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216화 (216/325)

[216]

동팔도 동욱의 생각과 같았다. 하나씩 상대하면 이길 자신이 있지만, 자신이 타선을 봉쇄해도 같은 팀의 타선도 역시 봉쇄가 되면 무용지물이 된다.

거기에 자신의 공을 우연이든, 실력이든 쳐서 넘겨버리면 바로 패배로 이어진다. 지난 번, 메츠와의 경기에서 그렇게 패배할 뻔 했다.

다행히 제리스의 공략이 잘 되었고, 행운이 따라주었기에 승리할 수 있었다.

"최소한 저기 있는 헤럴드와 데미안처럼 대놓고 방해는 못하겠지. 그리고 말만 잘하면 약간의 조력도 얻을 수 있어. 예를 들면 저들 중 하나가 아메리칸 리그의 구단에 와서 시애틀을 견제해 주고, 우리와는 한 번씩 봐주기만 해도 괜찮아. 저것들이 애초에 포스트시즌 진출조차 하지 못하게 하면 그게 제일 좋지."

"하지만 그걸 두고 볼 녀석들이 아닌 건 알잖아. 다른 곳에서 승리를 챙기겠지."

어찌되었건 시애틀이 제일 상대하기 난감하고 어려운 팀인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도 최대한 저지는 해야지. 알아낸 건 있어?"

동팔의 물음에 동욱이 답했다.

"헤럴드? 데미안은 직접 상대하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상대하는 타자가 어떤 공을 노리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아. 그렇지 않으면 불가능해."

"원리는?"

"몰라. 다양하게 실험해 봤는데 짐작이 가지 않아. 차라리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마음을 읽는 것까지 생각해야 할 거야."

"그런데도 어떻게 홈런을 쳤냐?"

"원리는 몰라도 공략은 가능해."

그러면서 동욱은 자신이 어떻게 헤럴드의 공을 공략할 수 있었는지 설명해 주었다. 직구를 예상하고 있다가, 변화구가 오면 친다는 것.

그러자 동팔이 말했다.

"그건 모든 선수들 중에서 너만 가능할거야. 말이 간단하지 그 짧은 순간에 전환을 어떻게 하냐?"

투수가 던진 공이 포수 미트에 도착할 때까지 시간은 약 0.3초 내외. 그 찰나의 순간을 느리게 인지할 수 있는 동욱이 아니라면 엄두도 못 낼 방법이었다.

"자꾸 당하니까 나중엔 직구를 노리고 있어도 직구를 던지더라고. 볼이라 그냥 넘어갔지만."

"어떻게 보면 헤럴드는 네가 상대해야 하는 것 아냐? 상성으로 보면 네가 훨씬 유리하잖아."

동욱이 상대하기 어려운 공은 볼의 회전이 빠르고, 어떤 모양으로 쥐었는지 모를 공이었다. 덕분에 동욱의 타율은 4할 5푼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치고 올라왔다.

물론 시즌 기간 동안 최저 타율이 4할 5푼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경악스러운 사실이지만.

"그것도 나쁘진 않네. 하지만 내가 있는 팀이 이겨버리면, 잃어버린 승리를 너한테 빼앗으려 할 수 있는데 괜찮겠어?"

"그것도 그렇지만, 그래도 만만한 팀을 먼저 노리겠지. 내가 있는 팀 보다……."

어차피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데 필요한 것은 승리뿐이다. 그리고 그 승리는 상대가 강팀이든 약팀이든 점수가 같다.

결국 같은 승리라면 더 쉬운 승리를 얻는 것이 편하다. 물론 강팀을 상대로 승리하면 포스트시즌 진출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고지에 오르겠지만, 어차피 점수는 같다.

시애틀이 클리블랜드와 뉴욕 양키즈에 패배하면 같은 지역의 구단이나, 그 외의 구단에게서 더 많은 승리를 거두기 위해 전력을 다 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건 그렇고, 난 메츠가 우승해서 두 사람이 해방되었으면 좋겠어."

"왜? 확실히 그게 더 유리하긴 하지."

