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215화 (215/325)

[215]

광고에서 사람들의 눈에 확 띄게 하려면 기발한 아이디어가 필수. 그리고 덤으로 유명인이 모델이 되어 준다면 금상첨화다.

한국에서 유명한 사람이 한 둘은 아니다. 각 방면으로 유명한 사람을 뽑으라면 손이 수십 개 있어도 부족하다.

하지만 적어도 야구라는 분야에 한정한다면, 그리고 지금 이 순간으로 제한한다면 제일 유명한 사람은 바로 강동팔, 한동욱, 남궁지완일 것이다.

세 사람은 메이저리그에서 신인상 후보에 올라왔고, 한동욱은 시즌 MVP가 거의 확정된 상태. 그리고 동팔의 경우 다른 투수들이 따라잡을 수 없는 기록으로 사이영상의 강력한 후보 중 하나였다.

지완의 경우, 막판의 부상이 있어 흠이 생겼지만, 그래도 그들 못지않은 지명도를 지닌 것이 사실.

당연히 광고업계에선 메이저리그 정규 시즌이 끝남과 동시에 그들을 향한 캐스팅 전쟁이 시작되었다.

"연락이 가능해?"

"에이전트 회사에 연락을 하려는데 연락이 쉽지 않아요. 팩스를 보냈는데도 연락이 없어요."

"대체 왜 그래?"

"구단만 상대하는 에이전트라 그럴지도 몰라요. 듣기로 혼자서 한다고 그러던데요? 일손이 없을 수도 있고."

이미 세 사람과 연관된 에이전트에 연락을 하거나, 선수 개인에게 연락이 가능하면 그 루트를 통해서 캐스팅하려고 했다.

하지만 동욱의 경우 혼자서 계약을 진행해 왔으니 연락할 길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동팔과 지완의 경우는 민희가 일괄적으로 관리를 하는데, 구단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치열한 접전을 벌이느라 신경쓰지 못하고 있었다.

애초에 그들 전부 광고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프로답게 광고수익보다 다음 시즌의 준비를 위한 계획을 생각하고 있는 중.

그리고 민희도 굳이 돈을 많이 벌 생각보다 동팔이 계약 조건을 만족시켜 조금이라도 더 빨리 해방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 사정을 모르니 광고회사에선 답답해하고 있는 상태였다.

반면 연락이 되지만, 다른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는 회사도 있었다.

"아무리 아는 사이라지만, 부탁해도 될까? 몸값도 장난 아닌데……."

"확실히 기본이 되는 액수가 있으니까요."

이곳은 동팔이 이전에 몸을 담았던 회사. 동팔만 아니라 민희도 연락이 가능하니 그쪽으로 걱정이 없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그때와 달리 아주 높아진 동팔의 몸값이 문제였다.

"최소 몇 천은 기본이지 않을까?"

"몇 천은 둘째 치고 억까지 생각해야할지도 몰라."

***

반면, 동팔과 어떻게 광고 계약을 할지 걱정하는 그들과 달리, 영세한 상점은 마음껏 동팔의 명성과 사진을 이용하고 있었다.

"역시 미리 계약하길 잘 했지. RG에서 크게 떴을 때도 대박이었지만, 지금은 더 대박이야."

그곳은 바로 동팔과 이전부터 계약을 했던 레슨장 사장님이었다.

동팔이 프로에 복귀하기 1년 전부터 5년짜리 계약을 한 상태. 그리고 이건 민희가 본격적으로 동팔의 모든 계약을 관리하기 전부터 한 계약이었다.

이 부분에 있어선 한국에서 대기업인 RG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니 사장님은 이제 뉴욕 양키즈의 유니폼을 입고, 역동적인 동작으로 공을 던지는 동팔의 사진을 마음껏 이용하고 있었다.

미국에 있는 뉴욕 양키즈가 이 사실을 알아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역시 뉴욕 양키즈보다 훨씬 빨리 동팔을 만나, 그의 잠재력을 알아차리고 미리 선점한 자의 절대 유리한 고지였다.

***

장래를 알고도 미리 선점하지 못하면 결국 동팔이 다녔던 회사처럼 전전긍긍하기 마련이다.

