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
설령 뉴욕 메츠의 저스틴과 같이 스스로 기록을 낮추어 다른 투수가 있는 쪽으로 가기 위해서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몸값을 낮추려 한다면, 포스트시즌에서도 눈에 띄는 활약을 하지 않는다.
그런 것을 감안했을 때, 동팔은 시애틀의 타자 중에 악마와 계약을 했거나, 또는 그에 준하는 타자가 없다고 판단했다.
"스트롸익~ 아웃!"
심판의 역동적인 행동과 외침으로 시애틀의 5번 타자가 삼진으로 아웃되었다.
시애틀의 클린업 트리오를 완벽하게 잡자 동팔은 확신했다.
'됐어. 확실히 시애틀에는 계약자가 없어…….'
전에는 분석만 가능했지만, 직접 상대한 이상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건 정규시즌 때 맞붙은 경기에서도 짐작한 것이지만, 포스트 시즌이 되어 다시 붙는다면 기록과 경험의 갱신은 필수.
그리고 다시 한 번 상대한 결과 자신의 생각을 확신할 수 있었다.
6번 타자인 데미안을 상대하기 전까진.
'초구는 빠른 공으로…….'
반응할 수 없는 빠른 공으로 유리한 볼 카운트로 이끈 다음, 체인지업이나 다른 변화구로 헛스윙을 유도하거나 범타로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데미안이 빠르게 날아오는 초구를 강하게 받아쳐서 넘기는 순간, 동팔의 계획도 같이 날아갔다.
따악~!!
데미안의 타구는 쭉쭉 뻗어나가더니 바로 담장을 넘었다.
예상치 못한 피홈런. 그리고 스코어는 1대 0이 되어 생각보다 빨리 0의 균형이 깨지고 말았다. 즉, 연장전을 이용한 체력전이 더 이상 불가능한 상황.
으득.
상대가 계약자인지 확인할 수 없다. 동팔의 입장에서 계약 확인이 가능한 존재는 웜우드 밖에 없다.
그런데 웜우드는 지금 목사를 따라 지완의 계약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가 있었다.
그러므로 지금 데미안이 계약자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그동안 웜우드는 한국에서 주로 활동했었고, 계약을 갱신하여 힘을 잃은 뒤로는 목사의 주변을 떠나지 못한다.
설령 데미안이 이전부터 계약을 했더라도 웜우드가 알아낼 가능성은 아주 낮았다. 거기에 만약 최근에 계약을 했다면 알아내는 것은 더 무리.
어찌되었건 후회를 하더라도 이미 넘어간 공은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방심을 한 자신의 실수. 물론 다른 사람들, 심지어 같은 팀의 동료 선수들이라도 이건 운이 없다고 생각할 일이었다.
하지만 동팔은 확신했다.
지금 루상을 돌고 있는 데미안은 홈런에 기뻐하지만, 당연히 칠 수 있는 것을 쳤다는 느낌이었다. 오히려 더그아웃에서 기다리고 있는 시애틀 선수들이 그보다 더 기뻐하고 있었다.
'일단 주의해야 할 사람인 것은 맞아. 계약자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경계를 해야 해.'
이제부터 알더라도 치기 어려운 공을 던지면 된다. 방금 전에는 6번 타자라 타격이 약하기 때문에 더 쉽게 가기 위해 초구부터 빠른 직구를 던졌다.
하지만 다음부터는 직구를 제외하고 급격한 움직임을 보이는 공을 주로 던질 생각이었다. 그것도 공의 회전을 많이 주어 정타가 쉽게 나오지 않는 공으로.
그 덕분인지 이후로 동팔은 점수를 내지 않고 9회말까지 공을 던졌다.
하지만 동시에 뉴욕 양키즈의 타자들도 헤럴드에게 막혀 점수를 내지 못했고, 결국 디비전 첫 경기는 1대 0으로 동팔이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
"그럼… 원한을 악마에게 둔다는 말씀이신가요?"
