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
"떨어질게 뭐가 있다고 아양인지……."
헤럴드는 자신이 성공하기 전에 제일 먼저 부모와의 인연을 끊었다. 법적으로 성인이 되자마자, 그가 법원에 신청한 것은 아동학대 신고 및 보호. 그리고 접근금지 신청이었다.
당연히 대상은 자신의 부모.
헤럴드는 그동안 모아온 학대의 증거를 법원에 제출했고, 법원은 객관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헤럴드의 부모의 친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그의 부모는 헤럴드의 행동에 화를 냈지 미안하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후회할 것이라고 윽박질렀다. 그러나 지금은 정 반대의 상황이 되었다.
메이저리그에서 크게 성공한 이후, 헤럴드는 막대한 부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부모는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다.
당연히 그들은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헤럴드의 소식을 중계화면을 통해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부모로서 자존심을 버리고 구차하게 변명을 시작했다. 그러나 헤럴드는 단호했다.
지금도 여전히 접근금지 명령이 유효했으며, 혹시라도 법원에서 헤럴드에게 생각이 바뀌었는지 물으면 대답은 지금도 한결같았다.
그러니 부모는 궁핍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생각보다 자주 전화를 했다. 이건 헤럴드가 마음을 돌려야 가능했기 때문이다.
특히 시즌이 끝나고 대부분 일정이 마무리된 지금이라면 그 빈도가 더 늘어난다. 하지만 헤럴드는 단 한 번도 다시 전화를 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전화번호를 바꾸진 않았다. 적어도 이렇게 유지하고 있으면, 최소한 승리자의 희열을 작게나마 누릴 수 있었으니까.
수신 내역을 파악한 헤럴드는 다시 거실로 돌아왔다. 이미 멈춘 게임의 화면이 그를 비추고 있지만, 멍한 눈으로 그걸 볼 뿐이었다.
그러던 중 그의 옆에 모데스가 나타났다.
"심심해 보여."
그의 말에 헤럴드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아, 맞아. 심심해. 두 녀석을 동시에 처리해서 짜릿했는데…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아."
헤럴드는 그 말을 하면서 TV화면을 게임에서 일반 방송으로 전환했다. 그러자 TV는 자주 보는 채널의 방송을 보여주었다.
다른 사람들도 웃고 즐기는 프로그램이었지만, 헤럴드는 재미를 느끼지 못해 웃지 못했다. 그러니 그가 유일하게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을 모데스에게 물어봤다.
"내년에 계약이 끝나는 녀석이 있나?"
"있기는 해. 하지만 하위 팀에 있어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것도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어."
"그래? 그거 아쉽군. 이왕이면 올해처럼 희망이 보일듯 말듯 한 상황일 때 떨어트려야 하는데."
희망이 크면 클수록, 절망도 크다.
특히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여 마지막 한 경기를 남겨두고 있을 때.
어쩌면 해방이 될지 모른다는 기대를 하며 전심전력으로 달려드는 계약자에게 패배를 안긴다. 당연히 그들은 바로 눈앞에 온, 유일하며 마지막 기회가 날아간 것을 알고 깊은 절망에 빠진다.
그것을 보는 것이야 말로, 그동안 선수를 은퇴하지 않은 이유였다.
하지만 그건 고작해야 1년에 한번 느낄 수 있는 재미. 지금처럼 시즌이 끝나면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 사이 헤럴드가 느낄 수 있는 재미는 많지 않다.
시즌 중이라면 계약자가 있는 팀을 패배시킬 때, 잠시 좌절하는 것을 보는 것. 그리고 지금처럼 시즌이 마무리되고, 다시 시작되길 기다릴 땐 부모가 비굴하게 전화하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지루함을 잠시 이겨낼 대용품에 불과할 뿐, 진짜 즐거움은 아니었다.
"그럼 진짜 재미는 내년이 아니라 내후년이라는 말이잖아. 이거 길어도 너무 길어… 지루해서 죽을지도 몰라."
헤럴드의 말에 모데스는 오히려 웃었다.
