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
어차피 서로 점수를 낼 수 없게 된다면, 연장전도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같은 연장전을 한 이상, 승리한 쪽이 흐름을 타기 마련이다.
물론 항상 변수가 있고, 반전이 있는 것이 스포츠인 이상, 방심은 금물.
하지만 동팔은 그 기본을 잊고 말았다.
헤럴드에게 너무 신경쓰는 나머지, 실력을 숨기고 있는 또 다른 계약자가 있다는 사실을.
***
한편, 캔자스티시에 있는 지완을 만나러 가기 위해 서두르는 두 사람과 한 악마가 있었다.
"정말 가지가지 하는 녀석들이다. 설마 항공기에 갑작스러운 결함을 만들어 막을 줄이야."
"바꿔 말하면 그만큼 우리가 그와 만나는 것이 싫다는 거겠지. 그럼 오기가 더 생기잖아."
두 사람은 하얀 늑대의 벗과 그에게 움직이는 성스러운 땅이라 불리는 목사였다.
그리고 목사의 바로 위에선 웜우드가 유유히 떠 있었다.
"가지 말라는 계시나 응답이 없으니 가는 것이 맞겠지. 무슨 일인지 몰라도 일단 가보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래도 이거 멀어도 너무 멀지 않아?"
지금 이들의 원래 계획은 항공기를 타고 뉴욕에서 캔자스시티까지 가는 것이었다.
동부 끝자락에서 미국의 가운데를 향해 가는 것이니 당연한 선택이었다. 거기에 캔자스시티에는 국제공항도 있으니 표를 구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구한 표의 항공기에 결함이 발견되어 뜨지 못하게 된 것이다.
"내가 가면 단번에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항공기 정비는 전문 영역이니까. 그럼 다른 걸로 가봐야겠어. 기차는 어떤가?"
"표를 지금 당장 구할 수 있나?"
"글쎄… 그건 쉽지 않겠지. 그래도 평일인데 자리 둘은 있겠지."
문제는 그 자리 두 개가 없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앞으로 일주일 안에 모든 좌석이 매진된 것이다.
결국 남은 수단은 단 하나. 목사의 낡은 차를 직접 운전하여 가는 것이다.
"차가 버텨줄까?"
"힘들겠지. 혹시 모르니 축복이라도 해라. 여기까지 악마들이 개입하면 시간이 더 걸린다."
악마나 그 부하들이 차에 이상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면 하얀 늑대의 벗이 나서서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그럴 때마다 시간이 지체된다.
그렇지 않아도 2,000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다.
서로 번갈아 교대하며, 시속 80킬로미터로 운전해도 25시간. 거기에 항상 평균 속도를 유지하는 것도 아니고, 도시를 오갈 때마다 밀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그보다 더 오래 걸린다.
또한 주소를 받았어도 찾는데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어림잡아 30시간이었다.
졸지에 낡은 차로 초장거리 여행을 하게 된 두 사람.
그래도 거기까지는 나름 괜찮았다.
힘들겠지만 하루 조금 넘는 시간이면 목적지로 향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들이 아주 중요한 문제가 있음을 인식한 것은 뉴욕을 벗어나 끝없는 도로를 달릴 때였다.
"그런데 주유비는 있나?"
"그 정도는 있어. 왕복이라면 상당히 아슬아슬하지만."
자신의 차라서 연비를 알고 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은행 잔고를 알고 있으니 어느 정도 계산이 되었다.
차비는 어떻게든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러자 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웜우드가 말했다.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너희들 배는 어떻게 채우게?"
자동차의 배를 채울 돈은 있지만, 사람의 배를 채울 돈이 없다.
이 심각한 상황에 목사는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괘, 괜찮아. 그래도 주님께서 해결해 주시겠지……."
그리고 이어서 아주 작게, 자신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도……."
***
한편, 뉴욕 양키즈와 시애틀 매리너스의 경기가 있는 곳에 평범한 관중처럼 앉아 있는 두 악마가 있었다.
그들은 바로 동팔과 계약을 한 스크레이치. 그리고 헤럴드와 계약을 한 모데스였다.
