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206화 (206/325)

[206]

에이전트의 입장에선 뛰어난 선수를 구단의 눈에 들게 하여 높은 연봉으로 계약하려 한다. 반면 구단은 좋은 선수를 최대한 돈을 아껴 영입하려 한다.

그 사이에 일어나는 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선 뛰어난 정보력과 분석력을 필요로 한다.

민희가 이전부터 다른 선수들을 알아보고 있었지만, 지금 확실한 카드는 어디까지나 마크 이외에 없었다.

이는 오히려 악마가 다가왔다는 점에 기인해 잠재력을 인정받은 경우였다. 하지만 그 이후로 악마가 다가온 경우를 확인할 수 없어 더 이상의 영입은 어려웠다.

그러니 민희가 이번 시즌이 끝나고 강하게 밀어붙여야 하는 선수는 마크밖에 없었다.

다른 유망주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정말로 뛰어난 유망주는 메이저 에이전트에서 이미 채간 다음이었으니까.

'민희의 일도 일이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내일 있을 첫 경기에서 이기는 것뿐인데…….'

솔직히 말하면 할 게 없는 이유였다.

이미 오늘 할 훈련은 다 했고, 오랜 만에 만난 사람과 화목을 다졌다.

동팔이 해야 할 것은 내일 있을 경기에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 그러나 어차피 새벽이 되기 전에 자동적으로 회복이 되니 그것도 억지로 할 필요가 없었다.

당연히 남은 것은 상대팀 타자의 분석. 그리고 직접적인 것은 아니더라도 상대 선발 투수의 공략법이었다.

타자가 아닌 이상 상대 투수의 공략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뉴욕 메츠의 제리스를 공략한 것이 팀의 승리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 승리가 있는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지역에서 우승할 수 있었다.

그러니 비록 타자는 아니라지만, 투수의 입장에서 공략법을 찾는 것이 팀에게 도움이 된다.

'분명히 계약자라고 했으니 특별한 힘이 있는 거겠지? 그럼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려나…….'

하지만 공략법을 알아내는 것도 일이고, 알아내더라도 어떻게 말해야 하는 지도 일이었다.

제리스의 경우 바람을 읽는다고 하면 되었기에 무난히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내일 상대할 헤럴드는 어떤 능력을 받았는지 알 수 없다.

터무니없는 능력은 아니겠지만, 그 능력이 일반 사람들로 하여금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인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일단 어떤 능력인지 파악부터 하자. 제일 좋은 것은 웜우드가 직접 본 다음 알아내는 거지만, 가본 적이 없고, 그의 계약자였던 모데스가 철저히 통제했다고 하니 그건 어려울 거고…….'

바로 알아낼 수 있는 카드가 있지만, 이제 그 카드는 힘이 다해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원인 제공자가 바로 자신이니 거기에 대해 불만을 가질 순 없었다.

'확실한 것 하나는 염력같이 공을 비롯한 물체에 물리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 그 단서 덕분에 제리스의 능력을 얼추 파악할 수 있었으니 이번에도 역시 통용되겠지. 동시에 신체에 한해서 특정한 힘이 부여된다는 거야. 바람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처럼…….'

만약 그렇지 않다면 생각해야 할 능력은 아주 많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구위가 뛰어난 것이 아니라면 힘이나 신체의 강화는 아니겠지. 나처럼 회복능력이 있다면 나와 비슷하겠지만, 전혀 다르니 이것도 제외…….'

그리고 다른 것을 알아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제리스처럼 바람의 영향을 잘 받는 너클볼을 중점적으로 던지는 것이 아니야. 그렇다고 특별히 뛰어난 구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평범해. 메이저리그 기준으로.'

기록은 특급이지만, 구위는 일반적이었다.

그 괴리감이 더 이상의 추축을 할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

한편 동팔이 열심히 무언가에 골몰하고 있을 때, 그렇게 만든 당사자인 헤럴드는 유유자적했다. 어차피 자신들의 홈에서 경기를 하니 훈련이 끝나고 바로 집에 가던가, 아니면 긴장을 풀기 위한 여흥을 간소하게 즐긴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게임이었다.