"네가 그걸로 죽어? 그럴리가 없잖아. 오히려 내후년에 있을 큰 이벤트를 기다리며 어떻게든 살겠지."
고기도 맛을 본 사람이 더 잘 먹는다고 한다. 이미 신과 같은 자리에 있는 쾌감을 알게 되었으니 다른 것에 즐거움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자신의 생각과 결정에 따라 목표가 된 대상은 목숨과 영혼을 강탈당한다.
이것은 고작 곤충이나 작은 동물을 손으로 죽이는 것보다 더 큰 쾌감을 불러온다.
모데스의 말에 헤럴드도 역시 싱긋 웃었다.
"그렇지. 네 말이 맞아. 죽을 수는 없지. 이렇게 좋은 걸 두고 내가 왜 죽어?"
그렇다고 해서 그의 아쉬움이 사라진 건 아니다.
"그럼 내년에는 자잘한 녀석들로 만족해야겠어. 이왕이면 포스트시즌에 만났으면 하지만……."
그러나 그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녀석들이 있는 이상 그건 불가능하겠지."
아쉽게도 이미 강력한 계약자 둘이 최소한 내후년까지 활약을 할 예정이다. 굳이 자신이 아니더라도 그들에 의해 포스트시즌 진출은 어려웠다.
그 둘은 헤럴드와 모데스가 아주 잘 아는 사람이었다.
"올해처럼 내년도 동팔과 동욱에 의해 막힐 테니까."
바로 내후년의 사냥감이었으니까.
***
한편, 한국에서 동팔과 동욱은 대구에서 만나고 있었다.
"지완이는 언제 온데?"
"조만간… 우리랑 달리 애 아빠잖아."
두 계약자와 사기계약을 당해 졸지에 관계자가 된 세 사람이 모이기로 했다. 이미 함께 모이기로 메이저리그 시상식 때 약속을 잡았다.
먼저 온 사람은 동팔과 동욱. 그리고 약속 시간에 조금 늦은 상태에서 지완이 서둘러 왔다.
"미안, 제일 가까운데 제일 늦었네."
지완의 말에 두 사람이 말했다.
"뭐 애 아빠니까 이해할게."
"아직 애가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예은이가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평상시에 약속 시간을 잘 지키는 지완임을 알기에 할 수 있는 예상이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예은이가 잡고 놓아주지 않더라고. 겨우 재우고 왔어."
"고생이 많다."
"애 썼어."
그리고 남자들의 대화답게, 간단한 안부나 형식적으로 물은 다음 본론으로 넘어갔다.
"이번 시즌 어떻게 할 거야? 정확히 어떤 능력인지 몰라도 두 녀석이 같이 있으면 상대하는 것이 난감해."
그들이 여기에 모인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들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계획을 위해서였다.
이미 지완은 사기계약이라 죽을 일이 없지만, 동팔과 동욱은 아니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시간은 두 시즌.
"제일 좋은 것은 두 녀석이 어떻하든지 빨리 탈락시켜버리고, 둘 중에 하나가 먼저 월드시리즈에 우승하는 것… 이겠지? 둘 다 내년에 뛸 팀이 정해진 상황이니."
지완의 말대로 여전히 동팔은 뉴욕 양키즈에, 동욱은 클리블랜드에 있었다. 계약할 때엔 물음표가 붙었던 그들이었지만, 계약금액을 훨씬 뛰어넘는 활약을 한 이상 구단이 그들을 놓을 이유가 없었다.
어떻게든 다른 구단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보호선수 명단에 든 것은 기본이고, 이후에 재계약을 위해서 최고의 예우를 약속했다.
물론 이것도 내년 성적이 신통치 않다면 단번에 날아갈 것이지만, 적어도 다음 시즌만큼은 확실히 보장받을 수 있었다.
"더 좋은 것이라면 동욱이가 양키즈에 오는 것이 있지만…이젠 불가능한 상황. 그리고 헤럴드와 데미안이 같이 있는 시애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건 당연하다고 본다. 그 녀석들이 우리가 해방되길 바라는 것 같지 않거든."
