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219화 (219/325)

[219]

한편, 시상식이 끝나고 바로 고향으로 돌아온 동욱은 인천국제공항에 내린 후, 무안국제공항으로 가는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그래서 동욱의 경우는 아메리칸 리그 시즌 MVP의 수상자답지 않게, 기자들의 취재가 거의 없었다.

덕분에 동욱은 동팔과 달리 여유있게 공항을 나와 바로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중에 그걸 알게 된 기자들이 땅을 쳤지만, 이미 늦은 이야기. 취재하기 위해 집으로 쳐들어갈 수 없으니 다음 기회를 노려야 했다.

집에 도착한 동욱이 한 것은 어머니 앞에 큰 절을 올리는 것. 아들이 절을 드린 다음, 앉자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고생했다. 큰 상도 받았다면서?"

"네, 아마 선수 개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상으로 알고 있어요."

"그래, 잘 했다. 우리 아들."

어머니는 그 말을 하고 동욱을 안아주셨다. 그리고 이후에는 가족들과 단란한 식사. 하지만 작년에 동팔이 놀러왔을 때와 달리, 이번에는 누나와 여동생이 주로 준비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동욱이 받은 상의 트로피를 손에 쥐고 쓰다듬으시면서 동욱과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좋은 상을 받았으니 편하게 살라거나, 더 정진하라는 말은 사치일거라 생각한다. 원하는 것을 이뤘으니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아야지. 혹시 눈이 가는 처자는 없고?"

"진짜 하고 싶은 건 월드시리즈 우승이에요. 그리고 아직 눈에 들어오는 사람은 없네요."

"인종이든 어느 나라 사람이든, 널 사랑해줄 수 있는 여자면 충분한 거야. 돈이 없을 때 다가온 여자라면 걱정하지 않겠지만, 이렇게 크게 성공하니 이상한 여자가 달라붙을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고. 듣자하니 어떤 선수는 꽃뱀인지 아닌지 몰라도 이상한 일에 연관되는 바람에 고생을 많이 했다더라."

남들이 주목하는 선수가 되었으니 행동을 더욱 조심하라는 조언. 그리고 특히 피가 끓어오르는 2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가는 시기다.

성적인 유혹에 약할 나이니 어머니로선 아들이 한 순간의 실수로 코가 꿰이는 건 아닌가 저절로 걱정되었다.

무엇보다 아직 사귀고 있는 여자도 없으니 더욱 걱정되는 건 당연한 일.

하지만 동욱은 동욱대로 어머니에 대해 다른 걱정을 하고 있었다.

'왜 어머니께서 식사 준비를 하지 않으시는 거지? 보통은 다 같이 했는데…….'

오늘은 미국으로 가기 전과 달리 어머니께서 식사를 준비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아들을 많이 아끼고, 특히나 자신이 만들어준 밥을 /동욱이 먹는 걸 좋아하/신다.

오랜 만에 만난 자리라면 어머니께서 특히 신경을 쓰실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 일어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동욱은 이 자리에서 묻지 않고, 어머니와의 대화에 집중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방에 쉬러 가셨을 때, 누나와 여동생과 따로 만났다.

"지금 어머니 몸 상태가 어떤데?"

동욱이 물음에 누나는 먼저 여동생에게 말했다.

"내가 말할 테니까, 넌 가서 엄마 어떠신지 보고 와."

"응……."

동생은 웬일로 언니의 말대로 따랐다. 그 모습을 보자 동욱은 더욱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불길한 느낌은 거의 대부분 맞아 떨어졌다.

"암 /말기래. 이미 여기 저기 전이가 된 상태라 완치는 불가능하고……."

"그럼 대체 왜 그렇게 될 때까지 내버려 둔 거야?"

"우리라고 원해서 그런 줄 알아? 네가 성공하기 전에는 돈이 없어 검진을 못 받았지만, 이후엔 돈 아끼지 않고 항상 검진을 받았어. 얼마 전만 해도 발견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발견된 거야. 우리도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되어 얼마나 충격받았는지 알기나 해?"

이들의 대화는 아주 조용히, 하지만 격정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지금 안방에서 쉬고 계시는 엄마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어머니는? 알고 계셔?"

"아니, 모르셔. 그냥 이전에 많이 고생을 하셨고, 그래서 노환이 빨리 오시는 것으로 알고 계신단 말이야. 그리고 너라면 말할 수 있겠어? 사실…남은 날이 많지 않다는 걸 어떻게 말해?"

그렇지 않아도 몸이 안 좋은데, 큰 충격으로 돌아가실 수 있다. 당연히 말하는 것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계속 말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다만 그때를 언제로 잡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있던 중, 동욱이 메이저리그에서 크게 성공하고 잠시 돌아온 상황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네가 오면 이 말을 하려고 했어. 이건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적어도 셋이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될 거라 생각한 거야."

"치료될 확률은 정말로 없는 거야?"

"기적 이외에 없데. 그래서 의사 선생님은 차라리 말씀을 드리고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받는 것보다 진통제 중심으로 해서 마지막 여생을 편하게 보내드리는 것이 나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어."

암이 고통스러운 것은 치료 과정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소모되는 막대한 치료비였다. 그나마 동욱이 메이저리그에서 시즌 MVP를 달성하고, 금의환향했으니 다행이었다.

만약 일반적인 가정이었다면, 암보험에 들어 치료비를 일부 충당하지 않는 이상,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파산하기 쉽다.

그래서 암환자는 본인의 치료과정이 고통과 함께, 자신으로 인하여 집이 가난해지는 것을 봐야 하는 압박에 시달린다.

