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204화 (204/325)

[204]

악마의 계약은 기본적으로 악마의 힘을 이용하여 무언가를 더 얻는 것에 있다. 지완의 경우는 본인의 잠재력만 발현할 뿐, 그 이상의 것을 얻지 못하는 일종의 사기 계약이다.

즉, 계약으로서 힘이 발현되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추측일 뿐이지 확증된 건 아니다. 이왕이면 그가 여기에 오거나 둘이 만나는 때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일정상 불가능하다. 지금은 저쪽의 상황이 급하니 움직이는 성스러운 땅과 함께 있는 그자라면 계약의 진위를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하얀 늑대의 벗의 말에 그들은 웜우드를 떠올렸다.

"하긴 그 녀석이 있으면 확실히 알 수 있겠군요. 거기에 대해 말을 했나요?"

"그자도 우리와 같은 생각을 했다. 결국 직접 확인해봐야 안심할 수 있다. 우리도, 그리고 그도."

그리고 그는 또 다른 중요한 경고를 했다.

"이번에 상대하게 될 시애틀 매리너스의 1선발을 조심해라. 그 또한 계약자다. 그것도 이미 해방된 계약자."

그 말에 동팔은 반색했다.

"그럼 어쩌면 좋은 조력을 얻을 수 있겠군요."

같은 입장에 있으니 계약에 묶인 사람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하지만 하얀 늑대의 벗이 지금에 와서 경고를 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렇지 않다. 오히려 더 성가신 상대다. 지금 그는 악마의 사냥개. 계약자가 있는 팀을 상대할땐 완벽에 가까운 투구로 패배하게 만든다. 리그 중에 상대를 봤겠지만, 그의 공은 특별한 것이 없어도 타자들이 치지 못한다. 그것도 결정적인 순간에."

그의 말에 동욱은 시애틀의 1선발의 모습을 떠올렸다.

"하긴…헤럴드 트럼프의 전체적인 기록은 1선발에 겨우 걸쳐요.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주자가 득점권에 있거나 토너먼트 경기에선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으로 상대 타선을 묶어버렸고……."

구위와 기록으로 보면 자신이 앞선다. 하지만 기묘하게 그가 선발로 등판하는 날엔 시애틀은 거의 승리를 한다.

극히 일부 패배가 있지만, 그가 패전투수가 된 적은 한 시즌에 둘을 넘지 않는다.

"압도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팀에 있어선 승리를 챙기게 만드는 중요한 투수다. 이어 던지는 불펜도 부담이 없다."

인디언의 말에 동팔은 앓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으음…그건 부럽군요. 저는 거의 혼자서 경기 대부분을 책임져야 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니……."

이어 던지는 투수가 앞선 투수보다 구위가 떨어지면 상대적으로 쉽게 보인다. 이것은 뛰어난 투수가 기묘하게 승리투수가 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

반면 상대적으로 공이 더 느리고, 변화구도 볼로 많이 가는 선발 투수가 승리하는 경우도 꽤 많다.

이어 던지는 불펜 투수의 공이 더 빠르다보니 기존의 타자들은 새로운 투수에 적응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응했다 싶기 전에 불펜 투수가 바뀌고, 이내 마무리 투수가 올라와 경기를 끝낸다.

구위가 좋은 만큼, 상대 타선을 봉쇄할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점 때문에 뛰어난 투수들이 승리를 챙기는 것도 힘들다는 것은 어찌보면 아이러니라 볼 수 있었다.

"일정상, 너와 그가 같이 선발로 올라올 가능성이 높다. 그대가 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야구는 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 능력의 한계는 동팔도 알고 있다. 자신이 잘 지켜주면 승리할 가능성이 높지만, 상대도 역시 버티고 있으면 승부는 알 수 없게 된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그를 왜 악마의 사냥개라고 부르는 겁니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너와 같이 해방되지 못한 계약자가 월드시리즈에 우승할 수 없도록 막기 때문이다."