"이렇게까지 또 한 명을 해방시킬 필요가 있나?"
스크레이치의 말에 모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번에는 꽤 좋은 영혼이 올라왔어. 그것도 강한 녀석들이야. 방심했다가 당하면 여러 모로 곤란하거든."
모데스의 말에 스크레이치가 말했다.
"꽤나 날 생각해주는데?"
"허튼소리. 내가 널 왜 걱정해야 하는데? 난 네가 힘의 일부를 소실했을 때의 경우를 상정해야 해. 너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악마계 전체의 분위기가 흐려져. 아무리 하는 일이 거의 없는 원로라지만, 이 부분에 대해선 방비해야 할 필요가 있지."
둘은 알고 있다.
스크레이치와 계약을 한 동팔과 동욱이 해방된다면. 아니, 둘 중 하나라도 해방이 된다면 스크레이치의 힘의 일부가 사라진다.
그럼으로 인해 스크레이치가 장관 자리에서 떨어지고, 사냥감으로 찍히게 되면 악마들 사이에 큰 분란이 발생한다.
스크레이치를 따르는 악마와 그의 힘을 노리고 사냥하려는 악마.
이 둘 사이의 갈등과 분란은 악마 전체적인 입장에서 보면 상당한 피해를 입게 된다.
"한 악마라도 환자의 영혼을 수확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야. 그런 와중에 분란이 일어나면 지하에 계신 아버지께 바칠 영혼의 수확 실적이 떨어진다. 적어도 그런 사태는 막아야지."
"나름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니 안심이군. 그런데 정말 저자를 해방시켜도 되겠나? 저자가 죽기 전까지 안심할 수 없게 될 텐데?"
한 명의 영혼이 계약에서 해방되면 강제적으로 영혼을 취할 수단이 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데스는 걱정하지 않고 있었다.
"네가 봐서 알겠지만, 계약이 끝나도 그 영혼이 원수의 곁으로 가는 것은 아니야. 넌 기존 전략으로 취할 수 없는 영혼에게 다가가 계약을 하지만, 나는 그게 아니거든."
모데스는 자신과 계약을 했다가 풀려난 헤럴드를 보았다. 순수해 보이지만, 순수했기에 더욱 악에 물들이기 쉬웠다.
이젠 그의 마음은 사람의 부분이 거의 사라지고, 악마같은 마음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니 모데스는 그가 언제 죽더라도 천국이 아닌, 지옥으로 갈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방심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해방된 그의 주변에 자주 나타나는 것은 혹시라도 모를 불상사. 단순히 죄의 고백을 푸념처럼 말하는 수준이 아닌.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회개]라는 전 인격적 변화를 막기 위해서였다.
물론 상대가 회개라는 것을 하더라도 다시 방향을 돌이키면 되지만, 괜한 수고를 할 필요가 없으니 항상 관리하는 중이었다.
다만 이렇게 또 하나의 영혼이 해방되면 그의 일이 좀 늘어난다는 단점이 있다.
"어차피 관리해야 할 대상이 하나 더 늘어나는 것뿐이야.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유흥일 뿐. 하지만 고작 유흥 따위에 최고위 악마의 힘이 소실되는 것은 막아야지. 나는 너와 같은 플레이어가 아닌, 지원을 해주는 NPC에 가깝다는 것을 명심해."
고마워할 줄 알라는 모데스의 말투에 스크레이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덤으로 이전에 진 빚도 갚겠다는 거겠지."
"흥, 언제까지 그 일을 두고두고 말할 수 있는지 보자."
그러자 스크레이치는 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야… 이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
헤럴드는 자신을 살피는 동팔의 눈빛을 느꼈다. 분명히 제일 경계해야 할 선수지만, 특별한 것이 없으니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더 면밀한 분석을 위해 집중한다. 그리고 헤럴드는 그런 시선을 나름 즐기고 있었다.
'알아보려면 알아 봐. 네가 죽는 순간에도 내 능력을 알 수 없을 테니까.'
아무리 뛰어난 선수도 자신의 능력을 알아내지 못했다. 이럴 때, 평범하다는 것은 여러 모로 유리했다.