헤럴드는 혼자 넓은 거실에서 하지 않고, 다른 선수와 같이 하고 있었다. 그 선수는 같은 팀의 동료이자 타자였다.

두 사람은 인터넷으로 연결한 밀리터리 슈팅 게임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각자의 시선을 하나의 화면으로 표시할 수 없으니 VR기기를 이용하고 있었다.

"고, 고, 고!!"

"라져!"

평상시에 쓰지 않을 군대 용어를 쓰면서 상대팀을 잡아나갔다. 그리고 둘이 같은 팀과 떨어져 고립이 되어 포위를 당했어도 끈끈한 협동 플레이로 포위망을 풀고, 오히려 역습을 가하는 것에 성공했다.

한동안 그렇게 게임에 열중하다가 시간이 지나자 VR기기를 벗으며 말했다.

"어우~ 좀 쉬자. 헤럴드, 너 안 어지러워?"

"고작 이 정도로 어지러우면 안 되지."

"그럼 서봐."

그의 말에 헤럴드는 서려고 하다가 다시 앉았다.

"됐어. 나중에."

"허세는. 크크큭."

이들은 오랜 시간 VR기기를 사용한 후유증에서 벗어나길 기다렸다. 약간이 시간이 지나 일어서도 무리가 없자 바로 부엌으로 가 시원한 캔맥주를 따서 마셨다.

"캬~ 좋다."

"사우나 하고 먹는 것 다음으로 좋아!"

시원하게 목을 축인 그들은 다시 넓은 거실로 갔다. 헤럴드는 동료 선수, 데미안을 보며 말했다.

"이제 해방되는 기분이 어때? 그동안 숨기느라 고생했어."

"고생은 무슨. 무임승차하는 기분이던데. 이번에 잡을 녀석은 누구야?"

"한국에서 온 동팔이란 친구야. 아직 계약 기간이 있으니까 주목적은 아냐. 이번 시즌의 사냥감은 메츠의 두 친구들이지."

헤럴드의 말에 데미안은 피식 웃었다.

"둘? 우리와 같은 조합인가 봐."

"응. 그러니 메츠가 간만에 지역 우승을 하고 올라오는 중이잖아. 같은 뉴욕이지만, 저력과 자금력에 한계가 있는 팀이 올라올 수 있는 이유라면 뭐가 있겠어?"

뉴욕 메츠가 월드시리즈 우승 경험이 없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 2회의 우승을 했지만, 그때마다 붙는 '기적적인' 이라는 수식어였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기적이겠지만, 계약자들은 오히려 당연한 전개였다.

"제리스가 투수로서 마운드를 지키고, 저스틴이 타격으로 점수를 낸다. 그럼 적어도 5번 중 한 번은 승리가 거의 확실해. 나머지도 저스틴이 계속 타석에 설 수 있으니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지지."

강력한 타자 한 명이 있으면 점수를 낼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것도 악마와 계약을 하고 노력을 하여 실력이 뛰어난 타자일수록 확률은 더욱 높아진다.

점수를 많이 내도, 마운드가 두들겨 맞으면 승리할 수 없다. 하지만 승리의 기본적인 요건은 어떻게든 점수를 내는 것.

"그런데 그런 조합으로도 지는 경기가 있어? 거의가 아니라 승리가 확실한 것 아냐?"

"아냐. 한번 진적이 있어. 강동팔이 선발로 나선 경기에서 양키즈에게 졌거든. 단 한 번의 홈런으로 점수를 냈지만, 어떻게 공략했는지 몰라도 제리스가 흔들렸어. 결국 2대 1로 진 거야."

헤럴드의 말에 데미안이 내심 감탄했다.

"아~ 그때가 강동팔의 처음이자 마지막 피홈런이라고 했었나? 그리고 제리스와 저스틴의 조합이 진 경기라… 설마 뉴욕에 다른 계약자가 있었나?"

"없어. 이미 모데스를 통해 확인한 다음이야."

웜우드와 달리 행동의 제약이 없으며, 계약의 서를 이용한 내용을 살펴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악마가 모데스다.

그의 지위는 악마장관 못지않은 원로의 직위에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생각보다 양키즈의 저력이 좀 있는 건지도. 계약자만 신경 쓰면 안 되겠네."