혜진의 물음에 하얀 늑대의 벗이 말했다.
"그렇다. 처음에는 가족과 인근 부족들을 학살한 사람들에게 원한을 가졌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도 원주민을 지원하고 함께 해준 사람도 있었다. 그러니 일방적으로 백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보복을 가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일부 부족이 있었지만… 그들은 결국 멸절되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전쟁터에서 죽어나가는 사람은 대부분 남자들이다. 하지만 전쟁터가 아닌 곳에서, 아니면 갑자기 전쟁터가 된 민간인들은 끔찍한 학살을 당한다.
저항을 해도 학살당하는 순간을 조금 지연시킬 뿐이다.
백인에 의해 살해당한 인디언 중에선 민간인, 전투능력이 없는 아이와 여성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동시에 원주민들에게 당한 백인도 많다.
불시에 기습을 하여 마을 하나를 지우고, 그 과정에서 아이는 잔혹하게 죽이고, 성인 여자의 가죽을 벗겨 마을 정문에 걸어놓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백인이 일방적인 피해자인 것도 아니었다. 당시 미국 군인은 전쟁 중에 포로로 잡은 인디언 원주민의 얼굴 가죽을 산체로 벗겼다.
인디언 얼굴이 붉게 디자인된 이유 중 하나다.
결국 최종 승자는 아메리카 대륙에 온 이민자들이었고, 원주민은 패배했다.
그로인해 지금도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보호구역에서 그들의 문화와 전통을 관광상품화 해서 근근이 연명하고 있었다.
지금이야 근 200년이 지났으니 그때의 원한이 남아 있는 아메리카 원주민은 없었다. 그러나 그때 살아있었던 하얀 늑대의 벗이라면 원한을 지니고 있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나 또한 다른 원주민과 같았다면 백인들에게 복수를 다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에 들어가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이미 원주민이 살고 있다면, 그들의 땅에 이주를 온 사람들은 그들과 어떻게 지낼지 선택해야 한다.
평화롭게 살 것인지. 아니면 전쟁을 하여 빼앗을 것인지.
처음에는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다. 이주민의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북아메리카 대륙은 그들을 전부 수용할 만큼 넓고, 자원도 풍부했다.
뉴욕 맨해튼의 땅도 원래는 인디언이 소유하고 있던 땅을 이주민이 거래를 하여 산 땅이었다.
그들 사이에는 교류가 필수적이었다.
원주민들은 이주민들의 문화를 보고 정체된 문명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었고, 이주민들은 그 땅을 잘 아는 그들의 도움이 있어야 생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독립 전쟁을 하고, 이후에 이주민의 힘이 강해지게 되자 갈등이 발생했다.
사실 갈등은 이전부터 있었지만, 항상 대표자들 사이에 교류를 오가면서 봉합해 나갔다.
독립 이전,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전쟁이 있어도 원주민 부족은 그 사이에서 동맹을 하거나 중립을 지켰다.
그러나 독립 이후, 반세기도 지나지 않아 급진적인 자들이 권력을 쥐자 이들 사이의 평화로운 공존이 깨졌다.
힘으로 아메리카 원주민을 누를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리자 전쟁이 시작되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것으로도 모자라 학살을 자행한 것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주해 온 미국의 배은망덕이었으며, 그들이 이곳으로 오게 한 청교도의 목적과 전혀 반대였다.
결국 많은 원주민들이 죽었고, 그 결과가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이야기.
승리는 미국이 했지만, 미국 이주민의 후손 또한 심각한 피해를 보았다. 평화로운 공존의 길은 점차 사라졌고, 더 큰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리고 말았다. 그때 흘린 피와 눈물과 같이.
하얀 늑대의 벗은 그 속에 있는 진짜 악의 근원을 파악해왔고, 지금은 완전히 파악했다.
"그들도 결국 불안과 공포의 광기에 휩쓸렸다. 그리고 평화적으로 마무리 될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지만, 그걸 방해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 그때 방해를 한 악마가…그들?"