실제 첩보원의 세계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잘 생긴 사람보다 평범하고 바보 같은 사람이 들키지 않고 정보를 더 잘 모으는 것과 같은 이치.
그래도 동팔이 어떤 눈빛으로 자신을 보는지 궁금했기에 헤럴드는 고개를 돌려 양키즈 선수들이 있는 더그아웃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동팔은 헤럴드와 눈이 마주치자 섬뜩한 느낌에 소름이 돋았다.
'뭐, 뭐야? 사람이 어떻게 저런 눈빛을…….'
아주 많은 사람을 만난 건 아니다. 그래도 스포츠 쪽은 강한 사람이 많기 마련이고, 승부욕 또한 강하다.
지기 싫어하고 경쟁하는 것이 일상인 곳에서라면 자신을 향해 날을 새우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나중에 다 나가떨어지고, 끝까지 남은 사람은 지완 정도가 전부.
그래도 그들의 눈빛에는 빛이 있었고, 활력이 있었다.
그러나 헤럴드의 눈빛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단순히 공격적인 눈빛이라면 익숙하니 상관없다. 그러나 헤럴드의 눈빛은 전혀 공격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한 쪽에 속했다. 그러나 텅 빈 눈동자는 마치 해골의 눈과 같이 검은 심연만 보였다.
그것만이 아니라 헤럴드의 눈빛은 포식자의 눈빛과 비슷했다.
맹수가 먹잇감을 물색하는 것처럼 헤럴드는 동팔을 볼 때 그렇게 보고 있었다.
현대 문명에서 인간이 어느 다른 생물에게 사냥감처럼 취급받는 경우는 없다. 있다면 같은 인간이 살인하기 위해 달려오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순간 경직된 동팔을 보며 헤럴드는 짜릿한 무언가가 머릿속을 관통했다.
'좋아… 역시 이 느낌이야…….'
상대가 자신을 보며 두려워한다. 그 사실에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쾌감이 밀려왔다.
비록 메이저리그에서 전 세계의 투수들이 선망하는 1선발의 자리에 있지만, 승패에는 큰 관심이 없다.
이젠 승리한다고 해서 큰 성취감을 얻는 단계는 지나갔다.
승리의 쾌감보다 더 짜릿하고 강렬한 것을 알게 되자, 이전의 즐거움이 하찮게 보였다.
그렇다고 승리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다. 지금 헤럴드에게 있어 자신이 느낀 쾌감과 즐거움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적당한 수의 승리였으니까.
'시간이 조금 남아서 큰 즐거움은 없겠지만… 계속되는 좌절에 절망할 것을 생각하면 그것도 나쁘지 않아…….'
그런 생각을 하면서 헤럴드는 마지막 타자를 공 두 개만으로 범타 처리했다.
따악~.
1회초. 첫 이닝에 헤럴드가 던진 공의 개수는 고작해야 6개.
이미 동팔에게 회복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헤럴드는 동팔이 어떤 작전으로 나올지 파악했다.
'분명히 연장전을 이용한 체력전으로 끌고 가겠지. 그럼 나는 나대로 준비해야하지 않겠어?'
그것은 투수 숫자를 최소한으로 만드는 것. 그러기 위해선 삼진보다 적은 공으로 아웃카운트를 잡아야 했다.
그것은 바로 범타. 잘하면 공 3개로 이닝 하나를 지울 수 있는 방법이다.
투수나 팬들에게 있어 삼진보다 가치가 떨어져 보이지만, 결국 같은 아웃카운트를 더 적은 공으로 잡는 것이 중요했다.
쓰리 아웃으로 공수교대가 일어나면서 헤럴드는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그리고 지금의 자신을 만든, 섹스보다 더 짜릿한 쾌감을 알게 해준 그때를 떠올렸다.
***
몇십년 전이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20년 전은 확실했다.
아직 아이인 헤럴드는 부모가 모두 백인이었지만 빈민가를 벗어나지 못했다. 못 사는 사람들 중에 흑인과 유색인종, 히스패닉 계열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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