"대체 그 짓을 하는 이유가 뭡니까? 돕지 않더라도 방해는 하지 말아야 하는데……."

프로에 있는 이상 경쟁은 피할 수 없다. 그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디언의 말에는 단순히 경쟁이 아닌, 집요한 방해가 있음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그 느낌은 사실이었다.

"이유도 간단하다. 즐기기 때문이다. 최후의 희망이 사라져 지르는 절규와 좌절을 보며 즐기는 것이다."

"뭘… 즐긴다는 겁니까?"

민희가 묻지는 않았지만, 지금 동팔이 하는 질문과 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의문에 하얀 늑대의 벗이 바로 답했다.

"사람의 목숨을 넘어 영혼을 가지고 노는…, 단순히 생사여탈권을 지닌 것을 넘어 자신이 신이라도 되는 착각과 쾌감이다."

***

한편, 시애틀 매리너스는 지역 우승을 자축함과 동시에 디비전 시리즈에서 우승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이 준비에 상대 투수의 분석은 당연한 일. 다른 투수라면 몰라도 디비전에서 상대할 뉴욕 양키즈의 강동팔은 여전히 난감한 상대였다.

"단순히 기록만으로 보면 탑클래스 이상이야. 구위는 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너무 좋은 공을 던지니 그게 자충수가 되어 승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체력도 좋으니 못해도 8이닝이 기본……."

"결국 연장전까지 생각해야 하나."

던질 수 있는 구종이라도 적으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니 상대하는 타자는 머리가 아프다. 그리고 그들에게 분석한 자료를 줘야 할 분석 담당관들도 마찬가지.

심지어 이런 말도 나왔다.

"차라리 그 경기는 포기하고, 다른 경기에서 승리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헤럴드라면 충분히 승리의 발판을 마련해줄 겁니다."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과연 헤럴드가 좋아할까?"

그렇게 하면 동팔보다 헤럴드가 약하다는 것을 구단이 인정하게 된다. 그러면 그동안 쌓은 신뢰의 관계는 모래성보다 더 빠르게 허물어진다.

구단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게 해준 1등 공신의 마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건… 일단 헤럴드에게 물어보도록 하죠. 같이 맞붙을 건지, 말건지. 사실 답은 뻔하지만……."

그리고 그들의 예상대로 헤럴드가 답했다.

"당연히 붙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팬들을 생각하면 당연한 겁니다."

팬들이 바라는 것은 승리다. 하지만 당당하게 싸우지 않고 어떻게든 쪼잔한 수법을 사용해 우승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상대하는 팀이 강적일수록, 승리하는 쾌감은 몇 배 이상으로 크기 마련이다.

결국 헤럴드의 선택으로 양팀의 디비전 경기는 동팔과 헤럴드의 선발 경쟁으로 시작되었다.

자신의 의지를 말한 헤럴드. 구단 사람이 가자 바로 옆에 있는 모데스에게 물었다.

"그래서, 동팔의 능력은?"

그의 물음에 모데스는 사실대로 말했다.

"회복능력이다. 그걸 바탕으로 지금의 구위를 완성했지."

모데스의 말에 헤럴드는 휘파람을 강하게 분 다음 말했다.

"오~ 그건 참 대단해. 노력으로 거기까지 갈 수 있다니. 다른 계약자들과 질이 다르잖아."

그 또한 계약자였기에 다른 계약자들을 무시한다.

본인의 능력으로 메이저리그에 올라온 사람에게는 경외를. 하지만 악마와 계약을 하고 편법으로 올라온 사람에게는 경멸을 보낸다.

하지만 악마와 계약을 하면서도 감탄을 자아낸 사람은 동팔이 처음이었다.

"무식하다고 볼 수는 없고 우직하다 볼 수 있겠어. 결국 시간 문제였을 뿐, 부상이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올라올 녀석이라……."

