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214화 (214/325)

[214]

"그럼 이 조건으로 계약을 하겠다는 건가요?"

"네, 괜찮다는 오더가 내려왔습니다."

완전한 계약은 아니다. 이것은 계약하기 전, 서로가 받아들일 수 있는 선의 확인 정도였다.

"그래도 연봉 없이, 오직 옵션만으로 계약한 건데도 꽤 조심스러우시네요."

"우리가 당신의 모든 말을 믿을 수 없는 노릇, 아닙니까? 무엇보다 아직도 지완 선수의 몸 상태를 알려주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기본적으로 나가는 연봉은 줄 수 없다는 양키즈 구단의 완강한 요구였다. 처음에는 연봉을 받는 것에 노력하던 민희였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애초에 민희는 그걸 감안하고 있었다. 연봉을 노린 것은 어디까지나 속임수. 그녀가 바라는 것은 따로 있었다.

"그런데 정말 이 조건으로 괜찮으신 건가요?"

기본 연봉없이, 오직 옵션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지완에게 불리해 보인다. 다만 얼마나 성과를 내느냐에 따라 옵션에 따른 보너스가 나온다.

문제는 그 보너스의 수치가 '어느 정도인가?'였다.

그녀의 확인을 구하는 말에 담당자가 말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평균적인 수준입니다. 그쪽이 말한대로 지완 선수가 성적을 거두면 그만큼 받는 구조입니다."

바꿔 말해 경기에 나오지 못하고, 계속 재활만 하게 되면 단 한 푼도 줄 수 없다는 의미. 덤으로 재활 비용도 자비 부담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지완도 허락한 부분이라 민희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네, 확실히 성적을 거둔 만큼 받을 수 있는 옵션들이죠. 에이스 급의 활약이라면 그만한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원하는 것을 얻은 민희는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그녀의 미소에 담당자는 순간 무언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이거… 뭔가에 당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인데…….'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아무리 옵션 조항을 살펴봐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분명히 지금 조건은 손해를 보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그는 불길한 느낌을 지우기 위해 중요한 사실을 언급했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진행해도 캔자스시티에서 거부하면 무용지물인 것 아시죠?"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분명히 캔자스시티는 여기 저기 눈치를 살피고 있을 거예요. 그래서 제가 가능한 빨리 서두르려고 하는 겁니다. 이건 저 혼자 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본격적인 트레이드가 일어나기 전에, 가능한 빨리 처리해야 해서 서두른 겁니다."

월드시리즈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트레이드가 일어난다. 그때 방출되는 선수, 자유계약으로 풀려나는 선수, 교환을 통한 트레이드가 진행된다.

그 기간은 생각보다 짧기 때문에 그동안 쌓아온 정보와 분석을 바탕으로 진검승부를 본다… 라고 일반 사람들은 생각한다.

물론 그렇긴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대부분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에, 이미 결과를 낸 상태에서 사무국에 신고하는 기간에 불과하다.

"그러니 지금 당장, 제가 제시한 금액의 이적료를 제시하고, 지완 선수의 에이전트인 저와 어떤 내용으로 계약을 했는지 전해주시면 됩니다."

민희는 그 말을 하고 메모지에 이적료를 적었다. 금액은 생각보다 적었다. 10만 달러.

단순히 생각하면 10만 달러도 적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완이 캔자스시티와 한 계약과 비교하면 터무니없는 금액이었다.

"정말…이 정도 금액이면 충분하겠습니까? 다른 구단에서 더 높은 금액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러는 것이 그들에게 더 큰 압박이 될 거예요."

"압박이요? 어떤 압박입니까?"

담당자의 물음에 민희는 해맑게 답했다.

"그야 당연히… 진실을 알고 있다는 압박이죠."

***

뉴욕 양키즈로부터 지완을 영입하고 싶다는 내용을 팩스로 받은 캔자스시티는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정말 이걸로……?"

"미친 것 아냐? 우리랑 장난하자는 건가?"

처음의 반응은 분노였다.

이미 계약금 이상의 활약을 한 남궁지완이지만, 이번 시즌 기록만 보면 특급 중에서 상위에 해당하는 기록을 남겼다.

그런데 제시한 금액은 고작 10만 달러. 이미 다른 구단에서도 제의가 들어왔지만 최소 100만 달러 이상이었다.

하지만 한 사람은 심각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그 녀석들이 미쳤다고 이런 도발을 하겠나? 그들은 철저히 조사하고 움직이는 자들이야. 특히 지완의 에이전트가 제시한 계약을… 보도록 하게."

그의 말에 다른 담당자들도 계약 내용을 보았다. 기본 연봉 없이 오직 기록과 성적만으로 연봉이 정해진다는 내용을 보았다.

"이미 에이전트는 지완의 상태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지. 사실 재기가 불가능한 몸이니 이 정도 값도 감지덕지라는 것을 알려주려고 보내는 거지."

그러자 다른 사람이 말했다.

"그럼 더 높은 이적료나 트레이드를 할 수 있는 곳으로……."

"과연 그녀가 그걸 용납할 것 같아? 이걸 보낸 이유는 하나. 속일 생각하지 말고, 정직하게 나오라는 경고야. 여차하면 지완의 상태를 모든 구단에게 알려주겠다는 경고이자 협박."

그렇게 되면 어느 구단도 지완을 노리려 하지 않는다.

지금은 부상의 정도가 심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거나, 재기했을 가능성에 염두를 둔 구단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재기가 불가능한 선수를 누가 데려가려고 할까.

당연히 어느 구단에 보낼지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방출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럼… 그녀가 바라는 건…결국 이 정도 금액이라도 받고 이적을 시키는 것이 우리한테 그나마 이득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인데……."

