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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동욱은 예은에게 다가온 것이 아니라, 자기 자리로 돌아오는 것뿐이다. 하지만 예은이의 시야에선 그렇지 않았다.
주변에 있던 아빠와 삼촌들이 무언가 받으면 자신에게 주었으니, 동욱도 그럴 거란 기대.
'삼촌~ 나 그거 줘.'
이것이 바로 예은이가 동욱이에게 보내는 눈빛의 의미였다.
그리고 예은이의 기대에 어린 눈빛을 받은 동욱은 바로 그 의미를 알아차렸다.
"아, 저…이, 이건……."
다른 누구도 아닌 어머니께 바칠 상이었다. 하지만 그걸 아는 어른들과 달리, 태어난지 1년도 되지 않은 아기는 알 수 없었다.
무언가 동욱이 주지 않으려는 분위기를 느끼자 예은이의 밝은 표정이 금방 울 것처럼 바뀌었다.
'위, 위험해!!'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이 순간. 아이가 갑자기 울어버리면 전 세계적인 방송사고가 된다. 그리고 그걸 막지 못한 자신은 아이에게 인색한 사람이라는 타이틀이 붙게 될 것이다.
이 상을 받고, 바로 한국으로 가서 어머니께 제일 먼저 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어차피 아이가 바란다고 한들, 정말로 주는 것도 아니니 동욱의 결정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응, 예은아. 여기 이거 받으렴."
뛰어난 수비 플레이를 펼치는 능력을 여과 없이 보여준 동욱. 덕분에 예은이의 울음이라는 실책을 범하지 않을 수 있었다.
바로 옆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지예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오호~ 이거 그림 되는데?'
찰칵!
그녀는 품안에 MVP, 사이영상, 신인상을 한 번에 안은 예은이를 바로 옆에서 찍을 수 있었다.
그 사진은 간단한 에피소드와 함께 전 세계로 퍼졌다. 그리고 사진과 이야기를 본 사람들에게 웃음과 미소를 선사해주었다.
***
공식적인 일정을 마친 그들은 각자 스케줄에 맞추어 한국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면서 그들이 제일 먼저 만나게 된 사람들은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이었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허락을 구하지 않았어도 기자들은 메이저리그에서 뛰어난 기록을 세운 그들의 모습을 찍었다. 일반 사람이라면 초상권 침해로 고소당할 일이었지만, 공인 및 방송에 주로 출연하는 사람들의 경우엔 해당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정신적인 피해에 대한 보호보다 상업적 이용에 의한 것인지가 중요하다.
방송출연이 일인 사람의 경우, 해당하는 방송이나 매체에서 얼굴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다만 그와 계약을 하지 않은 곳에서 초상권에 대한 상업적인 이용이 있을 경우 제한을 받게 된다.
대표적으로 광고 모델 계약이나, 방송출연시 출연 계약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언론의 경우, 이런 계약을 일일이 할 수 없으니 기사로 나오는 것 이외에 나올 일은 없다.
그리고 부정적인 일이 아닌 이상, 얼굴이 알려지는 것은 인지도가 늘어나는 것이니 굳이 마찰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
거기에 언론의 특성을 감안하면 이런 일은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어색해도 프로에 들어와 기자들과 많이 마주치게 되면 어느새 익숙해지는 광경.
동팔은 이미 프로에 입단한지 오래였고, 다시 복귀했지만 최근 2년 동안 많은 집중을 받다보니 익숙해졌다.
다만 동팔의 옆에서 같이 가는 민희는 본인에게 과도한 집중에 절로 민망했다. 그리고 동시에 후회가 밀려왔다.
'아, 맞다… 이걸 예상했어야 하는데…….'
이미 같이 나온 이상 늦었다. 뒤로 빠지면 그건 그것대로 후폭풍이 장난 아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동팔이 기사들을 상대로 능숙하게 대응하고 있었다.
"메이저리그에서 한국인 최초 사이영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잠시 한국에 오셨는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습니다. 그리고 축하 감사합니다."