일부 능력의 부족으로 악마와 계약을 한 사람과 달리, 순수한 노력으로 올라왔다는 점은 분명히 감탄할 일이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동팔의 재능 또한 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생각보다 좋게 평가하는군. 그럼 어떻게 할 거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봐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애초에 계약을 한 것이 잘못이야. 차라리 이쪽 길로 들어서질 말아야지."

자신의 사냥감이 된 이상 봐줄 이유는 없다. 어떻게 해서든지 계약자가 해방되는 것을 막을 것이다.

"지금은 동팔이 있는 뉴욕 양키즈, 동욱이 있는 클리블랜드를 막아야 하니… 결국 월드시리즈까지 가야 하잖아. 거기에 메츠가 올라오면 월드시리즈 우승은 내가 해야겠어."

이미 한 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그에게 다시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라는 건 큰 감흥이 없었다.

물론 우승의 감동이 싫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보다 더 큰 쾌감에 눈을 떴을 뿐이다.

"작년에는 계약자가 있는 팀이 거의 안 올라와서 할 일이 없었는데, 이번 시즌에는 사냥감이 많아서 좋아. 매 시리즈 때마다 얻을 쾌감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짜릿해."

자신의 말을 증명하듯 그는 자신도 모르게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모데스를 보며 말한다.

"자~ 사냥의 때가 왔다. 그러니 같이 느껴보자고. 사냥감이 발버둥 치다가 절망 속에 죽어가는 것을 볼 차례야."

그러자 모데스가 답했다.

"뉴욕 메츠의 두 녀석이나 신경 써. 동팔과 동욱은 내후년에 끝나."

그의 말에 헤럴드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거 아쉽군. 그래도 메인 디쉬를 먹기 전에 간단히 먹을 에피타이저라 생각하면 되겠지. 어차피 메츠는 내셔널리그라 월드시리즈까지 가야 만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그런데 설마 그 전에 떨어지지는 않겠지? 아니야, 그렇진 않을 거야. 거긴 두 녀석이 있는 특별한 메뉴니까."

***

한편, 뉴욕 양키즈와 시애틀 매리너스의 승자와 겨룰지 모를 클리블랜드.

그 팀의 중심타자인 동욱은 이전부터 신경쓰이던 것이 있었다.

'여기에 온 이후로 웜우드와 만난 적이 없었어. 대체 뭐 하고 있는 거지? 그렇다고 스크레이치가 자주 나타난 것도 아니었고.'

한국에서 그렇게 자주 만나던 두 존재였지만,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자 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웜우드는 애초에 만난 적이 없었고, 스크레이치의 경우는 만나는 빈도가 더욱 줄어들었다.

'설마 웜우드가 당했나? 그리고 스크레이치는 다른 먹잇감을 물색하고 있는 건가?'

둘의 상황을 정확히 모르니 지금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동팔의 계약의 수정으로 모든 힘을 쓴 웜우드가 어느 한 사람의 주변을 떠날 수 없다는 것도. 스크레이치가 지금 동욱보다 동팔에게 신경을 더 쓰고 있다는 것 역시도.

결국 5할에 조금 못 미치는 타율로 정규 시즌을 마쳤지만, 그로인해 이번 시즌 MVP는 확정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지금의 동욱에게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이제 첫 관문을 통과했어. 디비전 시리즈에서 이기고, 챔피언십을 통과한 다음 월드시리즈에 진출해야 해. 하지만 그 전에… 계약자들의 상황을 알았으면 좋겠는데… 알 길이 없잖아?'

전에도 웜우드 덕분에 얻는 정보가 많이 있었다. 물론 스크레이치를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믿을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그가 알려주는 정보 중에 가짜 정보가 있거나, 다른 것을 숨기기 위한 진실이 숨어 있기 마련이다.

동욱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했다. 스크레이치는 악마다. 웜우드처럼 악마들을 배신한 악마가 아닌, 자그마치 장관의 자리에 있는 최상위 악마다.

그의 말을 신뢰하고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은 실패로 가는 지름길. 하지만 그걸 감안하고 말할 경우를 생각해야 하니 머리는 점점 더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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