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
모두가 앉자 목사가 웜우드에게 말했다.
"지금 상황이 어떻지? 이 친구는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는데."
사람이 없는 곳을 보며 말을 하자 혜진은 설마 유령이 거기에 있나 싶어 흠칫했다. 혜진의 반응을 알면서도 웜우드는 여기에 온 목적대로 행동했다.
"아무런 기운도 없어. 이걸로 민희가 한 추측이 맞아떨어졌어. 삼촌은 이 친구를 상대로 사기를 쳤다."
웜우드의 눈에는 동팔이나 동욱에게 있는 계약의 서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계약의 서로 계약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으니 그걸 발견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그리고 혹시 다른 수법을 썼는지 확인하기 위해 왔지만, 생각보다 너무 깨끗했다.
당연히 웜우드의 말로 인해 민희의 추측이 맞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휴~ 그럼 다행입니다. 그자의 거짓말에 속았지만, 결국 당신의 영혼을 강제할 수단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이상, 당신은 자유입니다."
목사의 말에 지완과 혜진이 동시에 물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같은 말이었지만, 묻고자 하는 것은 달랐다. 그래서 목사는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천천히 해 나가기 시작했다.
자신이 한 말을 혜진이 믿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리고 목사와 다른 사람들의 예상대로 전말을 들은 혜진은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그들을 보고 있었다.
"지금…저 보고 그 이야기를 믿으라는 건가요?"
혜진의 예상된 반응에 인디언이 말했다.
"믿고 말고는 그대의 의지에 따라 달렸다. 하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 증인과 증거가 있다. 바로 동팔과 민희다."
"네?"
"직접 전화해서 확인하면 된다. 미친 사람같이 보여질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지혜로운 그대라면 적당한 화법을 구사할 수 있을 것이다."
무책임해 보이는 말이지만,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이것밖에 없었다. 그리고 하얀 늑대의 벗은 또 다른 간접 증거를 말했다.
"그리고 나 또한 증거 중 하나다. 민희와 내가 만날 수 있는 접점에 무엇이 가능한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뒤뜰에 잠시 있으면서 인디언 텐트를 치고 산 그였다.
생활 방식이 특이한 아메리카 원주민. 그리고 도시 한복판은 아니지만 뉴욕 주변에 살고 있는 민희가 만나서 다른 사람에게 소개까지 시켜줄 인연이 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이 이후는 혜진이 어떻게 반응하고 받아들일지에 대한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이들이 더 이상 관여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지완 선수의 경우는 그자가 거짓말로 속였습니다. 계약을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것처럼 속였죠. 사실 그자가 할 수 있는 거짓말은 제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잠재력을 발휘하는 것. 실제로 그동안 지완 선수가 던진 공은 그자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본래 자신이 무리하면 던질 수 있는 공이었습니다."
목사의 말에 지완은 꼭 확인하고 싶은 것을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그럼…그 조건이라 할 수 있는…월드시리즈 우승은……."
"안 해도 무방합니다. 애초에 사기를 쳤으니 계약을 하더라도 인정될 리가 없죠."
목사의 말에 지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등을 기댔다.
"휴~. 정말 죽다 살았네……."
솔직히 동팔에게 회복의 능력이 있다는 말을 듣지 않았다면? 이미 예은이로 인해 살기로 결심을 했지만, 그 결심이 흔들릴 때가 있었다.
그래도 다시 뛸 수 있다는 희망이 있고, 그러면 동팔과 같이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지 않더라도 그자는 당신의 영혼을 강탈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자살을 하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분명히 그자는 당신의 자살을 종용했겠죠. 그것이 최선이라는 말로 유혹하면서."
목사의 말에 지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친절하게 독약까지 가져왔습니다. 지금은 버렸지만."
지완의 말에 여전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던 혜진이 큰 충격을 받았다.
"그게…무슨 말이야……?"
혜진의 반응에 지완은 그녀에게 사과하며 말했다.
"미안… 그땐 도저히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어. 선수 생활은 끝났지, 두 시즌이 마저 지나면 영혼을 빼앗겨 죽게 되니까, 혹시 자신이 없는 사이 죽으면 영혼이라도 건질 수 있다는 말을 하는 바람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자살을……."
남에게 도움이 됨으로써 자신의 존재 목적을 달성하고 즐거워하는 혜진에게 지완의 말은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생각에 그녀의 충격은 더욱 컸다.
"미안해. 그래도 너랑 예은이가 남을 걸 생각하니 그럴 수 없었어. 그때, 예은이가 울지 않고, 네가 내려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몰라……."
그나마 지완이 자살을 선택하지 않는 것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혜진으로 하여금 조금이나마 안도하게 만들었다.
"자, 자. 충격이 크겠지만, 이건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너무 스스로를 책망할 필요 없어요."
목사는 혜진의 마음을 위로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이제는 완전히 자유의 몸이 되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럼 이제 남은 것은 동팔 선수가 있는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재활을 하려면 그의 도움이 필수입니다."
"그런데…정말로 동팔의 옆에 있으면 회복되는 겁니까?"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외 여러 가지 필요한 것이 있지만, 그건 가서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이 최선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일반적으로 회복을 하고 일반사람으로 살아가는 것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목사의 말에 지완이 바로 답했다.
"그럴 수 없어요."
