까? 애초에 불가능하다니 생각할 필요가 없는 거지만."

"세상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사람이 살고 있어. 또 궁지에 몰리면 계약을 할 사람이 없다고 장담할 수 없지. 하지만 이걸 이용하면 그들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적어도 그들은 계약을 할 때 몸의 회복을 기본적으로 해주니까. 동팔이처럼 대놓고 회복 능력을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 아니, 네가 유일할 거다."

그래서 동팔은 다른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능력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덕분에 그들이 할 수 없는 다른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 선택을 후회한 적 없어. 그래서 계획은 뭔데?"

동팔은 그 말을 하면서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시 스크레이치가 와서 몰래 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서.

애초에 그가 몸을 숨기기로 했다면 볼 수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것이라 확인을 해 본 것이다.

"간단해. 선수 생활을 끝내버리는 거야. 부상이든 뭐든……."

헤럴드와 데미안이 이들에게 위협적인 이유는 어디까지나 그들이 마운드, 타석에 올라왔을 때다.

확실히 동욱이 말 한대로 선수로서 설 수 없게 되면 더 이상 위협이 될 수 없다. 다만 같은 선수로서 두 사람의 선수 인생을 끝내야 한다는 것은 꺼림칙했다.

"하지만…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어?"

그러자 동욱이 강하게 말했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해. 어차피 해방된 녀석들이잖아? 그리고 같은 입장에 있었으면서도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나락으로 떨어트리고 있는 인간 말종이야. 이런 것들은 차라리 없어지는 쪽이 좋아. 생각 같아선 어떻게든 죽여 버리고 싶지만… 그것까지는 아니다 싶으니 선수생활을 끝내는 걸로 마무리해야지."

지금 동팔과 동욱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 중이다. 그나마 경쟁 관계인 두 사람이 힘을 합치려 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각자의 생존율을 최대로 높이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동욱이 헤럴드와 데미안을 강제로 은퇴시키려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목숨이 걸린 이상, 이것은 스포츠가 아니라 전쟁이 되었으니까.

그마나 전시에도 최소한의 협정과 군율이 있으니 그걸 생각해 실제로 죽이진 않겠다는 의미였다.

그런 동욱의 생각에 동팔도 부정할 수 없었다. 대신 다른 걱정이 들었다.

"그럼 어떻게?"

문제는 방법. 강제로 은퇴시킬 부상을 입히면, 동팔처럼 다시 회복할 능력이 없는 이상 그들은 선수로서 끝난다.

계약의 서로 인해 다시 계약할 수 없으니 재기할 수단도 없다.

목적도 문제지만 목적을 이룰 수단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문제다.

"설마 마피아나 청부업자를 고용하게?"

그러면 확실히 그 두 사람을 선수로서 완벽하게 끝낼 수 있다.

"당연히 아니지. 나중에 어떤 일을 당할지 뻔히 아는데 굳이 일부러 수렁에 빠질 이유는 없잖아. 그 녀석들이 일을 제대로 처리한다는 보장도 없고, 처리해도 죽는 날까지 협박에 시달리겠지."

양아치처럼 쓰레기 같은 인간은 어느 나라를 가도 비슷하다. 각 문화에 따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패턴은 같다.

보통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일반 사람은 상대가 곤경에 처했을 때, 최소한 안타까워하거나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도와준다.

하지만 그외 인간이길 포기한 사람은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하며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무언가를 더 얻어내거나 빼앗으려 한다.

비단 마피아와 같이 조직폭력배만 이런 행동을 하는 건 아니다. 소위 말하는 갑질이라 불리는 행동도 마찬가지다.

갑질을 하는 사람도 자신의 상황의 여의치 않고, 더 위에서 압박을 하니 살기위해서 하는 경우도 꽤 많다.

하지만 그것도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핑계에 불과할 뿐이다.

각자도생을 이유로 흩어지면, 지옥과 같은 삶이 자신과 자식을 기다린다.

상대의 목줄을 쥘 수 있는 위치에서 겁박하며 정해진 계약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것은 강탈과 다를 바가 없다.

결국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불가능. 그런 상황에 동팔이 말했다.

"꺾어야 하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가 야구장에서 할 일이지, 다른 곳에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리에 일어나면서 말했다.

"무엇보다 우리는 선수야. 모든 것은 야구장에서 결정하는 거지."

그것으로 세 사람의 만남은 끝났다.

***

동욱이 광주로 갔지만, 동팔은 서울로 바로 올라가지 않았다.

마침 같이 놀러 온 민희도 대구에 왔기 때문이었다.

동팔이 지완의 집에 가기 전, 동욱이 떠나 둘만 남은 상태에서 그들만의 대화를 시작했다.

"정말 그것 밖에 없는 걸까?"

이야기를 끝낼 때, 모든 것은 야구장에서 승패가 결정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대가 보통 강한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목숨이 걸린 이상, 허투로 상대하는 것은 지양해야 했다.

동팔의 말에 지완이 대답했다.

"네가 그렇게 정했으면 그렇게 가는 거야. 아직 시즌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기가 죽으면 될 일도 안 되는 거지. 그리고 사실 동욱이 의견에는 개인적으로 찬성. 앞으로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들 놈들인 이상, 이후의 다른 계약자들을 위해서라도 그들을 은퇴시켜야 해."

하지만 폭력적인 방법은 오히려 자신들의 목줄을 조이게 됨을 알고 있음에도 동의하고 있는 상황.

