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205화 (205/325)

[205]

그래서 동욱이 선택한 것은 그가 알려준 정보는 웜우드가 알려준 것과 겹치는 것만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 이외의 정보는 사실 확인이 되지 않는 이상, 알고만 있을 뿐 받아들이지 않았다.

동욱은 두 악마의 상황은 몰라도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알고 있다.

'반드시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다. 반드시…….'

이것은 자신의 영혼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숙제이자 사명이었다. 그리고 정규시즌과 달리 토너먼트다.

물론 한 경기만 하고 승자와 패자를 판가름하는 와일드카드와 달리 디비전 이상은 복수의 경기를 진행한다.

디비전 시리즈는 5전 3선승제. 그리고 그 위인 챔피언십과 월드시리즈는 7전 4선승제이다.

디비전은 연달아 승리하거나 패배하지 않는 이상, 못해도 4경기가 진행된다. 토너먼트라고 해도 와일드카드나 축구처럼 한 경기에 모든 것이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162경기의 결과가 쌓이는 정규시즌에 비해 경기 숫자가 적은 것은 사실.

비록 오늘 경기에 지더라도, 내일 이기면 희망을 볼 수 있으니 또 다른 긴장이 흐른다. 그리고 토너먼트인 이상, 정규시즌의 경기에 비해 무게가 더 무거웠다.

동욱은 훈련을 하면서 배트를 가볍게 휘두른다.

"전에는 회전이 빠르고, 그립의 노출을 최소화시키는 공에는 약했지만……."

약하다고 했지만, 그것도 던질 수 있는 투수에 한했다. 각 구단의 1선발 급의 역량을 지니지 않는 이상, 동욱이 약하다 말한 공을 던질 수 없었다.

그 중에 당연히 동팔과 지완도 포함되어 있었다.

약한 공은 그의 입장에서 사각을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 그러려면 투수는 팔에 부담이 많이 가는 자세로 던져야 했다.

결국 그 여파일지 모르겠지만, 지완은 부상으로 먼저 탈락했다. 이제 동욱이 특별하게 경계하는 투수는 동팔.

하지만 아쉽게도 몸에 부담이 가는 자세라도 언제나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동팔이었다.

토너먼트라 어떤 결과가 나와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래도 뉴욕 양키즈가 시애틀 매리너스를 누르고 챔피언십에 올라오면 부담스러운 투수를 상대해야 한다.

그러나 동욱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이젠 그걸 이용하면 되겠지. 부작용 때문에 쓰지 못한 걸 시험할 좋은 기회야."

아직 그에겐 정규리그 중엔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능력이 있었다. WBC때 말하지 않은 또 다른 능력을.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이러는 것이 동팔에게도 좋아. 내가 먼저 해방되면, 녀석이 있는 팀에 들어갈 여유가 생기니까. 그러나…아무리 자금이 탄탄한 뉴욕 양키즈라도 쉽지 않겠지만…….'

지금 그의 몸값은 5할에 육박하는 타율과 미친 타점으로 인해 걷잡을 수 없게 뛴 상태.

이런 상황에 특급 투수를 데리고 있는 뉴욕 양키즈가 감당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물론 자신이 먼저 해방된다면, 내년에 일부러 슬럼프를 보인 후, 상대적으로 싼 값에 양키즈로 갈 생각이었다.

다만 구단을 선택할 자유가 거의 없는 상황이라 마음대로 되지 않겠지만…….

***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끝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디비전 시리즈가 시작된다.

그리고 이미 뉴욕 양키즈와 시애틀 매리너스의 첫 경기는 시애틀에서 하게 되었다.

덕분에 하와이에 살고 있는 필립은 가족들과 경기를 볼 수 있었다. 물론 그에 상당한 휴가를 써야 했지만, 지금 그는 그것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시즌 시작하기 전에 보고,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야."

"좋은 투수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잘할 줄은 몰랐어요. 그렇지, 잭?"

그들은 동팔이 신혼여행에서 만난 필립 존슨 가족이었다.