"그래도 제일 경계해야 할 녀석이 계약자인 것도 사실이야. 참고로 동팔의 능력은 회복이란다."

헤럴드의 말에 데미안은 헤럴드가 그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와우~ 그럼 노력만으로 그 자리에? 엄청난 친구였구만."

그리고 결론도 같았다.

"그래도 나 빼고 다른 녀석이 해방되는 걸 보고 싶지는 않아. 끝까지 잡아주겠어."

데미안은 안락한 의자에 앉으며 이어 말했다.

"그래서 내일 어떻게 할 건데? 역시 간만에 전력으로?"

"당연한 소리. 지금 꺾어야 이후가 편해. 동팔을 세워도 승리하지 못하면 양키스는 꽤 심한 타격을 받게 되거든."

양키즈 입장에선 동팔이 선발로 등판할 때, 어떻게든 승리해야 한다.

상대가 점수를 내지 못하게 만든 후, 자신들이 어떻게든 점수를 내어 승리를 먼저 가져가면 유리한 건 당연지사.

강력한 선발 카드를 써도 승리하지 못하면, 그 뒤로는 데미안의 강력한 타격을 앞세운 시애틀의 공격이 있다.

뉴욕 양키즈의 전력이 약한 건 아니지만, 계약자가 둘 있는 팀과 경기하면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

어차피 둘 다 지역에서 우승하고 디비전에 올라온 팀이라 서로 쉽게 상대할 수 없었다.

그러니 약간이 차이가 곧 디비전을 통과할지 말지를 결정하게 된다.

***

메이저리그를 바로 앞에서 보는 미국만 아니라, 야구에 관심이 많은 다른 나라에서도 보는 것이 메이저리그.

그 중 지역리그에서 우승하고 강팀들만의 경기가 시작되는 포스트시즌에 더 많은 관심의 집중이 일어난다.

한국이라면 한국 선수가 있는 팀의 일정을 보기 원한다.

비록 남궁지완이 부상을 입고, 캔자스시티가 와일드카드에서 떨어졌지만, 다른 팀이 남아 있었다.

특히 관심을 받는 팀은 동팔이 있는 뉴욕 양키즈와 동욱이 있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였다.

그리고 오늘은 동팔이 선발로 등판하는 디비전 첫 경기.

동욱이 있는 중부지역부터 경기가 시작되어 한국 팬들 중 열성적인 사람은 잠을 설쳐도 일어나 생중계를 보았다.

동욱의 첫 디비전 시리즈에서 빼어난 타격감각을 뽐내며 팀의 5대 3승리를 거두는데 일조했다.

동욱의 활약으로 기분좋게 시작한 한국 팬들은 또 다른 낭보를 기다린다.

바로 디비전 시리즈에서 처음으로 선발 등판하는 동팔의 승리였다.

경기가 시작하고, 시애틀의 홈경기라 1회말에 나와 공을 던져야 하는 동팔. 그는 더그아웃에서 헤럴드가 공을 던지는 모습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확실하게 알았다.

'정말로 평범해. 너무 평범해서 어떤 능력인지 짐작이 안 가.'

던지는 폼도, 구종도, 구속도 평범했다. 특출한 능력이 보이지 않으니 단서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전반적으로 스펙이 최상위라 상대하기 난감한 자신과 달리, 다른 의미로 상대하기 난감했다.

'저런 구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1선발인 거지? 이해할 수 없어. 하지만 기록이 모든 것을 증명하고 있으니 부정할 수도 없고.'

아직 두 시즌의 시간이 남아 있다.

그래도 이왕이면 빨리 월드시리즈를 우승하는 것이 좋다. 그 첫 관문에서 제일 강한 적을 만났지만, 오히려 좋은 기회라 생각하기로 한 동팔.

'그래도 결국 체력적으로 우위에 있는 쪽은 나야. 나는 계속 회복할 수 있지만, 헤럴드는 그게 불가능. 그럼 어떻게든 연장전까지 끌고 가서 버티면 내가 이겨!!'

상대의 능력을 알 수 없다면,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 하는 방법으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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