누나의 말대로라면 의사가 말한 것은 사실상 시한부 인생의 선고였다. 의학적으로 치료를 포기하는 것이 낫다는 것은 생존가능성 자체가 없다는 것.

"그럼…언제까지?"

"빠르면 올해. 그래도 유일하게 다행인 점은 진행속도가 느리다는 거레.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2년이야."

누나의 말에 동욱은 무언가 있음을 직감했다. 그래서 누나에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알았어. 나중에 내가 미국가면 어머니 부탁할게. 소식 있으면 바로 알려줘."

"응……."

동욱은 누나와 여동생과 함께 설거지를 도와준 후, 바로 자신의 차를 타고 밖으로 나왔다. 그가 간 곳은 특별한 곳이 아닌,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광주 외곽의 도로였다.

한적한 곳에 오자 동욱은 한 존재의 이름을 불렀다.

"스크레이치……."

그가 이름을 부르자, 얼마 지나지 않아 스크레이치가 동욱의 옆자리에 나타났다.

"간만에 내 이름을 부르는군. 이러다 얼굴 잊어 먹겠어?"

"퍽이나… 다른 건 둘째 치고 묻고 싶은 것이 있어. 어머니 상태…네가 한 짓이야?"

동욱의 말에 스크레이치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거참 악마 억울하게 만드는구만. 지금 네 어머니가 살아있는 건 어디까지나 내 덕분인 줄 알아야지. 그렇지 않아도 수명이 거의 끝나가는 것을 내 힘으로 어떻게든 늦추고 있어."

"그건 알고 있어. 하지만 완전히 치료할 방법은 없어?"

동욱에게 있어 어머니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 그리고 자신이 이렇게 노력하며 성공하려는 이유 그 자체였다.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어머니께 받은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동욱이다.

실제로 동욱은 자신의 영혼을 걸기까지 했다. 바로 지금처럼.

동욱의 바람에 스크레이치는 단호하게 말했다.

"없어. 악마가 인간보다 능력이 많지만, 그렇다고 전능한 건 아니야. 너희들의 생과 사는 모두 너희들이 말하는 신이 관리하지. 그나마 이렇게 늦추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그의 말에 동욱이 말했다.

"그럼 확실하게 일해. 계약조건을 유지하는 것도 네가 할 일이니까."

적어도 2년만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아니, 최소한으로 확보가 된 어머니의 수명이 2년이었다.

적어도 스크레이치는 동욱의 영혼을 취하기 위해서라도 어머니가 2년 안에 죽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니까.

그가 계약을 한 것은 월드시리즈 우승이 아니다. 자신이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는 것을 어머니가 보는 것.

직접 보는 것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적어도 그 순간에 중계화면을 통해서 보게 하는 것이 그가 바라는 것이자 해방 조건이었다.

어떻게 보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불리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 계약에는 스크레이치가 해야 할 의무조항이 있었다.

"걱정하지 말게. 적어도 그때까지 살아있고, 의식이 있어 중계되는 것을 볼 수 있을 정도까진 해 놓을 거니까."

어머니가 월드시리즈 우승이 정해지는 경기를 안 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때 사고나, 수술 등으로 인해 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면?

그런 경우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스크레이치가 해야 할 의무가 부여된 것이다.

당연히 어머니의 병세를 늦추기 위해 스크레이치가 종종 와서 힘을 부여해야 했다. 그리고 그 틈을 이용하여 웜우드가 움직일 틈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사이에 웜우드는 동욱을 비롯한 동팔과 만남을 가졌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스크레이치가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거 확인하려고 불렀어. 됐으니까 그만 가봐도 돼."

마음대로 불러놓고, 이젠 또 자기 마음대로 가라고 한다. 자신의 관점에서 보면 보잘 것 없는 필멸자 주제에 감히 악마 중에서 장관이 자리에 있는 자신을 철저히 무시했다.

스크레이치는 속에 화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동욱의 영혼을 강탈한 이후의 즐거움을 생각했다.

"그러도록 하지. 궁금한 것이 있으면 또 물어보도록. 항상 온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 말을 남기고 스크레이치의 모습은 사라졌다. 그가 사라졌지만 동욱은 방심하지 않는다.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도 옆에서 지켜보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

웜우드에게 들은 악마에 대한 정보에선 실제로 사람의 마음을 읽지 못한다고 했다.

다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반응을 체크하며, 이전에 얻은 과거의 정보를 바탕으로 분석할 뿐이라고 했다.

그러니 동욱도 그에 대한 것을 주의하면서 자신이 생각이나 계획을 말로 내뱉지 않으려고 했다.

'제일 먼저 월드시리즈에 우승하기 위해선 그것들을 정리해야 해. 그리고 그건… 아쉽게도 나 혼자 할 수 없는 일.'

하지만 혼자 할 수 없으면 같이 하면 된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목적을 가진 경쟁자이자 동료가 있었다.

'먼저 서울로 올라간 다음, 동팔과 만나자. 그렇지 않으면 불가능해.'

그렇다고 바로 서울로 가지 않았다. 지금은 가족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야 할 때. 제일 피하고 싶은 상황이지만, 어머니와 함께 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한국에 있는 동안, 어머니와 더욱더 함께 해야 했다. 더 큰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 표적

메이저리그에서 돌풍을 일으킨 한국 선수 3인방은 귀국한 이후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그들 중에 특정 연예프로그램이나 광고를 찍는 선수는 없었다.

지완은 아직 몸이 좋지 않아 무리할 수 없었고, 에이전트가 없는 동욱은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물론 집이나 핸드폰으로 연락이 오지만, 정중하게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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