"왜 그렇습니까? 선수로서 욕심이 나는 건가요?"
"그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것이 있습니다."
"뭡니까?"
"그 녀석이 나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필요하다고……."
지완의 표정에는 무언가 심히 만족해하는 것이 보였다.
"내가 따라잡고 싶었던 그 녀석이 나에게 부탁을 했다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리고 그 부탁이 내가 필요한 것이라면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동안 동팔의 앞에서 그의 눈에 들어오기 위해 살아왔다. 이제 더 이상 그보다 더 앞선 구위를 보여줄 수는 없지만, 이미 그의 눈에 들어와 필요를 요청한 이상, 굳이 앞서기 위해 집착할 이유가 사라졌다.
지완의 말에 인디언이 말했다.
"그 정도 각오면 충분할 것 같다. 적어도 도망치지는 않겠지."
아직 회복을 함으로 인해 겪을 고통은 말하지 않았다. 그건 아무리 말해도 알 수 없는 것이니까.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전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고 싶은 것이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요?"
지완이 인디언을 향해 묻자 그가 답했다.
"괜찮다. 물어봐라."
"목사님이야 악마와 대적하는 쪽이니 절로 이해가 됩니다만, 인디언 주술사? 당신은 어째서 악마와 싸우는 겁니까?"
엄밀히 말해 연관된 지점이 적었다. 목사와 같이 있는 이상, 목적도 같을 것이다. 목적이 다르더라도 방법은 같을 것이다.
모든 인디언 주술사가 악마와 이어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천사의 편에 속한다고 볼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중립적인 위치에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그가 왜 악마와 대치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러니 지완은 인디언이 악마와 싸우는 쪽에 있다는 것을 바로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린다.
지완의 질문에 인디언은 바로 답했다.
"간단하다. 원한이다."
"원한… 이요?"
"그렇다. 원한이다. 그놈들의 농간으로 인해…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지켜야 할 부족들이 죽었다."
인디언의 말에 혜진은 무언가 위화감이 들었다.
"네? 지켜야할… 부족이요?"
미국에 오기 전, 미국의 역사에 대해 알아봤다. 모든 역사를 알 수는 없었다. 그래도 대략적인 흐름은 알고 있었다.
청교도 혁명으로 인해 신대륙으로 도피하듯 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그리고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일어난 전쟁. 미국을 지원하다 결국 프랑스의 부르봉 왕가는 몰락하게 되어 왕과 왕비가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다.
더불어 새로운 땅을 개척하는 미국인들이지만, 동시에 원래 살고 있던 원주민과의 좋지 못한 관계가 있었다.
결국 원주민과 미국 이민자들에 의한 전쟁이 일어나고, 그 전쟁에 패한 인디언은 강제로 이주당하게 된다.
전쟁으로 인해 죽은 사람보다 강제 이주하는 과정에 죽은 숫자가 훨씬 많았다.
그 중에 체로키 부족은 최소 4,000명(여기에 대해서는 정확한 통계가 없다. 2,000명 이라 하는 곳도 있고, 8,000 이상이라고 보는 자료도 있다.)이 이주 과정에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고, 고작 1,000여 명만이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들이 강제로 이주 당했던 길은 지금도 '눈물의 길'로 불리고 있다.
그때는 1830년대의 이야기.
그런데 지금 하얀 늑대의 벗이 하는 말은 그때를 떠올리게 하는 말이었다. 지금은 2000년대에 진입한지 근 20년이 지나갈 시점이라 위화감이 든 것이다.
혜진의 의문에 목사가 말했다.
"사실 이 친구 나이가 좀 많습니다. 한… 얼마였지?"
목사의 말에 인디언이 답했다.
"올해로 362년째 삶이다."
***
휙~ 퍽!
1회말 2아웃 2스트라이크 상태에서 동팔은 마지막 공으로 타자로 하여금 헛스윙을 하게 만들었다.
서로 한 번 씩의 공방이 끝나고 다시 뉴욕 양키즈의 두 번째 공격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공격이 시작되고 나서 헤럴드의 5개의 공으로 두 번째 공격 기회는 어이없이 사라졌다.
"쉴 틈을 안 주네……."
다시 마운드를 향해 가면서 동팔은 작게 푸념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예상된 패턴이었다.
'내 능력이 회복이라는 것을 알고 최대한 효율적인 투구를 하겠다는 거겠지. 하지만 어떡하나? 내 회복능력은 사실상 무한대인데.'
이번부터 회복 능력에 대해 분석하고 조절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한 보람이 있었다.
5개의 공으로 이닝을 지웠지만, 그 시간만으로도 동팔이 회복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매 이닝 새로운 기분으로 공을 던지는 자신.
반면 최대한 효율적으로 던져도 결국 피로가 쌓일 헤럴드.
투수전은 체력전임을 생각하면, 우위는 자신에게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것도 어디까지나 9회말까지 0대 0의 스코어를 유지할 때의 이야기다.
어느 팀에서 먼저 한 점을 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래도 자신의 공을 칠 수 있는 타자는 거의 없다. 동욱이나 저스틴처럼 계약자가 아닌 이상.
'시애틀의 타자 중에서 계약자로 보이는 사람은 없어. 시즌 내내 평균적인 타격능력을 가진 타자가 전부.'
그나마 클린업 트리오의 타율이 높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메이저리그 평균치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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