"홈구장인 뉴욕 스타디움에서 하면 좋겠지만, 그러면 시간이……."

"시애틀이면 하와이에서 가까우니까 다행인거죠. 그래서 우리가 묵을 호텔은 어디에요? 예약했다면서요?"

제인의 말에 필립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야 제일 좋은 곳에 예약을 했지. 가면 깜짝 놀랄 걸."

대체 얼마나 좋은 곳에 예약을 했는가 싶어 제인은 걱정과 기대를 했다. 그런데 이들이 간 호텔은 평범했다.

나쁜 곳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좋은 것도 아니었다.

제인의 얼굴에는 실망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걸 보면서도 필립의 안색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지금은 호텔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여기에 누가 묵고 있는지야."

필립의 말에 제인은 생각했다.

'설마 호텔보다 우리가 묵는 것에 의미를 가지란 걸까? 요즘 들어 자신감에 대한 책을 보는 것 같더니 이 정도였을 줄이야…….'

하지만 다행히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

그리고 그건 잭이 제인보다 먼저 알아차렸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보네요."

민희의 등장에 제인이 깜짝 놀랐다.

"오, 미세스 캉?"

"아하하… 그냥 미세스 리라고 불러주세요. 한국은 결혼해도 여자의 성은 바뀌지 않아요. 다행히 예약이 잘 되었나 봐요."

민희의 말에 제인은 필립이 왜 여기로 예약했는지 알아차렸다.

"설마 여기에……?"

"맞아. 뉴욕 양키즈 선수들이 묵는 호텔이야. 민희씨한테 쪽지로 물어봤는데 알려줬거든."

처음 만났을 때는 단순히 장래가 유망한 루키였다. 하지만 이제는 뉴욕 양키즈에서 제일 뛰어난 투수로 인정을 받았고, 이번 시즌이 끝나면 사이영상의 유력한 후보가 되는 선수가 되었다.

한 번 만나 사인을 받아도 영광인 선수가 되었는데, 이젠 그 선수와 제대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눈앞에 생긴 것이다.

"훈련이나 일정 때문에 많이 만날 수 없겠지만, 식사하면서 지난 추억 떠올리는 건 가능할 거예요. 이미 스케줄 다 확인했어요."

동팔이 크게 성공하면서 과연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었던 그들. 하지만 생각보다 이들은 명성에 비해 소탈했고, 스스럼없이 다가와 주었다.

미국 동부 끝에서 서부의 끝자락(엄밀히 말하면 알래스카의 서쪽 끝과 하와이가 더 멀지만)까지 시차가 있다.

그래서 동팔을 포함한 뉴욕 양키즈 선수단은 일찌감치 시애틀에 와서 적응을 마친 상태. 물론 훈련할 수 있는 장소가 이미 마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차가 발생해도 큰 차이는 아니라 적응에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항상 훈련만 하는 것도 아니고, 자유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아는 사람과 저녁 식사를 하는 건 미리 말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괜히 멀리 나갔다가 사고라도 생기면 경기 일정에 큰 변수가 생기는 만큼, 선수들은 알아서 조심한다.

그들도 지금 월드시리즈로 향하기 위해선 자중해야 하는 때임을 알기에 자체적인 규율에 따르고 있었다.

그러니 동팔이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과 만나도 멀리 가는 것은 어려웠고, 결국 묶고 있는 호텔의 식당에서 만나는 것이 전부였다.

"오랜만이에요, 필립. 그리고 존슨 부인. 잭도 잘 지냈니?"

동팔의 인사에 잭은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아빠, TV에서 보던 사람이야."

양키즈 팬인 이상, 야구 중계를 빼놓지 않고 보려는 필립. 당연히 아들인 잭도 옆에서 같이 봤고, 선발로 등판하는 동팔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들인 잭의 말에 필립이 말했다.

"그렇지? 그래도 인사했으면 어떻게 해야 해?"

아빠의 말에 잭은 동팔을 향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잭 존슨이에요."

"그래, 난 강동팔이라고 해. TV에서만 보다가 직접 보니까 어떠니?"