모 아니면 도. 그런데 모가 나와도 얻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메이저리그에서 취급도 하지 않는 10만 달러라니…….

"그런데 그녀는 왜 이미 끝난 선수를 양키즈로 데려가려는 걸까요? 설마 재활하는 방법이라도 아는 걸까요?"

그의 말에 다른 사람이 말했다.

"남편이 기적의 주인공이잖아.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데려가겠지. 그것도 아니면 소위 한국인이 말하는 정이라던가."

이미 그들은 민희와 지완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서로 친한 사이니 지완의 상태를 아는 것은 당연하고, 서로 도움을 주려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거참 눈물겨운 행동이네… 결국 남편이 있는 팀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닐 텐데……."

이미 그들은 지완이 재기할 가능성을 없다고 봤다.

"그럼 어떻게 하죠? 이미 계약을 했다고 말할까요? 아니면 받아들일까요."

어차피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은 숨기지 않았다. 문제는 부상의 정도를 파악하는데 걸리는 시간이다.

그리고 스포츠에서 모든 계약은 메디컬 테스트를 통과해야 최종적으로 완료가 된다. 다만 캔자스시티가 노리는 건 적어도 부상을 속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명분의 확보.

그로인해 허술해질 테스트를 바라는 바였다.

하지만 민희가 본격적으로 나서면 그런 바늘구멍마저 막혀버린다.

결국 빠른 판단을 내려야 했다.

무엇보다 양키즈에서 지완이 메디컬 테스트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리고 이 조건이 그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받아들여야겠지. 팩스를 보냈다는 것은, 이미 다른 모든 구단에게 넌지시 말했을 가능성도 높아. 다른 사람이 그 말을 하면 경쟁 구단에서 헛소문을 퍼트린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진지하게 받아들이려 하겠지. 어쩌면 계약서에 도장 찍기 전에 정밀 테스트를 진행하자는 조건을 걸 수도 있어."

그의 말대로 민희가 양키즈 구단을 통해 팩스를 보낸 순간, 캔자스시티의 패배는 정해져 있었다.

결국 최종적인 조율만 남기고, 뉴욕 양키즈에 지완의 영입은 기정사실화 되었다.

"그럼 지완의 와이프, 혜진은 어떻게 합니까?"

그녀의 분석 덕분에 선수들과 코치, 감독은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캔자스시티가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나올 수 있었던 것도 그녀의 도움이 한몫한 것도 사실.

하지만 지완의 방출 겸 트레이드가 정해진 지금, 더 이상 다른 길이 없었다.

"정식으로 취직한 것도 아니잖아. 뛰어난 분석관을 잃는 건 아쉽지만, 막을 방법이 없어."

***

순조롭게 협상의 순항을 이어간 민희는 대부분의 고비를 넘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녀의 입장은 어디까지나 협상 대리인이다.

협상을 한 다음, 나온 조건을 받아들일지 말지의 최종 결정은 선수가 한다.

-이 조건으로 협상을 마쳤어요. 괜찮으세요?

민희의 말에 지완이 답했다.

"충분해. 난 방출될 것도 각오했는걸."

자신의 몸 상태는 자신이 잘 안다. 물론 모를 때도 많지만, 적어도 재기가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는 파악할 수 있었다.

자신의 몸은 이미 선수로서의 생명이 끝났다.

이대로 벌어 놓은 돈으로 재활을 한 다음, 유유자적하게 사는 삶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완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었다.

"어차피 선수는 성적으로 모든 것을 증명하는 거야.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다시 한 번 기회가 생긴다는 것에 만족해야지."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인 이상, 돈이 좋다. 평생 쓸 돈을 벌어 놓았어도 더 있으면 하는 것이 돈이다.

지금 돈이 싫은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추구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 계약서에 도장 찍으면 바로 뉴욕으로 갈까?"

이미 재활을 생각하면 다음 시즌은 사실상 포기. 실제로 그 다음 시즌을 노려야 한다.

-네, 그러면 더 나을 거예요.

동팔과 지완의 팀은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했으니 시간은 많았다. 이미 디비전 시리즈가 끝난 이후, 구단 자체적으로 뒤풀이를 하고 헤어졌다.

이제 동팔은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스프링캠프가 오기 전까지 긴 휴가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휴가라고 멍하니 쉴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때라도 다음 시즌을 준비해야 그동안 갈고 닦은 것이 퇴색되지 않는다.

그러니 실제로 쉴 수 있는 시간은 잘 해야 일주일 내외.

또한 유명인인 이상, 여러 가지 일들이 엮이기 마련이다. 지금 당장 연락은 없지만, 한국에서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

한국의 대기업들은 영업을 위해서 홍보를 해야 한다. 이것은 비단 대기업만 아니라 중소 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그리고 홍보에 제일 좋은 효과를 주는 것은 광고. 그것도 공중파와 전국으로 퍼지는 신문 및 많은 사람이 접속하는 포털 사이트. 그리고 홈페이지 및 블로그가 사용된다.

하지만 광고를 하는 것은 그만큼 돈을 지불해야 가능하다.

인기 프로그램 앞의 광고는 30초라도 수억이 필요하지만, 사람들이 잘 보지 않는 프로그램은 광고가 거의 들어오지 않고 상대적으로 훨씬 싸다.

방송사에서 드라마와 영화, 각종 예능 프로그램의 시청률에 괜히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돈이 들어오는 통로는 광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상파나 그에 준하는 방송사라면 최소한 대기업 정도의 영향력을 지녀야 광고를 찔러넣을 수 있다.

그리고 비싸게 주고 얻은 자리인 만큼, 눈에 확 들어오는 광고를 찍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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