"가족과 만나게 될 텐데 어떤 말을 전하시겠습니까?"
"그건 가족과 만나면 직접 전하겠습니다."
"이후 계획은 어떠신가요?"
"아직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일단 가족과 만나고 지인들과 만날 예정입니다."
또 다행인 것이 있다면 아무도 민희에게 다가와 질문을 하지 않았다. 동팔이야 공인 급의 인지도를 지니고 있었고, 취재대상이다. 하지만 민희는 그의 아내일 뿐이라 취재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일반인 취재의 경우, 그 사람의 허락을 받지 않고 신원에 대해 방송이나 기사로 나가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라 시도하지도 않았다.
단순히 시민 A의 차원이 아니라, 동팔의 아내라는 신분이 확실히 알려지기 때문에 가명을 써도 마찬가지였다.
기자들이 몰리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동팔을 알아볼 수 있었다.
"어라? 저기 왜 기자들이 몰려있지?"
"유명한 사람인가 봐. 누군지 알아?"
"글쎄… 연예인은 아닌 거 같은데… 아, 맞다. 강동팔 선수다. 얼마 전에 메이저리그에서 사이영상을 받은 사람이야. 한국인 최초로."
야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사이영상에 대해 들어보게 된다. 간혹 연말이 다가오면 항상 스포츠 뉴스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번에 어떤 선수가 사이영상 후보에 있으며, 한국인 투수 중에도 누가 올라왔다는 그런 이야기.
하지만 후보에 오를 수는 있어도 수상받은 적이 없는 상이었다. 바로 얼마 전에 동팔이 받기까지는.
비록 동욱의 MVP에 비해 좀 떨어질지 몰라도, 이번 시즌 아메리칸 리그에서 최고 투수라는 것을 인정받았다는 건 최고의 영예 중 하나다.
그리고 그것을 한국인 최초로 받았다는 것은 그들이 생각하기에 국위선양이라고 받아들인다.
동시에 야구팬들에게 있어서 많은 관심을 받게 되니, 지예처럼 인연이 닿지 않는 이상 기자들이 동팔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공항에서 마주치는 것이 전부다.
물론 집을 알고 찾아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불편을 심하게 끼쳐 다음 시즌 성적이 안 좋아지게 되면 큰 불똥이 튀기 마련이다.
애초에 정치부나 사회부처럼 부정부패에 관련된 것도 아니니 그렇게까지 달라붙을 이유는 없었다.
동팔이 이동을 하면서 길을 막지 않고, 빨리 갈 수 있게 했다. 그리고 그 사이 질문을 하는 것도 이미 기자들이 모였을 때 어느 정도 분배를 한 상태.
가위 바위 보로 작은 녹음기를 들고 있을 사람을 /간단히 정했고, 주변에서 각자 하기로 한 질문을 했다.
덕분에 동팔과 만나 즉흥적으로 일어난 취재는 서로에게 큰 불편을 끼치지 않고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그럼 좋은 시간 보네세요."
"감사합니다. 여러분도 좋은 일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서로에 대한 배려가 서로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며 더 나은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장면.
다만 팬들에게 있어 너무 빨리 지나간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짧은 시간이었다.
동팔과 민희는 겨우 공항버스에 타자 안도할 수 있었다.
"설마 기자들이 와 있을 줄은 몰랐네."
"그러게요. 어느 정도 예상을 했어야 했는데……."
시즌 중에는 지예가 전담으로 하니 다른 기자가 끼어들 수 없었다. 하지만 한국에 오자 이번에 기회를 잡기 위해 몰려들 기자가 있다는 건 예상치 못한 일.
그리고 작년에만 수십억을 번 그들이 공항버스에 타게 된 것은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다들 바쁘신가봐요. 저희 집도 그렇지만."
"연세가 있으신데 마중 나오라고 할 수도 없잖아. 우리가 먼저 가서 뵈어야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차를 항공기에 싣고 갈 수는 없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산 자동차는 가족이 관리하고 있다.