회사가 작지 않지만, 나름 건실한 중견기업이다. 그나마 홍보의 중요성을 알고 있으니 광고할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회사 재정 상황을 생각하면 많은 돈을 쓰는 것에 인색한 것이 사실이었다.

"이러니 아는 사이라고 그냥 부탁할 수도 없고……."

이들도 최소한의 예의가 있으니 황당한 부탁을 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러다 한 직원이 김대리의 허락을 맡고 켜 놓은 모니터에서 나오는 월드시리즈 경기 중계를 보며 말했다.

"이런 말하기 그렇지만, 그래도 월드시리즈에 아직 진출하지 않은 것이 어디에요. 안 그랬으면 이렇게 회의를 못했을지도 몰라요."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좋은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항상 좋지 않다는 것을 겪게 된다. 단순히 경쟁하는 관계만 아니라, 이렇게 이익 관계가 없고 편한 사이에서도 그게 적용된다.

둘 다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한 친구는 붙고, 다른 친구는 떨어진다.

둘이 같은 곳을 노렸으면 경쟁이 되어 관계가 더 껄끄럽게 되겠지만, 서로 다른 곳에 지원해도 어색한 분위기가 흐른다.

그리고 그 직원의 말에 다른 직원들이 말했다.

"아쉽지만 그렇긴 하지. 월드시리즈에 진출해 저기서 공을 던졌다면, 몸값이 더 뛰었을 거야."

"그나저나 저기 진출해서 던지는 선수들은 좋겠다. 우승 수당도 받을 거고, 우승 못해도 월드시리즈에 올라왔다는 것만으로도 평생 자랑거리가 될 텐데……."

야구선수에게 있어 월드시리즈는 실력과 운이 동시에 따라줘야 올라갈 수 있는 꿈의 무대다. 심지어 같은 메이저리그 선수라도 마찬가지였다.

본인의 실력이 평균보다 조금 못하더라도 팀에 편승하여 월드시리즈에 종종 올라가는 선수가 있다. 반면 실력이 출중하지만 지역 우승을 하지 못하거나, 포스트시즌에 진출해도 팀이 승리하지 못해 올라가지 못하는 선수가 있다.

그러니 메이저리그 선수들조차 월드시리즈는 누구나 목표로 하는 경기였다. 메이저리그 선수에게 유일한 위안은 단 하나.

월드시리즈에 도전할 자격이 주어졌다는 것뿐이었다.

이것은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월드시리즈에 대한 관점이다.

하지만 그들은 모르고 있다.

월드시리즈에서 일어나는 7번의 경기에 자신의 목숨과 영혼을 걸고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

뉴욕 메츠의 저스틴은 두 번째 경기에서 만난 헤럴드를 상태로 미칠 지경이었다.

원래는 1선발인 헤럴드가 첫 경기에 나서야 하지만, 챔피언십에서 6번째 등판하는 바람에 일정이 조정된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경기에서 처음 던지더라도 결국 마지막 일곱 번째 경기에 다시 나올 수 있게 된다.

어쨌든 시애틀 입장에선 아주 중요한 월드시리즈에 뛰어난 투수를 선발로 두 번 올릴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원하는 것이라면 챔피언십에서 클리블랜드를 최대한 빨리 누르고 여유 있게 올라가는 것이다. 하지만 한동욱의 매서운 타격과 그 틈을 파고 든 상대 타선에 의해 치열한 난타전이 되고 말았다.

결국 챔피언십도 일곱 경기를 꼬박 채우는 바람에 구단에서는 의도치 않은 부수입. 즉 입장권 판매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원했던 원래 계획과 달리 1선발인 헤럴드를 첫 경기가 아닌 두 번째 경기에 투입시킨 이유가 이것이었다.

첫 경기에선 뉴욕 매츠의 1선발인 제리스의 건투로 1점차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두 번째 경기에선 승기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계약자인 저스틴마저 헤럴드의 공을 제대로 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다른 타자는 운이 좋지 않는 이상 단타 하나도 쉽지 않았다.

반면 시애틀의 타격에서 갑자기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데미안은 벌써 하나의 홈런과 2루타를 쳐서 3타점을 올린 상황.