동욱의 말에 동팔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의미가 아니야. 사실 저 두 사람의 모습은 곧 우리에게 닥칠 미래잖아? 그걸 생각하면 악마와의 계약에서 해방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싶어."

동팔이 그 말을 했을 때, 동욱은 스스로를 책망했다.

'아… 그렇지. 너무 내가 해방되는 것만 생각하다보니 저 둘을…단순히 장기말처럼 생각했어. 결국 우리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인데…….'

동팔의 말이 끝나자 언제 나타났는지 하얀 늑대의 벗이 뒤에 나타났다.

"동의한다. 저 둘이 해방되면 그와 계약한 악마도 힘을 잃겠지. 이런 유흥에 참여하는 악마는 적어도 최고위급의 악마. 그들의 힘이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여력도 줄어든다."

"그리고 그건 많은 영혼이 악마의 꼬임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고, 타락하거나 악한 길로 빠지지 않을 수 있다… 그 말이죠?"

"그렇다. 그러면 세상은 조금이나마 살기 좋아진다."

인디언도 이것이 모든 것을 끝낼 만병통치약이 아니란 것을 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병들고 악한 세상이 차도를 보인다면 모든 것을 걸어 볼만 했다.

그래서 그들은 시애틀이 아닌, 뉴욕 매츠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길 바랐다.

하지만 그들의 바람과 달리, 7차전까지 가는 격전 끝에 우승한 구단은 시애틀 매리너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리스와 저스틴의 원인을 알 수 없는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 금의환향

양키즈의 프런트는 트레이드 기간에 남궁지완의 영입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지완도 흔쾌히 허락했고, 10만 달러라도 건지기 위해 캔자스시티도 울며 겨자먹기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덤으로 마크의 지명도 예정되었기에 민희는 마음을 편하게 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편, 양키즈에서 협상 전반을 관리하는 담당자는 여전히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지금 그의 앞에 있는 것은 이미 도장이 찍힌 지완의 계약서 사본이었다.

'대체 이 불길한 느낌은 뭐지? 분명히 손해 보는 것이 절대로 없는 내용인데 왜?'

객관적으로 보면 구단에 유리한 조건이었다.

기본 연봉 없음. 오직 기록에 의한 성과급만 있다. 그리고 재활비용도 구단에서 지불하지 않는다.

재기하지 못하더라도 구단의 손해는 단 하나도 없다. 거기에 40인 로스터에 이름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구단에 이름을 올리는 것만 있다.

일단 재활이 목적인 이상, 트리플 A에 이름을 올렸지만 경기에 나설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쌓인 경험이 자신에게 극한의 경고를 주고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와중에 그는 한국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동팔의 계약으로 인해 알게 된 사람과 만나게 되었다.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시죠?"

"그럼요. 그쪽도?"

지금 만나는 사람은 RG의 관계자였다. 그것도 동팔과 계약을 함에 있어서 민희와 같이 만나며 계약 조건을 두고 치열하게 수 싸움을 했던 사이였다.

그리고 엄밀히 말해 공개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지만, 이미 끝난 계약에 서로 같은 입장에 있으니 이번만은 예외로 두기로 했다.

"사실 이상한 점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일도 일이지만, 이 계약서를 봐 주셨으면 합니다."

아무리 아는 사이라도 중요한 것은 알릴 수 없었다. 계약 조건은 알려주더라도 지완의 이름을 지운 계약서 사본을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의아한 RG의 관계자.

"네? 이런 계약을 맺은 선수가 있어요? 이거 실력이 뛰어나거나, 아니면 도전적인 선수 아닌가요?"

"선수의 이름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대리인이 누구인지 말씀드릴 수는 있습니다."

"누구인가요? 이 멍청한 계약을 한 에이전트가."

"민희입니다. 동팔 선수의 부인이죠."

양키즈의 담당자가 한 말에 RG 관계자의 표정이 바뀌었다.

"네? 그 민희씨가 한 계약이라고요?"