"적어도 최고위급 악마의 간섭이 있었다. 그 중에 지완에게 나타난 그자도 포함되었다. 그 자가 주로 있으며 관리하는 나라는 영국. 미국 독립 전쟁을 발발시키기 위해 작업을 했고, 이어서 미국으로 와서 분란을 일으키는 작전을 주도한 존재다."
"그건… 어떻게 알아내셨나요?"
지완의 질문에 답을 한 존재는 인디언이 아니라 목사 위에 떠 있는 웜우드였다.
"이 친구에게 당한 최하급 악마가 하나 둘이 아니거든. 나도 당할 뻔 했고. 그때 얻은 정보와 다른 곳에서 암약하고 있는 동료를 통해서. 맞지?"
웜우드의 말은 지완이 들을 수 있지만, 혜진은 들을 수 없다. 그래서 목사가 다시 그녀에게 말을 해주는 사이 하얀 늑대의 벗이 말했다.
"맞다. 그러는 사이 여러번 신분을 세탁하며 다양한 삶을 살아왔다. 전기공학박사를 딴 것도 그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아무리 하급 악마를 처리해도 최상위 악마 하나 공격하는 것보다 못하다. 그러나 모든 것을 걸고 공격하려 해도 나의 힘으론 그의 힘의 극히 일부를 소실시킬 뿐, 효과는 거의 없다."
도저히 상대할 방법이 없는 적.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엿보던 중, 좋은 기회를 잡았다.
그 방법과 원리에 대해 하얀 늑대의 벗은 차근차근 설명해 나갔다. 그리고 이제 방법과 목적에 대해 말했다.
"그래서 동팔이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가 정해진 기간에 월드시리즈에 우승하면 단순히 싸우는 것만으로 입힐 수 없는 막대한 피해를 주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단순히 지완의 계약을 확인하는 것을 넘어 여기에 온 진짜 목적을 말했다.
"그러니 그를 도와주길 바란다. 이것은 단순히 생존 싸움이 아닌, 많은 영혼을 구할 수 있는 위대한 전장이다."
야구는 스포츠다. 전략으로 승부하고, 개인으로도 승부할 수 있으며, 실력과 운이 있어야 이길 수 있다.
하지만 진짜 목숨을 걸고 하는 전쟁과는 전혀 다르다.
적어도 특별한 상황이 아닌 이상, 승패에 목숨이 오가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은 예외인 특별한 상황에 있었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앞으로 두 시즌 안으로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하면 동팔이 죽기 때문이다.
그러니 형태가 야구일 뿐, 전장이라고 한 하얀 늑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의 말에 지완이 물었다.
"두려워서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 전장에 당신이 설 방법은 없는 겁니까?"
지완의 말에 하얀 늑대의 벗이 말했다.
"그 전장에서 내가 주역이 될 수는 없다. 단순히 강하게, 그리고 빠르게 던질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공은 던져봐야 먹잇감이 될 뿐이다. 그러니 나는 설 수 없다. 하지만 그대는 야구장에서 강한 전사로 설 수 있다."
하얀 늑대의 벗은 정말 부러워하는 눈으로 지완을 봤다.
오래 살아온 그는 야구를 이전부터 봐 왔다. 초창기 메이저리그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바뀌어 나갔는지 직접 본 산 증인이다.
그러나 진짜 악의 근원을 찾기 위해서 달려온 그가 야구를 직접 해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 중요한 순간이 되었을 때, 경기장에 설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야구라는 전장에 설 위대한 전사들이 전력을 다하도록 도와주는 것뿐.
그 첫 대상이 동팔이었고, 이제 지완이 포함되었다.
하얀 늑대의 도움을 요청하는 말에 지완이 답했다.
"이미 동팔이를 돕겠다고 정했습니다. 당신이 어떤 목적을 원하던, 나의 선택은 바뀌지 않을 겁니다."
지완의 답에 하얀 늑대의 벗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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