그렇다면 이 두 가지 생각을 합치면 가능한 방법이 하나 있었다.

"사고를 핑계로 상대에게 위협구를 던지는 것이 조금 위험해도 무난하겠지. 동욱이 정도라면 헤럴드가 위험한 공을 던져도 피할 수 있는 반면, 데미안은 아니잖아?"

야구장 밖에서 부상을 입힐 수 없다면, 안에서 입히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 사람은 투수다.

솔직히 말해 마음에 드는 방식은 아니지만, 목숨이 걸린 이상 못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동팔은 그마저도 선택하지 않았다.

"보통은 그럴지 몰라도, 데미안이 미리 파악하면 소용없어. 오히려 논란만 생기고 성과가 없을 확률이 더 높아."

지완의 말에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동팔의 양심이 지완의 차선책마저 거부하고 있었다.

"그럼 정말로 정면승부로 나가게?"

"응. 던지고, 던지고 또 던져서 먼저 나가떨어지게 만들어야지."

동팔의 말에 지완이 작게 말했다.

"정말이지 너답다……."

그리고 동팔이 듣지 못해서 묻기 전에 이어서 말했다.

"시애틀이 동부 지역이라 많이 마주치면 몰라도 그게 아닌 이상, 그것도 쉽지 않을 거다."

"그렇긴 하겠지……."

"지금은 너랑 동욱이가 서로 견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지. 만약 동욱이도 적이라면 우리 둘이 같이 있어도 포스트시즌 진출에 벌써부터 빨간불이 켜졌을 거다."

그 다음으로 이어서 한 지완의 말은 동팔로선 의외의 말이었다.

"그런데 넌 아기 안 만드냐?"

"응? 아기?"

"응. 아기. 주변에 다른 친구들과 달리 돈 걱정은 없잖아."

지금 사회에서 결혼을 포기하고, 육아를 포기하는 이유가 있다.

돈이 없다.

결혼을 하면 부모님 집에서 얹혀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전이라면 시집살이나, 처가살이가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그 집을 물려받거나, 그 전에 독립을 한다.

하지만 지금은 결혼과 동시에 독립이다.

특히나 시대의 변화가 빨라지면서 고부갈등도 심해지거나 표면에 쉽게 드러난다.

결혼까지 가는 것도 쉽지 않다. 물론 이혼을 결심하게 되는 과정도 쉽지 않다. 그래도 고부갈등으로 인해 생긴 균열을 극복하지 못하면 결국 이혼까지 가게 되고 만다.

그걸 넘어서도 아이가 생기면 낳는 것도, 먹이고 재우고 키우는 것도 전부 돈이 들어간다. 그 돈이 감당할 수준이라면 다행이지만, 그 이상을 넘어가게 되면 이 또한 부담이 된다.

육아는 이혼처럼 도장 찍는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자녀들이 있는 이상, 그리고 자신의 인생이 끝나니 않는 이상. 도의적인 육아책임이 항상 따라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물질중심이 된 세상에서 그 책임은 보통 돈으로 계산되어 청구된다.

하지만 동팔의 경우는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야. 만약 내가 혹시 잘못되었을 때, 민희가 새 출발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없잖아."

원래 동팔은 민희와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계약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했을 때, 민희가 슬퍼할 것이다.

그래도 죽은 자신이 민희의 앞길을 막는 건 싫었기에 최대한 결혼을 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그것도 동팔이 악마와 계약한 것을 민희가 알게 되면서 소용없게 되었다.

동팔의 말에 지완이 말했다.

"새 출발? 민희가? 민희가 여자이긴 하지만 네 생각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야. 모든 것을 알고도 너랑 결혼한 것 보면 모르겠냐?"

"그야 알지……."

결혼을 결심하기 전, 민희는 말했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선택이며,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도 자신이 지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걸 떠올리자 동팔은 자신이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뭐지? 뭔가 굉장히…큰 실수를 한 것 같은데…….'

동팔이 그 생각을 했을 때, 지완이 말했다.

"동팔아. 좋게 끝나면 상관없는 일이긴 한데, 만약에 안 좋게 됐다고 가정해봐. 그럼 민희는 이 세상에 혼자 남게 돼. 그런 상황에서 새 출발도 쉽지 않겠지만, 혼자 남게 되었다는 상실감이 얼마나 클지 생각해 봤어?"

"하지만……."

분명히 크게 상심하고 슬퍼하겠지. 그때 민희의 나이는 한국식으로 따져도 29살이다.

비록 한 번 결혼했지만 사별한 경우라면 재혼하는데 큰 장애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동팔이 생각한 것은 거기까지. 지완은 그 이상의 것을 말했다.

"혼자 있으면 이상하게도 안 좋은 생각이 밀려와. 새 출발하면 다행이지만, 절망을 이기지 못하고 널 따라가겠다고 할 수도 있어."

"그건……."

"하지만 그런 상황에 아기가 있다면 쉽게 널 따라갈 생각은 하지 않겠지. 네가 없어 힘들겠지만, 벌어놓은 돈이 있으니 적어도 돈 걱정은 안 하게 될 거고. 남은 것은 결국 마음의 문제가 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돈이 있든 없던 결국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마음의 문제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마음이 무너지면 살아갈 생각이 들지 않고, 돈이 없더라도 희망이 있으면 하루를 살아갈 힘이 된다.

그럼에도 지완이 이렇게 말을 한 것은, 동팔이 가능한 더 나은 방향으로 결정하는데 부담을 덜어주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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