그동안 많은 사람을 상대해 왔지만, 그녀만큼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은 없었다. 그녀와 계약을 하면 무언가 유리한 것 같지만, 결국 그녀가 원하는 대로 계약이 이루어진다.

그 예가 바로 동팔이 RG로 프로 복귀를 했을 때의 계약이었다.

당시 동팔의 기본 연봉은 적었다. 하지만 이어서 나온 옵션 조항은 어이가 없는 것들이었다. 물론 에이스 급이라면 그에 준하는 연봉을 받을 수 있는 구조였고, 그 이상의 성적을 거두면 상상을 초월하는 보너스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동팔은 데뷔하던 시즌에 역대 최고의 투수가 되어 양키즈로 갔다.

"이거… 솔직히 말해도 되겠습니까?"

"네, 말씀하세요."

"양키즈가 엄청나게 손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차라리 옵션 조항을 줄이고, 기본 연봉을 주시는 것이 훨씬 나았을 거예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의아해하는 양키즈의 담당자의 말에 RG 관계자가 세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말은 이것이었다.

"결국 동팔 선수가 받은 작년 연봉은 모두 15억이 넘습니다. 언론에 발표되지 않았을 뿐이지 실제로 수령한 금액으로 보면 제일 많이 받은 선수에요. 차라리 기본 연봉을 1억 주고, 옵션을 줄였다면 못해도 10억을 아꼈을 겁니다."

그의 말에 양키즈 담당자는 그동안 자신을 괴롭힌 불안감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잠깐, 그럼 애초에 지완 선수와 계약을 했을 때, 차라리 연봉을 많이 책정하고 옵션을 줄이는 것이… 결국에 그게 이득이 된다……?"

그의 추측에 RG의 관계자가 답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반드시 그렇게 될 겁니다. 그녀는 상대의 선입견을 이용해 최고의 성과를 얻으려 하거든요.

아마 연봉을 높이려는 모습도 전부 페이크일 겁니다. 저희도 처음에 연봉을 많이 달라고 하자, 계약 초짜인 줄 알고. 아니 원래 초짜이긴 하지만. 좌우지간 우리는 높은 연봉이 그녀의 목적인 것으로 알고 옵션에 무게를 뒀습니다만… 오히려 옵션이 그녀의 목적이었다는 건 시즌 중간에 알아차렸습니다.

"

"이런… 이제 와서 바꿀 수도 없고……."

만약 다시 계약을 갱신해서 높은 연봉을 주겠다고 한들, 그녀는 오히려 프로답게 당당하게 해야 한다는 말로 거부할 것이다. 그리고 계약의 갱신은 서로의 합의가 없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

그래도 RG의 관계자는 마냥 안 좋은 소식만 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결국 동팔 선수 덕분에 RG는 더 큰 대박을 냈습니다. 10억이 넘는 연봉 정도는 우습게 보일 정도로. 당장은 속은 것 같아도, 결국 그녀의 선택으로 인해 양키즈도 엄청난 이익을 보게 될 겁니다. 어떤 형태의 이득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말에 양키즈의 담당자는 민희가 했던 말의 일부가 떠올랐다.

'확실히…월드시리즈 우승이 목적이라고 했었지……?'

월드시리즈 우승은 메이저리그의 모든 구단이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것은 돈을 쏟아 붓는다고 얻을 수 없는 명예였다.

이미 양키즈가 메이저리그 역사상 제일 많은 월드시리즈 우승을 거두었지만, 결국은 과거의 영광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영광. 언제까지나 과거의 영광을 보며 구단을 이끌 수 없는 법.

그리고 빼어난 선수를 바탕으로 강적을 물리치며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는 것은 지지하고 응원하는 팬들의 바람을 들어줄 구단의 의무 중 하나였다.

분명히 구단의 손해는 없다. 하지만 생각한 것보다 많은 연봉을 지완에게 줘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분명히 구단을 포함한 자신의 착각이자 실수.

그러나 아무리 높은 연봉이라도 값을 제대로 하면 상관없다. 높은 연봉을 받아도, 그 값을 제대로 하지 못해 방출되는 퇴물이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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