렌트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지만, 이미 자신의 차가 집에 있는데 굳이 그럴 이유가 없으니 이동수단으로 버스를 이용하기로 한 것.
그리고 아직 두 사람이 안심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정말 강동팔인가봐."
"어떻게 하지? 가서 말 걸어도 될까?"
"사인 받자."
공항버스가 항상 만원인 건 아니다.
하지만 인천국제공항처럼 사람들이 오가기 쉽지 않은 곳에선 철도나 버스의 이용 비중이 높아진다.
특히 짐이 많은데 돈에 여유가 없다면 공항버스는 필수.
편리함이야 밴이 낫지만, 기자들에게 갑자기 몰려서 습관적으로 버스에 탄 동팔과 민희였다.
그리고 주변에서 나오는 반응은 좁은 버스 안이니 모를 수가 없었다.
"저기… 강동팔 선수시죠. 사인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미 승객 대부분은 동팔에게 사인받을 물건을 챙기고 있었다. 갑자기 만나게 된 것이라 야구공이 있는 승객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내미는 것은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티. 또는 우연히 챙기고 있던 양키즈나 RG의 유니폼이었다.
하지만 기민한 일부 승객은 이미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기사님. 이거 언제 떠나죠?"
"한 10분 있다가 갑니다."
"그럼 그 안에 오겠습니다."
그 말을 하고 나가려하자, 운전기사가 그를 잠시 세웠다. 그리고 만원짜리 지폐 두 장을 주며 말했다.
"혹시 가능하시면 제 것도 좀……."
분명히 사인을 받으려면 제일 좋은 것은 야구공이다. 공항에 야구공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싶었지만, 다행히 얼마 전에 스포츠 용품점이 생겼다.
용품을 판매하는 의미보다 광고에 목적을 둔 브랜드샵에 가까웠지만, 중요한 것은 야구공을 판매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재빠르게 인터넷을 이용하여 정보를 파악한 승객은 버스가 떠나기 전에 몸을 움직인 것이다.
그리고 10분 뒤, 그는 운전기사가 부탁한 것만이 아닌, 다른 승객의 것까지 생각해 야구공을 대량으로 사 가지고 돌아왔다.
"오, 감사합니다."
"복 받으실 거예요."
당연히 그는 모든 승객의 영웅이 되었다. 다만 한 사람에게는 미안했다.
"죄송합니다. 일이 이렇게 돼서… 그래도 죄송하지만 사인 좀…부탁드리겠습니다."
이런 일로 인해 동팔이 사인해야 할 일이 많이 늘었다. 더군다나 동팔의 허락을 받지 않고 서둘러 한 것이라 미안함은 배가 되었다.
그럼에도 동팔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열심히 달려오셨는데 힘드시지 않으셨나요?"
"동팔 선수에게 사인 받을 수 있는 기회인데 힘들다니요."
결국 그 승객 덕분에 버스에 탄 다른 승객도 덩달아 사인볼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사인볼의 인증을 위한 사진 촬영은 필수.
이들에게 있어 사인볼의 가치는 단순히 물질적인 가치가 아니라, 유명인과 만났다는 증거이자 추억의 증표였다.
일련의 시간이 지나며 동팔은 겨우 쉴 수 있었고, 다른 승객들도 오랜 시간 비행했을 그를 생각하여 편히 쉴 수 있게 배려했다.
그리고 동팔과 민희가 여독에 피곤하여 깊게 잠들자, 버스에선 그들이 모르는 중요한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저기, 계좌 번호 좀 알려주시겠어요? 덕분에 사인볼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거요? 그건……."
공이 한 두 개라면 모를까, 15개에 달하는 공을 본인이 한 번에 계산을 했다. 그리고 다른 승객들도 최소한 공 구입비라도 줘야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동팔과 민희, 운전기사를 제외한 사람들은 공을 사준 사람의 계좌로 이체를 하거나 번호를 적었다.
깊게 잠 든 두 사람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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