다른 사람과 달리 목숨과 영혼이 걸린 저스틴과 제리스로선 심장이 바짝 조이는 것 같았다.

만약 게임이라면 자신들의 남은 목숨은 세개. 세번의 패배는 용납되지만, 네번째 패배를 당하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난다.

반면, 이미 해방된 헤럴드와 곧 해방될 가능성이 높은 데미안은 여유가 넘쳤다.

'저스틴의 능력은 볼 것 없어. 고작해야 힘밖에 없는 멍청이야. 배트 스피드가 아무리 빠르면 뭐해? 맞추지 못하면 무용지물인걸.'

이미 헤럴드는 모데스를 통해 이들의 능력을 전부 파악했다. 그러니 특별히 전력을 다할 생각이 없었다.

상대의 능력을 아는 것은 데미안도 마찬가지였다.

'제리스의 능력은 바람을 보는 것. 그래서 너클볼의 컨트롤이 가능하지. 하지만 나도 바람을 짐작하면 대략적인 방향을 파악할 수 있어.'

그 또한 헤럴드와 원리는 다르지만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지는지 알 수 있다. 너클볼의 경우, 대기의 흐름에 의해 궤적이 바뀌니 정확한 추측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다른 구종의 파악은 쉽다. 그리고 너클볼도 그의 생각처럼 바람을 읽으면 대략적인 추측이 가능하다.

상대는 자신들의 능력을 모른다. 하지만 자신들은 상대방의 능력을 꿰뚫고 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는 말이 손자병법에 있다. 아주 유명한 말이다.

흔히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알고 있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말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대부분의 병법서가 알려주는 것은 대패를 피하는 것이다. 승리는 본인이 철저히 준비하고 하늘이 허락해줘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상대가 나를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 첩보전과 정보전이 있다.

병법서에서 알려주는 것은 승리가 아닌, 적어도 패배하지 않는 것. 그러니 백전백승이라는 말은 너무 과장된 말이고, 백전불태가 현실을 생각하면 당연한 말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따로 덧붙이는 말이 있다.

나를 알고 상대를 모르면 승산이 절반이며,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싸우면 백번 싸워도 백번 진다는 말이다.

이 말 중에서 제리스와 저스틴이 속한 쪽은 그나마 전자에 속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상대도 알고, 자신의 능력을 잘 아는 쪽은 헤럴드와 데미안이었다.

서로 같은 조건이라면 그나마 비빌 언덕이 있을 제리스와 저스틴이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유리한 조건에 있는 쪽은 헤럴드와 데미안.

상대방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보고 있으니 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걸 모르는 제리스와 저스틴은 덧없는 희망을 품으며 월드시리즈에서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첫 경기를 이겼어. 첫 경기에서 먼저 승리한 팀이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할 확률이 아주 높아.'

'이대로 세번만 더 이기면. 아니 세번만 지면 돼.'

***

이들의 상황을 알고, 처절한 분투를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

"누가 이길까?"

"나는 개인적으로 제리스와 저스틴이 이겼으면 좋겠어. 그 녀석들이 해방되어야 나중의 일이 편할 수 있거든. 헤럴드와 데미안은 이미 인간 말종. 아니 인간이길 포기한 놈들이야."

두 사람은 동팔과 동욱이었다.

챔피언십에서 패배한 이후, 시간이 남게 된 동욱이었고, 동팔을 통해 웜우드가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자 겸사겸사 찾아왔다.

그리고 지금은 월드시리즈 2차전을 동팔의 집에서 같이 보고 있었다.

"하지만 제리스와 저스틴이 해방된다고 해도 우리를 도와준다는 보장은 없잖아?"

"그렇겠지. 하지만 둘이 해방되면 어차피 갈라지게 되어 있어. 재정이 항상 아쉬운 메츠 입장에선 뛰어난 선수를 헐값에 구해, 비싸게 파는 것이 몇 안 되는 수입이야. 월드시리즈 우승의 주역을 보내고 싶지 않겠지만, 현실이 그걸 놔두지 않을 거니까. 그리고 메츠가 강한 이유는 저 둘이 같이 있기 때문이야. 따로 떨어져 있으면 별거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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