사냥감을 몰아가기 위해선 도망칠 수 없는 곳으로 몰아넣어야 한다. 도망칠 곳이 많다면 사냥의 성공 가능성은 낮아진다.
내후년까지라고 하지만, 내년에 누군가 먼저 해방된다면 다른 사람도 그의 조력을 받아 해방될 가능성이 높았다.
동팔과 동욱이 해방되길 바라지 않는다면, 내년에도 두 사람이 월드시리즈에 우승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당연한 행보였다.
"결국 최종 결전은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이후가 된다는 거잖아. 그리고 우리는 각자 팀에서 지역 우승을 위해서 뼈 빠지게 고생해야 하고."
본선에 오르기 위해선 예선을 통과함이 당연한 일. 그리고 월드시리즈에 진출했거나 챔피언십 우승을 하더라도 내년의 포스트시즌에 시드가 배정되는 건 아니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며 올라가야 한다.
당연히 올해 거둔 성적은 올해만 유효하고, 내년에는 새로운 기록과 성적을 거두기 위해 피와 땀을 흘려야 한다.
"최종결전의 때는 당연한 결과고 중요한 건 우리의 전력이 어떤가 하는 거겠지. 다음 시즌에는 시애틀을 견제해야 하는데 문제는 우리 전부 다 서부지구에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거야."
시애틀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선 그 팀을 상대로 승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역이 다르니 마주칠 일이 거의 없다.
당연히 시애틀을 견제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다.
"지역에서 다른 팀과 견제하는 것도 어려운데, 시애틀까지……."
같은 지역의 팀과 경기를 하여 져선 안 되지만, 시애틀을 상대로 하여도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앞서 말 한대로 예선을 통과하지 못하면 본선에 진출할 수 없다.
시애틀을 잡으려다 오히려 지역 우승을 하지 못하면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길은 거의 막히게 된다.
"먼저 확인하고 싶은 건, 지완이가 양키즈로 갔다고 했지? 재활은 어느 정도 걸릴 것 같아?"
"그건 직접 해봐야 하는 거지. 조금 해봤지만, 약간 회복이 되었을 뿐이야. 적어도 한 시즌은 그냥 보내야할지도 몰라."
동팔은 그 말을 하고 동욱에게 물어봤다.
"그래서 그런데, 내년은 어쩔 수 없지만 내후년에 양키즈로 올 생각 없어?"
그렇게 되면 최강의 팀을 완성하게 된다.
동팔이 선발로 등판하고, 2선발이나 불펜으로 지완이 마운드를 지킨다. 그리고 동욱이 최강의 화력으로 지원하면 양키즈 역대 승률을 최고치까지 갱신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하지만 동욱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도 마음이야 굴뚝같지. 하지만 구단이 날 놔줄지 모르겠다. 그리고 뉴욕에서 날 데려갈 만한 자금은 있고? 이번에 보니까 정말 열심히 영입하던데? 올해 이렇게 쓰면, 내년 이적 시즌엔 쓸 돈에 제한을 받게 돼."
동욱의 말대로 간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양키즈는 동팔을 지키고, 마운드 및 타선 보강에 힘을 기울였다.
잘 하면 다음 시즌에 디비전을 넘어 챔피언십 우승을 넘볼 수 있을 거라 예상되었다.
물론 전력을 강화했다는 말은 자금을 많이 소모했다는 의미다. 지금 5할에 준하는 타율을 보이고 압도적인 타점 생산능력을 갖춘 동욱을 영입하기 위해선 한두 푼으론 절대 불가능하다.
"설령, 내가 내년에 부진하더라도 올해 한 것을 생각하면 절대로 낮아지지 않아. 그건 지금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내년에 생각할 일이지. 그리고 지금은 헤럴드와 데미안을 상대할 방법을 찾는 거야. 적어도 다음 시즌에는 같은 팀에 있는 것보다 따로 있는 편이 견제하기 좋을 거다."
동욱의 말에 지완이 말했다.
"확실히 한 팀에 몰려 있으면 견제 가능한 기회도 줄어드니까. 하지만 내년을 어떻게 넘기더라도 그 다음에도 상대해야 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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