아이 덕분에 이전처럼 금방 화기애애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식사를 하면서 그동안의 이야기를 하게 된 그들.

그리고 당연히 이번 경기에 대한 주제로 넘어갔다.

"이번 시즌에 양키즈도 대단했지만, 시애틀도 만만치 않았죠? 특히 이번 첫 경기 선발인 헤럴드의 경우는 상당히 특이한 투수로 유명합니다."

"그런가요?"

"네. 분명히 구위는 좋지 않은데, 이상하게 결정적인 순간에 치는 타자가 거의 없어요. 단순히 몇 번이라면 우연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지금까지 계속 그래왔으니 신기한 거예요."

그건 이전에도 들었다. 분명히 구위 자체가 좋은 것이 아니지만, 이상하게 칠 수 없는 유형의 투수.

"단순히 변화구가 좋다 생각하려해도 그것만으론 설명이 부족하거든요."

동팔과 민희는 이미 그 부분에 대해서 들었다. 더불어 동팔은 그 이상의 것을 알아보고 있었고 그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직접 상대한 같은 팀 타자들에게 물어 봤어요. 분명히 뛰어난 공을 던지는 것도 아닌데 왜 중요한 순간에만 못 치게 되는 건지. 그러자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예상한 공은 절대로 안 온다.' 라고……."

"예상한 공이 아니다라… 독심술은 아닐 거고, 경험에서 나온 감일까요? 그래도 감 치곤 너무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은데……."

"예상하지 못한 공만큼 타자들이 싫어하는 공은 없을 겁니다."

공이 빨라지는 만큼 생각할 시간이 줄어들거나 사라진다. 그리고 예상한 경로로 오는 것을 비틀기 위해 구속이 느려지더라도 변화구를 던지는 것이다.

그리고 제구가 안 되는 강속구보다 제구가 잘 되는 변화구가 타자를 상대로 더 효과적이다.

다승을 거두는 투수의 유형을 보면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보다 변화구가 주력인 투수의 숫자가 더 많은 것이 이를 증명한다.

팀 동료와 구단에서도 알아내지 못한 것을 단순한 팬인 그들을 통해 알아낼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리고 이번 만남은 어디까지나 친목이었다.

마침 만날 기회가 되어 만나고 하와이에서 받은 도움의 일부를 갚는다는 의미도 붙여 놓았다.

이번 만남에서 필립의 경우는 아주 운이 좋았다.

"헤이 캉."

"여기서 뭐 해? 혹시 이분이 그분?"

동료들도 동팔이 누구와 만나는지에 대해 넌지시 들어 알고 있었다. 그리고 덩달아 내려온 뉴욕 양키즈의 선수들과 만난 필립과 그의 가족들은 동팔만이 아닌, 그들의 사인도 같이 받을 수 있었다.

***

만남을 마치고 자신만의 방에서 쉬고 있는 동팔. 지금은 디비전 시리즈를 치르기 위해 왔기 때문에 민희는 따로 마련한 방에서 묵고 있었다.

"민희는 민희대로 준비하는 것이 많은데… 나는 뭘 해야 하나……?"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이 끝나게 되면 동팔이 고정적으로 해야 할 일은 거의 없다. 이른바 프로선수에게 있어 긴 휴식과 휴가가 주어지는 것이다.

다만 기록이 좋지 않거나, 실력이 떨어지면 영원히 쉬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동팔의 경우는 그 반대로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것 이외에는 할 일이 없다. 하지만 민희는 다르다.

시즌이 진행되는 동안에 다양한 선수를 탐색했다면, 이제는 본격적으로 영업에 들어가야 한다.

시즌이 끝남과 동시에 각종 이적 및 영입이 이루어지는 시장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적시장이 반짝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 같아도 그건 겉으로만 그럴 뿐. 실제로는 오랜 시간동안 준비하고 접촉을 해 와야 이 순간에 확실한 실적을 올리게 되니까.'

이건 비단 민희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구단과 에이전트 회사의 일이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